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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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75화
175화
명승연은 뒤늦게서야 혁무천의 말뜻을 깨닫고 전율이 일었다.
‘이런 뜻이었던가?’
그의 말대로 황보세가에 있던 마도의 무리가 모두 물러갔다.
그러나 그들은 자진해서 물러간 게 아니라 무천 일행에 의해 쫓겨났다.
명승연은 자신이 무천이란 자를 잘못 판단했을지 모른다는 걸 알고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포원의 간부가 된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었다.
‘허허허, 내가 열망을 품게 될 날이 다시 오다니.’
황보세가 내의 시신은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모두가 마도 무사들의 시신이어서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혁무천은 포원과 다원, 금원 원주들과 함께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포원 원주인 명승연은 물론 다원의 원주인 도대풍, 금원의 원주인 담소양 모두 대리인으로서 비룡장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다만 마도무림이 복수하겠다고 다시 피를 보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었다.
그 일은 혁무천이 정리하기로 했다.
“제가 우문척을 만날 겁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할 자였다. 비룡장이 하남에 진출하려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그도 저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힘이 없는 상인은 무림세력에 고개를 숙이고 따라야 한다. 하지만 상인이 힘을 가지면 무림세력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우문척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룡장이 과거 구룡상단의 말석에 불과한 중소세력이 아니라는 것도 지금쯤은 알 것이고.
“만약 단주께서 그 일을 정리해주신다면, 우리 포원은 일 할의 권리를 더 드리겠소이다.”
명승연이 먼저 자신의 권리를 내놓자, 도대풍과 담소양도 마지못한 듯 일 할의 권리를 내놓았다.
혁무천은 담담히 미소 지으며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 생각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그때 목량이 넌지시 말했다.
“단주, 그 일 할을 우문척에게 주면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러면 우문척도 못 이긴 척 받아들일 거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혁무천이 목량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삼원 원주의 표정이 펴졌다.
그리만 된다면 마도의 복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더구나 생색은 자신들이 내고 비룡장은 일만 하는 셈이 되니 이리저리 계산해 봐도 이익이었다.
혁무천 역시 불만이 없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내놓지 않았다면 자신이 일 할을 포기할 생각이었으니까.
사실 삼원의 원주만 모를 뿐, 목량과도 이미 의논을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삼원의 권리로 대신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우문척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고, 삼원의 신뢰까지 얻은 셈이었다.
물론 우문척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럼 우리가 챙기면 되니까.’
혁무천은 이틀을 정주에 머물며 삼원의 상권에 대해서 파악했다.
짐작했던 것보다 상권이 더 방대했다.
특히 포원은 일 년 거래량이 은자 백만 냥에 육박했다. 거래처는 정주를 넘어 중원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다원과 금원을 합해도 포원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혁무천은 상권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나서야 포원이 왜 삼원 중 수장인지 이해가 되었다.
“굉장하군. 이익만 해도 일 년에 삼십만 냥 이상이겠어.”
목량이 쓴웃음을 짓는 혁무천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아마 팔대세가로 이름을 날릴 때는 규모가 훨씬 더 컸다고 봐야겠지요.”
목량은 그 방면에도 재주가 있어서 그 모든 조사를 이틀 만에 해치웠다. 오죽하면 삼원의 원주가 그를 욕심낼 정도였다.
실제로 다원 원주 도대풍은 일 년에 은자 천 냥을 주겠다는 제의를 넌지시 하기도 했다.
“황보세가가 이 정도라면 남궁세가는 더하겠군.”
남궁세가는 합비 일대에서 제왕처럼 군림했다. 그 세월이 수백 년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합비의 상계는 남궁세가의 말이 곧 법이었다.
상계는 반드시라 할 정도로 관과 연결되어 있으니, 상계를 건들면 황궁이 움직일 터. 때문에 무림의 일이라면 몰라도 상계만큼은 철혈마련도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그들이 상계마저 잃었다면 철혈마련이 진즉 쓸어버렸을 겁니다.”
“그게 바로 수백 년을 지탱해온 천하 세가의 또 다른 힘이라 할 수 있겠지.”
담담히 말하는 혁무천의 눈에서 신광이 번뜩였다.
비룡장에 들어갈 때 나름대로 뜻을 세우긴 했지만 막연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하나 일을 처리하다 보니 그 막연함이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목량.”
“예, 대형.”
“철혈마련과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의 힘이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느냐?”
목량이 자신의 생각을 신중하게 정리해서 말했다.
허용 범위 이상의 오차는 오판을 부르고, 형세를 오판하게 되면 자칫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외형만 보면 오 할 정도는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실을 따지면 삼 할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삼 할이라… 결국 내실이 문제라는 거군.”
“얻기는 얻었으나 천하에 흩어져 있는 약점이 있습니다. 또한 마룡성이나 수룡방은 진심으로 따른다고 보기 어려우니 아직은 삼 할 정도만 생각하셔야 합니다,”
“천룡방을 제외한 구룡상단의 모두를 하나로 뭉치고, 금천방까지 함께 한다면?”
그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두기라도 한 듯 목량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그럼 최소 오 할, 최대 칠 할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혁무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검마보를 얻는다면?”
담담하던 목량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검마보와 연수하는 게 아니라… 얻는 것입니까?”
혁무천은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목량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는 안다. 혁무천이 그리 말한 이상 그리 될 거라는 걸.
어떻게 검마보를 얻을 것인지, 그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혁무천이 그리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게 중요할 뿐.
“그렇게 된다면… 밀리지 않을 겁니다.”
