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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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50화
150화
혁무천은 방을 나서기 전에 자경산을 보며 말했다.
“어쨌든 네 제안은 받아들이지.”
자경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고맙소.”
***
살을 에는 긴장감이 비룡전 앞의 넓은 연무장을 짓눌렀다.
천룡방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백여 명. 단순 표행이라고 하기에는 무사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물론 비룡장 사람들도 그들이 정말 표행 중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백리궁은 백리양과 백리혜를 비롯, 비룡장의 주요 인물을 대동하고 천룡방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들의 앞까지 다가온 백주원이 먼저 포권의 예를 취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장주.”
“오랜만이오, 백 전주.”
“요즘 비룡장의 사업이 날로 번창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큰 거래를 했다 하니 축하드립니다.”
뼈 있는 백주원의 인사를 백리궁은 미소로 대했다.
“허허허, 고맙소이다.”
그때 모용완이 기다렸다는 듯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모용완이 장주께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시게. 내 기억으로는 삼 년 만에 보는 것 같구먼. 그래, 방주께서도 안녕하신가?”
“그간 별 일 없이 안녕하셨지요. 그런데 최근에 벌어진 어떤 일로 인해서 마음이 많이 상하셨나 봅니다. 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동료 간의 일을 욕심내는 것은 조금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비수로 찌르듯 내지른 말투에 백리궁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대신 옆에 서 있던 백리혜가 차디 찬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아마 방주께서는 그리 생각하시지 않을 거예요. 상인은 경쟁하며 커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니까요.”
“하하, 백리 소저도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몸매가 전보다 더욱 아름다워지셨군요. 요즘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혹시 누구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라도…….”
모용완이 은근한 어조로 말하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백리혜의 몸을 훑어보았다.
백리혜는 역겨운 마음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개꼬리 삼 년 묵혀도 황모가 안 된다더니, 모용 공자는 여전하시군요.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모용 공자가 개라는 소리는 아니니까.”
모용완은 백리혜의 비아냥거림에도 입술을 비틀며 씩 웃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발아래에서 기게 될 계집 아닌가. 얼굴을 붉히며 말싸움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말싸움에서는 이길 자신도 없었고.
‘조금만 기다려라, 계집. 곧 내 밑에 깔려서 헐떡거리게 될 테니까. 흐흐흐.’
속으로 조소를 흘린 모용완은 백리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상대를 하기에는 백리혜보다 그가 더 편했다.
“장주, 아무리 그래도 동료의 등에 비수를 꽂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꼭 누구를 찍어서 하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슬쩍 비틀어서 백리혜의 말투를 흉내 낸 모용완의 말에 백리궁은 쓴웃음을 지었다.
“동료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라…… 그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군.”
“무슨 말씀이신지……?”
“방주께 오 년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게나. 그럼 자세히 설명해주실 거네. 아, 아니지. 백 전주께서도 잘 아시겠구려.”
백리궁이 말하며 백주원을 바라보았다.
백주원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오 년 전의 그 일을 말하시는 거라면, 이미 합의를 보고 해결된 것으로 압니다만.”
“물론 합의는 봤지요. 이 백리 모는, 동료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 것일 뿐이외다.”
오 년 전, 천룡방은 비룡장의 최대 거래처를 힘으로 윽박질러 빼앗아가다시피 했다. 그 와중에 비룡장의 정예무사 삼십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천룡방이 그에 대한 대가로 대형 거래처 하나를 넘겨주긴 했는데, 그 거래처는 망하기 직전으로 빚 좋은 개살구여서 결국 비룡장은 엄청난 손실만 입었다.
결국 그 이후 비룡장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또한 그 사건은 천룡방에 대한 호의적 감정을 완전히 털어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용완은 그 일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면 백리궁 앞에서 ‘신의’를 운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용완은 상황이 묘하게 흐르자, 다시 백리궁을 자극했다.
