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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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따다다당!
무지막지한 장봉의 위력에 도검이 허공으로 튀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장대산이 장봉을 한 손으로 휘둘렀다는 것이다.
마치 막대기를 휘두르듯이.
그럼에도 엉겁결에 무기를 들어서 맞받아친 자들은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개중 한두 사람은 손뼈에 이상이 생긴 듯 비명을 지르며 팔을 늘어뜨렸다.
“으으으, 이 괴물 같은 놈…….”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나았다.
땅딸막한 철호가 쌍도끼를 벼락처럼 휘두르며 좌충우돌할 때마다 상대의 이마가 쪼개지고, 어깨가 가슴까지 갈라졌다.
추호도 망설이지 않는 도끼질은 맞선 자들을 공포의 바다로 떠밀었다.
혁무천은 그런 철호를 볼 때마다 과거의 동천마종 응철기를 보는 듯했다.
‘훗, 정말 영락없어.’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 못지않게 상대를 유린했다.
동대안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섬혼으로 목을 따고, 눈을 가늘게 뜬 장평은 이를 악다문 채 사즉생의 결연한 표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잠깐 사이, 삼십여 명이 쓰러져서 넓은 마당을 피로 물들였다.
혁무천은 그들 사이를 일직선으로 통과해서 안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멈춰라!”
장원 안쪽에서 노성이 들리더니 몇 사람이 날아왔다.
모두 넷, 사오십 대의 중년인과 중노인이었다.
혁무천을 그들을 보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날아들던 자들이 혁무천의 삼 장 앞에 내려섰다.
“웬 놈들이냐!”
“우리가 감히 누군 줄 알고!”
중앙의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코 옆에 커다란 점이 박힌 그는 귀천교 장로인 혈사마혼(血邪魔魂) 왕두팽으로, 황보세가에 남은 자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었다.
“남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도둑놈들로 알고 있지.”
혁무천의 무심한 어조에 왕두팽이 눈을 치켜떴다.
“뭬야? 네놈이 감히……!”
혁무천은 딛고 있던 왼발을 밀며 앞으로 죽 미끄러져 갔다.
동시에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 천망검에서 시퍼런 검기가 휘돌았다.
왕두팽은 천망검에 서린 검기의 위력을 직감하고 눈을 부릅떴다.
보고 있으면 검기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아직 거리가 있는 데도 살갗이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저놈이 절대경지의 고수라도 된단 말인가?’
왕두팽은 십여 년 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무공을 펼친 자는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함께 했던 절정고수 둘이 겁도 없이 그 고수를 공격했다가 삼 초식 만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고 회의감이 든 그는 한동안 귀천교에 처박혀서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의 느낌이 또 다시 살아났다.
“조심해라!”
왕두팽이 악을 쓴 순간, 천망검에서 휘돌던 검기가 살아 있는 용처럼 튀어나갔다.
콰아아아아!
창천비룡세.
허공을 찢어발기며 날아간 청룡이 왕두팽을 덮쳤다.
‘헛!’
기겁한 왕두팽은 혼신을 다해서 혈혼마장으로 장막을 펼치며 혁무천의 공세에 맞섰다.
창천을 가르고 날아간 비룡은 붉은 장막을 갈가리 찢으며 밀려갔다.
더 버티지 못한 왕두팽은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섰다.
해쓱하게 질린 얼굴.
불신이 가득한 표정.
그때 왕두팽과 함께 나온 자들 중 하나가 칼을 휘두르며 혁무천의 좌측을 공격했다.
“무천! 네가 바로 무천이구나!”
외침과 함께 살을 에는 도기가 허공을 갈랐다.
혁무천은 빙글 몸을 돌리며 천망검으로 상대의 칼을 쳐내고, 좌수를 뿌리듯이 뻗었다.
장심에서 벼락처럼 뻗어나간 장력이 달려들던 자의 가슴을 두들겼다.
떠덩!
“크억!”
일장으로 절정고수 하나를 날려버린 혁무천의 신형이 죽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찰나의 순간에 이 장의 거리를 이동한 혁무천의 검에서 재차 청룡이 솟구치더니, 곧장 이를 드러내며 왕두팽을 향해 쇄도했다.
대경한 왕두팽은 다급히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혁무천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붙으며 대천룡구검세 중 뇌룡섬전세를 펼쳤다.
후아아앙!
천망검의 검첨에서 솟구친 청룡이 섬전처럼 뻗어나갔다.
그야말로 벼락이 따로 없었다.
왕두팽이 몸을 틀며 장력을 펼치려 한 순간 시퍼런 검강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뒤이어 내친 혁무천의 좌수 장력이 왕두팽의 가슴에 꽂혔다.
쾅!
“크억!”
왕두팽이 피를 뿌리며 훌훌 날아가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혁무천은 왕두팽을 쓰러뜨리고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왕두팽을 구하기 위해서 마도의 고수 셋이 그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는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천망검을 갈지자로 그어댔다.
츠츠츠츠츠츠.
쏴아아아아!
검첨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그를 중심으로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반경 이 장 안을 휩쓸었다.
철혈마련과 사도맹의 무사 셋이 사력을 다했음에도 그의 공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빠져나가라!”
누군가가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장원의 드넓은 마당이 널브러진 시신으로 가득했다.
