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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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61화
161화
전금환은 곤혹스런 마음이었다.
비룡장 사람들은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어쨌든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설령 비룡장 놈들이 다 죽는다 해도 무천이란 놈이 입을 열지만 않으면 손해 볼 일도 없지 않은가.
물론 말한다 해도 딱 잡아떼면 그만이지만.
저놈이 보낸 전음 내용을 누가 알겠어?
그는 그렇게 하겠다는 뜻으로 다시 수염을 쓰다듬었다.
“신의도 살아난 다음의 이야기지. 허허허.”
웃음 끝이 가늘게 떨렸다.
그때 천룡방의 공진학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장주의 말씀이 맞습니다. 신의도 살아난 다음 이야기지요. 저놈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이지요.”
“어쩌면 죽는 건 그대일지도 모르지.”
냉랭히 말한 혁무천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전각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의 거리는 오 장. 그런데 그의 신형이 주욱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더니 그들의 일 장 앞에 나타났다.
“오늘의 일은 천룡방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나직하면서도 묵직한 일성과 함께 천망검이 검신을 드러냈다.
“어림없다, 이놈!”
마룡성의 장로 배응이 노성을 내지르며 쌍장을 뻗었다.
후우웅!
강맹한 장력이 쌍장에서 뿜어져 나오며 혁무천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갔다.
그의 격공장에는 일 장 앞에 있는 바위도 박살 낼 정도의 위력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혁무천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장력 속으로 파고들며 천망검을 흔들었다.
공력이 실린 장력과 검세가 뒤엉키자 비단천이 찢기는 소리가 나며 배응의 장력이 갈가리 갈라졌다.
“헛!”
헛바람을 집어삼킨 배응은 눈을 부릅뜨고 튕기듯이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공진학이 등 뒤의 검을 빼들고 혁무천의 좌측을 공격했다.
“어딜 감히!”
그 순간, 혁무천의 천망검에서 뇌전처럼 뻗어나간 검기가 일 장 정도 물러선 배응을 가르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신형은 이미 잔상을 남긴 채 다섯 자 정도 옆으로 흘러간 후라 공진학의 검은 허공만 갈랐다.
쩡!
천망검이 공진학의 검을 후려쳤다.
맑은 굉음이 울리고, 공진학이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검에 가해진 충격이 손목을 타고 팔 전체에 가해졌다. 손뿐만이 아니라 한쪽 팔 전체가 바들바들 떨렸다.
눈 깜짝할 순간에 절정고수 둘이 패퇴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더구나 검기가 훑고 지나간 배응은 이마에서 턱까지 혈선이 그어지며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장로!”
여유만만하게 바라만 보던 천룡방과 마룡성의 간부 셋이 그제야 몸을 날리며 혁무천을 공격했다.
전수환도 악을 쓰듯 외쳤다.
“놈들을 모두 죽여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마당에 늘어서 있던 수십 명이 동대안 등 비룡단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룡단 사람들은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먼저 치고 들어갔다.
부우우웅! 후아아앙!
장대산의 장봉이 바람 터트리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뭉갰다.
팔길이와 장봉의 길이를 합치면 열 자나 되었다.
장봉의 공격권 안에 들어온 자들 셋이 몽둥이로 자갈을 후려친 것처럼 훌훌 날아갔다.
철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쌍도끼를 빼들고 금룡장 무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건물의 좌우에서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족히 백 명은 될 듯했다.
금룡장 무사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 천룡방과 마룡성 무사들이었다.
비룡단의 강함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은 터라 그들 역시 정예무사들을 동원한 터였다.
“백리양만 생포하고 나머진 모두 죽여라!”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사십 대 나이에 제법 덩치가 큰 자였다.
그는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느라 조금 전에 벌어진 상황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 배응과 공진학이 당하는 걸 봤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소리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여? 어디 죽여보시지!”
동대안이 받아치며 앞으로 나섰다. 나머지 비룡단원 역시 무기를 빼들고 그들을 향해 마주쳐갔다.
동대안의 섬혼은 상대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고, 장평의 도는 혼조차 찢어발겼다.
영추문과 백리양, 강탁, 목량도 대호가 들개 떼 사이로 뛰어든 듯했다.
비명과 악다구니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스물을 셀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사십여 명이 쓰러졌다.
그중 열 명은 장대산의 무지막지한 장봉에 의해 날아갔고, 철호 역시 일곱 명의 이마와 가슴에 도끼질을 했다.
그때, 전각 쪽에서 북소리와 같은 굉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터덩!
“크억!”
천룡방의 간부로 보이는 자가 허공을 이 장이나 날아서 전각 문 두 개를 부수며 널브러졌다.
그리고 마룡성 간부로 보이는 자들 둘도 뒤이어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들과 함께 합공에 나섰던 공진학은 다리를 절룩이며 비틀거렸다. 붉게 물든 어깨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두 눈은 이미 초점이 흐려진 상태였다.
혁무천은 비틀비틀 물러서는 공진학을 향해 성큼 한 발을 내딛었다.
“신의를 어기고 동료에게 검을 겨눈 이상, 그대가 갈 곳은 지옥밖에 없다.”
공진학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비룡장 놈들이 아홉 명밖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원을 위해 뒤따르는 놈들도 없었다.
반면 자신들은 백 명이 넘는 정예와 금룡장 무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숨 몇 번 쉬는 사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전세가 뒤집어졌다.
‘뭔가가 잘못 되었어.’
비룡장에 갔던 백주원이 형편없이 당하고 돌아왔다는 말에 얼마나 비웃었던가.
그런데 지금 자신의 처지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는 그저 그런 고수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절정고수인 자신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정도의 절대고수였다.
