혈하마제 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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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하-第 74 章 강상혈전
그것을 본 이만기의 수하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떨쳐냈다.
창-창-창-창-!
병장기와 병장기가 맞부딪치자,
“으-아-악-”
“으악!”
허공을 헤집는 비명성과 함께 피 보라를 뿌렸다.
울컥 피비린내가 범선의 넓은 갑판을 뒤집었다.
우르르릉……꽝!
장력이 계속 폭발했다.
“으-악-”
“악!”
이만기의 수하들이 낙엽처럼 날아갔다.
그들은 검붉은 호면 속으로 빠져들고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똑똑히 보았느냐? 으흐흐.”
곤룡포 노인은 웃음을 흘리며 일장을 격출시키려 하였다.
이만기도 모든 것을 각오했는지 부릅뜬 눈으로 곤룡포노인을 지켜보았다.
이때였다.
“멈춰라!”
호상을 뒤덮을 것 같은 음성이 터졌다.
그 소리와 함께 배꽃보다 하얀 백의인영이 날아올랐다.
“흥!”
곤룡포 노인은 백의인영의 존재에 대하여 무시하듯 코웃음을 날렸다.
백의 인영은 사군보였다.
이만기는 사군보의 경공술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20여 장의 거리를 한걸음에 좁혀왔기 때문이었다.
“축, 축천신행보법! 네놈은 누구냐?”
이때서야 곤룡포노인은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휘리릭!
사뿐하게 갑판에 내려선 사군보는 곤룡포 노인을 바라보며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군보.”
“사군보! 그럼 네놈이 월영산장에 나타났던 그 사군보란 말이냐?”
“그걸 네놈이 어찌 아느냐?”
사군보는 흠칫했다.
생면부지의 곤룡포 노인이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안다 생각하니 기분도 나쁘거니와 의혹이 앞섰다.
“잘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우린 너를 만나려 했었다.”
“이유는?”
“우리 사해맹은 너 같은 인재를 구하기 때문이다. 본맹으로 와라.”
“흥!”
“왜? 싫으냐?”
곤룡포노인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후후후-! 꿈은 좋다. 그러나 깨었을 땐 허무한 법이다. 알겠느냐?”
“이런……어린놈이? 하지만 잘 생각해 보아라. 너는 본래 강호와는 원수지간이 아니냐?”
“원수지간?”
사군보가 반문하며 곤룡포 노인을 주시했다.
“다른 사람은 속일지 몰라도 우린 속이지 못한다.”
곤룡포 노인은 자신에 찬 음성으로 내뱉었다.
“그건 사실이다. 또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다. 강호인이 어찌 해적 같은 네놈들과 손을 잡겠느냐?”
“죽일 놈!”
곤룡포 노인이 뿌드득 이빨을 갈았다.
“네놈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지 못하면 백상어(白鯗魚)란 별호를 버리겠다.”
“백상어!”
이만기와 그의 수하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두 눈 만을 빤히 치켜뜨고 있었다.
백상어 밀응렬.
그는 해남도 출신이다.
그의 나이는 이미 120여 세가 넘은 인물이며, 100여 년 전 사해맹이 대륙에 상륙할 당시 20대 행동대장으로 악명이 높은 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군보는 산악이 버티고 서 있는 듯 전혀 두려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게 어때서? 내가 노인네 별호를 물어보기라도 했나?”
“소문대로 오만방자한 놈이구나.”
백상어는 이마에 주름을 접었다.
자신의 외호를 듣고도 눈썹 하나 꼼짝하지 않은 사군보에 감동을 받기까지 했다.
‘회유하기 힘들면 죽여 없애라고 했다. 아까운 놈이긴 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과업을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 진득한 살기를 머금으며 그는 천천히 일장을 뻗어내었다.
그의 쌍장이 붉게 물들었다.
백상어의 독문장공인 적살강(赤殺剛)이 극대로 끌어올려진 증거였다.
사군보는 외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흥! 백상어, 적살강으로는 내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사군보가 싸늘하게 내뱉으며 구유현명장의 내공을 끌어 올렸다.
