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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48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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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8화

148화

 

 

“저는 성주님이 부럽습니다. 그렇게 매일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남자라 해도 부러워할 일이지요.”

“뭐라? 으하하하하!”

천양묵이 다시 대소를 터트렸다.

가식이 조금도 없는 웃음이었다. 그것만 보면 그가 만마의 지존이 아니라 순한 학사 같았다.

“광아야, 비룡장에 충분한 혜택을 주도록 해라. 오랜만에 이 아비의 기분을 맞춰주는 놈을 만났구나.”

“이미 다 가져갔습니다.”

“그래?”

“금룡장의 물량 중 오 할을 비룡장에 넘기기로 했으니까요.”

“뭐? 삼 할만 넘긴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나 보다.

겉으로는 천화광이 즉석에서 결정한 것 같았지만 철저한 계산 하에서 제안을 했다는 뜻이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가격을 워낙 좋게 쳐 주기로 해서 조금 더 넘겼습니다.”

“그럼 그동안 금룡장에서 많이 빼먹었다는 말이군. 감히 우리 만마성을 상대로. 우리 쪽에서도 챙긴 놈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몇 놈 목을 쳤습니다.”

“흥! 그놈들 말고도 더 있을 거다. 열 놈이든 백 놈이든, 모조리 찾아내서 목을 쳐라.”

코웃음 치며 명을 내리는 천양묵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충천했다.

조금 전의 학사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살기 띤 마왕이 분노를 터트리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본 천양묵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만인을 숨죽이게 만드는 마기가 대전 안을 뒤덮고 있는데… 태연히 차를 마셔?

‘화광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군. 저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오늘 죽여야 하나?’

그는 속마음을 감추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차 맛이 어떤가?”

“만마의 기운이 들어가서 그런지 조금 쓰군요.”

“…….”

생각지 못한 대답에 천양묵은 말없이 혁무천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래도 쓴 약이 몸에 좋다고 했으니 감사히 마셔야지요.”

“그렇게 쓴가?”

“목숨이 간당간당 한데 달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천양묵은 그 말뜻을 어렴풋이 깨닫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설마 저놈이 내 마음을 눈치 챈 건가?’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우문 련주나 공손 문주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런데 결정은 다르게 내렸지요. 저 역시 그에 맞춰서 대할 생각입니다.”

천양묵은 그 말을 나름대로 풀이해봤다.

한마디로 ‘당신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나도 그에 맞춰 대할 것이다.’ 그런 뜻인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건방진 놈의 목을 당장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문제는 실패했을 경우다.

계획에 없던 강적이 하나 더 생길 터. 득 될 것이 없었다.

놔두면 자신의 훌륭한 조력자가 될지도 모르거늘.

결국 그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광아와 친하게 지냈으면 싶군. 젊은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을 거야.”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큰 문제만 없다면 변하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그래? 잘 생각했네.”

천양묵은 웃으면서도 혁무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넌지시 말했다.

“광아가 본 성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었다 들었네. 거절했다고 하던데,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떤가?”

“죄송합니다.”

“자네가 받아들인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주지.”

천화광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혁무천도 의외라 생각한 듯 흠칫하더니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그 제안을 한 사람이 만마성의 성주라는 것이다.

더구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제안했다.

만마의 지존인 천양묵만이 위에 있는 절대 권력의 자리.

만약 자신이 거부한다면, 천양묵은 만마지존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며 분노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오늘의 거래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다.

말 한마디 삐끗하면 딛고 있는 살얼음판이 깨지고 나락으로 떨어질 상황.

혁무천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성주께선 저를 싫어하시나 봅니다.”

“무슨 소린가? 본좌가 자네를 싫어하면 왜 그런 제안을 하겠나?”

“비룡장에 몸을 담으며 한 말이 있는데, 성주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저는 신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반면 제안을 거부하면 성주께서 화를 내시겠지요.”

“뭐, 화까지 내기야 하겠나.”

“그래도 우문 련주나 공손 문주보다 저를 높게 봐주신 점은 잊지 않겠습니다.”

혁무천은 담담히 말하며 포권을 취했다.

분명한 거부의 뜻이 담긴 말이었다. 그럼에도 말이 묘해서 천양묵은 화를 내기도 어정쩡했다.

최소한 호적수인 우문강천이나 공손락보다는 사람 보는 눈이 좋다는 듯 말하고 있지 않는가.

자신을 높여주는데 여기서 화를 내면 속 좁은 놈만 될 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혁무천은 그쯤에서 은근슬쩍 못을 박았다.

“어차피 화광과 제가 친구처럼 지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일단은 그걸로 만족하시지요.”

“하, 하. 하긴 그렇지.”

천양묵은 할 수 없이 혁무천의 뜻을 받아들였다.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었지만, 당장은 더 말하는 것도 사정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하지 않았다.

“아버님, 더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

천화광은 어서 나가고 싶었다. 아버지가 언제 또 뜬금없는 이야기를 할지 몰랐다.

“흠, 아니다. 어쨌든 광아와 친구라면 무천, 너도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라. 문을 활짝 열어줄 테니까.”

천양묵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친구’라는 말의 꼬리를 잡아서 혁무천을 아들처럼 만들어버렸다.

