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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7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72화

172화

 

 

“빚?”

젊은 거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사십 대쯤으로 보이는 거지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거지에게 빚 받겠다고 찾아온 인간은 처음 보는군.”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로 바닥을 쿡쿡 찍을 때마다 거지들이 하나둘 주위로 다가왔다.

아무렇게나 다가오는 게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원을 그리며 진세를 형성했다.

“받아야 할 빚은 말 몇 마디인데, 내가 내줄 것은 한 손으로 들기 힘들 만큼 무거운 은자지. 싫으면 그냥 가고.”

중년거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이쿠! 그럼 얼마든지 찾아와도 되지요. 조금만 기다리시구려.”

곧바로 말투까지 달라진 중년거지가 고개를 돌려서 젊은 거지를 닦달했다.

“뭘 그렇게 멀뚱히 보고 있어? 빨리 가서 알리지 않고!”

 

잠시 후, 혁무천은 목량을 대동하고 소궁단과 마주 앉았다.

소궁단 옆에는 한 거지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앉아 있었는데, 왠지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사부님이시네.”

“비룡장의 무천이라 합니다.”

사십 대? 아니, 육십 대? 자세히 보면 오십 대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카락과 땟물이 흐르는 얼굴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 거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혁무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거지는 남들이 악삼개(齷三丐)라고 부른다네.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이 멍청한 제자 놈에게 들었네.”

“사부님…….”

소궁단이 눈짓을 보냈다.

이런 자리에서 제자의 기를 살려주지는 못할망정 멍청하다고 하다니.

하지만 악삼개는 여전히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네놈이 똑똑했으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냐? 삶아 놓은 고기를 먹지도 못하고.”

“그건 다시 데워 드시면 되잖아요.”

“이놈아! 고기는 삶았을 때 바로 먹어야 제 맛인 법이여! 에잉…….”

그는 세 가지 사안에 대해서만큼 거머리가 고개를 저을 정도로 악착같았다. 그래서 악삼개라고 불리는 것이지만.

첫째는 개방을 지키는 것.

둘째는 술을 놓고 벌어지는 내기.

셋째는 X고기를 먹을 때.

그런데 다 삶은 X고기를 막 뜯으려고 할 때 혁무천이 왔다며 어찌나 졸라대는지 한 입 겨우 뜯고 끌려 나온 것이다.

소궁단은 멋쩍은 표정으로 지으며 다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이해해주게. 아무래도 자네와의 일은 나 혼자 처리할 사안이 아닌 것 같아서 사부님을 모셨네. 뭐, 괜히 모신 것 같긴 하지만.”

혁무천은 개방방주 사제간의 소탈한 대화에 실소를 지었다.

“걱정 마. 충분히 이해하니까. 그보다 전에 부탁한 건 어찌 되었나?”

“그야 물론 알아봤지.”

소궁단은 그제야 표정을 정리하고 정주의 상황을 이야기 했다.

소궁단의 이야기는 이각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그 바람에 정주의 상계가 뒤숭숭하네.”

그렇게 끝을 맺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압축하면 몇 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었다.

 

-마도연합이 황보세가의 상권을 강제로 장악하려 하자 상인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문을 걸어 잠갔다는 것.

-안 그래도 황보세가의 혈겁으로 황군이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황. 양민들마저 죽이면 황군의 분노가 폭발할 것 같아서 마도연합도 정주 성 안에서는 기분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혁무천은 그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낫군. 우문척이 우두머리 몇은 죽일 줄 알았는데.”

“아! 원래는 그러려고 한 것 같아. 그런데 사공곽이 말렸다고 하더군.”

“다행이군.”

“근데 정주의 상계는 왜 살펴보라고 한 건가?”

“우리 비룡장이 정주의 상계에 진출해 보려고.”

소궁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하필이면 지금처럼 난리법석일 때……?”

“기회는 위기 상황에서 오는 법이거든.”

