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34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34화
이를 보면 산동성 사람들이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산동성 조현은 맛이 좋고 독하기로 유명한 화주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현 전체에 화주 하나만을 만드는 주가들이 농담 조금 섞어서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조현의 한 주가에는 눈이 먼 고가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한 삼십 년 전에 조현에 들어온 고가 노인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인식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십 년 전에도 노인이었는데 지금도 그 때와 별다를 것이 없는 노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맹안(盲眼)을 숨기기 위해 늘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다녔는데도 행동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듯 일꾼 하나 두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에 고노는 조현 사람들에게 특이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고 지금은 그저 오래 살면서 일 잘하는 노인……. 그것이 고노에 대한 평이었다.
화가주(和家酒)
“쿨럭! 쿨럭!”
기침을 하며 나온 고노가 익숙한 손길로 현판을 닦아냈다. 그런 고노를 본 다른 주가의 젊은이가 웃으며 말했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젊은이의 인사에 그쪽을 바라본 고노가 웃었다.
“자네도 일찍 나왔구먼.”
“봄이라고 해도 아직은 아침에는 쌀쌀합니다.”
“아침에는 쌀쌀해도 낮에는 따스하니 봄이 더 다가온 듯 해 기분이 좋지 않은가?”
“후!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자네도 수고하시게.”
웃으며 답을 한 고노가 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화가주 안에는 사람 크기만 한 단지들 십여 개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술이 익어 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데도 단지에 다가간 고노가 술의 향을 맡으며 한쪽에 있는 화로에 익숙한 손으로 장작을 몇 개 집어넣었다.
날씨가 너무 추우면 술이 익지 않으니 적당히 온도를 올리려는 것이다.
일을 할 준비들을 하던 고노가 문득 행동을 멈췄다.
“오셨습니까.”
텅 빈 주가인데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 하지만 그 답은 곧 옆에서 들려왔다.
“강녕하셨습니까.”
목소리와 함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옷을 입은, 아니…… 군데군데 회색의 옷자락이 보이는 것을 보면 원래는 회의였을 옷을 입은 여자는 바로 성녀였다.
회의가 붉게 보일 정도로 피를 묻히고 있는 성녀를 지긋이 응시하던 고노가 고개를 저었다.
“꼴이 말이 아닙니다.”
“도와주세요.”
다짜고짜 도와달라는 성녀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고노가 술을 빚기 위해 준비해둔 물 단지를 가리켰다.
“씻으시지요.”
“도와주세요.”
성녀의 말에 고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나선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아십니까?”
“알고 있어요.”
“아니, 모르십니다. 제가 스스로 교를 떠나 이곳에 은거한 이유는…….”
잠시 입을 다문 고노가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화아악!
순간 검은 천 사이로 사이한 붉은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흠칫!
그 붉은빛에 성녀가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났다.
“파…… 군성.”
북두신공 칠좌의 무공 중 최강이라 불리는 단 하나의 좌……. 죽음을 부른다는 파군성의 혈안이 반짝이고 있었다.
말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고노의 모습에 성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고노는 이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성녀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원하지 않았다 하나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파군성을 익혀버린 자신을 말이다.
“도와…… 주세요.”
성녀의 말에 고노의 손에 들린 검은 천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화르륵!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검은 천을 보며 고노가 입을 열었다.
“일월교 대수 고광천 성녀의 명을 받습니다.”
*
*
*
호현과 허학진인은 무당산을 떠나 융중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형들이 동창에 구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호현은 가야겠다고 성화를 부렸다.
사형들이 위기에 처한 것을 어떻게 보고만 있느냐는 호현의 말에 허학진인은 더는 막지 못하고 그의 하산을 허락했다. 대신 허학진인이 동행한다는 조건을 걸고 말이다.
앞장서서 달려가는 호현의 뒤를 따르며 허학진인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탈각이라…….’
호현이 펼쳤던 투선술을 생각하던 허학진인은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누구에게서 투선술을 배운 것이냐?”
“투선술요? 그게 무엇입니까?”
“조금 전 네 몸에서 나온 영체투신(靈體鬪身)을 말하는 것이다.”
“영체투신?”
“네 영체가 몸에서 나왔는데 모르느냐?”
“헉! 혼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럼 제가 죽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네. 그럼 무엇을 하고 있던 건가?”
“그게…… 운학진인께서 남기신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것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현과 나누던 대화를 되새기던 허학진인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께서 남긴 그림은 나와 사형도 충분히 보고 또 보았는데…… 어째서 연이 닿은 것은 호현이란 말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허학진인이 힐끗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희 못난 제자들보다는 호현이 더 마음에 드신 것입니까?’
문득 선계에 있을 운학진인을 떠올리며 중얼거린 허학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운학진인은 신상 바닥에 남긴 그림을 호현을 위한 안배로 여긴 것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호현이 한 가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천불전 나한도의 그림의 흐름을 자신이 깨달았다는 것을 말이다.
천 개에 달하는 그림을 조합하고 그것을 순서에 맞게 배열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즐기고 무언가를 탐구하는 호현에게 있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은 호현에게 기연이 되었다.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며 집중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을 잃어버리는 무아에 들어버린 것이다.
