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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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4화
144화
우문소소의 아미가 하늘로 솟구쳤다.
“나만 데려오고, 다른 사람은 모두 죽이라 했다고?”
“그렇습니다, 공녀.”
우문소소의 곱게 휘어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경산까지 죽이라고 하더냐?”
“물론이지요.”
“흥! 경산을 죽이려면 나부터 먼저 죽여야 할 것이다!”
“공녀, 대공의 명을 따르시지요.”
“어림없다! 그 일은 내가 오라버니에게 가서 따질 것이다!”
<경산, 도망가!>
우문소소가 말미에 전음으로 다급히 소리쳤다.
자경산은 움찔했지만 어느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전음으로 답했다.
<공녀를 두고 떠날 순 없습니다.>
<바보같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밖에 서 있던 중년인이 말했다.
“엉뚱한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요, 공녀.”
그 와중에도 우문소소의 전음이 빠르게 자경산의 고막을 울렸다.
<살아 있어야 동생을 찾든 말든 할 수 있을 거 아냐?>
자경산이 우문소소에게 반드시 듣고 싶은 답은 어릴 적 헤어진 동생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자신은 여덟 살, 동생은 네 살이었다.
그런데 동생에 대한 걸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 우문소소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생 찾는 걸 포기할 거야? 언제는 동생 찾는 게 삶의 모든 것이라며? 거짓말이었어? 그냥 해본 소리였어?>
<아니오! 나는 동생을 반드시 찾아…….>
<그러려면 살아야 할 거 아냐! 이 바보야!>
<공녀…….>
<빨리 가! 다음에 만나면 제일 먼저 동생의 소식을 알려준다고 약속할게.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서 나를 그 악귀 같은 놈 손에서 구해줘!>
밖에 서 있던 중년인도 더 참지 못했다.
“안 나오신다면 저희가 직접 모시지요.”
“다가오지 마!”
우문소소가 차갑게 소리치며 손을 목에 갖다 댔다. 어느새 빼들었는지 한 뼘 길이의 소도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중년인도 차마 더 다가가지 못하고 멈칫했다.
그 순간, 자경산이 뒤쪽으로 몸을 날려서 창문을 뚫고 방을 빠져나갔다.
중년사내가 그걸 보고 냉랭히 소리쳤다.
“잡아라!”
그런데 우문소소가 두 팔을 벌리고 방문 앞을 막아섰다.
“아무도 못 들어간다!”
“공녀!”
“쫓아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쫓아가라!”
중년사내는 입술을 깨물더니 옆을 향해 고갯짓을 보냈다.
몇 사람이 허공으로 몸을 날리더니 지붕을 타넘었다.
***
은설과 함께 지하통로를 통과한 혁무천은 출구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처음에 들어갔던 곳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방.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지하 통로 안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나 보군.’
그때 방문이 열렸다. 밖에는 외팔이 남씨가 서 있었다.
“나오쇼.”
혁무천은 은설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가 있는 곳은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는 일반 집이었다.
“우문소소는 당신이 독을 쓴 걸 모르는 것 같더군.”
혁무천이 불쑥 내뱉은 말에 외팔이 남씨가 처음으로 씩 웃었다. 품속에 손을 넣은 그는 손톱만 한 단환을 하나 꺼내서 건네주었다.
“당연히. 소소가 알았으면 독을 쓰지 못하게 했을 거요. 어쨌든 미안하게 됐소.”
혁무천은 그가 건네준 해독약을 받았다. 독은 태워서 없앴지만,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몰랐다.
“다음부터는 함부로 독을 쓰지 마시오. 세상에는 그 정도 독으로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많으니까.”
혁무천이 있는 곳은 좁은 골목길 안에 있는 일반 가옥이었다.
집을 나온 혁무천과 은설은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저만치 양두동의 양고기 파는 가게들이 보였다.
그때 양고기 파는 가게 쪽에서 두 사람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동대안과 영추문이었다.
기다리라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나선 모양이다.
하긴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고 구경만 하라는 말이나 같았으니…….
