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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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68화
168화
마차야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갔으니 새로울 것도 없었다. 문제는 바퀴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속도가 상당히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
동대안이 먼저 고개를 돌리더니, 한소리 내지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뒤를 돌아다보았다.
역시나 마차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마부석에 앉은 마부의 모습이 이상했다.
옆으로 기울어진 그는 금방이라도 마부석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고삐를 잡고 있는 손도 아래로 축 처져서 말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지금이야 길이 넓고 일직선으로 뻗어서 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이대로 달리면 사람이든 마차든 들이받을 게 분명했다.
쿠르르르르르.
혁무천 일행이 속도를 늦춘 사이 마차가 오 장 앞까지 다가왔다.
“강탁, 마차를 세워라.”
혁무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탁이 마차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직후 마부가 스르르 옆으로 쓰러지더니 마차 아래로 떨어졌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 바닥은 시뻘건 피가 흥건했다.
마부석에 내려선 강탁은 고삐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마부가 고삐를 잡은 채 떨어진 상태였다. 축 처진 고삐가 흔들리면서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 사이 마차는 혁무천 일행 바로 앞까지 달려갔다. 일행들이야 옆으로 피해 있었기 때문에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때 혁무천이 말 앞으로 미끄러져 갔다.
“엇?”
“조심……!”
모두가 놀라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혁무천은 두 마리 말 사이로 들어가더니 늘어진 고삐를 잡고 말의 속도에 맞추어서 뒤로 물러섰다.
말의 속도가 점점 늦추어졌다.
그렇게 십여 장 정도 가자, 말들이 투레질을 하며 멈추어 섰다.
관도를 오가던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대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말을 멈춰 세운 혁무천의 행동에 탄성을 터트렸다.
혁무천은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마부석에서 내려온 강탁이 혁무천을 바라보며 마차 문을 가리켰다.
‘문을 열까요?’ 그런 뜻이었다.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탁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마차 문을 열었다.
크기가 제법 큰 마차 안에는 삼남 일녀가 타고 있었다.
쉰 살쯤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서른 정도의 장한과 여인, 대여섯 살의 어린 남자아이.
여인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나머지 두 남자는 부상이 심한 듯 온몸이 피로 젖은 상태였다. 그 중 중년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걸 보니 정신을 잃은 듯했다.
장한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혁무천을 바라보며 숨을 옅게 내쉬었다. 한손에 검이 쥐어져 있었는데, 손 안이 핏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혁무천은 장한의 옷에 수놓아진 문양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곧 무심해진 눈으로 장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부가 죽었소. 우리가 마차를 몰 것이니 안전하게 안에 있으시오.”
장한은 입술을 깨물고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정체조차 모르는 상태지만 지금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탁, 마차를 몰아라.”
“예? 예, 대형.”
강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부석으로 올라갔다.
마차를 몰고 오 리쯤 달렸을 때 혁무천이 앞을 보며 말했다.
“저쪽 길로 빠져라.”
강탁은 마차의 방향을 왼쪽으로 꺾었다. 그 길은 관도만큼 넓지도 않았고 꼬불꼬불했다.
거기다 양쪽에 갈대가 무성해서 조금만 들어가자 관도에서는 마차가 보이지 않았다.
혁무천은 십 리쯤 더 간 다음 호수 옆에서 마차를 멈춰 세웠다.
“일단 밖으로 나와서 부상부터 손보는 게 어떻겠소?”
잠시 기다리자 마차 문이 열렸다.
여인이 아이와 함께 먼저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땅에 내려놓은 여인이 몸을 돌리더니 마차에서 힘겹게 나오는 장한을 부축했다.
“철호, 안쪽에 계신 분을 밖으로 모셔라.”
혁무천의 말에 철호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장한과 여인은 멈칫했지만, 막지는 않았다.
곧 철호가 정신을 잃은 중년인을 안고 나왔다.
장한은 내상과 외상을 입긴 했으나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서 중년인은 혈도 몇 곳이 막히고, 외상 역시 다리뼈가 보일 정도였다.
혁무천은 일단 기해혈에 진기를 주입해서 강제로 기운을 움직였다.
기운의 강도가 조금만 심해도 자칫하면 막힌 혈도가 터질 수 있었다. 때문에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일단 기경팔맥의 혈부터 다스렸다.
일각쯤 지나자 창백하던 중년인의 얼굴에 희미한 혈색이 돌아왔다.
그제야 중년인에게서 손을 뗀 혁무천이 장한을 바라보았다.
“일단 막힌 혈도를 뚫어놨으니 위험한 상황은 넘겼다 할 수 있소.”
장한이 힘겹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혁무천은 마주 포권을 해서 인사를 받고 돌아섰다.
장한은 혁무천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자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도가 득세한 지금 강호의 무사들은 대부분 마도에 속해 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도와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여인이 말했다.
“상공, 저분은 우리가 누군지 아시는가 봐요.”
그 말에 장한이 움찔했다.
‘우리 정체를 안다고?’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어쨌든 자신들의 정체를 알면서도 도와주었다는 것은 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장한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혁무천의 등을 향해 말했다.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나는 황보정이라 하오.”
혁무천이 등을 보인 채 답했다.
