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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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22화
“하지만 지금 마시는 차는 제가 태어나서 마시는 차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맛이 좋습니다.”
“맛이 없다 하지 않았나?”
홍명의 물음에 호현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처음 차를 마셨을 때가 다섯 살 때인가일 것입니다. 그때 스승님께서 황상 폐하께서 하사하신 귀한 차를 사형들과 함께 마신 적이 있습니다.”
“다섯 살 때를 기억하는 것인가?”
“기억이 좀 남는 일이라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당시 스승님께서는 사형들과 저에게 차를 한 잔씩 따라주셨는데…… 제 입에는 너무 쓰고 이상하더군요. 황상 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이니 그 등급은 최상급일 것인데 말입니다.”
호현의 말에 홍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황제가 신하에게 하사를 한 것이니 최상급일 것이었다.
“어렸으니 차의 맛을 잘 알지 못한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차의 맛을 압니다. 그때와 저의 차이는 몸이 성장한 것도 있겠지만 그 당시와 지금의 저는 생각과 마음이 다른 것도 있습니다.”
“성장을 했다는 말이군.”
“그런 것도 있지요. 하지만 지금 제가 느끼는 차의 맛은 제 마음이 먼저 맛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제 마음이…….”
잠시 말을 멈춘 호현이 혜민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중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창을 통해 보이는 그림자들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혜민원의 아이들의 모습인 듯했다. 창에 비춰지는 인영의 모습을 보던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이미 소림사라는 자애로운 차를 마셨으니 이 쓴 차도 입에는 달게만 느껴지고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이 차는 소림사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향기롭고 맛이 좋은 차입니다.”
“마음으로 차를 마셨다는 말인가?”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마음이 소림의 자애로움을 즐기니 몸 또한 그 즐거움을 따르는 듯합니다.”
사발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 호현이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도 한 잔 드리면…… 좋겠습니다. 관이 나서지 않는 혜민을 행하는 소림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말입니다.”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호현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관이 나서지 않는 혜민, 이는 관리들의 무능과 조정의 부패를 의미했다. 스승인 죽대선생은 조정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사직을 하고 방헌에 은거를 택했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 소림사의 혜민원을 보며 홍명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스승님에게 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은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 스승님께서는 더러운 것이 보기 싫어 은거를 했지만…… 스승님께서 나에게 가르친 것은 백성을 위하고 그를 구하는 일이지 이렇게 초야에 묻히는 것이 아니었다.’
호현은 이제야 사형들이 스승님의 명을 어기고 북경에 남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형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독야청청보다는 백성들을 구하는 길을 말이다.
‘스승님을 만나야겠구나. 그리고……,’
호현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홍명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호현에 대해 가졌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호현의 말에 담긴 의미가 그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가지게 한 것이다.
‘자애로운 차라…….’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신 홍명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호현의 말을 듣고 보니 차 맛이 유난히 좋았다.
‘당신은 역시 우리 소림이 품에 안아야 할 사람이로군.’
속으로 중얼거리던 홍명이 차를 내려놓았다.
“본사에 온 것을 환영하네.”
*
*
*
혜민원을 나선 홍명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기 전 스승이자 소림사의 장문인인 방장실을 찾아갔다.
호현을 만난 것에 대해 혜성에게 이야기를 해 주려는 것이다. 혜성이 머무는 방장실 앞에 선 홍명이 합장을 했다.
“홍명입니다.”
홍명의 말에 안에서 답이 들렸다. 그에 홍명이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소림사 방장의 처소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방 안에는 그의 스승인 혜성 대사가 경전을 보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불호를 외우며 합장을 한 홍명이 그 앞에 앉았다.
힐끗!
혜성 대사가 보는 경전에 시선을 둔 홍명은 그것이 화엄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그랬다. 스승인 혜성은 늘 경전을 보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바로 화엄경 중 입법계품에 대한 내용이 적힌 경전을 말이다.
홍명의 시선이 화엄경에 가 있는 것을 본 혜성 대사가 웃으며 경전을 바라보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화엄경은 참으로 배울 것이 많은 경전이구나.”
화엄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 혜성 대사가 홍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 만나보니 어떠하더냐?”
혜성 대사의 말에 홍명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무당학사라는 이름이 허언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렇다 할 설명이 깃든 것은 아니었지만 혜성 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무당학사에 대한 소문과 그들이 알아본 정보가 있다. 그것이 허언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으로 설명은 족한 것이다.
“뭐 얻은 것은 없더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당학사가 처음 무당에 올랐을 때 그와 대화를 한 무당의 도사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들었다. 너도 그와 대화를 했으니 뭔가 얻은 것이 있냐는 말이니라.”
혜성 대사의 말에 홍명이 고개를 저었다.
“첫날입니다. 앞으로 얻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홍명의 말에 혜성 대사가 한숨을 쉬었다. 사실 혜성 대사는 홍명이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당에서 얻었다고 우리 소림까지 얻을 수 있다 생각하다니…… 무당이야 무당의 무공이 있고 우리 소림은 소림의 무공이 있으니 어찌 같다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우리는 소림이거늘.’
천하제일문을 논할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거론이 되는 것이 바로 소림이다. 그런 소림이 굳이 일개 학사 한 명을 얻기 위해 이렇게 신경을 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 혜성 대사의 마음을 읽은 홍명이 입을 열었다.
