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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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6화
146화
기목승의 시선이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그댄 누군가?”
“비룡단을 맡고 있는 사람이오.”
“비룡단?”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를 거요.”
“어쩐지 뭘 모른다 했더니…… 아직 구룡상단의 체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나 보군.”
“알 만큼은 아오. 구룡에게 모두 독립적인 권한이 있다는 것도 알고, 구룡이 평등한 관계라는 것도 알고… 천룡방이 월권을 자주 해서 다른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소.”
“뭐……?”
기목승은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무척이나 건방져 보였다.
“앞으로 비룡장은 천룡방의 월권을 용납하지 않을 거요. 당연히 비룡장의 이익을 강제로 다른 곳에 넘겨주는 일도 없을 것이고.”
“훗! 굉장히 건방진 친구군.”
“건방지다? 내가?”
혁무천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옆을 향해 말했다.
“동 형, 내가 건방지게 말한 것처럼 보였소?”
동대안이 즉시 대답했다.
“아니, 저 양반이 미친 거지. 철혈마제나 사천제일마도 자네에게 건방지다는 소리를 안했는데 말이야.”
기목승은 두 사람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새파란 애송이가 철혈마제와 사천제일마를 보기나 했을까.
“흥! 웃기는 놈들이군.”
냉랭히 코웃음 친 그는 백리양을 바라보았다.
“소장주, 나는 분명히 말했소. 괜한 행동을 해서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하오.”
“뭘 잘못 아셨군요. 이번 일의 책임자는 제가 아니라, 저기 계신 비룡단주십니다.”
“…….”
기목승이 이번에는 정말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저 시건방진 애송이가 책임자라고?’
혁무천이 놀란 그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만마성으로 갈 거요. 막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오. 대신 나중에 후회하지는 마시길.”
그러고는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일행들이 먼저 그를 따라 움직였다.
백리양과 행수들, 호위무사들이 한발 늦게 눈치를 보며 따라갔다.
“정말 해보겠다는 거냐!”
기목승이 버럭 소리쳤다.
“대산, 철호. 길을 터라. 그래도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니 죽이진 말고.”
혁무천의 말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장대산과 철호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최근 혁무천이 준 무공의 새로운 초식을 익히면서 실전에 나설 때만을 기다렸던 터였다.
실력의 우위를 떠나, 상대의 기를 꺾기에는 두 사람만 한 사람이 없기에 혁무천도 그들을 먼저 내보낸 것이었다.
부아아아아앙!
장대산이 장봉을 휘두르자 가공할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쉬아악!
반면 튕기듯 허공으로 떠오른 철호가 내려친 도끼는 벼락처럼 대기를 쪼갰다.
쾅!
날아드는 장대산의 봉을 엉겁결에 검으로 막은 기목승은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거대한 체구를 보고 외공을 익힌 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단순히 외공만 익힌 놈이 아니었다.
날아드는 장봉에는 강력한 진기가 실려 있었다. 게다가 장봉이 워낙 길어서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았다.
그 때문에 곰보다 더 큰 놈의 봉을 검으로 막아냈는데, 손에서 시작된 진동이 온몸으로 퍼지며 속이 울렁거렸다.
황급히 뒤로 물러선 그는 이를 악물고 장대산을 노려보았다.
‘이… 괴물 같은 놈……!’
장대산이 휘두른 장봉에 걸린 자들은 누구든 예외 없이 튕겨나갔다. 검으로 막아도 소용없고, 겨우 피하면 장봉에 서린 기운에 휩쓸렸다.
한 번에 두세 명씩, 잠깐 사이 칠팔 명이 나뒹굴었다.
그런데 거대한 괴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딸막한 놈이 도끼를 들고 설치는데 순식간에 서너 명이 그에게 당해서 쓰러졌다.
장봉을 휘두르는 괴물과 도끼를 휘두르는 땅딸막한 놈. 단 두 놈에 의해 금룡문의 최고 정예인 금룡대의 전위가 맥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쓰러진 자들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일어서는 걸 보니 죽지는 않은 듯했다.
그때 장평과 영추문, 강탁이 공격에 합세했다.
이미 기세에서 눌린 금룡대는 숫자가 열 배나 되면서도 바짝 긴장했다.
반면 장평 등은 자신만만하게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호랑이가 양 떼 속에 난입한 듯했다.
“그만! 물러서라!”
기목승이 악을 썼다.
상대는 아직 간부로 보이는 자들이 나서지도 않았다. 그런데 금룡대는 오십 명 중 절반이 쓰러지거나 부상을 당했다.
그도 어리석은 자는 아니기에 상대가 손에 사정을 봐줬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빌어먹을 일이…….’
금룡대원들이 눈치를 보며 물러서자, 비룡단원도 공격을 멈추었다.
혁무천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 막으면, 이후 벌어지는 일의 책임은 모두 금룡장이 져야 할 거요.”
기목승은 이가 박힐 만큼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은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길을… 터줘라.”
물길이 갈라지듯 양쪽으로 물러서는 금룡대 사이를 혁무천 일행이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행수와 용검당 무사들도 뒤를 따랐다.
기목승은 앞을 지나가는 혁무천을 보며 이를 갈았다.
“보주님은 물론 천룡방에서도 오늘 일에 대해서 반드시 비룡장주에게 책임을 물으실 거다.”
혁무천의 고개가 그를 향해 돌아갔다.
“얼마든지. 그날이 금룡장의 마지막이 되겠지.”
“이…….”
“아! 천룡방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함부로 끼어들지 못할 거요. 이 일에 끼어들면 그들도 곤란해질 테니까.”
기목승은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혁무천의 말에 이를 악다물었다.
