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45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5화
145화
회의인 둘은 동대안의 섬혼에 각각 구멍 세 개씩 뚫린 다음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엎어졌다.
영추문을 상대했던 자는 머리에서 무릎 위까지 주먹과 발에 의해 수십 대를 강타당하고 뼈가 다섯 군데나 부러진 채 쓰러졌다. 마지막에는 목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그 사이 혁무천은 자경산을 어깨에 걸쳤다.
지혈을 했는데도 등에 난 상처가 제법 깊어서 늘어진 팔을 타고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지.”
***
혁무천은 곧장 마차를 구해서 자경산을 싣고 비룡장으로 향했다.
자경산은 이제 철혈마련과 적대관계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살기 위해서는 비빌 언덕이 필요했다.
비룡장으로서는 절정고수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
또한 그가 알고 있는 철혈마련에 대한 비밀만 해도 적지 않을 것이니 살릴 가치는 충분했다.
자경산은 하루 종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혁무천은 말을 걸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자경산은 스스로 마음을 정리해야만 했다.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마차를 대동한 혁무천 일행은 그렇게 이틀을 달려서 석양이 질 무렵 대오현에 도착했다.
자경산의 입이 열린 것은 그때쯤이었다.
“왜 나를 살렸지?”
마부석 한쪽에 앉아 있던 혁무천은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음에도 놀라지 않았다.
반쯤 감았던 눈을 살짝 뜬 그는 지금까지 계속 대화를 나누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했다.
“염왕에게 보내기에는 아까워서.”
“아직은 쓸모가 있는 놈이다, 그건가?”
“손해인지 득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
자경산은 고개를 돌려 마차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문득 그는 오래 전에 봤던 어느 날의 석양이 떠올랐다.
“오빠, 해가 불났어!”
여동생과 함께 기루 뒤쪽에 있는 동산에 올라가서 나란히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데 여동생이 그렇게 소리쳤다.
그날은 석양이 유난히 붉어서 정말 불이 붙은 듯했다.
여동생은 해가 왜 불이 붙었냐며 물었다.
자신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줄 수가 없었다.
그날로부터 사흘 후, 늦은 밤에 한 사람이 기루를 방문했다.
다음 날 아침, 소소의 어머니인 기루의 루주가 죽었다. 기루의 의동생이자, 자신과 여동생의 어머니인 소월도 죽었다.
전날 밤 방문한 손님은 소소와 자신, 그리고 여동생 산산을 데리고 기루를 떠났다.
그 손님은 철혈마련의 주인인 우문강천이었다.
그는 철혈마련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산산과 소소에게서 떼어놓았다.
그러고는 백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철혈마련의 무공 수련장에 보냈다.
자신이 수련장에서 돌아온 것은 십 년이 지난 열여덟 살 때였다.
우문강천은 자신을 소소의 호위로 임명했다.
소소의 나이는 열넷. 그녀는 더 이상 제대로 뛰지도 못하던, 자신에게 업어달라고 칭얼거리던 세 살짜리 아기가 아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처음 소소의 호위가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여동생 산산에 대해 물었다.
소소는 알려줄 수 없다고 냉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소소에게 다시 묻자, 소소는 나중에 알려줄 테니 우선은 자신의 명령을 잘 따르라고 했다.
그 후 십 년을 소소의 호위로 살았다.
그 사이 소소는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공녀가 최우선이다. 그것만 인정한다면 네 부하가 되마.”
“어려운 조건은 아니군. 그 이야기는 몸부터 나은 다음에 하지.”
***
비룡장을 나선 지 구 일째 되던 날 오후. 혁무천 일행이 비룡장에 도착했다.
백리양은 혁무천이 예상보다 빨리 돌아오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미 비응당을 통해서 여동생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터였다.
갔던 일마저 잘 해결되었으니 말하기도 편했다.
“안 그래도 단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무래도 강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입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정파가 세력을 이루며 준동하기 시작했고, 팔대마세 역시 욕망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쟁은 상인들에게 최고의 기회라 들었지.”
백리양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가 꼭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 같군요.”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법이지. 다른 방식으로 산다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그건 그렇지요.”
“말해 봐. 날 왜 기다렸는지. 설마 그 말을 하려고 기다린 건 아닐 거 아닌가?”
“물론이지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를 지은 백리양이 혁무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마성에서 대규모 거래를 요청해왔습니다. 품목은 식자재와 생필품입니다.”
“잘됐군.”
만마성은 팔대마세 중 가장 세력이 큰 곳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량은 연 은자 삼십만 냥에 달한다.
비룡장 일 년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
성사만 된다면 비룡장으로선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
“문제는 만마성이 전에 거래하던 곳이 구룡 중 남양에 근거지를 둔 금룡장인데, 그들은 천룡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곳입니다.”
“결국 금룡장보다는 천룡방이 걸림돌이라는 건가?”
“바로 그겁니다.”
“장주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지?”
“사실 만마성은 십 년 전만 해도 저희가 거래하던 주 거래처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천룡방의 입김에 밀려서 금룡방에 권한을 내주어야만 했습니다. 저희 비룡장의 세가 약화된 원인 중 하나지요. 그러니 당연히 아버님께서는 되찾아오길 바라십니다.”