“젠장, 뭔가 그럴 듯한 말 같긴 한데… 나 같은 돌머리는 이해할 수 없군.”

“이해하려고 머리 굴릴 것 없어. 개방은 우리가 맡긴 일만 처리해주면 돼.”

“대가는?”

투덜거리던 소궁단의 눈빛이 땟물로 시커먼 눈꺼풀 사이에서 반짝였다.

“혼자 바위를 들면 몇 관(1관:3.75kg)이나 들 수 있지?”

“글쎄? 아마 백 관 정도 드는 건 어렵지 않을 걸?”

“일 년에 은자를 그만큼 주지.”

“…….”

소궁단은 입을 일자로 딱 붙이고 혁무천을 쳐다보았다.

“싫음 말고.”

퍽.

소궁단 옆에 앉아 있던 중년 거지가 소궁단의 옆구리를 세게 쳤다.

“윽! 사부님!”

“빨리 대답해, 이놈아.”

“하면 되잖아요!”

“이 자식이……!”

 

결국 개방은 혁무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은자 백 관.

은자 만 냥.

개방에게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거금이었다.

하지만 소궁단은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다른 임무에 대해서는 따로 계산해야 하네.”

“물론이지. 그리고 이천 냥을 선불로 주지.”

그제야 소궁단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해보세.”

무천은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무스름한 땟물에 기름기까지 묻어서 반질거렸다.

자신이 아무리 사람을 안 가린다 해도, 솔직히 소궁단의 손을 맞잡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 씻었지?”

“손? 봄에.”

“…….”

혁무천은 차마 손을 잡지 못하고 대신 화제를 돌렸다.

“화산파에는 연락했나?”

“사람을 보냈지.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거네.”

아무리 쪼그라들었어도 화산파 아닌가. 미리 연락을 받고 대처한다면 마도 연합도 그들을 무너뜨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주에 있는 자들은? 아직도 황보세가에 있나?”

“오늘 아침 도착한 전서에 의하면, 관에서 워낙 눈치를 주니까 일부 무사만 남겨 놓고 정주를 나선 것 같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이었다.

상권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건가? 아니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마도 세력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정파의 궤멸이다. 상권에 대한 것은 후순위일 뿐.

더구나 정주의 황군과 충돌하는 건 그들도 원하지 않을 터, 일단 다음 일부터 처리할 생각인 듯했다.

혁무천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이었다.

 

***

 

황보세가가 정주에서 운영하는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었다.

포목, 차, 객잔.

그중 포목과 차는 일 년에 수십만 냥을 거래하는 알짜 사업이었다. 정주 최대의 포목점인 명화점도 황보세가가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명화점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도연합의 무사들이 매일 찾아와서 칼을 휘두르거나 천을 찢는데 손님이 어찌 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 그들도 이유 없이 행패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은자 일만 냥을 줄 테니 명화점의 모든 권리를 내놓아라.”

 

그게 그들의 요구였다.

은자 이십만 냥의 가치가 있는 명화점을 일만 냥에 먹겠다는 것이다.

명승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목이 잘리더라도 도둑놈들 입에 자신이 평생 바친 사업을 넘겨줄 수 없었다.

아마 명승연이 고위관리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이미 목이 달아났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만 놔둘 마도연합이 아니었다.

그들은 치사한 방법으로 명승연을 괴롭혔다. 무사들을 매일 명화점으로 보내서 장사를 하지 못하게 훼방을 놓은 것이다.

나흘 째 되던 날도 무사 셋이 들어와서 이 천, 저 천 살펴보며 명화점 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들어오려던 손님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무슨 천이 이렇게 약해? 잡아당기니까 힘없이 쭉 찢어지네.”

“칼을 좀 갈아야 되나? 왜 이건 안 찢어지지?”

화병이 난 명승연은 안으로 들어가고 점원들만 그 모습을 보며 분노를 삼켰다.

