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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43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3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3화

143화

 

 

혁무천은 망설임 없이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탁자가 달랑 두 개밖에 없었다. 워낙 좁아서 더 놓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손때가 시커멓게 탄 탁자 위에는 이가 나간 찻잔이 놓여 있었다.

혁무천이 자리에 앉자,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왼팔이 소매만 펄럭거리는 사십 대 중년인이었다.

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혁무천의 앞에 작고 투박한 술병 하나와 양고기를 내놓았다.

“드슈. 돈 걱정은 마시고. 이미 받았으니까.”

혁무천은 잔에 술을 따라서 단숨에 비웠다. 묘한 향이 났는데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양고기도 한 점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무엇으로 양념을 했는지 몰라도 톡 쏘는 맛이 났다.

그렇게 반각이 지났을 무렵.

외팔이 남씨 성의 남자가 다시 안에서 나왔다.

“따라오쇼.”

그러고는 몸을 돌려서 가게 안쪽에 있는 천막을 걷고 나갔다.

혁무천도 그 뒤를 따라서 가게를 나갔다.

가게 밖은 뒷마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건너편에는 제법 큰 집이 있었는데, 여기저기 땜질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도 골목에 있던 천막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화려한 편이었다.

마당 한편에는 십여 명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고 누워 있었다.

눈빛이 몽롱한 것을 보니 뭔가 수상한 약에 취한 듯 보였다.

‘앵속인가?’

하지만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혁무천은 외팔이 남씨 남자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은 또 다른 별천지였다.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수십 명이 탁자에 앉아서 도박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이십 대의 청년도 있었고, 칠순은 될 듯한 노인도 있었다.

주로 주사위 노름을 하고 있었는데, 노름하는 사람들 사이를 반라의 젊은 여자들이 오갔다.

외팔이 남씨는 노름하는 사람들 사이를 곧장 가로지르더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혁무천은 그 문 안쪽이 지하로 향하는 계단인 것을 알았지만 망설이지 않고 따라서 들어갔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사오십 개나 되었다.

상당히 깊은 곳이었다.

입구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을 듯했다.

그제야 혁무천은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거야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수백만 근의 무게가 머리 위에서 짓누른다면, 그가 아무리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다 해도 살아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외팔이 남씨 남자는 그 깊은 곳의 지하로 나 있는 통로를 따라서 한참을 걸어갔다. 등잔불이 간간이 켜져 있어서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곧 문이 열리고, 외팔이 남씨가 밝은 빛 속으로 나갔다.

역시나 혁무천도 그를 따라서 나갔다.

깨끗한 방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게 꾸며진 방.

그런데 일반적인 가정의 방과는 조금 달랐다.

객잔.

그랬다. 그 방은 객잔의 방과 비슷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외팔이 남씨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러고는 반각도 되지 않아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우문소소였다.

그녀는 전에 봤을 때보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했다.

“오랜만이에요.”

“설아는 어디에 있지?”

“무사히 잘 있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

“당신이 떠난 후 하루도 빼지 않고 당신만 생각했어요.”

“아픈 곳이 없기만 바라야 할 거다.”

“그녀가 부럽군요.”

처연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도 혁무천의 냉막한 표정은 일말의 변화가 없었다.

“너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글쎄요. 은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나는 네 입에서 설아의 이름이 나오는 것도 싫다.”

“하아……. 저는 어머니를 다섯 살 때 잃었어요. 그 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산 적이 없죠. 유모가 길러줬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그냥 길러줬을 뿐이었어요.”

“네 한탄을 들으려 온 것이 아니다. 설아는 어디에 있지?”

“그렇게 십 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제가…… 정실의 딸이 아니라… 기녀의 딸이었다는 것도 알았고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인 거였어요.”

우문소소를 다그치려던 혁무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철혈마련주 우문강이 첩을 죽였고, 그 첩이 우문소소의 어머니라는 말 아닌가 말이다.

“그때부터 저는 말이 거의 없어졌어요. 누구에게도 내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죠. 그게 뭐든.”

주르륵, 우문소소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당신은 모를 거예요. 누군가에게 버림받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한 어린 여자아이의 마음을.”

“그래도…… 설아를 납치하면 안 되는 거였다.”

우문소소가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납치하지 않았어요.”

“거짓말하지…….”

“오히려 구해준 거죠.”

“뭐?”

“만약 제가 아니었으면 은설은 진짜 납치되었을 거예요. 은설을 납치해봐야 당신의 미움만 살 거라는 걸 저도 잘 아는데,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하지만 넌 저번에도…….”

“그랬죠. 맞아요. 경산을 시켜서 은설을 데려오라고 했죠. 도대체 어떤 여자기에 당신이 그렇게 푹 빠졌는지 알고 싶었으니까요.”

“…….”

“그녀를 제 곁에 둔다면 당신도 제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혁무천은 그녀의 말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정말일까?

“이번에도 그럴까 했어요. 그런데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녀를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말이냐?”

“그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에요. 반쪽짜리 혈육은 그에게 단순한 이용물일 뿐이죠. 그는 은설을 납치해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가둬두고 한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생각이었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혁무천은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몸이 가늘게 떨렸다.

“혹시… 우문척 말이냐?”

