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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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9화
149화
혁무천은 미소를 지었다.
선택을 잘한 것 같다. 전에는 유(柔)한 것이 흠일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강함에 부드러움이 더해져 조화를 이룰 때 진정으로 강해지는 법이다.
“장주께서 그런 마음이시라면, 곧 달라진 비룡장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정파의 힘이 강해서 마도가 힘을 못 쓰던 때도 강호 종횡을 하며 대마천의 초석을 다진 그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사정이 훨씬 나았다.
백리궁은 혁무천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구치는 듯했다.
“허허허, 기대하겠네.”
***
혁무천은 비룡장 무사들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 중 몇 가지를 적절하게 정리해서 내놓았다.
무사라면 누구든 무공이 강해지는 걸 원했다. 강해져야 싸움이 벌어졌을 때 살아날 확률이 높아지니까.
더구나 비룡장 무사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아는 만큼 강해지기 위해서 힘든 수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혁무천 일행 역시 혁무천에게 받은 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하듯이 수련에 임했다.
동대안도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오랜만에 땀을 흘렸다.
그들의 실력은 하루하루 다르게 늘었다.
실력이 느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뒤질까 봐 누구 하나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비룡장의 무공수련 열기가 한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던 그때, 낙양 외곽의 거대한 장원에서는 한겨울 북풍 같은 찬바람이 휭휭 불었다.
천룡방에 만마성의 결정이 알려진 것이다.
천룡방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만마성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화가 난다 해서 만마성에 따질 수도 없었다.
그들이 겨눈 화살은 자연스럽게 비룡장을 향했다.
“백 전주, 비룡장을 찾아가서 그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확실하게 알려줘라.”
태사의에 앉아 있던 오십 대 중반의 중노인이 노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바로 천룡방의 당대 방주인 모용금적이었다.
“예, 방주.”
사십 대 후반의 중년인이 두 손을 맞잡고 예를 취했다. 천룡방 주요 무력단체 중 하나인 천호전 전주이자 천룡방 서열 삼 위인 백주원이었다.
그들에게 비룡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금룡장에서 무사를 보냈다가 당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천룡방은 금룡장이 아니었다.
“아버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이십 대 중반에 훤칠하게 생긴 청년이 동행하겠다며 나섰다. 모용금적의 둘째 아들인 모용완이었다.
“네가?”
“오랜만에 장강의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단순히 바람이나 쐬러 가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비룡장에는 삼 년 전 그에게 모욕을 준 계집이 있었다.
백리혜.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아서 탐을 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음적 취급한 적이 있었다.
삼 년 전에는 그래도 같은 구룡상단에 속해 있으니 모욕을 당하고도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이번에 가면 그때의 빚을 갚는 것은 물론, 자신이 그녀에게 철저히 모욕을 줄 작정이었다. 기회가 되면 그 계집의 몸도 취하고.
모용금적도 어렴풋이 아들의 속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지금처럼 중요한 때에 엉뚱한 생각을 하다니.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강호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을 쌓다 보면 나아지겠지.
“알았다. 함께 가라.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백 전주의 지시에 따라야 하느니라.”
“예,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
우문척은 뜻밖의 보고를 받고 이마를 좁혔다.
“무천이 한구의 비룡장에 머물고 있단 말이지?”
“예, 대공. 얼마 전에는 거래를 위해 비룡장 사람들과 함께 만마성을 방문하기도 했다 합니다.”
“감시는 붙여 놓았겠지?”
“예, 대공.”
“놈이 무슨 생각으로 상가에 붙어 있는지 모르겠군.”
“철저히 감시하고 있으니 곧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우문척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직접 만나서 무천에게 듣기 전에는 무엇도 확실치가 않았다.
“소소는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별채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훗, 멍청한 애가 아니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조소를 지으며 우문소소를 비아냥거린 우문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을 만나야겠다. 공격을 더 늦춰서는 안 되겠어. 정파 놈들은 조금만 풀어줘도 기어오르려고 하거든.”
우문강천은 우문척의 의견을 듣고, 탐스럽게 자란 수염을 쓸어내렸다.
“여름이 가기 전에 정파 놈들의 기를 꺾어놓자고?”
“예, 아버님. 정은맹과 천기회가 구문팔가와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시간이 가면 저들의 힘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흠, 너무 풀어주었나?”
“만마성에 제의하면 그들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겠지. 한데, 만마성이 마천문과 혈왕동을 끌어들인 것은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움직임이긴 합니다만, 저희 역시 귀천교와 사도맹, 마황궁이 협력하기로 했으니 밀릴 것은 없습니다.”
“그건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단순히 힘겨루기나 하려고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소자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고인 물은 썩게 마련, 한번 뒤집어엎을 때도 되었지요.”
“맞다. 그런데도 정파부터 쳐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고인 물을 뒤집기 전에 주변 정리를 해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우문강천이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건 그렇군. 네 말이 옳다. 주변을 정리해놓아야 귀찮은 파리 떼들이 꼬이지 않겠지.”
정파를 파리떼 정도로 취급한 그가 정색하고 말했다.