한 시진쯤 점포를 난장판으로 만든 자들이 가자, 곧 다른 자들이 왔다. 이번에는 네 명이었다.

그들 역시 점포 안을 휘휘 둘러보고 멀쩡한 천만 골라서 못 쓰게 만들었다.

“돈이 많은가 보군.”

무사들이 한참 천을 찢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파란 천을 양손으로 잡고 찢던 자가 고개를 돌렸다.

한 사람이 뒷짐을 진 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새파란 애송이였다. 잘 봐줘야 스물대여섯 살 정도?

얼굴은 기가 막히게 잘 생긴 놈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넌 뭐하는 새낀데 여길 들어와?”

“나? 네가 찢은 물건의 주인.”

“뭐? 그럼 이게 네 물건이란 말이냐?”

“맞아.”

“크크크, 별 미친 새끼가…….”

혁무천은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우수를 들어서 허공에 털었다.

퍽!

큭큭대며 웃던 자가 양손에 파란 천을 들고 날아가서 한쪽에 처박혔다.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실실거리며 쳐다보고 있던 무사들이 눈을 치켜떴다.

“저놈이……!”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구나!”

챙!

무사 하나는 말보다 칼을 먼저 뽑고 혁무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명령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다.

귀천교의 정예무사가 흑도 무리나 하는 행동을 해야 하다니.

자존심이 상해 있던 그는 혁무천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팔다리 두어 개 잘라내면 기분이 조금 풀리지 않을까?

하지만 곧 그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혁무천이 날아드는 칼을 맨손으로 잡아서 한쪽으로 젖히고는 그의 가슴에 일수를 내지른 것이다.

거리가 두 자나 떨어져 있는데도 북치는 소리가 났다.

펑!

동시에 땅!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칼이 부러졌다.

“크억!”

혁무천은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간 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좌수를 가볍게 털자, 손가락 사이에 끼어져 있던 도의 파편이 허공을 갈랐다.

슉!

“컥!”

멍하니 서 있던 흑의무사 하나가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혁무천은 마지막 남은 무사를 바라보았다.

“너는 가서 내 말을 전해라.”

“…….”

귀천교 무사는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단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숨이 막히고 몸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이곳 일을 보고 나서 명화점에 대한 피해보상을 받으러 갈 테니 은자 만 냥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라고 해. 물건을 못 쓰게 만들었으면 배상을 해야지.”

귀천교 무사는 혁무천이 눈에서 힘을 푼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너는…… 누구……?”

“가서 알려주지. 그만 꺼져.”

귀천교 무사는 동료의 시신을 챙길 정신도 없었다.

그는 염왕의 손에서 벗어난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하며 명화점 밖을 향해 달려갔다.

“그냥 보내줘.”

혁무천이 밖을 향해 말했다.

막 봉을 휘둘러서 귀천교 무사를 후려치려던 장대산이 움직임을 멈췄다.

“대산, 철호. 이자들을 치워라.”

곧 장대산과 철호가 들어와서 시체가 되다시피 한 세 사람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 사이 혁무천은 안쪽에서 입을 반쯤 벌린 채 쳐다보고 있는 점원에게 다가갔다.

“명 대인을 만났으면 하는데.”

“누, 누구시라고…….”

“민가장에서 왔다고 전해주시오. 아마 명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실 거요.”

오상이 망설이고 있는데, 점포 안쪽의 내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상아, 그분을 안으로 모셔라.”

“예? 예…….”

오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하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내실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다. 그런데 밖에서 하는 말을 어떻게 들은 걸까?

그는 혁무천이 내공을 실어서 안에까지 들리게 했다는 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명승연은 자신의 방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혁무천은 동대안과 목량만 대동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구려. 명승연이라 하오.”

나이는 오십 대 중반쯤.

동그란 얼굴에 순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겉모습으로 그를 평가하지 않았다.

순한 자라면 치열한 상계에서 이만한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독한 자들에게 짓밟혔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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