은설을 본 동대안이 활짝 웃었다.
“은 소저를 구했군.”
은설도 반가워서 표정이 밝아졌다.
“오랜만이에요. 동 아저씨.”
“어허, 아저씨 아니라니까!”
“아무리 봐도 아저씨인데요, 뭐.”
동대안과 은설이 농담조로 말하고 있을 때, 영추문은 은설을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쳇, 정말 예쁘게 생겼네.’
자신도 꾸미면 미인 소리 들을 수 있을 텐데.
한참 은설과 인사를 나누던 동대안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조금 전에 수상한 놈들이 떼로 몰려와서 골목 안으로 들어갔네. 아무래도 철혈마련 놈들 같아.”
“혹시 우리 일행 중에 안으로 들어간 사람 있소?”
“아니, 없어. 풍마문에서는 누가 들어갔는지 몰라도.”
“그럼 일단 이곳을 피하지요. 지금 철혈마련과 부딪혀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그러지. 근데…… 정말 우문소소가 납치했던 건가?”
“그게 좀 묘하게 되었소.”
혁무천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하자, 은설이 끼어들었다.
“소소 언니는 저를 납치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구해주었죠.”
“엉?”
동대안이 의아해하며 혁무천을 돌아다보았다.
혁무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은 뭐라 말하기가 애매했다. 그는 아직도 우문소소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양두동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혁무천이 은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와호산장으로 돌아갈 거냐?”
은설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십여 걸음을 걸어갔다.
이대로 혁무천을 따라가고 싶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오빠를 따라가면 복수는 어떻게 하지?
오빠와 오빠 일행들이 강하긴 하지만, 백마궁은 몇 사람이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면 아직은 그들의 힘이 필요한데…….
차라리 무천이 ‘나와 함께 가자. 이번에는 절대 못 보내준다!’라고 하며 붙잡으면 못이긴 척 따라갈 수도 있는데…….
오빠는 그럴 생각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저번 일로 기분이 상했나?
‘쳇, 말이라도 하고 가지. 내가 얼마나 울었는데.’
하여간 여자의 마음을 조금도 몰라준다니까.
“하긴 너에게는 그곳이 안전할지도 모르지.”
“…….”
‘으이구. 진짜 답답한 우리 오빠…….’
은설이 답답해서 뭐라 한마디 하려는데, 혁무천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신도평, 그놈을 너무 믿지는 마라.”
은설이 혁무천을 흘겨보며 입술을 두어 번 삐죽였다.
“믿긴 누가 누굴 믿어요? 제가 뭐 그 사람 좋아서 거기 남은 줄 알아요?”
‘제가 좋아하는 남자는 세상에 딱 한 사람밖에 없다구요!’
그 말이 목 안에서 맴도는데 차마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믿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그때는 바로 대답을 못한 거야?”
혁무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져 나왔다. 신도평의 이름이 나오니 자신도 모르게 욱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은설은 고개를 돌려서 반짝이는 눈으로 혁무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설마… 지금 질투하시는 거예요?”
“내가 왜 그딴 놈을 질투해?”
“다른 분에게 물어봐요, 질투인지 아닌지.”
혁무천은 무심코 고개를 돌려 동대안을 바라보았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눈만큼이나 귀도 좋은 그라면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대안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맞아, 자네 질투하고 있는 거야.
그런 뜻처럼.
혁무천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량이 머쓱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맞다는 뜻.
혁무천은 무안한 듯 손으로 코를 쓱 닦고는 묵묵히 걷기만 했다.
옆에서 따라 걷던 은설이 입술을 몇 번 씰룩이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오빠가 바라면…….”
“거기 있어라.”
혁무천이 툭 던지듯 말하며 은설의 말을 끊었다.
“…….”
“당분간만 있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은설의 염원인 복수를 해주려면 지금보다 힘을 더 키워야 한다. 그것도 은설이 싫어하지 않는 방법으로.
올해 안에는 되지 않을까?
그동안 은설이 안전하게 지낼 곳으로는 와호산장만 한 곳이 없다.