“비룡장이 언제부터 본 방의 행사에 각을 세웠는지 모르겠군요. 최근 쓸 만한 무사들을 영입했다고 하던데, 그들을 믿고 그러시는 거라면… 실수하시는 겁니다.”
비룡장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백주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눈빛을 번뜩이며 입술을 비틀었다.
어차피 비룡장에 온 목적은 하나였다.
비룡장의 기를 꺾는 것.
어쩌면 피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 어차피 피를 볼 거라면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좋겠지.’
그때,
“믿지 못할 것도 없지!”
낭랑한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칠팔 명이 건물을 돌아 나오는 게 보였다.
젊은 놈들이었다.
그런데 생김새가 제각각이었다.
땅딸막한 놈, 그놈보다 배는 더 큰 놈, 눈이 쥐 눈깔 같은 놈, 계집처럼 생긴 놈…….
그가 눈을 가늘게 좁히고 주시하는데, 앞장서서 걸어오던 젊은 놈이 말했다.
“천룡방이 뭐 그리 대단해서 말도 못한단 말인가?”
백주원은 혁무천 일행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세를 느끼고 이마를 좁혔다.
그런데 모용완이 참지 못하고 되받아쳤다.
“비룡장의 일개 무사 따위가 감히 본 방을 모욕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구나!”
그 사이 백리궁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혁무천이 모용완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천룡방주가 어지간히 다급했나 보군.”
“뭐야?”
“이렇게 중요한 일에 나설 곳과 나서지 않아야 할 곳도 분간 못하는 애송이를 보내다니. 다급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상황파악이 잘 안 됐나 보군.”
혁무천의 도발적인 말에 모용완이 벌게진 얼굴로 눈을 치켜떴다.
“이 죽일 놈이……!”
할 수 없이 백주원이 나섰다.
“물러서게, 현질.”
발끈해서 분노를 터트리려던 모용완이 멈칫했다.
백리궁의 신경을 건드려서 분노의 함정에 빠뜨리려 했는데 자신이 오히려 빠진 꼴.
그 점을 간파한 그는 숨을 들이쉬어서 분노를 억누르려 했다.
하지만 백주원의 만류만으로는 분노를 완전히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숙부, 저놈이 감히 천룡방을 모욕하는데 참으실 겁니까? 어차피 아버님께서도 말로 해서 안 될 것 같으면…….”
“현질!”
백주원이 나직하게 소리치자, 모용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혁무천을 노려보기만 했다.
모용완의 입을 막은 백주원이 시선을 혁무천에게로 돌렸다.
“어린 친구가 입이 꽤 매섭군.”
“귀하도 솔직했으면 좋겠소. 인사나 하려고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백주원의 짙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솔직히라…… 그래, 그게 낫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백리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주,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지요. 방주께서는 금룡장과 만마성의 거래 물량을 비룡장이 뺏은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백리궁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뺏었는가?”
혁무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 일을 따지려면 만마공자 천화광에게 따져야지요. 그가 먼저 넘겨주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음에도 박자가 척척 맞았다.
“들으셨소? 우리가 뺏은 게 아니라, 만마공자가 넘겨주었다고 하는구려.”
이제는 백주원의 가슴도 점점 끓기 시작했다.
구룡의 주인 중 가장 별 볼일 없다고 알려진 사람이 백리궁이었다.
알게 모르게 조롱의 대상이었던 자.
그런 백리궁에게 이런 꼴을 당한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그였다.
“장주, 정녕 방주님의 지시를 거부하실 생각입니까?”
백주원의 싸늘한 말투에, 그 동안 미소를 띠고 있던 백리궁의 표정도 차갑게 식었다.
“천룡방주께서 언제 비룡장을 구룡상단의 일원으로 생각하셨던가요?”
“…….”
“뭘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구룡상단은 천룡방의 것이 아니오. 구룡 모두의 상단이지. 그런데 요즘 보면 장주께서 구룡상단의 주인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더구려. 백 전주도 그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면 하오.”
