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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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63화
163화
마룡성이 있는 허창에는 일곱 명만 가기로 했다.
백리양과 부상 당한 영추문은 비룡장으로 돌려보냈다.
꼬장꼬장한 영추문도 이번에는 혁무천의 지시에 반발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남양에서 허창까지 오백 리.
혁무천 일행은 경공을 펼쳤음에도 다음 날 오후 어두워질 무렵이 되어서야 허창에 도착했다.
무더위에 짙은 비구름이 끼어서인지 음침하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그들이 객잔에 들어가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대안이 창문 밖을 보고 안도하며 말했다.
“하마터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뻔했군.”
다른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았다.
누가 뭐래도 가장 많이 ‘쥐’와 관련된 말을 듣는 이가 그였다.
“뭘 그렇게 봐?”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곳에서 보내야 할 것 같군.”
혁무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식사를 시킨 후에야 목량이 마룡성에 대해 설명했다.
“마룡성이 마도십문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은 무력 때문만이 아닙니다.”
마룡성은 일천 명에 이르는 무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마도십문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무력보다 금력 때문이었다.
구룡상단에 속할 정도로 막대한 금력은 타 마도십문 세력에 비해 열세인 무력을 보완하고도 남았다.
특히 그들은 천하 십대표국 중 하나인 마룡표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룡성 무사들 중 상당수가 표사로 활동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수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들어서 절정경지에 이른 고수를 상당수 끌어들인 것으로 압니다.”
목량의 설명이 끝나자 동대안이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건가? 정면으로 들어갈 거야? 아니면 몰래 들어가서 마룡성주의 목을 따버려?”
“성주의 목을 따서 마룡성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응? 그럼 마룡성도 손에 넣을 생각인가?”
“가능하다면.”
“천룡방과 짝짜꿍 하며 지낸 놈들이 쉽게 돌아설까?”
“공포는 그 어떤 믿음도 돌려놓을 수 있소. 마룡성주 모청광이 천룡방과의 신뢰와 자신의 목숨 중 어느 쪽을 택할지 궁금하지 않소?”
동대안이 씩 웃었다.
“그거 정말 궁금하군. 우리 내기할까?”
“싫소. 보나마나 모두 한쪽만 택할 테니까. 동 형이 신뢰 쪽에 건다면 모를까.”
“미쳤나? 질 내기를 왜 해?”
그 말에 피식 웃은 혁무천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두어 개의 탁자 건너편에서 세 사람이 나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떠돌이 행상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아마 혁무천도 상인의 입모양이 ‘소림사’라는 단어를 지칭한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면 그냥 넘겼을지 몰랐다.
“소림사가 피로 물들었다고 하네.”
“나도 들었어. 소림의 승려 수백 명이 죽었다고 하더군.”
“제길, 한동안 황군이 쫙 깔리겠군.”
마침내 우문척이 소림사를 공격한 듯했다.
‘과연 우문척이야.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쳤어.’
거기까지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어서 놀라긴 했어도 마음까지 흔들리진 않았다. 그런데 다음 말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갑자기 나타난 자들 덕분에 멸문은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야.”
“도대체 그자들이 누군데, 지금 같은 마도 세상에서 소림사를 도운 거지?”
“나도 그게 의문이네. 정은맹이라는 단체는 아닌 것 같은데…….”
“정은맹? 그런 곳도 있나?”
“몰랐어? 요즘 섬서 쪽에서는 그들 때문에 시끄러운데.”
“뭐하는 자들인데?”
“정파의 연합체라고 하더군.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정파의 무사들이 힘을 합친 거 같아.”
“그럼 무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 아냐?”
“그럼 어때? 우리야 물건만 잘 팔리면 그만인지.”
“하긴……. 그럼 이번 상행은 섬서 쪽으로 가볼까?”
혁무천은 그들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정리해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갑자기 나타난 자들’이었다.
정은맹 외에 소림을 돕기 위해 나설 자들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가 철혈마련을 비롯한 팔대마세라면 더더욱 나서지 않고 몸을 사릴 것이다.
