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20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20화
‘권법인가?’
권법을 새겨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호현이 주위에 있는 나한도를 훑어보았다.
권법이라는 생각이 드니 나한들의 움직임도 권법을 이루는 초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호현이 나한도의 나한과 같은 동작을 취해 보였다.
오른 주먹은 가슴 앞으로 내밀고 좌권은 그 밑을 살짝 휘어져 찌르는 형태를 말이다.
자신이 취한 자세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한도를 본 호현이 이번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그림 속 나한은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그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좀 이상한데?”
이게 권법이라면 이 자세가 어떻게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지 의아한 호현이 자세를 풀고는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발쪽의 선이 조금 더 깊네. 하체에 힘을 주라는 건가?’
그림 속 나한을 보던 호현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뿐,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연계되는 그림이 있나?’
다음 동작이 될 만한 그림이 있는지 호현이 자신이 보던 나한의 주위에 있는 나한들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지금 호현이 취하고 있는 자세와 비슷해 보이거나 다음 동작으로 보이는 그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뭐가 있을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구나.’
나한도를 바라보던 호현이 자세를 풀고는 다음 그림에 있는 나한의 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우각(右脚)을 머리 위로 쳐든 동작과 함께 상체는 뒤로 눕히며 양권은 길게 내민 자세를 말이다.
‘끄응! 이 자세는 힘이 드는데.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양민들을 위해서 그린 것은 아닌 모양이군.’
지금 호현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양민이라면 결코 취하지 못할 동작이었다.
이 동작은 사지를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무인만이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호현조차도 이 자세를 근력으로 유지하기 힘들어 자연지기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고정시키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자세를 유지한 채 그림 속 선들을 바라보던 호현이 이번에는 허리 쪽에 힘을 주었다. 그림 속의 나한의 허리 쪽의 선들이 깊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천불전을 모두 청소한 노승은 한쪽에서 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현이 나한들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을 말이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노승이 힐끗 고개를 돌려 천불전 밖을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속으로 중얼거린 노승의 신형이 그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화아악!
그리고 천불전 안에는 호현 혼자만이 남아 나한도에 그려진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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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도에 그려진 나한들의 동작을 따라하던 호현의 귀에 인기척이 들렸다.
“무당학사.”
무당학사라는 말에 양손 엄지를 세운 채 양팔을 나란히 내밀고 있던 호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에 각법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각법 스님?”
자세를 편하게 하는 호현에게 다가온 각법이 힐끗 나한도를 바라보았다.
“나한을 따라 하고 계셨던 겁니까?”
각법의 말에 호현이 무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자신이 발견한 것을 각법에게 알려주기 위해 나한도를 가리켰다.
“각법 스님이 말한 비밀이라는 것이 무언지 알 것 같습니다.”
호현의 말에 각법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역시! 무당학사라는 명성이 허언이 아니군요!”
감탄 어린 얼굴로 연신 소리를 치던 각법이 물었다.
“그래, 그것이 무엇입니까? 소림사 최대의 비밀이라고 전해지는 천불전의 기연이 말입니다!”
“그것은…….”
“그것은?”
자신의 말을 따라 하는 각법을 보며 호현이 웃으며 말했다.
“권법입니다.”
“권법?”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호현이 나한도의 나한을 가리켰다.
“이 자세들을 보면 선이 굳고 얇음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힘의 강약과 속도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자세들은 권의 형을 나타…….”
말을 하던 호현은 각법의 얼굴에 어린 실망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호현의 물음에 각법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모양입니다.”
“네? 그것이 무슨?”
호현의 말에 각법이 나한도가 새겨진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소림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천불이 인세에 강림하면 그 앞에 설 자는 부처뿐이다. 이것이 천불전에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이 천불전에 있다는 비밀은 소림사나 본사를 찾아온 신도들이라면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 말은 많은 사람들이 이 천불전의 비밀을 밝히고자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본사가 알아낸 것 중 하나는 이 나한도가…….”
잠시 말을 멈춘 각법이 나한도의 나한들을 바라보았다.
“권법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수도 있다?”
작게 중얼거리던 호현은 각법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는 눈을 찡그렸다.
“그럼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본사에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이것은 권법일 수도 있지만 그저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자세를 그려 놓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각법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몇 가지 자세를 따라 해 보았지만 이 자세들은 무인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모두 쓸데없는 자세가 아닙니까?”
각법이 눈앞에 있는 나한도의 자세들을 몇 개 따라 했다. 그러고는 곧 고개를 저었다.
“권법이라면 어떠한 체계가 있을 것이지만 천불전의 나한들의 자세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게다가 운기에 관한 것도 없지요.”
“여기 선의 굵고 얇음으로 운기를 표시한 것이…….”
호현이 그림에 나타난 선들의 굵기를 가리키자 각법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예전 본사의 고수들이 확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효능을 찾을 수는 없었지요.”
“그럼…… 제가 찾은 것은…….”
실망스러운 얼굴을 하는 호현의 모습에 각법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하루 딱 보고 권법이라는 것을 안 것이 어디입니까? 그것만으로도 무당학사라는 이름이 허언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웃으며 말을 하던 각법이 물었다.