거기에 그는 묵혈사령공의 기운을 섞었다.
쐐-액-
그의 두 손에 검은 기운이 흐르는 순간,
파-파-파-팍!
검은 기운과 부딪친 공기에 불꽃이 일어났다.
‘어린 놈이 대단하구나!’
백상어의 표정이 긴장하며 굳어졌다.
그는 의외의 강적이라고 생각하곤 몹시 놀랐다.
“놈, 이것을 받아 보아라! 화영(火影)!”
백상어의 입에서 강한 기합성이 폭발했다.
불타는 화염 덩어리 같은 화강이 불화살처럼 날아왔다.
사군보도 때를 같이하여 장을 뻗어냈다.
그러자 그의 두 손에서 검은 운무가 뭉실뭉실 뭉쳐지더니 둥근 구체를 만들어 내며 앞으로 쏘아졌다.
꽈르릉-
촤아아아앗-촤아앗--!
두 기운이 부딪치자 그 진동에 호수 수면이 미친 듯 넘실거리고 범선이 크게 뒤집어질 듯 흔들렸다.
수 십개의 물기둥이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콰르릉!
촤아앗-
서로 극강과 극강의 무공을 펼치며 격돌하는 두 사람.
바다의 태풍이 장강으로 올라온 것처럼 거창한 파도가 해일처럼 일어나고 미친 듯 넘실거리는 수면으로 인해 주변 배들이 가랑잎처럼 날아간다.
“피해!”
“노를 저어라! 기의 파장에서 어서 벗어나라!”
수룡채건 사해맹이건 전주 싸움을 멈추고 배를 저어 격전의 장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쾅!
콰드드득!
결국 늦게 반응한 사해맹의 배 중 두 척이 기강의 폭풍에 휩쓸려 파괴되었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은 10초를 빠르게 교환되었다.
그들의 격전은 용호상박이었다.
뱍상어는 당장에 처 죽이지 못하는 자기 실력에 수치를 느꼈다.
이대로 그냥 물러설 수 없다는 굳은 투기가 물씬 일어나 입고 있는 곤룡포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사군보의 신형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천망(天網)!”
그의 입에서 기합성이 폭발할 때 그를 감싼 흑무가 지옥의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화르르륵……!
흑무는 완전히 그를 감싸버렸다.
그리고 그 흑무는 점점 뭉쳐지고 농밀해지더니 이내 반원의 막을 형성했다.
반원의 막 안에 갇힌 것 같은 사군보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백상어가 혼신을 다해 강력한 장력을 날려 왔다.
쓔앙-
붉은 불기둥 같은 장력은 그대로 흑막을 때렸다.
펑!
하지만 백상어의 장력이 반탄력에 퉁기면서 흩어졌다.
백상어는 기겁하며 1장 가량 물러났다.
그 모습을 흑막에 갇힌 사군보가 잔인하게 지켜보았다.
말없는 눈초리.
그저 바라볼 뿐이건만 백상어는 등골이 오싹했다.
“으…… 어린놈이 대단하구나……”
백상어는 해쓱하게 질린 노안에 공포의 그늘을 떠올렸다.
백상어는 12성의 공력을 끌어 모아 쌍장에 실었다.
“참살(斬殺)! 뢰전(雷電)!”
꽝-
꽈르릉- 꽝-꽝-꽝-
폭음은 두 사람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그 속에서 신음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우욱-!”
백상어의 입이 벌어지며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는 완전히 사색이 되어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쿵-
백상어가 갑판 위에 길게 넘어졌다.
그의 전신은 이내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이럴 수가……”
이만기는 물론 백상어의 수하들은 믿어지지 않는 듯 혈전장을 주시했다.
100여년전부터 악명을 떨치던 거마가 사군보에 의해 패할 줄은 그 누구도 짐작치 못했던 일이었다.
한편, 사군보 역시 과다한 내공을 쓴 탓인지 급격히 피로해 보이는 눈치였다.
묵혈사령공을 거둔 그는 선 채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도망가라!”
