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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6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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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귀환천화 169화

169화

 

 

악을 쓰던 노극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혁무천을 보고 다급히 칼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도 차디찬 혁무천의 눈을 마주하고는 이를 악다물었다.

순간적으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 그는 공력을 최대한 끌어냈다.

땅!

귀청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칼날이 허공으로 튀는 게 보였다.

손을 타고 올라온 충격이 찰나 간에 팔 전체로 퍼졌다.

뒤이어 극렬한 고통이 뇌리를 휘저었다.

‘크억!’

팔의 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손아귀는 이미 찢어져서 칼을 쥐고 있기도 힘들었다.

숱하게 생사결을 경험한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렸다.

혼신의 힘을 다해 물러섰음에도 상대의 검이 다가오는 게 빤히 보였다.

점점 확대되는 검첨이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진 그의 눈을 가득 메웠다.

검첨이 어찌나 큰지 상대의 몸조차 가려졌다. 어디로 피하든 그 검에 짓이겨질 것만 같았다.

‘맙소사……!’

말로만 들었던 극상승의 검공을 처음으로 접한 그는 허탈감마저 느껴졌다.

칼은 든 우수는 정말 부서지기라도 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좌수를 들어서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쉬악!

시큰한 느낌.

좌수가 팔목에서부터 떨어져나가는 게 보였다. 팔목에서 시뻘건 선혈이 폭발하듯 뿜어졌다.

‘빌어먹을…….’

무력감에 이어 불쏘시개가 심장을 후벼 파는 고통이 느껴졌다.

구멍이 뚫린 가슴에서도 피분수가 솟구쳤다.

비틀비틀 물러서는 그의 눈에 오연히 서 있는 혁무천이 들어왔다.

거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심한 표정,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

천하에 이런 자가 있었던가?

“너는…… 누구……?”

혁무천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한번 보고는 몸을 돌렸다.

아직 제거해야 할 자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돌아선 그의 뒤에서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노극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한편, 장평은 귀천교의 정예인 귀살단원 셋을 상대했다.

그의 도법은 두어 달 전과 확연히 달랐다.

도식은 단순해졌고, 위력은 배 이상 강해졌다.

공력이 주입된 그의 도가 대기를 가를 때마다 빗살처럼 뻗어나간 도기가 석 자 이내를 종잇장처럼 갈랐다.

귀천교의 무리 중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조차 그의 도를 힘겹게 막아냈다.

떠더더덩!

폭풍처럼 몰아친 장평의 도세가 끝내 귀천교 귀살단 삼조장을 어깨에서 옆구리까지 길게 갈랐다.

추적대 열네 명 중 남은 자는 넷뿐. 단 몇 수 공방 만에 열한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상황이다.

“여기서 벗어나라!”

귀천교 무리 중 누군가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혁무천에게 시달리고 싶지 않은 동대안이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경공이라면 혁무천 외에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그였다.

바람이 갈대를 타고 흐르듯, 흔들리는 갈대를 밟으며 유령처럼 공간을 유영한 그가 섬혼을 뻗었다.

섬혼의 검첨에서 검화가 피어나며 허공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혁무천이 광혼검 이십팔식을 정리해서 만든 네 가지 초식 중 하나, 광혼팔화였다.

다급히 도주하려던 귀살단 무사 둘이 살 맞은 까마귀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은 둘은 거리가 멀어서 동대안조차 바로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슉! 하는 소리와 함께 갈대 줄기가 빛살처럼 허공을 일직선으로 가로질렀다. 혁무천이 갈대를 꺾어서 암기처럼 내던진 것이다.

갈대는 진짜 활로 쏜 화살만큼이나 빠르게 날아가서 두 사람의 등을 꿰뚫었다.

막 그들을 향해 몸을 날리려던 동대안이 “이크!”하며 재빨리 한쪽으로 피했다.

경공을 펼쳐서 날아가던 귀살단 무사 둘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허공에서 움찔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본 동대안이 혁무천을 째려봤다.

‘지미, 나 맞으면 어떡하려고…….’

하지만 혁무천은 그가 째려보는 걸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때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 귀살단 무사에게 다가갔다.

“몇 가지 물을 것이다. 제대로 대답하면 살려주지.”

귀살단 무사는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대답하면 살려준다고 하지 않는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는 그에게는 충성보다 목숨이 우선이었다.

신의?

마도인에게 신의를 찾는 놈이 이상하지.

하지만 살려준다 해놓고 죽일지 몰라서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살려준다 해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 비밀을 털어놓은 걸 알면 살아남지 못할 거다. 그러니 멀리 도망가라.”

혁무천의 그 말이 귀살단 무사에게는 ‘절대 죽이지 않겠다.’는 말보다 더 믿음직하게 들렸다.

“뭘…… 알고 싶은 거요?”

“추적대는 몇 명이나 되지?”

“백 명 정도 나섰소. 그 중 절반은 정주를 뒤지는 중이고, 절반은 정주에서 개봉으로 향하는 관도를 샅샅이 뒤지고 있소.”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그 외에 알고 있는 것은 뭐든 말해봐라. 대답이 마음에 들면 약속대로 살려주지.”

귀살단 무사는 돌처럼 굳은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철혈마련 대공자 우문척이 강호에 알려진 것과는 조금 달랐소.”

“우문척이 알려진 것과 다르다?”

“그렇소. 그는 온화한 성품이라는 평가와 달리 살인하는 걸 즐기고 있소. 표정만 봐도 표가 날 정도요.”