비룡단주라는 자가 이토록 강한 자인 줄 알았다면 때려죽인다 해도 절대 이곳에 오지 않았을 텐데…….
“자, 잠깐! 나, 난 단지 방주의 명을 따랐을 뿐…… 나를 죽이면 처남인 방주께서 비룡장을 쓸어버릴 거다.”
그는 다급히 초라한 변명을 하며 어떻게든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다.
천룡방주 모용금적의 부인인 공산유의 동생이 바로 공진학이다.
그를 죽이면 상권 다툼을 넘어서서 전쟁을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하지만 혁무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뻗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
쐑!
천망검에서 뻗어나간 검기가 공진학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라서, 공진학이 몸을 빼려 했을 때는 이미 목이 삼분지 일쯤 잘린 후였다.
실 같은 핏줄기가 그의 목에서 뿜어졌다.
“이, 이…….”
말을 하려고 연 입에서도 피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왔다.
“차라리 그렇게 달려드는 게 나아. 그래야 뒤탈 없이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거든.”
무심하게 말을 내뱉은 혁무천은 뒤로 쓰러져가는 공진학을 놔둔 채 몸을 돌렸다.
덜덜덜 떨고 있는 전금학이 보였다.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소?”
혁무천의 말에 전금학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삼십여 년 강호 무림세력을 상대하며 잔뼈가 굵은 그였다. 수많은 일을 겪었고, 때로는 오늘보다 더한 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도 오늘 만큼의 충격을 주진 못했다.
“나, 난…… 아, 아니네.”
“그럼 당신의 사람들을 물리시오. 그들까지 전부 죽게 놔둘 것이 아니라면.”
무심한 어조로 몇 마디 내뱉은 혁무천이 마당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전금환은 화들짝 놀라서 악을 쓰듯 소리쳤다.
“금룡장 무사들은 모두 물러서라! 물러서!!”
바로 그 순간, 동대안이 전수환의 도를 비스듬히 밀어내며 섬혼을 뻗었다.
그동안 혁무천의 목에 구멍을 뚫는 걸 목표로 열심히 수련한 그였다.
쾌(快)에 변(變)을 완벽히 조화시킨 그의 검은 이제 천하의 어떤 고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쉬쉬쉭!
섬혼의 검첨이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어느 것이 진검인지 알 수가 없게 했다.
그 바람에 전수환은 좌우로 피하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처럼 뻗어나간 섬혼의 검기가 그대로 전수환을 관통하고 사라졌다.
주르륵, 물러서던 전수환이 멈칫거리다가 멈추어 섰다.
눈매를 파르르 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눈깔이 쥐똥만 한 놈의 꼬챙이 같은 검이 빠져나간 곳에서 피가 퐁퐁 솟아났다.
“그러게 욕심은 왜 부려?”
동대안이 섬혼을 거두며 그를 비웃었다.
형의 재산을 욕심낸 동생. 비웃음을 당해도 쌌다.
전수환은 자신의 꿈이 일장춘몽으로 변한 것을 보며 무릎을 털썩 꿇었다.
금룡장 무사들은 전수환마저 무너지자 눈치를 보며 물러섰다.
그 사이에도 천룡방과 마룡성 무사 수십 명이 더 쓰러졌다.
이제 남은 자들은 이십여 명. 싸울 의욕을 잃은 그들은 뒤로 몸을 날려서 도주를 선택했다.
전금환은 전수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착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자신을 밀어내고 금룡장을 차지하려한 죄는 죽어 마땅하지만, 그래도 동생 아닌가 말이다.
“그러게 왜 욕심을 부린 거냐, 이놈아.”
무릎을 꿇은 전수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크르륵, 그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
“뭐? 내가 더 잘 안다고?”
“영명이를… 그렇게 죽게… 놔두어선… 안 되었어…….”
전금환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전영명은 전수환의 아들이었다. 그것도 외아들.
삼 년 전 임무를 맡겨서 내보냈는데, 임무수행 중 죽고 말았다.
문제는, 지원무사만 제때 보냈어도 살 수 있었는데, 전금환이 금룡장의 손익을 따지다가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아니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니라, 사람보다 물건을 먼저 지키라는 비밀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제때 지원을 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금룡장은 은자 이십만 냥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전수환은 외아들을 잃어야만 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크크…크크, 내가… 바본 줄… 알아? 당신은… 돈을 지키기 위해… 조카를… 포기…했어.”
“그건…….”
“당신도… 그 아픔을… 느껴봐야……해. 크크…….”
전수환이 입에서 피거품을 흘리며 웃음을 지으려 애썼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전금환이 홱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빨리 금화원에 가봐!”
그때였다.
안쪽에서 누군가가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장주! 아가씨께서 돌아가시고… 공자께서…….”
전금환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딸의 죽음도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아들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
그의 아들 전두강은 이제 열두 살로 그가 쉰이 다 되어서 얻은 늦둥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어떻게…… 되었느냐?
“사라지셨습니다.”
“사라져?”
“아무래도… 납치를 당한 것 같습니다.”
전금환은 홱 고개를 돌려서 전수환을 노려보았다.
“이놈……. 두강이를, 두강이를 어떻게 했느냐?”
흔들거리며 쓰러지기 직전의 전수환이 푸들푸들 떨면서 고개를 들었다.
“영명이…… 넋을 위로…….”
그 말을 끝으로 전수환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전금환이 득달같이 달려가서 전수환의 머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두강이는 어디 있냔 말이다! 어서 말해!”
그가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숨이 끊어진 전수환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 목량이 말했다.
“그의 아들 묘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금환이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