정말 그가 우문소소의 말대로 했다면 자신은 은설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소름이 돋았다.

“저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십 년 전에 알았어요. 그는 내가 모르는 줄 알겠지만.”

“그는 네 오빠가 아니냐?”

“훗, 호호, 호호호호! 맞아요. 오빠죠. 아주 자상한 이복오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 몰래 세상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자상한 오빠 말이에요.”

“우문척이 그랬다고?”

“모두 세 사람이 사라졌죠. 그 후로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런 결심마저 무너뜨리는 사람이 나타났죠.”

혁무천도 그게 자신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입맛이 썼다.

한편으로는 우문소소의 이야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좀 전에 말했지만, 나는 네 이야기나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설아를 내놓아라. 그럼 모두 용서해주마.”

“말했잖아요. 은설을 납치한 게 아니라고.”

“네 말이 사실이라면 설아를 데려와라. 혹시라도 나에게 쓴 독을 믿고 있다면 분명히 말해주마. 세상의 어떤 독도 나를 곤란하게 하지 못한다.”

“독이라고요?”

우문소소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혁무천이 오른손을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치이이이익.

푸른색 연기가 손끝에서 피어나며 새큼한 냄새가 났다.

혁무천이 손끝에 뭉쳐놓은 독기가 삼매진화에 의해 타고 있는 것이다.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자가 술과 고기에 독을 탔다. 설마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우문소소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아, 제가 걱정되어서 그랬을 거예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정말 몰랐단 말이냐?”

“남씨 아저씨는 어머니의 친척 동생이에요. 저에게는 외숙부라고 할 수 있죠. 저를 보호하려고 독을 사용한 것 같은데, 어쨌든 그 일은 정말 미안해요.”

그때 방문 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녀, 은 소저를 모시고 왔습니다.”

혁무천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방문을 바라보았다.

우문소소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으로 모셔.”

곧 문이 열리고 은설이 들어왔다.

그녀는 우문소소 앞에 서 있는 혁무천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설아야, 괜찮아?”

은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괜찮아요.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 할 것 없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지. 그런데 다친 곳은 없느냐?”

“예. 소소 언니가 잘 돌봐줘서 지금은 괜찮아요.”

“우문소소가 너를 돌봐줬다고?”

“습격을 당해서 하마터면 독에 중독되어 죽을 뻔했어요.”

“뭐?”

“소소 언니가 며칠 동안 정성으로 돌봐줘서 독을 해독시킬 수 있었어요.”

“…….”

“근데… 혹시 소소 언니와 싸운 거예요?”

“응? 아니… 그게 아니라…….”

“소소 언니는 제 은인이에요. 혹시라도 오해하셨다면 오해를 푸세요.”

“아, 알았다.”

혁무천은 우문소소를 믿을 수 없었다.

혹시 협박을 받아서 거짓말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은설의 말이나 표정을 보니 거짓이 아닌 듯했다.

‘어떻게 된 거지?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바로 그때, 바깥쪽 어딘가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습격이다!”

뒤이어서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으악!”

혁무천은 진득한 살기가 자신이 있는 방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눈을 좁혔다.

‘누가 이런 곳을 습격하는 거지?’

밖에서 다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녀를 안전하게 모셔라!”

혁무천은 우문소소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습격자들이 누군지 아는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말했다.

“오빠가 보냈을 거예요.”

“우문척 말이냐?”

“그래요.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으니 화가 났겠죠. 당신은 은설과 함께 저 안으로 피해요.”

우문소소가 손을 들어서 혁무천이 나온 벽을 가리켰다.

“언니, 우리만 갈 수 없어요. 언니도 함께 가요.”

덜컹.

방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혁무천이 미간을 좁혔다.

들어온 자는 자경산이었다.

“공녀, 어서 피해야 합니다.”

“알았어. 당신은 빨리 은설과 함께 이 안으로 들어가요.”

우문소소가 재촉하며 줄을 하나 잡아당기자 벽이 반쯤 돌아갔다.

“언니…….”

“시간 없어. 오빠는 나를 건드리지 못해. 그러니 걱정 말고 들어가.”

우문소소가 은설을 벽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혁무천도 어쩔 수 없이 은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우문소소가 벽을 밀어서 닫았다.

쿵.

나직한 소리와 함께 벽이 완전히 닫혔다.

우문소소는 닫힌 벽을 잠시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도도하게 쳐들고 돌아섰다.

“얼마나 왔지?”

“오십 명쯤 왔습니다. 작정하고 보낸 것 같습니다. 저희 쪽 호위무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라버니답네. 하지만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야.”

“이번에는 다른 때와 다릅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몸을 피하시는 게…….”

“결정은 내가 내려. 알잖아?”

“공녀…….”

그때 밖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녀, 대공자께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그만 나오시지요.”

우문소소는 어깨에 힘을 주고 턱을 치켜들었다.

“문 열어, 경산.”

자경산이 방문을 열었다.

밖에는 십여 명이 늘어서 있었다. 바닥에는 대여섯 명이 쓰러져 있었는데, 이미 죽었는지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감히 내 호위무사들을 함부로 죽이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군.”

서 있는 자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사십 대 중년인이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대공께서 내린 명이십니다. 공녀만 모시고 오고 모두 제거하라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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