“오늘 무당학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대화를 나누기는 한 모양이구나.”
혜성 대사의 말에 홍명이 미소를 지었다. 홍명이 어찌 혜성 대사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사물을 인지할 때부터 같이 지낸 사람이 바로 스승이자 부모인 혜성 대사인 것을 말이다.
‘지금은 마음에 안 드실지 모르지만…… 무당학사를 품기로 한 것은 스승님께서도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속으로 중얼거린 홍명이 호현과 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무당학사와 혜민원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아주 맛있다고 하더군요.”
“혜민원 차가 맛있다? 목이 아주 말랐나 보구나.”
목이 마를 때 마시는 혜민원 차라면 그런대로 맛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당학사는 혜민원 차가 아주 맛이 없다 하였습니다.”
홍명의 말에 혜성이 눈을 찡그렸다. 맛이 있다 하였는데 다시 맛이 없다니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혜성 대사의 반문에 홍명이 호현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혜성 대사의 노안에 미소가 어렸다.
“소림사라는 자애로운 차라…… 나무아미타불…… 이거 너무 과한 금칠이구나.”
혜성 대사의 미소에 기분이 좋아진 홍명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말해보거라. 아니, 무당학사가 말을 한 대로 그대로 읊어 보거라.”
혜성 대사의 말에 홍명이 호현과 대화를 한 것을 그대로 말했다.
“이미 소림사라는 자애로운 차를 마셨으니 이 쓴 차도 입에는 달게만 느껴지고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 이 차는 소림사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향기롭고 맛이 좋은 차입니다.”
“마음으로 차를 마셨다는 말인가?”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마음이 소림의 자애로움을 즐기니 몸 또한 그 즐거움을 따르는 듯합니다.”
홍명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혜성 대사가 잠시 멍하니 그 말을 되새기다 중얼거렸다.
“입이 아닌 마음으로 차를 마신다? 마음이 소림의 자애로움을 즐기니 그 또한 즐거움을 따르는 듯하다?”
혜성 대사의 중얼거림에 맞장구를 치려던 홍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화아악!
혜성 대사의 몸에서 은은한 서기가 어리기 시작한 것을 본 것이다.
‘이게 대체?’
홍명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혜성 대사의 입이 열렸다.
“마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느끼고 행하는 것이 마음이니 마음이 신이요, 신이 곧 마음일 것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고 느끼니 그것이 곧…….”
잠시 입을 다문 혜성 대사가 합장을 해 보였다.
‘해탈이 아니겠는가.’
“나무아미타불.”
불호와 함께 혜성 대사의 몸에서 폭발적인 내기가 분출되었다.
“헉!”
그에 놀란 홍명이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솟구쳤다.
꽈직!
문을 부수며 몸을 날린 홍명이 방장실 사방에서 은신을 하고 있는 사대금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십 장 이내에 있는 모든 자들을 내보내라. 또한 오십 장 이내에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홍명의 전음에 방장실 인근에 은신하고 있던 사대금강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을 느낀 홍명이 방장실을 바라보았다. 산산이 조각이 난 방장의 처소의 잔해들이 천천히 허공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혜성 대사가 합장을 한 채 두둥실 떠 있었다.
화아악!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혜성 대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서기에 홍명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깨달음이라…… 하아!’
“내가 먼저 들었는데…….”
호현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인데…… 정작 들은 자신은 멀쩡하고 혜성 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하아! 나무아미타불이구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홍명의 눈에 혜성 대사의 가사가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무아미타불.”
제10-7장 소림사의 소란
혜민원의 큰 전각들과 다르게 그 한쪽에는 작은 초가집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호현은 그 초가집 안에서 아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승을 보며 호현이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있는 노승은 얼마 전 하북에서 호북 방헌으로 갈 때 한 야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던 승려였던 것이다.
“소림사 분이셨군요.”
호현의 말에 승려, 혜각이 미소를 지었다.
“홍명 사질에게 이야기 들었네. 자네가 이곳에 머물 수 있게 해 주라 하더군. 지내기 어려운 곳은 아니지만 빈방이 없으니 자네가 이곳에 있을 동안은 나하고 같이 지내야 할 것이네.”
“호의 감사드립니다.”
“늙은 중과 같이 지내야 하니 불편한 것이 많을 것이야.”
“제가 아니라 노승께 불편을 끼칠까 그것이 저어되옵니다.”
“나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게. 그래, 얼마나 머물 생각인가?”
혜각의 말에 호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스승을 만나 그에게 북경으로 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 소림사가 어떠한 곳이던가. 그가 얼마나 이곳 소림사에 와 보고 싶었던가.
그런 소림사에 와서 하루 있다 가자니 너무나 망설여지는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호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아직 멀었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이 입을 열었다.
“삼 일, 아니 사 일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사 일이라…… 그럼 그동안 편히 지내시게. 아! 그리고 지내는 동안 우리 아이들 무식하다는 말 듣지 않게 공부라도 조금 가르쳐 주면 좋겠군.”
“밥값은 하도록 하겠습니다.”
“후! 고맙네.”
기분 좋게 웃는 혜각을 보던 호현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전각들 사이에 초가집이라, 조금 어울리지 않는군요.”
“원래 혜민원은 이 초가가 시작이었네. 본사의 옛 고승 중 한 분께서 고아들을 한둘 데려다 키운 것이 나중에는 이렇게 크게 된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