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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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39화
139화
무언가가 그녀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느낌으로 봐서는 침과 같은 암기인 듯했다.
그때 뒤로 젖힌 그녀의 눈에 복면을 쓴 자가 언뜻 보였다.
그자가 다시 자신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은설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올라서 빙글 몸을 돌렸다.
그녀의 무공은 급격히 늘어서 이제는 일류고수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날아드는 침을 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
다리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침을 맞은 듯했다.
땅에 내려선 그녀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서너 걸음 물러서는 사이 다리가 묵직해졌다. 뿐만 아니라 침이 스치고 지나간 목 쪽도 둔중한 느낌이 들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소리쳐서 누군가를 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 안 돼…….’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여자였다. 그것도 목소리가 몹시 고운 여자.
“이봐요, 괜찮아요?”
고개를 돌린 은설의 눈에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는 아름다운 여자가 보였다.
다행히 자신을 공격했던 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목적을 달성했다 생각하고 사람이 나타나자 도망친 듯했다.
‘도와줘…….’
그녀가 바라보는 사이, 여인이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여인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마치 화려한 모란꽃이 핀 듯했는데 걱정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무슨 일인가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은설은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쓰러졌다.
여인이 재빨리 손을 뻗어서 그녀를 붙잡았다.
“안 되겠어요. 제 방으로 가요.”
은설은 그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걸 느끼며, 힘없이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정신을 잃었다.
여인, 우문소소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들고 미소를 지었다.
***
의창에 도착한 혁무천 일행은 배에서 내린 후 육로를 이용해서 항구까지 이동했다.
며칠 동안 배를 탔던 터라 모두들 육로 이동을 찬성했다.
나흘 후, 혁무천 일행이 비룡장에 도착하자, 백리양이 득달같이 뛰어나왔다.
얼굴이 벌게진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드디어 오셨군요.”
“전에 비룡장의 모든 무력을 맡기겠다고 한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 그 조건이 유효한지 모르겠군.”
“물론입니다. 이미 아버님께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조건 하나를 더하고 싶은데.”
“말씀해보십시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나에게 장사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면 좋겠어.”
백리양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눈을 홉떴다.
“예?”
“놀랄 거 없어. 난 이 바닥을 몰라. 그래서 알고 싶은 것이야. 알아야 흐름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할 수 있으니까.”
“하, 하. 그거야 원하시면 당연히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됐군. 그런데 여기에 계속 세워둘 건가?”
“아!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백리양은 혁무천 일행에게 독립된 별채를 통째 거처로 배정했다. 건물이 세 채나 되었고, 방은 넓은 회의실을 제외하고도 열 개나 되었다.
방의 크기는 다섯 명이 함께 지내도 충분할 만큼 커서 혁무천 일행만 지내기에는 과할 정도였다.
혁무천은 다른 사람들이 쉬고 있는 동안 백리양과 함께 비룡장주 백리궁을 만나러 갔다.
백리궁은 사십 대 후반의 나이에 학사처럼 순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고, 냉철한 성격에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한 걸로 잘 알려져 있었다.
또한 숫자에 대해서는 귀신같다 해서 사람들은 그를 산귀수사라고 불렀다.
“양아에게 들었네. 어찌나 자랑하던지 내 귀에 딱지가 내려앉았지 뭔가.”
“저는 상단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배워가며 일을 할 생각입니다.”
백리궁은 그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뛰어난 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른 배움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무천이란 자는 스스럼없이 모자라는 것을 배우겠다고 한다.
아들의 판단을 믿긴 했지만, 막상 대해보니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닌 듯했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그리 말씀하시니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시게.”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구룡상단의 간섭이 있을 경우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 합니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마음 같아서야 모든 간섭을 배제했으면 합니다만, 구룡상단과 비룡장의 관계가 있으니 그리 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백리궁이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네. 구룡상단은 여러 상가가 연합해서 만들어진 단체네. 천룡방이 구룡상단의 수장이긴 하나 원칙적으로는 다른 상가의 활동을 좌지우지 할 수 없네.”
그게 사실이라면 혁무천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리 순수한 연합 형태로만 이루어졌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특별한 권한과 위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물론 그렇지. 구룡상단의 단주가 내린 명령은 부정한 것이 아닌 한 따라야 하네. 만약 개인의 욕심 때문에 대의를 따르지 않으면 나머지 세력들이 힘을 합쳐 고립시키게 되네. 특히 상인의 목줄이라 할 수 있는 은자의 흐름이 차단당하지.”
상인에게 은자의 흐름은 피의 흐름과도 같았다. 벌로 따지면 사지를 속박 당하는 형벌에 가까웠다.
“그리고 심한 상황일 경우에는…… 퇴출될 수도 있네. 그때는 구룡상단의 이름으로 이룬 모든 것을 내놓아야만 하지.”
말을 맺는 백리궁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입가에는 미소 대신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묻어나 있었다.
혁무천은 그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그려낼 수 있었다.