모용완이 코웃음 치며 끼어들었다.
“흥! 구룡의 하나로 인정해주니, 우리 천룡방과 비룡장이 같은 줄 아십니까?”
백리궁의 시선이 모용완에게로 옮겨갔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천룡방이 구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군.”
모용완이 오만한 표정으로 조소를 지으며 턱을 쳐들었다.
“아셨다니 말하기가 편하군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버님의 말씀을 따를 겁니까, 아니면… 본 방과 척을 지실 겁니까?”
“우리 비룡방은 천룡방의 하수인이 될 생각이 없네. 돌아가거든 그리 말씀드리게.”
“흥! 후회하실 겁니다.”
차가운 모용완의 코웃음 직후, 백주원이 옆을 향해 슬쩍 고갯짓을 보냈다.
늘어서 있던 무사들이 좌우로 폭을 벌렸다.
안 그래도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감에 살기마저 더해졌다.
혁무천이 걸음을 옮겨서 백리궁의 앞을 막아섰다.
“장주께선 뒤로 서 계시지요. 이리 떼들이 이빨을 드러내려나 봅니다.”
모용완은 백리궁보다 혁무천의 말투와 행동이 더 짜증났다.
“죽일 놈! 네놈은 내가 친히 목을 쳐주마! 저놈을 잡아서 내 앞에 무릎 꿇려라!”
그가 버럭 소리침과 동시, 그의 옆에 있던 무사 둘이 튀어나가며 검을 뽑았다.
쉬악!
그야말로 벼락 같은 공격이었다.
그런데 혁무천은 미동도 하지 않고 모용완을 응시했다.
순간,
후우우웅!
대기를 터트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리더니, 몸을 날린 두 무사와 혁무천 사이에 거대한 봉 하나가 나타났다.
혁무천을 공격하던 자들은 대경실색하며 다급히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봉과 검이 격돌하며 달려들던 두 사람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일격으로 천룡방 무사 둘을 날려버린 장대산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봉을 앞으로 뻗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모용완은 그런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숙부, 언제까지 기다리실 겁니까? 아버님께서도 저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라 하지 않았습니까?”
백주원은 모용완의 섣부른 말에 짜증이 났지만, 그 역시 비룡장의 힘을 정확히 알아보고 싶었다.
특히 저 젊은 놈들의 실력을.
“좋아, 어디 뭘 믿고 그리 설치는지 한번 볼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좌우에 늘어섰던 무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주위에 둘러서 있던 비룡장 무사들도 무기를 움켜쥐었다.
숫자로는 비룡장 무사들이 두 배는 되었다.
그러나 천룡방 무사들은 고르고 고른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절정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감에 찬 그들은 비룡장 무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모용완이 소리쳤다.
“어리석은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라! 죽여도 상관없다!”
비룡장 무사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놈들을 막아라!”
전이었다면 천룡방 무사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전과 달랐다.
지난 십여 일, 무공의 새로운 맛을 본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눈빛을 빛내며 정면으로 맞섰다.
그때, 백주원의 지시를 받은 천호전 최정예 무사 몇 명이 혁무천 일행을 공격했다.
장대산과 철호가 먼저 앞으로 튀어나가며 그들과 맞섰다.
부우우웅!
장대산의 장봉이 대기를 횡으로 갈랐다.
고막을 먹먹케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천호전 무사들이 기겁하며 피하고, 두어 명은 급히 검을 들어 막았다.
떠덩! 챙!
부러진 검날은 하늘로 솟고, 몸뚱이는 뒤로 날아갔다.
그 사이 철호는 좌충우돌 무식하게 쇄도하며 쌍도끼로 상대의 무기를 튕겨내고 가슴을 쪼갰다.
동작이 어찌나 빠르고 변칙적인지 그를 상대하던 무사들은 그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퍽!
“크억!”
콰광!
장대산과 철호에 의해 칠팔 명이 쓰러지자 잠시잠깐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천룡방 무사 이십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