“흐으음…….”

새로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문척이라면 그 어떤 행동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무공은 이번 정파 공격에 나선 사람들 누구보다도 강했소. 철혈마련의 장로들보다도 더.”

혁무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우문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이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림사와 황보세가 다음에 어디를 칠 생각이지?”

혁무천이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귀살단 무사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렸지만, 곧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순순히 대답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화산파일 가능성이 크오.”

 

혁무천은 약속대로 귀살단 무사를 그냥 보내주었다.

“괜찮겠소?”

황보중이 혁무천을 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혁무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소?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가 만약 우리에 대해 알리면…….”

황보중의 우려에 대해서 목량이 대신 설명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는 자신이 비밀을 털어놓은 게 알려질까 두려워서라도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혁무천이 한마디 덧붙였다.

“설령 그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저들에게 간다 해도 나는 살려 보냈을 거요.”

 

***

 

황보정은 자신들을 개봉의 민가장으로 데려다주기를 원했다.

개봉 사람들은 민가장을 낙향한 문사의 장원 정도로만 알 뿐이었다.

하지만 민가장은 황보세가가 마련해 놓은 안가 중 하나였다.

혁무천은 관도를 이용하지 않고 샛길을 통해 개봉으로 향했다.

시간이 반나절이나 더 걸렸지만, 그래도 마도연합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민가장은 개봉성 동문에서 멀지 않았다.

평범해 보이는 장원의 문을 목량이 나서서 두드리자, 잠시 후 하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수?”

“장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목량은 말을 하면서 손바닥에 ‘황보(皇甫) 래(來)’라는 글자를 적었다.

노인은 그 글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마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다급히 정문을 활짝 열었다.

 

민가장 장주 민천기는 황보경이 왔다는 말을 듣고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도 황보세가가 혈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정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런데 황보경과 황보정이 적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일각이 여삼추 같은 마음으로 장원에서 기다렸다.

그러던 차에 황보경 부자가 도착했으니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황보경은 장대산이 안고서 안으로 옮겼다.

민가장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혁무천은 민가장이 평범한 장원이 아니라는 걸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아마도 황보세가에서 비밀리에 키운 자들 중 상당수가 이곳 민가장에 있는 듯했다.

황보경을 방의 침상에 눕혀 놓은 후 혁무천 일행은 객방으로 안내되었다.

 

“예?”

민천기는 황보정에게 혁무천과의 거래 내용을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약속을 했네.”

“하지만…….”

“그가 그러더군. 약속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민천기는 약속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다.

더구나 구룡상단의 하나인 비룡장의 무사들이 팔대마세 세 곳의 연합을 상대해서 황보세가의 상권을 되찾겠다니.

가소롭기만 했다.

“저자들이 정말 정주의 상권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되찾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황보경이 말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던 민천기가 멈칫하더니 입을 살짝 벌렸다.

“아, 그렇군요.”

비룡장의 힘으로는 마도연합을 밀어낼 확률이 매우 낮다.

결국 상권을 지키지 못하면 저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래도 마도 쪽의 힘을 약화시킬 수는 있지 않겠는가.

상권을 지키면 그것대로 좋고, 지키지 못한다 해도 황보세가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저들에게 정말 마도 연합에 대항할 능력이 있는지 제가 시험해볼까요?”

“하지 말게.”

“그래도…….”

“세가를 다시 일으키려면 자네가 필요하네. 엉뚱한 일 때문에 자네를 잃는 건 원치 않아.”

“…….”

“태산 쪽에 연락을 취하게.”

곤혹한 표정이던 민천기는 황보경의 말에 흠칫했다.

“그들을 불러들일 생각이십니까?”

“아직 모자란 면이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저들이 언제 우리를 찾아낼지 모르는데. 나야 살 만큼 살았네만, 아들과 손자만큼은 지켜야 하네.”

“알겠습니다. 즉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들을 시험할 생각은 하지 말게.”

속이 뜨끔한 민천기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가주.”

솔직히 그는 황보경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혁무천 일행을 건드려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황보경이 재차 제지하자 일단 뒤로 물러섰다.

 

혁무천은 황보중이 가져온 증서를 읽어보았다.

모두 두 장이었다. 한 장은 사업운영권에 대한 대리 위임증서, 한 장은 사업을 정상으로 되돌렸을 때의 보상에 대한 증서였다.

증서에는 약속한 내용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름 옆에 황보세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부탁하겠소.”

“최대한 노력할 거요. 헛일을 하기는 우리도 싫으니까.”

혁무천은 증서를 접어서 품속에 넣고 일어났다.

“지금 가실 거요?”

“이번 일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소.”

“저기… 충아가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소.”

충아는 황보중의 아들을 말했다.

이제 여섯 살인 아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소리를 듣고 혁무천은 빙그레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미소였다.

“언젠가는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을 거요.”

 

***

 

민가장을 나선 혁무천 일행은 곧장 개봉성을 벗어났다.

다른 큰 성들처럼 개봉성 역시 성문 밖에 양민들이 사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혁무천은 관도를 따라서 걸으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누군가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개봉성 안에서부터 느껴지던 기척이었다.

혁무천은 그들의 정체를 눈치 채고 눈빛을 빛냈다.

거지.

그들은 개봉성의 거지였다.

단순한 거지가 아니었다. 오래 전에 망한 것으로 알려진 거지들의 방파, 개방의 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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