“만마성에 연락을 취할 것이다. 우리 쪽에서 정예 일천을 보낼 테니 그들도 일천을 내놓으라 할 것이야. 도합 이천이면 정파 놈들을 쥐굴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 거다.”
“련주, 만약 만마성이 거절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우문홍이 물었다.
우문강천의 입가에 차가운 살소가 걸렸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아. 천하의 마도인들이 만마성보다 우리 철혈마련을 더 떠받들게 될 테니까.”
“본 련만 나서기보다 귀천교와 사도맹도 합류시키는 게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도 그렇군. 그럼 먼저 귀천교와 사도맹에 각기 정예 오백 명씩 보내달라고 해라.”
“예, 련주.”
대략적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우문척이 일어서서 예를 취하며 말했다.
“본 련은 소자가 이끌고 가겠습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군. 좋다, 네가 본 성의 무사들을 지휘해라.”
***
혁무천은 한유림의 무공수련을 두 시진 정도 지켜본 후 자경산을 찾아갔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등에 난 치명적인 상처도 거의 다 아물어서 이제는 딱지가 떨어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워낙 내외상이 심했던 터라 기존의 무공을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때부터 그는 공력을 되찾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운공조식을 했다.
그날도 침상에서 대주천을 마치고 내려서는데 혁무천이 찾아왔다.
“몸은 좀 어떠냐?”
“길가다 산적을 만나도 맞아죽지는 않을 것 같군.”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 막지 않을 거니까.”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무심한 혁무천의 말에 자경산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전에 말한 대로, 공녀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겠소. 도와주시오.”
“네가 직접 구하면 되지 않나? 두세 달만 지나면 공력도 대부분 되찾을 텐데.”
“솔직하게 말하겠소. 지금쯤 공녀는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을 거요. 내 실력만으로는 철혈마련에 있는 공녀를 구할 수 없소.”
“네가 우문소소를 좋아한다는 건 안다만, 굳이 자신을 내놓으면서까지 구할 필요가 있을까 싶군.”
자경산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공녀께 들었으니 공녀가 어떻게 련주의 딸이 되었는지 알 거요.”
“물론 들었지.”
“난… 어린 시절을 공녀와 함께 자랐소. 공녀는 기루 주인의 딸이었고, 나는 기루 퇴기의 아들이었소. 나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자경산은 자신이 겪었던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기루의 루주와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이야기, 그 후 우문소소와 자신,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철혈마련으로 가게 된 이야기 등등…….
“……그런데 내가 수련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동생이 보이지 않았소. 그래서…….”
자경산의 이야기를 들은 혁무천은 마음이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난 동생을 찾아야 하오. 그리고 공녀를 구해야 하오. 도와주시오, 무 형.”
자경산이 이야기를 마치고 머리를 바닥에 찧듯이 숙였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설마…….’
그는 자경산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자경산, 혹시 그거 아나?”
“뭘 말이오?”
“너와 우문소소가 닮았다는 거.”
“무슨……?”
반문을 하려던 자경산은 뒤늦게 혁무천이 하려는 말뜻을 깨닫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겠소만, 어릴 때부터 공녀와 우리 남매는 닮은 점이 많았소. 그래서 남들은 우리가 진짜 남매인 줄 알았소.”
“수많은 사람 중에 얼굴이 비슷한 사람이 많지. 개중에는 쌍둥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닮은 사람도 있고. 하지만 대부분 닮기는 했어도 특징까지 같지는 않아.”
“……?”
자경산은 의아한 표정으로 혁무천을 올려다보았다.
“너와 우문소소는 얼굴도 비슷한 면이 있긴 한데, 귀가 너무나 닮았어. 심지어 귓불의 끝이 꺾어져 있는 것까지.”
“아무리 그래도…….”
“잘 생각해 봐. 지금의 우문소소가 정말 우문소소인지.”
입을 꾹 다문 자경산의 눈이 잘게 떨렸다.
우문소소가 가짜일지 모른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 우문소소를 우문강천의 딸로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혁무천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하나 둘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자신이 무공을 익히고 돌아왔을 때 만난 우문소소의 행동, 말투… 그가 알던 우문소소와는 뭔가 모르게 조금 달랐었다.
그때는 그저 오랜 만에 자신을 만났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럴 리가 없소. 그럴 리가…….”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어떤 고리가 하나하나 꿰맞추어지고 있었다.
<동생 찾는 걸 포기할 거야? 언제는 동생 찾는 게 삶의 모든 것이라며? 거짓말이었어? 그냥 해본 소리였어?>
<아니오! 나는 동생을 반드시 찾아…….>
<그러려면 살아야 할 거 아냐! 이 바보야!>
<공녀…….>
<빨리 가! 다음에 만나면 제일 먼저 동생의 소식을 알려준다고 약속할게.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서 나를 그 악귀 같은 놈 손에서 구해줘!>
헤어지기 전 나누었던 전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녀의 간절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십 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투, 목소리…….
“최소한 확인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은데.”
혁무천이 그에게 말했다.
자경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움켜쥔 손가락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소.”
그때 밖에서 목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형, 천룡방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말은 표행 중이라고 합니다만, 이번 만마성의 일을 따지려고 온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