‘천기회라면…….’
지금으로선 그들밖에 없었다.
‘그럼 와룡산장에서 나왔다는 말인데…….’
천기회가 와룡산장을 나와서 강호의 일에 끼어들었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천기회의 정예고수들이 세상에 나왔나 보군.’
“어이, 무천.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나?”
동대안이 힐끔거리며 물었다.
장평과 장대산, 철호, 강탁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목량은 그들과 달랐다.
그는 혁무천의 표정만 보고도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대형, 무슨 일입니까?”
혁무천이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마룡성의 일을 오늘 밤 안에 끝내야 할 것 같다.”
동대안과 강탁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강탁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반면 장대산과 철호는 그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무기를 잡았다.
그 때문에 동대안이 급히 그들을 말려야 했다.
“이놈들아, 갈 때 가더라도 밥은 먹고 가야지.”
다행히 두 사람은 밥 먹는 것도 무척 중요시했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목량이 침중해진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혁무천은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가 우문척에게 당했다.”
“아…….”
천기회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은 아직 확인해봐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설아도 그곳에 갔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함께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마침 음식이 나와서 더 이상 깊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자자, 먹고 가세.”
동대안이 서둘러서 젓가락을 잡았다.
눈앞에 사람 닮은 돼지가 두 마리 있었다. 늦으면 제 몫을 찾아먹기 힘들었다.
철호가 덩치는 훨씬 작지만 먹는 것은 장대산 못지않았다.
***
술시 무렵. 식사를 마치고 객잔을 나선 혁무천 일행은 곧장 마룡성으로 갔다.
다행히 빗줄기가 가늘어져서 부슬비만 날리고 있었다.
“이봐, 무천.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닐까? 여긴 마룡성이라고. 금룡장이 아니란 말이지.”
동대안이 옆에서 따라가며 계속 수군거렸다.
“아무리 마룡성 놈들이 별 볼일 없다고 해도 포위되면 빠져나오기 힘들 거네. 이러지 말고 몰래 들어가서 처리하는 게…….”
함께 가는 모두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혁무천은 정식으로 정문을 통해서 방문할 생각이다. 막으면 강제로 길을 내면서 들어가겠단다.
그게 빠르고 확실하다면서.
그런데 자신들은 일곱 명이고, 저 안에는 무사만 해도 최소 오륙백 명이 있을 것이다.
개중 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만 해도 열 명 이상은 된다고 봐야 했다.
“일단 홍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대화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홍가는 마룡성주 일참마룡 홍택을 말했다.
하지만 혁무천은 요지부동이었다.
“마룡성 정도를 어쩌지 못한다면 팔대마세와 싸울 생각은 말아야 할 거요.”
그 한마디로 동대안의 입을 막은 그는 마룡성의 정문을 향해 다가갔다.
홍택은 보고를 받고 벌떡 일어났다.
“뭐야? 비룡단주란 자가 왔다고?”
“예, 성주!”
금룡장에 보낸 장로 배응과 무사들 태반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지 이제 겨우 한 시진이 지났다.
그 한 시진 동안, 마룡성 간부들은 식사도 못하고 격론을 벌였다.
당장 무사들을 보내 비룡장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쪽과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 다음 움직이자는 쪽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자신 역시 전자의 의견에 찬성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천룡방이 구룡대총회의 표 대결에서 패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금룡장의 주인을 바꾸려한 일이다.
그 일이 알려지면 구주에 속한 다른 상가들이 분노할 것이다.
‘방주도 요즘 마음이 급해져서 실수가 많아.’
굳이 금룡장주 전금환을 건드릴 필요까진 없었는데…….
문제는 마룡성도 그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그의 마음도 모르고 옆에서는 간부들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성주! 놈들의 사지를 잘라서 백리궁에게 보내줍시다!”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탕탕탕!
홍택이 탁자를 두들기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멍청한 소리 그만해! 놈들 몇 죽이고 구룡상단끼리 전쟁이라도 벌이자는 거야?”