와호산장에 펼쳐진 기문진이라면 철혈마련이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해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소식을 듣고 자신이 갈 때까지는.
“미안해요, 오빠.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할 것 없다. 미안한 사람은, 어려울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나지. 와호산장까지는 내가 데려다주마.”
이제는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천천히, 한 땀 한 땀 그물을 짜서 은설을 얻고야 말리라!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나이?
이제 그딴 거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잠들어 있던 시간을 빼면 얼마 차이나는 것도 아니잖아?
‘띠동갑도 아닌데 뭐…….’
한 살 모자란다.
“오빠…….”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사람을 한구의 비룡장으로 보내라. 당분간 그곳에 있을 거니까.”
“……알았어요. 그럼 찾아오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혁무천은 은설을 와호산장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은설은 그때까지도 발길을 돌릴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했다.
“가봐라.”
하지만 혁무천의 그 말에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예, 오빠. 무슨 일 있으면 비룡장으로 연락할게요.”
혁무천은 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래, 일단은 이 정도만 해도 되었다. 설아와 인연의 끈을 다시 이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말이다.
***
은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에 와호산장이 들썩거렸다.
하지만 은설에게 상황의 전말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를 구한 이가 무천이라는 것도 탐탁지 않은 일인데, 철혈마련의 정예무사들이 신양에 나타났다고 한다.
천기회의 간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신양의 상황을 주시했다.
바로 그 시각, 혁무천은 동대안, 영추문과 함께 신양에 도착해서 객잔으로 향했다.
그런데 객잔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무천.”
고개를 돌리자 우중충한 골목 안에서 벽에 기대고 서 있는 자경산이 보였다.
자조 섞인 표정에 흐트러진 행색, 창백한 얼굴, 입가에는 피마저 묻어 있었다.
혁무천은 발길을 돌려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다니. 조금이라도 일찍 죽고 싶었나 보군.”
“훗…….”
쓴웃음을 지은 자경산은 천천히 주저앉았다.
기대고 있던 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등 쪽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죽이고 싶으면… 죽여. 그런데… 부탁 하나만… 하자.”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난… 언제 죽어도… 상관없어. 공녀를… 공녀를 지켜줘…….”
“나보고 우문소소를 지켜달라고?”
자경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혁무천이 그런 자경산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를 업신여기는 우문소소가 뭐 그리 좋아서 네 목숨보다 먼저 챙기려는 거지?”
“당신이라면… 알 텐데……. 은설을 위해… 명예와 부를 포기한… 당신이라면…….”
그런가?
혁무천은 이마를 한번 씰룩이고는 짐짓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그전에 너부터 살려야할 것 같군.”
“난…….”
“나는 그 여자를 만나기 싫다. 그러니 지키고 싶으면 네가 살아서 지켜.”
그때였다.
골목 안쪽에서 진득한 살기가 밀려왔다.
“그놈은 아무도 데려갈 수 없다. 살고 싶으면 그놈을 그대로 놔두고 꺼져라.”
살기 가득한 목소리가 끝날 때쯤, 짙은 색 회의를 입은 삼십 대 무사 셋이 삼 장 떨어진 곳에 날아 내렸다.
“동 형, 치우시오.”
동대안도 회의인의 말투에 욱하니 짜증이 났던 터였다.
“영 가야, 네가 한 놈 맡아라.”
영추문에게 한 명을 떠넘긴 동대안이 나타난 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영추문도 바짝 따라가며 투덜거렸다.
“대형은 동 형한데 치우라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두 주먹에 잔뜩 공력을 주입하고 회의인들 중 왼쪽에 있는 자를 향해 쇄도했다.
회의인들은 촌각의 여유도 없이 상대가 공격해오자 냉소를 지었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길거리 무사 중에서 절정 경지의 고수를 만날 확률은 일 푼도 되지 않는다. 아니, 일 모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땡감에 맞아 코가 깨질 수 있는 법이다.
회의인들의 운세가 오늘 그랬다.
그들의 입가에 떠오른 냉소가 경악으로 바뀌고,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