“그런데 계속 이곳에 계셨던 것입니까?”
“그림들을 보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를 찾아오신 것입니까?”
호현의 말에 각법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게는 사숙이 되시는 홍명 사숙께서 무당학사가 오신 것을 알고는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홍명 스님이?”
“그렇습니다. 사실 이때까지 무당학사…….”
“호현이라 불러 주십시오.”
계속 자신을 무당학사라 부르는 것이 불편한 호현이 호칭을 정정해 주었다.
그에 각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호현 학사 같은 분께서 소림에 오셨는데 홍명 사숙이 뵙고자 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아니지요. 게다가 날이 깊어 오늘은 본사에서 유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홍명 사숙의 허락도 받아야 하니 겸사겸사해서 만나 보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각법의 말에 호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각법 스님에게 사숙이라…… 소림사의 고승을 보게 되겠구나.’
호현이 소림사에 온 이유는 천하불문의 성지인 소림사를 구경하는 것과 고승들을 만나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 소림의 고승이 만나자고 하는데 거부할 호현이 아닌 것이다.
“뵙고 싶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따르시지요.”
각법이 앞장서서 천불전을 나서자 그 뒤를 호현이 따르기 시작했다.
각법과 호현이 밖으로 나가고 잠시 후 천불전 안에 희뿌연 무언가가 뭉치기 시작하더니 곧 인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화아악!
순식간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무언가, 아니 노승은 방금 전 호현과 각법이 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현이 흉내를 내던 나한도의 그림을 바라보던 노승이 슬쩍 천불전 밖을 바라보았다.
‘무당학사라…… 도가 계열의 청아한 기운이 느껴져 그쪽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당이라…….’
속으로 중얼거리던 노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기로 무당과 일월교는 서로를 원수처럼 여겼다.
무당파는 일월교의 계략으로 거의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적이 있다. 당시 일월교의 계략으로 마교가 무당을 공격했을 때 이대제자를 제외한 고수들이 모두 몰살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일월교 역시 무당파의 절세고수인 구지검선 운학에 의해 교주를 비롯한 핵심 고수들이 몰살을 당하는 화를 입었다.
그 말은 두 문파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무당과 일월의 무공이 한 사람의 몸에 모였다? 설마하니 일월과 무당이 화해라도 했다는 말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을 하던 노승이 고개를 저었다. 무당과 일월이 무슨 짓을 하든 그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이다. 그들이 연합해 소림을 공격만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더 이상 무당학사에 관한 생각을 끊은 노승이 천천히 몸을 이완시켰다.
우두둑! 우두둑!
노승의 온몸 근육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장을 조이고 있는 내 근육들까지도 움직이며 몸을 풀고 있었다.
우두둑! 우두둑!
그 늙고 노쇠한 몸에 이렇게 활동을 하는 근육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온몸의 근육들을 이완시키고 수축하기를 반복하던 노승이 천천히 양팔을 펼쳤다.
그리고 그와 함께 노승의 몸이 나한도의 나한과 같은 동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번개처럼 움직이는 노승의 몸이 하나의 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자세를 바꾸는 노승의 주먹과 발은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 권역이 마치 하나의 원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불전에 숨겨진 비밀…… 천하제일살공이자 투공…… 소림의 비밀 생사박(生死搏)의 모습이었다.
한 번 펼쳐지면 상대가 죽기 전에는 멈추지 않고 펼쳐지면 반드시 상대가 죽어야 끝이 나는 무공 생사박.
그것이 지금 노승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제10-6장 자애로운 차의 깨달음
홍명은 각법에게 호현을 찾아오라는 명을 내렸다. 사실 소림사가 무당학사에게 너무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을 할까 싶어 홍명은 각법이 혜민원에 아이들만 데리고 왔을 때도 호현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생각에 소림사에 대한 호감을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인물은 각법인데 인위적인 그 무언가를 만들기 싫었던 것이다.
각법과 호현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지 자신의 명이나 소림사의 명이 그 사이에 개입되면 인위적인 개입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명도 하지 않으려 했다. 호현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았다면 말이다.
혜민원의 한쪽에 있는 정자에 앉은 홍명은 자신이 각법에게 호현을 데려오라고 한 것이 잘한 일인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나쁜 놈도 아니고 오히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를 만난다고 해서 무당학사가 소림사에 악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지. 내 계획대로라면 삼 일 후에나 만남을 가져야 했을 텐데 그것이 삼 일은 앞당겨진 것이니.’
속으로 중얼거린 홍명은 힐끗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천불전에 있어야 할 것인데…….”
각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정자 주위로 중년의 승려들이 속속 나타났다.
승려들 속에서는 홍성이 나오더니 합장을 해 보였다.
“나무아미타불.”
불호를 외우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홍명이 정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두 모였나?”
“나한전의 홍계 사형은 지금 폐관에 들어 홍수 사제가 대신 왔습니다.”
홍성의 말에 홍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하산을 했다가 무림인들과 충돌을 한 죄를 물어 홍명이 홍계에게 폐관을 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