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40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40화
140화
결국 백리양이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나도 무 형의 생각과 같다. 입으로 지키는 평화는 시간이 가면서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결국 힘이 없으면 평화도 없는 거지. 상대가 힘이 세지면 이를 드러내고 잡아먹으려 할 테니까.”
“저도 그건 알아요. 그저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이 싫을 뿐이에요.”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한 백리혜가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사당의 당주들부터 장악해야 할 거예요.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고 저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겠어요.”
백리혜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고 별채로 돌아오자, 백리양이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 놓았던 계획을 말했다.
“새롭게 비룡단이라는 조직을 만들려 합니다. 단주는 당연히 무 형이 맡아주시고, 비룡장에 소속된 모든 무사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겁니다.”
비룡장에는 모두 삼백 명 정도의 무사가 있다.
그들은 사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용검당은 외부 일을 처리하는 곳.
호원당은 비룡장의 경비 책임.
비응당은 정보조직.
감찰당은 이름 그대로 비룡장의 간부 및 비룡장과 관련된 업체나 상가에 대한 감찰이 주 임무다.
그들이 모두 비룡단의 지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직속 인원은 모두 백 명 정도면 어떨까 한데… 일단 사당에서 오십 명 정도를 차출할 생각…….”
“그럴 필요 없어.
“예?”
“전령과 특기가 있는 자 열 명 정도만 기존 인원에서 일부 뽑아서 쓰고, 본 인원은 차근차근 늘리면 돼.”
“괜찮겠습니까?”
“쓸 만한 사람을 빼오면 그만한 사람을 또 채워야 하지. 그럼 삼당의 힘이 약해지기만 하고 일이 복잡해진다.”
“알겠습니다.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무사를 유입시키기 위한 자금은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먼저 각 당을 맡고 있는 사람들부터 봤으면 싶군. 아! 나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백리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쓴웃음으로 바뀌었다. 혁무천의 의도를 눈치 챈 것이다.
“알겠습니다.”
***
반 시진 후.
비룡장의 무력을 대표하는 책임자 넷이 모두 별채의 회의실에 모였다.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불만인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어떤 사람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비룡단을 맡게 된 무천이오.”
혁무천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네 사람이 차례대로 자신을 소개했다.
“용검당을 맡고 있는 전사문이라 하오.”
전사문은 나이 마흔셋이고 검을 무기로 사용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눈빛이 날카로웠는데, 강호에서 쾌룡검이라고 알려진 절정고수였다.
“호원당의 우독량이오.”
서른아홉 살인 우독량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길쭉하니 말상이었다. 무기로는 도를 사용했고, 별호는 금란마도였다.
그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는데, 십여 년 전 철혈마련에 의해 멸문 당한 신도각의 제자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비응당을 책임지고 있는 여득화라 하네.”
그는 사당의 당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마흔일곱 살이었다.
평범한 인상과 달리, 매사에 치밀하고 분석에 뛰어난 걸로 알려져 있었다.
무공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실력에 대한 것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전사문이나 우독량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감찰당을 맡고 있는 교승이라 하네.”
그는 평상시에도 표정이 거의 없어서 사람들이 무면마검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나이는 마흔여섯 살로 백리궁이 진정으로 신임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소장주에게 이야기는 들었을 거요. 앞으로 비룡장의 무사들은 모두 비룡단의 지휘를 받게 될 거요. 불만이 있으면 지금 말하시오.”
혁무천이 그리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우독량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하니 나도 솔직히 말하지. 나는 나보다 실력이 없는 자의 지휘를 받을 생각이 없네. 그러니 나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해 보게.”
혁무천은 답을 미루고 나머지 세 사람을 마저 둘러보았다.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군.”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눈빛과 표정만 봐도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꿍꿍이는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실력을 따져보고 싶은 마음은 비슷한 듯했다.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어느 누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겠다고 하는데 기분이 좋을까.
더구나 그 상대가 새파랗게 젊은 놈이라면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귀찮게 여러 번 나누어서 할 것 없이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낫겠지.”
담담히 말한 혁무천이 한쪽에 서 있는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 형이 전 당주와 십 초식만 겨루어 보시오. 우 당주는 철호가 상대하고, 여 당주와는 장평이 겨뤄봐. 그리고 교 당주는… 대산 네가 나서야겠다. 앞마당이 넓으니 그곳에서 하면 되겠군.”
그러고는 곧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당의 당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비룡단주라는 자가 자신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내심 거부당할지도 모른다 생각했거늘.
그런데 본인이 나서는 것도 아니고, 수하들처럼 보이는 자들을 내세우는 것 아닌가.
은근히 기분이 상한 그들은 속으로 독한 마음을 먹었다.
건방진 애송이의 수하들을 작신 패버리기로.
‘장주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처음에 기를 꺾어 놓는 게 여러모로 편한 법이지.’
개중에는 불안감을 느낀 사람도 있었다. 정보담당인 비응당주 여득화는 무천이라는 이름을 듣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이 무천이라면… 정말 그자인가?’
일각 후.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모두 방 안으로 돌아왔다.
나갈 때와는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우득량과 교승은 표정만이 아니라 행색도 달라졌고, 안색도 창백했다.
전사문과 여득화도 행색만 멀쩡할 뿐 표정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날선 기세는 날개가 꺾여서 어깨마저 축 늘어져 있었고, 눈빛에서는 자괴감마저 느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지요. 앉으시오.”