‘아마 처음에는 순수하게 출발했겠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 되었을 거고. 권력은 또 다른 욕심을 잉태하는 법이니까.’
현재의 구룡상단은 그가 유추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태동 때부터 막강한 금력과 무력을 자랑했던 천룡방이 지금은 구룡상단의 전권을 움켜쥐다시피 한 상태였다.
특히 십 년 전 천가승이 방주가 된 후부터는 연합체가 아닌 상하관계처럼 되어 버렸다.
백리궁은 그 점이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네. 아니다 싶으면 거부해도 되네. 단, 그에 대한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겠지.”
“알겠습니다. 저 역시 이유 없는 다툼은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어차피 그들도 더 이상은 힘으로 비룡장을 어찌할 수 없게 될 것이니, 다툼도 시간이 가면 줄어들겠지요.”
혁무천의 말에 백리궁의 눈매가 경련처럼 잘게 떨렸다.
천룡방이 힘으로는 비룡장을 어찌할 수 없게 될 거라고?
천룡방의 무력을 잘 아는 백리궁은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기껏해야 십여 명이 더해졌을 뿐이다. 반면 천룡방의 무력은 비룡장에 비해서 최소한 세 배는 되었다. 마도십문 중 하나인 마룡성을 제외하고도.
그런데 참으로 묘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이상할 정도로 믿음이 갔다.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백리양이 말했다.
“무 형께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혁무천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요즘 들어서 천룡방이 과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구룡상단의 각 상가는 자신들이 관리하는 지역 특산품을 타 지역에도 팔 수 있었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타 각 지역의 특산품을 타 지역에 팔려면 구룡상단 총단의 허락을 얻고, 총단이 만들어 놓은 유통망을 이용하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리되면 천룡방이 엄청난 이익을 얻을 텐데… 도적놈이 따로 없군.”
그 말에 백리양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천룡방을 도적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정확히 봤습니다. 겉으로는 구룡상단이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구룡상단을 좌우하는 천룡방이 얻는 거지요. 그래서 몇 곳은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고요.”
백리양이 말을 멈추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혁무천이 말했다.
“천룡방이 더 강하게 요구했겠군. 말을 안 들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했을 거고.”
“솔직히, 그래서 무 형께 청을 드렸던 겁니다.”
“나도 하나 묻지.”
“말씀하십시오.”
“천룡방이 더 강하게 압박해오면 어떻게 할 건가. 그들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나?”
백리양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하지만 곧 결의에 찬 표정으로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만 한다면…… 해야지요.”
혁무천의 시선이 이번에는 백리궁에게로 향했다.
“장주께서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일반적으로 장사꾼은 줏대도 없고 자존심도 없이 돈만 좇는다고 하지. 잘못 알고 있는 거네. 장사꾼들은 자존심이 무척 세다네. 다만 승산이 있을 때까지 참고 있는 것뿐이지.”
“알겠습니다. 그런 생각이시라면 저도 마음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앞으로 천룡방과 벌어지는 일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지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책임을 다 떠넘겨도 상관없습니다.”
“저들은 무사가 일천이나 되네. 고수들도 많아서 강호의 대문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네. 거기다 마룡성까지 있지. 그에 비하면 우리의 힘은 저들의 이 할 정도에 불과하네. 그런데도 가능하겠는가?”
“강아지는 아무리 많아도 강아지일 뿐입니다. 귀찮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야 저희가 감수해야지요.”
“…….”
천룡방과 마룡성 무사들을 강아지 취급하는 혁무천의 말에 백리궁은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떨렸다.
잘못하면 망하는, 비룡장의 존폐가 걸린 일이었다.
그럼에도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천룡방과는 물러설 길도 없는 외길에서 마주친 형국이었다. 그들의 종이 되어 개같이 기는 것보다는, 목에 힘을 주고 노려보면서 죽는 게 나았다.
“알겠네. 양아도 무력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모든 걸 맡기기로 했으니, 자네 뜻대로 해보게나.”
백리궁과의 만남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백리혜가 빠르게 다가오다 말고 멈칫했다.
“오빠, 아버님을 만나셨어요?”
“그래, 무 형과 함께 만나 뵙고 나오는 중이다.”
백리혜의 눈이 무천에게로 향했다.
“난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요. 무엇을 위해 본 장에 들어오려고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다만, 당신으로 인해 우리의 행복이 깨지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어요.”
“행복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 네가 어떤 행복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만, 행복은 지키려 노력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누군가의 위협을 받고도 싸우는 게 무서워서 피하는 자는 행복도 피해가는 법이다.”
“당연히 저도 위협에 물러서는 걸 원치는 않아요. 그저 먼저 싸움을 거는 걸 원하지 않을 뿐이죠.”
“나는 싸움에 미쳐서 안달 난 싸움개가 아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는 않을 생각이니, 그것까지는 막지 마라.”
날선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며 불꽃이 튀었다.
‘뭔가 불안해.’
‘여자 상대하는 게 철혈마제나 마천문주 상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 같군. 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