이미 쓰러진 자만 육십여 명. 그럼에도 혁무천 일행은 남은 자들을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혁무천 일행도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장평과 강탁은 자잘한 상처를 입은 듯 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이 늘었다 하나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더구나 팔대마세의 정예무사들 아닌가 말이다.
“무리하지 마.”
혁무천이 강탁을 공격하던 자들 중 하나를 한쪽으로 날려버리고 말했다.
“예, 대형.”
강탁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적의 수장이 대형에게 쓰러진 이상 싸움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혁무천 일행이 장원에 들어간 지 반각.
결국 마도연합의 무사들이 더 버티지 못하고 황보세가를 빠져나갔다.
세가의 마당에 남은 시신만 해도 오십여 구, 부상자도 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혁무천 일행은 황보세가의 주 전각인 대원전에 들어가서 상처를 치료했다.
장평과 강탁은 피가 제법 많이 묻어서 부상을 염려했는데 다행히 깊은 상처는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신과 부상자로 가득한 황보세가 안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다.
호원상단의 사람들. 명승연의 포원 뿐만 아니라 다원과 금원에서도 사람을 보낸 것이다.
혁무천 일행이 마도연합을 물리쳤다는 걸 안 그들은 경악과 흥분이 공존된 마음으로 사상자들을 정리했다.
바로 그 시각, 오악(五岳) 중 서악인 화산의 하얀 암봉들이 혈화로 물들었다.
***
한여름의 화산은 거대한 암반과 진녹색의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었다.
곳곳에서 지저귀는 청아한 새소리, 졸졸 흐르는 물소리, 나무를 어루만지고 스쳐가는 바람소리…….
자연의 노랫소리에 산을 오르는 자들의 입에서는 흥얼거림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늘에 있어도 땀이 절로 흐르는 여름 날.
그토록 아름답고 평화롭던 화산에 자연의 노래 대신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메아리쳤다.
곳곳에 널려 있는 시신, 그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에 바위와 계곡물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마도연합의 공격은 오시 말부터 시작되었다.
화산파 제자와 화산파를 지원하기 위해 와있던 정파무인 칠백여 명이 목숨을 걸고 운대봉 아래에서 마도연합에 맞섰다.
저항이 워낙 강하다 보니 마도의 무리도 전진이 쉽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화산파는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반전은 단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났다.
철혈마련의 대공자 우문척.
무림 강호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자.
우문양에 밀려 련주의 후계자 지위마저 위태로워 보였던 자.
그가 마침내 자신의 힘을 드러냈다.
정파의 절정고수 다섯이 그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노성을 내지르며 막아섰던 화산파 장로 셋이 그에 의해서 심장이 뚫리고 목이 잘렸다.
그리고 결국 화산파의 장문인마저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잘린 채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문척의 가공할 마공은 공포였다.
그날의 그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광폭하게 날뛰는 마룡과도 같았다.
철혈마련의 련주, 철혈마제 우문강천이라 한들 그 정도로 강할까.
그가 힘을 드러내면서 화산파와 정파무사들을 이끌던 고수 중 절반이 죽자 전황이 급변했다.
패배를 직감한 화산파와 정파무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협곡 안으로 도주했다.
신시 말.
마도 삼파가 공격을 시작한 지 두 시진 후.
오백 년 화산을 지킨 화산파가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우문척은 시신과 피로 뒤덮인 도관을 둘러보았다.
‘빌어먹을. 이기긴 했지만 피해가 너무 크군.’
화산파와 정파 무사들은 자신들이 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림사와 황보세가가 피로 물들었으니 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저항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살심이 솟구쳤다.
‘다른 정파 놈들도 그동안 키운 힘이 상당할 것 같아. 너무 오랫동안 놓아줬어.’
마도가 득세한 이후 정파를 얕보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반항다운 반항을 하지 않았으니 방심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정파가 기지개를 켜면 강호가 혼돈에 빠질 터.
혼돈의 세상이 오면 자신의 꿈이 더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우문 형.”
뒤에서 사공곽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문척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온몸이 붉은 피로 범벅된 사공곽이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화산은 산세가 워낙 험하고 깊어서 추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화산의 협곡을 한번 쳐다본 우문척이 차디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놔두게. 쥐 떼처럼 쥐구멍으로 숨어들어간 자들이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던가.”
“알겠습니다.”
사공곽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난 며칠 동안 일천오백 명 이상이 죽었다. 자신이 데려온 사도맹 무사도 반이나 희생되었고.
더 이상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다른 계획이 없다면 일단 맹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돌아간다고?”
“세 차례 싸움을 겪으며 너무 큰 피해를 봤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이곳에 있는 것도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문척은 나약한 사공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 피를 봤다고 벌써부터 질린 표정이라니.
이제 시작이거늘.
“그리 하고 싶다면 알아서 하게.”
“이해해줘서 고맙습니다.”
“내가 얻은 정파 무공을 준다는 약속은 지켜야겠지.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일단 련으로 함께 가세.”
사공곽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철혈마련까지 갔다가 맹으로 돌아가려면 최소한 열흘은 더 걸린다.
하지만 정파의 상승무공을 준다는데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그는 우문척이 던진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예, 그렇게 하지요.”
“하하하, 잘 생각했네. 악 소제도 함께 가세.”
악사등은 우문척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아직도 조금 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우문척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강하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소림사를 치면서 이미 증명이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 모습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정녕 속을 알 수 없는 자다. 형님도 우문척을 상대하려면 고생 좀 하겠군.’
어쨌든 자신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