혁무천의 말에 네 사람은 아무런 반발도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자신들에게 짙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 괴물들조차 절대복종하며 무천을 따랐다.
그 무천이 선언하듯 말했다.
“오늘 이후, 비룡장의 무사들은 비룡장 상관의 명령 외에 누구의 명령도 들을 필요가 없소.”
축 처져 있던 사당 당주들이 눈을 쳐들었다.
당연할 것 같은 말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들이 상상치 못했던 뜻이 숨어 있었다.
전사문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럼… 천룡방도 마찬가지요?”
“당연히. 그들은 비룡장 무사들의 상관이 아니지 않소?”
“하지만…….”
“따지거든 무조건 내 핑계를 대시오. 그자가 누구든. 설령 천룡방주라 해도.”
흐릿해졌던 사당 당주의 눈빛이 서서히 빛을 발했다.
그동안 속에 쌓인 것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어떤 때는 천룡방의 일개 대주가 턱을 쳐들고 비아냥거려도 듣고만 있어야 했다.
속이 부글거리고 울화가 치밀어도 참고 돌아서야만 했다.
그런데 무천이 책임져준다면 참고만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정말… 단주가 책임져주실 거요?”
“장주께서도 허락한 일이오.”
옆에서 보고만 있던 백리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비룡장과 천룡방은 구룡상단에서 같은 위치입니다. 굽힐 이유가 없지요.”
그때 미간을 좁히고 있던 여득화가 말했다.
“소장주나 단주의 말씀은 잘 알겠소. 허나 세상은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소이다. 정말 우리에게 그들과 대적할 만한 힘이 있다고 보시오?”
무천이 그에 대해 답했다.
“전에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거요. 내가 비룡장에 있으니까.”
참으로 광오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사당 당주들은 묘한 열기가 가슴에서 느껴졌다.
전사문이 그 열기를 참지 못하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난 무조건 단주를 따르겠소.”
나머지 세 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축 처졌던 어깨에도, 흐릿하던 눈에도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별채를 나서는 백리양의 가슴도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고집쟁이 같은 당주들을 그리 간단하게 휘어잡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쩌면… 내 꿈이 이루어질지도……. 가만, 혜아가 이 일을 알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
씩, 웃은 그는 방향을 바꿔서 백리혜의 거처로 향했다.
***
혁무천은 동대안을 이창으로, 목량과 강탁은 남경으로 보냈다.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정보다. 비응당의 정보망도 약하지는 않지만, 호북과 호남, 사천에 치중된 상태였다.
이창의 풍마루와 남경의 구요라면 부족한 정보망을 채워줄 수 있을 듯했다.
게다가 남경에는 금천방이 있었다. 새로 방주가 된 곽도전에게는 받을 빚도 있고.
송비도 한중에 서신을 보내 북풍표국의 표사들을 비룡장으로 불렀다.
동대안과 목량이 답을 가져올 동안 혁무천은 비룡장 무사들의 특성을 파악했다.
덕분에 몇몇 특이한 재능을 가진 무사를 골라낼 수 있었다.
유달리 경공이 빠른 자, 뛰어난 암기술을 지닌 자 등…….
그 와중에 무공에 재능이 뛰어난 기재도 둘이나 찾아냈다.
그렇게 골라낸 무사는 모두 일곱. 혁무천은 그들을 송비 아래에 두었다.
송비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질 정도로 좋아했다. 심심하지 않을까 했는데 쓸 만한 수하가 일곱이나 생긴 것이다.
혁무천은 한유림을 가르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제 열다섯 살인 한유림은 일취월장이 어떤 뜻인지 시범을 보이기라도 하듯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본인의 절실함과 뛰어난 재능에 절세의 스승이 있으니 무공이 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혁무천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게다가 천구문의 유물에 적힌 구결을 해독하는 일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혈천여록을 적을 때 암어로 적은 혁무천 아닌가.
동판의 암어가 전서체로 적혀서 해독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의 탐구욕을 막지는 못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혁무천은 백리양에게서 상인의 기본적인 사항 등을 익혔다.
천하 상인들의 분포와 특성, 특산품 등에 대한 것도 배우고, 수를 계산하는 방법 등 기본적으로 상인이 갖추어야 할 소양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혁무천이 한유림의 재능을 알고 즐거워했다면, 백리양은 혁무천의 장사에 대한 재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며칠에 불과한데도 질문을 하고 답을 듣다 보면 소름이 돋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잘한 부분이야 오랫동안 공부해온 그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승적이고 포괄적인 부분을 논할 때는 감각적으로 튀어나오는 혁무천의 대응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오죽하면 나흘째 되던 날에는 놀라움을 넘어서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을 때였다. 동대안이 돌아왔다.
혁무천은 동대안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풍마문에서는 단주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네.”
“그래요? 잘 됐군요.”
“그런데… 저기…….”
“무슨 일이오? 말해 봐요.”
“후우… 풍마문에 은설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잖아?”
혁무천은 한숨을 쉬는 동대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지요. 설아야 그들이 찾기 전에 제가 먼저 만나서 그에 대한 부탁은 잊고 있었소만.”
“그건 그쪽에서도 알고 있더군. 그런데… 아무래도 은설이 실종된 것 같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