운학의 그림을 통해 안 동공에 대한 깨달음이 천불전 나한도를 관통하면서 호현을 무아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한편 호현은 정신이 없었다. 사형들이 동창에 구금됐다 하지 않는가.
동창이 어떠한 곳인가? 한 번 잡혀가면 살아서 나오기 어렵고, 나온다 해도 병신이 되어 나온다는 곳이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동창은 한 명을 잡았다 하여 일을 끝내는 곳이 아니었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열이 되는 곳이 바로 동창이었다. 즉 사형들이 잡혔다면 죽대 선생에게도 화가 미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에 호현은 서둘러 융중으로 가 스승님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는 것이다.
‘어서 빨리 스승님을 만나야 한다.’
호현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융중에 있는 스승님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
*
*
죽대 선생은 제갈균과 함께 정자에 앉아 있었다.
“맹자께서 이르기를 세상의 근간은 효라 하였다. 그렇다면 효와 충의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대의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대의라……. 그럼 대의가 무엇이냐?”
“큰 도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큰 도란 무엇이냐?”
계속 자신의 답에 질문으로 일괄하는 죽대 선생의 말에 제갈균이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죽대 선생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이놈!”
손짓과 함께 터진 죽대 선생의 고성에 제갈균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짝!
죽대 선생의 손에 들린 죽대가 어느새 어깨를 후려치고, 제갈균이 신음을 토했다.
“끄윽!”
“놈! 어찌 스승의 말에 안색을 굳힌다는 말이더냐! 네 사형들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내 늙었음을 한탄했을 것이다!”
죽대 선생의 고성에 제갈균이 고개를 숙였다. 만약 지금 얼굴을 더 굳히거나 안 좋은 기색을 보인다면 죽대 선생이 어찌할지를 아는 것이다.
“송구합니다.”
제갈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죽대 선생의 죽대가 그의 어깨를 후려쳤다.
짝!
‘크윽!’
“이놈, 어찌 대장부가 이리 함부로 송구하다는 말을 남발한다는 말이더냐!”
죽대 선생의 말에 제갈균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냐고 역정을 부리고, 송구하다고 하면 또 이렇게 혼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행동을 하든 불호령과 함께 죽대가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것이다.
계속된 매질에 제갈균이 주눅이 드는 듯 몸을 움츠렸다. 그런 제갈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재차 죽대를 들어 올리던 죽대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제갈 노사가 못난 아들을 두고 갔으니 눈이나 제대로 감을지 모르겠구나.”
꿈틀!
죽대 선생의 말에 제갈균의 눈썹이 역 팔자를 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평소 같다면 당장 죽대를 들었을 죽대 선생이나 지금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원을 깎지 않는다면 네가 이룰 공이 무엇이겠냐?”
“살부지한을 갚지 않고 어찌 사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갈균의 말에 죽대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 말도 옳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도 옳으니…… 무어라 할 말이 없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죽대 선생이 입을 열었다.
“대도(大道)란 무문(無門)이다.”
“대도…… 무문입니까.”
“그렇다. 큰 도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고 듣는 이에 따라 다르다. 나에게는 나라에 충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큰 대의이자 대도일 것이다.”
“그럼 저의 대도는 무엇입니까?”
“백인백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아느냐? 대도의 길 또한 백인백색과 같아 그 가는 길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너의 대도는 네가 찾아야 할 것이다.”
죽대 선생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제갈균이 입을 열었다.
“무당학사 아니…… 호현 사형의 대도는 무엇입니까?”
“나의 가르침이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것이니 호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그렇다 하여 호현 사형까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정 궁금하다면 훗날 호현에게 직접 물어보아라. 내 입에서 나오는 것과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를 수도 있으니.”
“그리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제갈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제갈현의 모습에 죽대 선생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갈균에게 수학을 시킬 때에는 그 주위에 아무도 들지 말라 하였는데 제갈현이 온 것이다.
그 모습에 제갈현이 급히 포권을 하고는 용건을 말했다. 죽대 선생이 제갈세가에 머문 시간이 있기에 이럴 때에는 누구에게라도 호통을 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호현 학사께서 융중 오백 리 길에 들어섰다는 전서가 왔습니다.”
제갈현의 말에 죽대 선생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호현이 오고 있는 모양이구려.”
“그러합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 듯한 제갈현의 모습에 죽대 선생이 웃었다. 평소 같다면 남아가 그게 뭐냐고 고함을 질렀을 일이나, 지금은 애제자가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할 이야기가 있다면 하시구려. 사내대장부가 되어 할 이야기조차 못 한다면 쓰겠는가.”
죽대 선생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제갈현이 입을 열었다.
“하남에서 전갈이 왔는데…… 그것이…….”
“그것이 무엇인데 이리도 말을 잇지 못하시는가. 말을 해 보시게.”
사나이답지 못하게 우물쭈물하는 제갈현의 모습을 죽대 선생이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말 하나 제대로 못하는 이가 무후의 자손이라니……. 쯧쯧!’
자신을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는 죽대 선생의 모습에 제갈현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제자 분들에 관한 전언이 있었습니다.”
“호현에 관한 이야기…… 는…….”
말을 하던 죽대 선생이 순간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변하더니 제갈현을 바라보았다.
죽대 선생은 머리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한 분야에 있어서는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