“그럼 문제될 것이 없군. 만마성이 원하고, 장주가 바란다면 진행해야겠지.”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일을 진행시키면 천룡방에서 방해한다고 봐야겠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단주와 상의하려고 했던 겁니다. 아버님께서는 이번 만마성과의 거래를 단주께 맡기고자 하십니다.”
“나보고 맡으라고?”
“예. 그리고 상거래와 관련된 부분은 저에게 보좌하라 하셨습니다.”
“흠, 그럼 해볼 만하겠군.”
“내일 만마성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그럼 내일 점심식사 후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단주. 그럼 아버님께는 그리 보고하겠습니다.”
백리양이 보고를 위해 방을 나가자 목량이 들어왔다.
목량과 강탁은 이틀 전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목량의 표정이 무겁게 느껴졌다.
“은 소저를 무사히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갔던 일은?”
“구요 노선배님과 곽 방주가 남경과 장강의 상권 흐름에 대한 정보를 책임져 주기로 했습니다.”
“그럼 남경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상관중 대협이 도움을 받았다는 세력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혁무천은 그 말에 미간을 좁혔다.
전부터 느낌이 좋지 않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팔대마세가 움직이는 시기에 맞춰서 그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정말 그들이 폭풍의 눈인 걸까?
“어떤 점이 수상하다는 거지? 네 의견을 솔직히 말해봐라.”
“일단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곽도전은 물론이고, 심지어 상관중 대협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관중조차 모른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상관중과 곽도전의 관계를 알고 거리를 두는 걸까?
사실이라면 소름끼치도록 철저한 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뜻이 올바르다면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습니다만, 시작 전부터 고약한 냄새를 풍깁니다. 아무래도 정파세력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구요 노인은 아무 말 없었나?”
“노선배님께선 능력이 닿는 대로 그들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흠, 그래? 그럼 일단 그들에 대한 조사는 구요 노인과 곽도전에게 맡겨놓고 우린 이쪽 일에 전념하는 게 좋겠어.”
“예, 대형.”
“만마성이 비룡장에 대규모 거래를 요청했다. 내일 거래를 위해서 만마성으로 갈 거다.”
“만마성처럼 거대한 세력에서 갑자기 거래를 요청했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거래선을 바꾸기 위해서, 아니면 대규모 추가 물량이 필요해서. 제 생각으로는… 후자일 것 같습니다.”
“추가 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한다는 건 전쟁을 대비한 거겠지?”
“그렇습니다. 즉, 만마성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그럼 철혈마련도 곧 움직인다고 봐야겠군. 우문척이 우문소소의 일을 다급히 처리한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어.”
조용히 말을 맺은 혁무천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피어났다.
‘팔대마세 중 넷이 움직이면, 나머지 넷과 마도십문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다. 처음에는 정은맹과 천기회 등 정파를 친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 하지만 결국은 천하를 놓고 쟁패하는 상황이 될 게 뻔해.’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로서는 그때가 바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낼 절호의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한 폭풍이 불어야 하는 것이다.
***
만마성에 갈 사람들은 모두 이십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혁무천 일행 중 구원과 한유림을 뺀 열 명과 백리양, 식자재와 생필품을 취급하는 행수 다섯. 거기다 호위무사로 용검당 무사들까지.
점심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백리궁과 식솔들의 환송을 받으며 비룡장을 출발했다.
수주까지 가는 동안에는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금룡장과 천룡방이 이번 거래 건에 대해서 아직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마성이 그쪽에 통보하지 않고 비룡장에 요청한 거라면 모를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런데 수주를 십 리쯤 남겨 놓았을 때였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난 관도를 따라 빠르게 걷는데 앞쪽 송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각종 무기를 들고 있는 무사들이었다.
개중 사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털보 중년인이 오른손을 들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앞서 걷던 비룡장 용검당주 전사문은 털보 중년인을 아는 듯 표정이 굳어졌다.
“오랜만이오, 기 대주. 금룡장 분들이 여긴 어쩐 일이시오?”
털보 중년인은 금룡장의 무사대 중 금룡대를 이끌고 있는 기목승이었다.
“오늘은 인사를 나눌 기분이 아니네. 이대로 몸을 돌려서 한구로 돌아가게.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네.”
“우리를 공격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만마성에 가는 길 아닌가?”
“맞소만.”
“만마성이 본 보의 거래처라는 걸 모르지 않을 거네. 구룡은 서로의 권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잘 알 것이고.”
“물론 알고 있소.”
“그럼 내가 그냥 돌아가라는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르진 않을 텐데?”
그때 백리양이 나섰다.
“백리양이라 합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만마성과의 거래는 우리 비룡장이 먼저 했습니다. 순서를 따진다면 금룡장이 먼저 어긴 셈이지요.”
기목승이 백리양이라는 이름을 듣고 포권을 취했다.
“비룡장의 소장주까지 오셨구려. 어쨌든 우리는 비룡장 사람들이 만마성에 가는 걸 허락할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시오.”
“그래도 우리가 가겠다면 막으실 거요?”
“보주께서는 비룡장 사람을 만마성에 들이지 말라 하셨소. 또한 이 일은 천룡방에서도 승인이 난 일이오.”
그 말에 혁무천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만마성과의 거래를 언제부터 천룡방이 좌지우지 했는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