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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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52화
152화
축축한 습기가 느껴지는 어느 여름날 밤.
일단의 무리가 와호산장 정문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정문 앞에 서 있던 무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스멀거리며 나타난 자들은 족히 백 명이 넘어 보였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어둠을 밀어내며 다가오는 듯했다.
정문 앞에 서 있던 무사들 중 하나가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다가오던 자들 중 하나가 나직이 말했다.
“무이산에서 왔다. 문을 열어라.”
정문 앞의 무사 중 하나가 달려가서 정문을 세 번 두드렸다.
곧 커다란 정문이 활짝 열렸다.
다가오던 자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열린 문을 통해서 빨려 들어가듯 장원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 문이 다시 닫혔다.
와호산장의 연무장에는 언제부터인가 수십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선 자들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서자, 두 손을 맞잡고 공수의 예를 취했다.
“오셨습니까, 아버님.”
“회주를 뵈오.”
“회주님을 뵙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회주.”
안으로 들어선 자들 중 선두에 서 있던 중년인이 마주 포권을 취했다.
“모두 오랜만이오. 우리가 드디어 중원에서 모였구려.”
중후한 인상에 쉰 살 전후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에는 만인을 위압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신도명산.
마침내 천기회의 회주가 정예고수들과 함께 와호산장에 도착한 것이다.
밤이 깊은 시각.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며 지붕을 두들길 때쯤, 와호산장 대회의청의 거대한 탁자 주위에 이십여 명이 둘러앉았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현이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마치자, 신도명산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철혈마련과 만마성이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봐야겠군.”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회주.”
“알면서도 왜 지켜보고만 있다고 보는가?”
“폭풍전야의 고요가 아닐까 합니다.”
“폭풍전야의 고요라……. 그럼 곧 폭풍이 불어오겠군.”
“해서 그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신도명산은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도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변수라면, 정은맹이 수십 년간 행방조차 몰랐던 정파의 비전무공을 얻었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지금은 기간이 짧아서 무공의 진수를 제대로 얻지 못했겠지만, 그거야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다.
문제는 그 때문에라도 마도의 정파에 대한 전격적인 공격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은맹주의 정체와 위치는 알아냈는가?”
“사마세가의 기재로 이름을 떨쳤던 사마진웅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흠, 이십 년 전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정은맹을 만들었군.”
“구문팔가 중 황보세가와 남궁세가는 전부터 깊은 관계를 맺은 상태였고, 최근에 화산, 무당, 종남, 제갈세가를 끌어들였습니다.”
“제법이군.”
“작년에 얻은 정파의 비전무공 영향이 컸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소림은?”
“아직은 관망만 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
지금은 비록 마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소림사는 누가 뭐래도 정파를 상징하는 기둥이었다.
팔대마세조차 그들을 무시하지 못했다.
“일단 사마진웅을 한번 만나봐야 할 것 같군.”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신도명산을 바라보았다.
이척이 물었다.
“회주께서 직접 만나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 의견이 오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겠소?”
이현도 신도명산의 의견에 찬성했다.
“회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마세가 언제 공격을 할지 모르는 만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신도명산이 이현을 바라보았다.
“연락은 가능한가?”
“예, 회주.”
“다행이군. 안 된다고 했으면 그 동안 놀고먹으면서 지냈다는 뜻이니 혼을 내려 했는데 말이야.”
신도명산의 농담 섞인 말에 이현이 빙그레 웃으며 받아쳤다.
“철혈마련과 만마성이 눈을 번뜩이며 쳐다보고 있는데, 아무렴 무이산에 계신 분보다 편하게 지냈겠습니까.”
“끄응, 괜한 소리 했다가 한방 맞았군.”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며 무거웠던 분위기가 다서 가벼워졌다.
하지만 곧 신도명산이 다시 입을 열면서 가벼운 분위기를 날려버렸다.
“정은맹과의 협상이 끝나는 대로 전쟁이 시작될 거네.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것이야.”
***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눈을 떴다.
두 눈에서 붉은 광채가 폭사되듯이 쏟아졌다.
하지만 곧 붉은 빛이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빛이 일렁거렸다.
“정말 굉장하군. 수련을 시작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보다 내공이 곱절은 더 늘어났어.”
어둠 속 인물의 입에서 희열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후후, 이대로 일 년만 지나면 천하의 누구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다.”
끼이이이.
지하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열린 문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빛 덕분에 지하석실 중앙에 앉아 있는 자의 몸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나이는 이제 서른 정도.
각진 얼굴에 짙은 눈썹, 꽉 다물린 입술. 건장한 몸에서 흐르는 땀이 번들거렸다.
“주군, 암혼비(暗魂秘)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지하석실 중앙에 앉아 있던 장한이 몸을 일으켰다.
두 눈에서 순간적으로 핏빛의 시뻘건 광채가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계단을 다 내려온 자가 다시 말했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십 대 나이에 학사 차림을 하고 있었다. 키가 제법 컸는데, 학사라고 하기에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장한이 몸에 옷을 걸쳤다.
“곧 정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겠군.”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올 여름은 혈우가 내리겠어. 아주 지독한 피비린내가 세상을 뒤덮겠지.”