혁무천도 그 뜻을 알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귀찮아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혁무천은 포권을 취한 후 천화광과 함께 내실을 나섰다.

천양묵은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미소가 떠올라 있던 얼굴이 무표정하게 가라앉았다.

“사야, 네가 보기에는 어떤 놈 같으냐?”

갑작스런 질문인데도 한쪽에 서 있던 여인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자입니다. 능력도…… 솔직히 제가 판단하기 힘듭니다.”

천양묵이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정말 네가 판단할 수 없는 자란 말이냐?”

그는 사야라는 이름의 여인을 어릴 때부터 봐왔다. 그리고 오 년 전부터는 항상 곁에 두었다.

그녀를 여자로서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야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한 판별능력이었다.

그녀의 판별력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정확했는데, 처음에는 천양묵조차 믿지 않았다.

열다섯 살의 사야가 사람을 정확히 판단해서, 일 년 동안 자신에게 접근했던 자가 암살자라는 것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저도 곤혹스럽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오늘 주군의 대처가 옳으셨다는 것입니다.”

“내 대처가 옳았다? 그의 뜻을 받아들인 것 말이냐?”

“예, 주군. 만약 그를 적으로 삼으려 하셨다면, 많은 것을 잃었을 것입니다.”

“흐으으음, 그래?”

천양묵은 사야가 혁무천을 높게 평가하자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그깟 놈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혹시 잘생긴 얼굴 때문에 사야의 판단력이 흔들린 것 아닐까?

그런 생각에 반발심마저 들었다.

사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묘한 눈빛을 반짝였다. 본래 흑오석처럼 검은 눈동자였는데 시간이 가면서 푸른 기운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이후에라도 주군께서 그를 죽이고자 하신다면… 성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실패할 경우… 그가 검을 거꾸로 들면 본 성에 최대 위기가 닥칠 것입니다.”

“너무 그를 과하게 본 것 아니냐?”

천양묵은 어이가 없었다.

무천이란 놈이 대단하다는 건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만마성이 그 한 사람 때문에 위기를 겪다니.

사야도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도 제가 잘못 본 것이길 바랍니다. 그런데… 오히려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한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허어어, 그거 참…….”

천양묵은 사야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으니 한숨만 나왔다.

사야 역시 미적거리는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인데 모호하게 감춰진 것이 그리 많은 거지?’

꼭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한편, 혁무천은 만마전에서 멀어질 즈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천화광에게 물었다.

“내실 한쪽에 서 있던 여자, 누구지? 시비는 아닌 것 같던데.”

천화광이 이마를 찡그렸다.

하지만 곧 입꼬리를 비틀며 대답했다.

“사야? 아버님 사람이야. 재수 없는 여자지.”

이름이 사야인가?

그런데 재수 없는 여자라고 하는 걸 보니 천화광은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조금 특이한 능력을 지녔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아버님이 무척 신뢰하고 계셔. 그 여자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넘기신 적이 있거든.”

특이하다는 건 혁무천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기도 했고.

묘한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그녀가 바라볼 때는 마치 속이 다 드러나는 듯했었다.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

‘어떤 식으로든 변수가 될지도 모르겠군.’

 

***

 

만마성을 나선 비룡장 사람들은 곧장 한구로 돌아갔다.

소식을 들은 비룡장은 들뜬 분위기였다.

“수고 많았네.”

백리궁은 혁무천의 공을 인정하고 치하했다.

기본 거래에 더해서 금룡장의 물량 오 할을 가져온 것은 대박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성공이었다.

반면 금룡장은 지금쯤 발칵 뒤집혔을 것이 분명했다.

지난 백 년 사이, 두 상가는 같은 구룡상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취급하는 물품이 많이 겹쳐서 자주 충돌을 일으켰다.

그런데 십 년 전부터 천룡방이 비룡장을 견제하기 위해 금룡장을 밀어주면서 호북의 상권을 금룡장에 야금야금 빼앗겨야만 했다.

비룡장은 그만큼 어려워졌고, 최근에는 천룡방이 대놓고 비룡장을 누르려 하면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 한 번의 거래로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고 상권조차 회복된 것이다.

“천룡방이 움직일 겁니다. 다각도에서 압박을 하겠지요.”

혁무천의 직설적인 말에 백리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네. 당연히 그러겠지.”

“어쩌면 소식을 듣고 쫓아올지도 모릅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네. 우리도 이제는 과거의 비룡장이 아니거든.”

백리궁이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하고는 혁무천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애써 얻은 것을 지키려면 무력을 더 강화시켜야 합니다.”

“나도 통감하고 있네. 화합? 좋은 이야기지. 하지만 힘이 없으면 결국 지킬 수가 없더군. 평화도 적과 대등한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

당장만 해도 금룡장과 천룡방이 비룡장의 물량 확보를 방해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생각해 놓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진행하게. 천륜을 저버리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허락하겠네. 물론 그에 대한 자금이 필요하면 양아에게 이야기하고.”

“그러다 기둥뿌리를 뽑으면 어쩌시려고요.”

“허허허허, 어차피 자네가 새로 세운 기둥 아닌가. 뽑히면 술 한 잔 마시고 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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