버럭 소리친 홍택이 문쪽을 향해 말했다.
“놈들을 데려와라.”
혁무천 일행이 걸어가는 양쪽에 무사 수백 명이 서 있었다.
모두들 남양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죽은 사람 중에는 친구도 있었고, 선후배도 있었다.
그들을 죽인 자들이 눈앞에서 걸어간다.
쿵! 쿵! 쿵!
누군가가 발을 굴렀다. 숫자가 하나둘 늘어가면서 바닥이 진동했다.
쾅! 쾅! 쾅!
“우우우우우!”
야유마저 터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절벽이 무너진 듯 혁무천 일행을 덮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콰아앙!
장대산이 장봉으로 바닥을 찍자, 청석바닥이 통째로 들썩거렸다.
“시끄러!”
뒤이어 배에서 울려나온 소리가 어둠을 터트렸다. 장대산의 일갈은 일반적인 목소리와 달라서 사람들의 심혼을 뒤흔들었다.
천둥처럼 울려 퍼지던 소리가 한순간 잦아들었다.
동대안이 장대산을 보며 피식 웃고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그 와중에도 혁무천은 뒷짐을 진 채 저벅, 저벅 걸음을 옮겼다.
자신들을 안내하는 무사가 가는 앞쪽에 커다란 전각이 있었다.
현판에 [마룡전]이라고 적혀 있는 것 보니 그곳이 마룡성의 핵심 건물인 듯했다.
홍택은 드넓은 전각 안으로 들어오는 혁무천 일행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겨우 일곱 놈에 불과했다.
마룡성 쪽은 전각 안에 있는 간부만 해도 열다섯, 호위무사까지 합하면 삼십 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들어온 놈 누구도 분위기에 짓눌린 자가 없었다.
혁무천은 홍택과 삼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그런 후에야 홍택을 똑바로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비룡장의 무천이라 하오.”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뻣뻣한 것이 대나무보다 더하다.
홍택은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아무런 표를 내지 않고 마주 포권을 취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와야 할 곳을 왔을 뿐이니 수고라 할 것도 없소.”
“젊은 친구가 꽤 뻣뻣하군.”
“일반적으로 목에 칼을 들이대는 사람은 적이 대부분이오. 나는 적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소. 그런데 성주는 비룡장의 적이오, 아니면 친구요?”
홍택의 뺨에 난 상처가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적이냐, 친구냐?
뻣뻣하게 서서 그 따위로 묻다니. 참으로 건방진 놈 아닌가 말이다.
“적이라면?”
“그럼 적으로서 대해야겠지요.”
홍택은 태연하게 말하는 혁무천의 모습을 보고 머리끝까지 뜨거워졌다.
하지만 아직 물어봐야 할 말이 있었다.
“친구라면?”
“진지하게 미래를 논해볼까 하오.”
예상했던 것과 다른 대답에 홍택은 미간을 좁히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친구라면 나와 미래를 논해보겠다?”
“그렇소.”
“푸하하하하. 정말 건방진 놈이군.”
홍택이 대소를 터트리며 그리 말하자, 간부들도 나서서 혁무천을 비웃었다.
“성주, 저놈이 비룡장에서 한 자리 하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봅니다.”
“길게 말할 거 뭐 있습니까? 목을 쳐서 백리궁에게 보냅시다.”
“조용!”
홍택이 손을 들어서 간부들의 소란을 잠재웠다.
그래도 그의 말 한마디에 조용해지는 걸 보면 마룡성의 규율이 제멋대로는 아닌 듯했다.
“너는 네가 나와 미래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뭘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 같소.”
“잘못 생각했다? 내가?”
“자격은 아무런 상관도 없소, 당신은 그저 적이 될 거냐, 친구가 될 거냐, 그것만 선택하면 되오.”
“뭐라?”
“친구가 되겠다면 미래를 논해볼 거고, 적이 되겠다고 하면…… 내 방식대로 처리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