“알고 있소. 저 사람이 귀하의 부친인 황보경이오?”
“그렇소. 귀공께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소?”
돌아서있던 혁무천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나는 황보세가와 썩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소. 그러니 부탁이라는 게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오.”
“죄송하지만 이미 집안이 적의 손에 넘어가서 드릴 것이 많지 않소.”
“대가는 나중에 받아도 되오. 귀하와 가주만 생존해 있으면 잃은 것을 되찾을 수도 있지 않겠소?”
“잃은 것을 되찾는다?”
장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되뇌고는, 혁무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리가 누군지 아신다면 상대 역시 아실 거요. 그들은 곧 우리가 일군 모든 것을 차지하려 할 거요. 그런데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어찌 보면 막연한 질문이었다.
저 사람이 뭘 얼마나 알아서 가능성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혁무천이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귀하가 결심만 한다면. 단, 그 일을 맡길 거라면, 되찾을 경우 황보세가가 운영하는 사업권의 삼 할을 대가로 주셔야 하오.”
황보세가 사업권의 삼 할이라면 은자로 따져도 수십 만 냥이다.
평상시였다면 ‘미친놈!’이라며 한소리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는 신세 아닌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황보정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되찾을 수 있다면…… 드리지.”
“아버님……!”
황보정과 그의 부인인 하추추가 누워 있는 황보경에게 다급히 다가갔다.
힘겹게 눈을 뜬 황보경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황보경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아직 죽을 때가 되지는 않았나 보구나.”
그러고는 혁무천을 보며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대가 정말 우리 황보세가의 사업권을 되찾을 수 있겠소?”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황보경을 바라보았다.
“비룡장의 비룡단을 맡고 있는 무천입니다. 가주께서 ‘황보세가의 사업 운영을 비룡장으로 하여금 대리하게 한다.’라는 서류만 써주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지요.”
황보경은 혁무천의 신분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근 상계는 비룡장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구룡상단의 말석이었던 그들이 만마성에 대한 거래권을 따낸 것으로도 모자라, 상단의 수장인 천룡방을 물 먹인 일은 올 한해 상계의 최대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상계의 일일 뿐. 팔대마세와의 대립은 또 다른 문제였다.
“상대가 누군지 아는 것 같던데…….”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림사에 이어서 황보세가를 치는 것을 시작으로 정파를 완전히 밀어낼 작정이지요.”
“그들을 물리칠 방도가 있소?”
“싸움이라는 게 꼭 무력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들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명분 없는 싸움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도의 무리가 명분을 따졌다면 어찌 우리를 공격했겠소?”
“그들과의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어차피 황보세가로선 밑져야 본전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혁무천의 말마따나 실패한들 황보세가에는 별 손해가 없다.
대신 성공한다면 사업의 절반 이상을 되찾을 수 있다.
황보경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상대가 팔대마세라는 문제였다.
자칫하면 재기할 기회조차 없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비룡장이 아무리 강호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들 어찌 팔대마세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황보경이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동대안이 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누가 오고 있네. 아무래도 놈들 같은데?”
혁무천도 살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바람도 없는데 갈대 쓸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들렸다.
혁무천의 시선이 다시 황보경에게로 향했다.
“상황이 끝난 다음에는 비율이 사 할로 바뀔 거요.”
황보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대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혁무천은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는 옆을 바라보았다.
“대산, 철호. 너희는 이분들을 지켜라.”
“어, 대형.”
장대산과 철호가 황보경과 황보정 부부의 앞을 막아섰다.
한쪽은 호수여서 굳이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운이 좋군!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
칼칼한 목소리와 함께 십여 명이 갈대숲을 가르며 나타났다.
나이는 이십 대에서 사십 대까지 제각각이었다.
개중에는 절정 경지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 고수도 최소 셋 이상이었다.
그들은 독 안에 든 쥐라 생각한 듯 자신만만한 태도로 혁무천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황보경, 순순히 인장을 내놓고 목숨을 구걸해라. 그럼 네놈의 손자는 살려주지.”
선두에 서서 다가오던 귀천교 귀살단 부단주 노극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관도를 따라 추적하던 중 수하 하나가 급격하게 꺾어진 마차바퀴 자국을 발견했다.
아마 그걸 보지 못했다면 자신들 역시 다른 추적자들처럼 발바닥에 땀나도록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귀천교 놈들이군.’
그 잠깐 사이 혁무천은 추적자들의 상황을 파악했다.
상대는 귀천교 무사들이었다. 숫자는 열넷. 그들이 전부인 듯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동 형이 뒤를 맡으시오. 한 놈도 살려 보내면 안 되오.”
동대안은 대답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곧바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혁무천과 장평도 앞으로 튀어나가며 검과 도를 빼들었다.
어차피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니었다.
노극은 다짜고짜 달려드는 혁무천 일행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가소로운 놈들! 모두 죽여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동대안의 섬혼이 벼락처럼 한 귀천교 무사의 목을 꿰뚫었다. 어찌나 빠른지 그 무사가 검을 반쯤 들었을 때는 섬혼이 이미 목에서 빠져나온 후였다.
“컥!”
단말마를 토한 귀천교 무사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 때쯤, 동대안의 섬혼은 다섯 자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또 다른 무사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쾌검을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