혁무천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
만마성 깊숙한 곳, 영마각(靈魔閣) 내부.
천화광이 사십 대 중반의 중년인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금룡장이 금룡대를 보내서 비룡장 사람들을 막아섰다가 창피만 당했습니다.”
천화광이 중년인의 보고에 조소를 지었다.
“훗, 당연하지. 무천이 있는데. 바보 같은 놈들.”
만마성은 혁무천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혁무천 일행이 촉도를 지나 마천문에 간 것도 모르지 않았다.
모두 천화광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천화광은 혁무천 일행이 중원으로 들어온 후 비룡장에 똬리를 틀자 곧바로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금룡장에 하려던 추가 거래의 방향을 비룡장으로 튼 것이다.
만마성 내부에서 몇몇 사람이 반발했지만 천화광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금룡장과 거래하며 뒷돈을 챙긴 간부 세 사람을 뇌옥에 가두어버렸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단순히 혁무천을 밀어주기 위해 벌인 일이 아니었다.
천룡방이 금룡장과 사룡상단을 움직여서 은밀하게 철혈마련과 거래하고 있었다. 만마성에 보내는 것보다 더 나은 물건을 철혈마련 쪽으로 빼돌렸다.
전쟁을 앞둔 시기. 물자는 전쟁의 향방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터. 천룡방과 금룡장이 제때 물자를 공급해주지 못하면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 조치를 하는데 비룡장은 훌륭한 칼이 되어줄 수 있었다.
“비룡장이 물건만 제대로 공급해준다면 우린 앞으로 물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소성주님 말씀대로 된다면 큰 걱정 하나가 덜어질 겁니다.”
“그들이 언제 도착하지?”
“지금쯤 은마곡에 들어서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마중 나가야겠군.”
일어나는 천화광의 두 눈에서 환한 꽃이 피어났다.
영마각주 추곡은 그 눈빛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
금룡장주 금상(金商) 전금환은 수하가 달려와서 전한 서찰을 읽어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죽일 놈들이……!”
수주에 간 기목승으로부터 날아온 전서였다.
비룡장을 막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전서에는 사실과 살짝 다른 내용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이번 거래를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장주님이 무릎 꿇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천룡방을 비웃으면서…….]
와직.
서찰을 움켜쥔 전금환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이 건방진 놈들이 감히 누굴 위협해?”
옆에 있던 자도 그의 분노에 부채질을 했다.
“절대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장주. 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천룡방에 연락해라! 이 기회에 놈들의 건방진 콧대를 부러뜨리고 말 것이다!”
“예, 장주. 천룡방에서도 잘 됐다 생각할 겁니다.”
“그러겠지. 아예 이 기회를 이용해서 비룡장의 상권을 우리가 차지하는 것도 괜찮겠어. 잘하면 천룡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분노에 차 있던 전금환의 두 눈에 욕망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
“하하하, 어서 오게.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날 보러 왔나.”
천화광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혁무천을 맞이했다.
“널 만나려고 온 거 아니다.”
혁무천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래도 천화광의 미소는 여전했다.
“섭섭하군. 나를 보고 싶지 않았나?”
“재수 없는 그 얼굴을 내가 왜 보고 싶어 하겠어. 오늘은 거래 때문에 온 거야. 잘 알겠지만.”
혁무천의 마지막 말에 천화광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 맞아. 거래 때문에 왔지. 그럼 들어가자고.”
비룡성 사람들은 만마성의 소성주에게 대놓고 쏘아붙이듯 말하는 혁무천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혁무천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들어갑시다.”
비룡장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 뒤만 따라갔다.
회의청 안, 기다린 탁자 양쪽에 만마성과 비룡장 사람들이 앉았다.
비룡장에서는 백리양, 행수 다섯, 혁무천, 전사문이 나섰다.
만마성 쪽도 여덟 명이었는데, 중앙에 천화광이 앉아 있었다.
“흠, 이제 이야기를 해봅시다.”
혁무천은 천화광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중앙에 앉았다는 건 이번 회의의 주재자라는 뜻이었다.
혹시 이번 거래를 요청한 것도 천화광?
설마 자신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
천화광이 눈을 가늘게 뜬 그를 보며 씩, 웃었다.
“무천,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이번에 비룡장과 거래하려는 건… 그래, 솔직히 자네 때문이야.”
‘뭐?’
“그런데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비룡장에 자네가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처음으로 천화광에게 패한 기분이 든 혁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때마침 백리양이 입을 열어서 머쓱한 분위기에 변화를 주었다.
“먼저 만마성이 원하는 물품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도록 하지요.”
“그럽시다.”
천화광이 묘한 눈빛으로 백리양을 보고는, 옆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에 있던 사십 대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일단 본 성이 원하는 물품에 대해서 말하겠소. 먼저 식품부터…….”
그때부터 지루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고기와 쌀을 비롯한 식품과 각종 생필품 등 모두 열여덟 가지 물품이 협상 자리에 올랐다.
비룡장의 다섯 행수들은 자신과 관련이 있는 물품이 나오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물량과 가격을 놓고 협상에 임했다.
만마성의 금마당 간부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전 한 닢을 놓고 벌이는 설전은 칼만 안 들었을 뿐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치열했다.
사실 동전 한 닢으로는 만두 하나도 사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물건의 덩치가 커지면 그 한 닢이 은자 수백 냥, 수천 냥으로 바뀌었다. 수백, 수천 명의 한 달 생활비가 말 한마디에 오가는 것이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상인들의 협상도 전쟁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무천.>
갑자기 천화광이 전음을 보냈다.
혁무천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의 전음에 대꾸하는 것보다 협상 과정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