“명만 내리시면 삼천 무사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옥불속으로 뛰어들 겁니다.”
“아직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네. 우리는 결정적일 때 나서서 단번에 놈들의 목을 물어뜯고, 심장을 파내야 해.”
학사 차림의 중년인은 섬뜩한 살기를 느끼고 흠칫했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일단… 정파의 무공이 우문척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문을 내게.”
학사 차림의 중년인이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
“놈이 맹으로부터 얻은 걸 털어놓으면 맹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정파 중 당시 무공을 잃은 자들이 모두 맹에 손을 내밀 겁니다.”
“주면 되네. 맹에서 원하는 건 진본이 아니라 강한 무공이니까. 그 정도는 어느 문파든 받아들일 거야.”
“아……!”
“대신 마도 놈들은 서로를 견제하게 될 거네. 그럼 연합의 고리가 약화될 터, 결코 손해라고만은 할 수 없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질끈, 허리띠를 묶은 장한이 차디 찬 냉소를 지었다.
“그럼 가보세.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순 없지.”
“예, 주군.”
학사 차림의 중년인은 대답하며 장한을 슬쩍 바라본 뒤 몸을 돌렸다.
무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모시기로 한 주군이 최근 들어 달라진 듯 느껴졌다.
‘새로운 무공을 익히면서부터 살기가 강해진 것 같아.’
하지만 그는 곧 상념을 털어냈다.
어차피 지옥에 던져질 각오를 하고 이 일에 뛰어든 터였다.
마도 놈들에게서 천하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지옥에 가는 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하물며 주군이 강해진다면 그만큼 승산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은 그것만 생각하면 되었다.
***
돌아온 백주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모용금적은 분노가 치밀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발작하지는 않고 극한의 인내로 참아냈다.
“그래서… 몽둥이에 두들겨 맞은 개처럼 쫓겨 왔단 말이지?”
백주원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면목이 없습니다, 방주.”
“어이가 없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거지?”
빼앗긴 물량을 되찾기는커녕 보낸 무사들마저 패퇴해서 돌아왔다.
소심한 백리궁이 천룡방을 총단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망발마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구룡대총회를 열어서 천룡방의 잘잘못을 묻겠다는 선전포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백리궁, 그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모용금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자, 모용완이 소리쳤다.
“아버님! 당장 무사들을 보내서 그들을 쓸어버려야 합니다! 마룡성에도 연락하고…….”
“시끄럽다!”
“아버님! 그럼 놈들을 그냥 놔두실 겁니까? 그깟 비룡장이 뭐가 겁나서…….”
탕!
탁자를 내리친 모용금적이 버럭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 누가 비룡장이 겁나서 참는 줄 아느냐?”
“그럼 왜……?”
“놈들 말대로, 놈들과 만마성이 친하다면, 이제 놈들을 칠 경우 만마성을 무시한 꼴이 된다. 놈들과 만마성의 관계를 정확히 알기 전에는 건드릴 수도 없으니 참는 것 아니냐!”
“…….”
모용완이 찍소리도 못하고 이만 갈고 있는데, 모용금적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는 모용금적의 첫째 아들인 모용수였다.
얼굴이 곱상했는데, 그의 심성은 얼굴과 달리 독사보다 더 독했다.
“누가 그냥 놔둔다고 했느냐?”
“하오면…….”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놈들 말대로 구룡대총회를 열어 구룡상단에서 퇴출시키고, 놈들의 권리와 상권을 모조리 뺏으면 돼.”
“놈들이 순순히 내놓겠습니까?”
“내놓지 않겠지. 그럼 그때 가서 무력으로 다스리면 된다. 그 일은 구룡상단 내부의 일이니 만마성도 무작정 나서서 그놈들 편을 들 수 없을 거다.”
“아,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럼 놈들과 만마성의 거래도 우리가 고스란히 되찾아올 수 있겠군요.”
모용수의 말에 모용금적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일만 저지르는 모용완보다는 모용수가 훨씬 나았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말씀하시지요.”
“만마성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이 비룡장에 흘러들어가는 걸 최대한 차단해라. 중요한 물품, 생산이 한정되어 있는 물품만 차단하면 된다. 시중 가격보다 더 비싸게 주고서라도 모조리 거두어 들여.”
모용수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면 비룡장 놈들도 두 손 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흥! 벌레 잡듯 철저히 짓이겨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게 만들 것이야.”
***
모용금적이 이를 갈고 있을 때쯤, 혁무천은 목량, 강탁, 장평을 대동하고 형주에 도착했다.
그들 셋만 대동한 이유는, 일행 중 그들이 그나마 평범한 외모여서 사람들의 시선을 덜 끌기 때문이었다.
형주에 들어선 혁무천은 곧장 풍혼문을 찾아갔다.
풍혼문은 형주성의 북쪽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혁무천 일행이 다가가자, 정문 앞을 오가던 위사가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소항진을 만나러 왔소.”
“소문주 님을?”
“무천이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면 알 거요.”
위사가 혁무천을 쓱 훑어보고는 동료 한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로부터 반의반각도 되지 않아서 소항진과 소하민이 뛰어나왔다.
“무 형!”
“무 공자!”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형제를 십 년 만에 찾아낸 사람들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혁무천이 그들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