“백상어 단주가 죽었다!”
촤아앗- 촤아앗-
백상어가 죽자 사해맹 무리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그들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몇 척의배는 벌써 선수를 돌려 후퇴를 하고 있었다.
이때를 놓칠 이만기는 절대 아니었다.
이만기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모조리 장강의 밥으로 만들어라.”
그때다.
“방주, 공자가 위험합니다.”
이만기 옆을 호위하던 호법 하나가 급히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사군보가 타고 있던 배를 가리켰다.
흠칫 놀라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이만기의 눈 속으로 동정호 호수를 물 찬 제비처럼 박차며 사군보에게 달려가는 두 명의 사해맹 사람이 보였다.
“비겁하게 기습을!”
창!
이만기는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마침 사군보를 향해 덮치는 두 사해맹 사람을 향해 검초를 떨쳐내었다.
츄츄츄츄츄--!
날카로운 검기가 공기를 가르며 두 사해맹 사람들을 덮쳤다.
두 사해맹 사람은 기습을 노리다가 이만기에게 차단을 당하자 급히 신형을 선회하며 그의 검을 맞받아갔다.
그 순간이다.
사군보와 음공 대결을 벌였던 중년인이 그 틈을 노려 사군보에게 가공할 장력을 뿌리며 닥쳐들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 따위는 아예 저버린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앗!”
이만기가 기겁하였다.
앞 선 사해맹 두 사람의 공격은 허초와 같은 효과를 냈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한다 해도 뒤를 이은 중년인의 공격이 있기에 그들은 이만기를 잡는 역할을 한 것이다.
“타핫! 그대로 두지 않는다!”
이만기는 갑판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를 맡은 두 사해맹 사람의 실력 역시 만만치 않아 그는 사군보를 공격하는 중년인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중년인의 장력은 이미 사군보를 격타하고 있었다.
콰쾅-
두 번의 폭음이 일었다.
누구나 사군보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운기조식 중에는 모기가 날아와 침을 쏴도 즉사 내지는 주화입마하게 될 정도로 약간의 충격에도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 혼신을 다한 장력을 정면으로 맞았으니 온전할 리 있겠는가?
헌데 괴변이 일어났다.
사군보를 감싼 흑무가 고무처럼 늘어났다.
흑무는 중년인의 장력을 감싸더니 반사되듯 퉁겨내었다.
“악-!”
장력은 정확하게 되돌려졌다.
중년인은 자신이 날린 장력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풍-덩-!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 광경에 이만기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반탄강기(反彈剛氣)!”
내공이 화경에 달하면 온몸의 정신이 눈을 뜨게 된다.
무릎을 치면 종아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 인간이 지닌 반사작용이듯, 위험이 닥치면 체내의 진력이 저절로 가공할 강기의 막을 형성하게 된다.
이를 호신강기라 한다.
이보다 더 상승내공에 도달하면 호신강기가 외부의 힘을 되받아 캐치는 반탄력을 지니게 되는데 이를 반탄강기라 한다.
“……”
사군보는 운기를 마치며 조용히 눈을 떴다.
그를 감쌌던 흑무가 자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싸움은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우두머리를 잃은 사해맹은 연신 밀리고 있었다.
이때였다.
둥-둥-둥-
북소리가 동정호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사해맹의 수하들과 그들이 타고 온 범선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세 척의 범선은 순식간에 멀어져 모습을 감춰버렸다.
열 두 척의 쾌속선은 이미 불타 호수에 가라앉고 없었다.
기세당당하게 나타날 때와는 달리 참담한 패배만을 안고 도주한 것이다.
“와--와--!”
“와! 이겼다!”
수왕채의 수하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만기는 도망치는 사해맹의 배를 뒤쫓지 않았다.
뒤쫓을 여력이 없었다.
만약 사군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이만기는 수하들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연후 사군보를 찾았다.
그러나 없었다.
사해맹이 퇴각함과 동시에 사군보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만기는 힐끗 멀어져가는 사해맹의 범선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군보라고 했나……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