아마 강호의 누군가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면 코웃음 치며 한마디 했을 것이다.
-미친놈들!
어쩌면 꼴값을 떤다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팔대마세가 천하를 쥐락펴락 한 지 수십 년, 정파세력이 어리석어서 지금처럼 숨죽이며 지냈겠는가.
검마보는 그런 팔대마세조차 인정하는 호남 제일의 대문파다.
하지만 혁무천은 너무도 쉽게 말해서 목량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돌아가면 검마보부터 낚아봐야겠군.”
“……!”
“아, 그리고… 대세력에 속해있지 않으면서 실력이 괜찮은 자들을 정리해 봐라. 마도든 정파든 상관없다. 단, 배신을 밥 먹듯 한 놈, 흉악한 놈들은 빼고.”
목량은 혁무천의 말뜻을 이해하고 다시 한 번 전율을 느껴야만 했다.
“예… 대형.”
***
“훗! 우문 형이 애가 닳았군.”
천화광은 소림사와 황보세가에 이어 화산파마저 무너졌다는 보고를 받고 냉소를 지었다.
마천문과 혈왕동에서 보낸 정예 고수들이 사흘 전 도착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철혈마련과 사도맹, 귀천교가 정파의 대표적인 문파 세 곳을 정리해버렸다.
그 사실만 놓고 보면 짜증이 나야 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혁무천 때문이었다.
“무천은 아직도 정주에 있나?”
“어제까지는 정주에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소성주.”
“흠, 진짜 상인으로 나설 생각인가?”
유궁이 천화광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가 장사를 알기나 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놈’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천화광이 좋아하는 자이니 입을 조심해야만 했다.
“네가 모르는군. 무 형은 타고난 장사꾼이야.”
“예?”
“세세한 것은 어차피 아랫사람이 정리해주면 된다. 진짜 뛰어난 상인은 중요한 결정을 올바르고 빠르게 내리기만 되지. 그리고 추진하는 힘도 있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무 형은 진짜 대단해.”
유궁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천이 그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은 듯했다.
무공은 뛰어날지 몰라도.
천화광은 유궁의 마음을 눈치 채고 피식 웃었다.
“나중에 두고 보면 알아.”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말해도 유궁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게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천재와 일반 기재의 차이였다.
“어쨌든 호랑이는 우문척이 잡았는데 가죽은 무천이 챙겼어. 우문척이 그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군. 하하하하.”
“무천이 제 무덤을 판 것 아니겠습니까?”
유궁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천화광이 그런 유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유궁,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우리 내기할까? 우문척이 어떻게 나오는지.”
유궁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무릎을 꿇었다,
판단은 주인이 하는 것이다. 자신 같은 그림자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
평소 그 점을 철저히 이행하던 그였건만 이상하게 무천 이야기만 나오면 입이 제멋대로 굴었다.
“속하가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를…….”
“아아, 괜찮아. 오늘만큼은 용서하지.”
“감사합니다, 소성주!”
“너를 죽이면 내기할 상대가 없잖아?”
“…….”
“대신 내기에 네 모든 걸 걸어라. 네가 가진 두 번째 신분까지.”
“……소성주.”
“어때? 하겠느냐?”
천화광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유궁을 보며 말했다. 그의 눈 깊은 곳에서 무채색의 회오리가 이는 듯했다.
유궁은 그 눈을 보고 등에 식은땀이 났다.
“소성주…….”
“설마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럼 너무 슬픈데? 네가 나를 너무 띄엄띄엄 봤다는 거잖아?”
농담 섞인 천화광의 말에도 유궁은 온몸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할 거야, 말 거야?”
“하겠……습니다.”
유궁은 입술을 깨물고 겨우 대답했다.
그제야 천화광의 눈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좋아, 대신 네가 이기면 만궁도와 자유 중 네가 원하는 것을 주마.”
유궁의 눈이 커졌다.
만궁도는 만마성의 오대 무공 중 하나로 성주의 직계만이 익힐 수 있는 상승의 무공이었다.
반면 자유는 선대 때부터의 열망이었다.
만마의 주인을 지켜야만 하는 운명은 지난 백 년 간 산서 유가에 족쇄와도 같았다.
문득 유궁은 자신이 이겼을 경우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인지 갈등이 일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 챈 천화광이 하얗게 웃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네가 이길 일은 없을 거야.”
‘끄응.’
유궁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내기에서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패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천화광과 내기를 백 번도 넘게 했는데,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것이다.
꼭 이길 것 같은 내기만 했는데도.
“어쨌든 무천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마라. 내기의 결과는 확실하게 알아야지.”
“예, 소성주.”
그때 밖에서 호위무사가 방 안에 대고 말했다.
“소성주, 공손 공자와 능 공자께서 오셨습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천화광이 방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으로 모셔라.”
무천은 무천이고, 야망은 야망이었다.
이제 그 야망의 첫걸음을 뗄 시간이었다.
‘어디 한번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 우문척.’
***
우문척 등 마도연합 무사들은 화산을 출발한 지 이틀 후, 석양이 지기 전 낙양에 도착했다.
사도맹 무사 이백이 산서로 돌아갔는데도 인원이 오백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낙양 최대의 객잔인 낙원객잔을 통째로 얻고 여장을 풀었다.
기존의 손님들은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에 겁을 먹고는 알아서 방을 비웠다.
그런데 여장을 풀자마자 철혈마련 무사가 우문척을 찾아와서 놀라운 보고를 올렸다.
우문척은 보고를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무천이 황보가에 있던 무사들을 공격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