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96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6화
196화
천룡방을 나서는 혁무천의 입가에 조소가 걸려 있었다.
옆에서 걷던 목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는 지부를 비룡장의 지부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혁무천이 만들려는 지부는 비룡장의 지부가 아니었다.
구룡상단의 지부.
구주의 모든 것을 모아서 판매할 수 있는 지부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리고 낙양 외에 천하의 대성에도 설치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되었으니, 이제 천화상단의 그림자만 걷어내면 되겠군.”
“내일은 좀 바빠지겠는데?”
옆에서 걷던 동대안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혁무천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바쁜 것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지요.”
“무슨 말인가? 아! 자정이 넘었으니 오늘인가?”
“그게 아니라, 지금 그들을 잡을 생각이오.”
“뭐? 지금? 잠도 안 자고?”
“지금쯤 그들도 마음 놓고 잠을 자고 있을 거요.”
“에이씨, 밤도둑도 아니고…….”
동대안이 투덜거리자, 송비가 쏘아붙였다.
“싫으면 먼저 가서 자든가. 낮은 더우니 차라리 지금이 낫지.”
“누가 싫다고 했수!”
***
낙양성 남문에서 북쪽으로 뻗은 거리에 십여 개의 객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객잔의 불은 거의 다 꺼져 있고, 자정이 넘은 시간이어서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간혹 울리는 순라꾼과 취객들의 고함소리만이 어둠을 흔들었다.
“거기! 술 처먹었으면 빨리 들어가라! 감옥에서 자고 싶나!”
“X까요!”
“저놈들이! 거기 서!”
“너 같으면 서겠냐!”
“튀어!”
그 즈음, 남문이 저만치 보이는 고원객잔 지붕에 몇 사람이 내려섰다.
혁무천과 은설, 장평, 영추문이었다.
“한 놈도 놓치면 안 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리를 부러뜨려.”
“예, 대형.”
그때 객잔 마당에 한 사람이 내려섰다.
쿵!
사람이 내려선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진동과 굉음이 객잔을 뒤흔들었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사찰에 서 있는 거대한 부처상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지? 지진이라도 났나?”
잠을 자던 자들 중 몇 사람이 웅성거리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개중에는 혁무천 일행이 노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장대산을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은 뭐야?”
“웬 놈이냐?”
“천화상단. 맞나?”
장대산이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삼사십 대 사내 셋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그 중 하나가 검을 빼들고 장대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장대산이 그자를 향해 장봉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천장이 내려와 대도를 휘두르는 듯했다.
부우우웅!
기둥처럼 굵고 기다란 장봉이 어둠을 짓이겼다.
쩡-!
날아드는 검을 쳐낸 장대산은 앞으로 한발 내딛었다.
그 사이 다른 두 사람은 객잔의 후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후원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들 앞에 두 사람이 내려선 것이다.
장평과 영추문이었다.
두 사람은 곧장 천화상단의 인물로 의심되는 두 사내를 공격했다.
당황한 두 사내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무공실력이 평범했다. 본래 무공 때문에 온 자들이 아니고, 거래처와 협상을 위해서 온 자들인 것이다.
그 순간, 안쪽에서 두 사람이 쇄도하며 장평과 영추문을 공격했다.
그들의 검에서 뿜어지는 검기가 어둠 속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절정에 달한 검수들.
천화상단의 호위무사들인 듯했다.
장평은 몸을 비틀어서 방향을 바꾸며 칼을 쳐올렸다. 칼에서 뻗어나간 도기가 어둠을 갈랐다.
상대도 다급히 검을 내질러서 장평의 도세를 차단했다.
쩌저정!
귀청을 울리는 격돌음. 일그러지는 표정.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는 주르륵 서너 걸음을 물러선 후 다시 검을 들었다.
기회를 잡은 장평이 바짝 뒤따라가며 칼을 열십자로 갈라 치며 몰아붙였다.
한쪽에서는 적수공권이 장기인 영추문이 장한 하나와 격렬하게 맞붙었다.
장한은 검을 쓰는 만큼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영추문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리가 생기면 불리해진다는 걸 알기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주먹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상대의 요혈을 노렸다. 수십 개의 권영이 어둠 가득 피어났다.
영추문처럼 변칙적인 권의 고수를 상대해본 적이 없는 듯 장한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검을 휘두르려 해도 상대의 손에 막혀서 제대로 된 초식을 펼칠 수 없었다.
“뭐 이런…….”
그러다 결국,
퍼퍼벅!
눈 깜짝할 사이 영추문의 삼권을 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객방에서 나왔던 두 사내는 그 틈을 이용해서 후원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피이잉!
대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두 사람이 달리던 그대로 꼬꾸라졌다.
혁무천이 지풍을 날려서 두 사람을 제압한 것이다.
“크억!”
장평과 싸우던 자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대형, 잡아왔어.”
때맞춰서 장대산이 축 처진 중년인을 옆구리에 끼고 후원으로 들어왔다.
중년인은 다리 하나와 팔 하나가 이상하게 꺾여 있었다. 아마도 장봉에 뼈가 부러진 듯했다.
“이자들을 챙겨라. 은설은 보따리 챙기고.”
“다섯이나 되는데?”
영추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행 중 남자는 셋. 장대산이 양손에 하나씩 둘을 든다 해도 하나가 남는다.
“하나는 네가 들면 되잖아.”
혁무천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말하고, 혈도가 제압된 장한 하나를 한손을 집어서 옆구리에 끼었다.
입술을 삐죽인 영추문은 장한 하나를 발로 툭 차올린 다음 어깨에 멨다. 정신을 잃은 장한의 손이 흔들리다가 그의 엉덩이를 쳤다.
움찔한 영추문은 장한에게 경고를 보냈다.
“엉덩이 만지면 죽여서 버리고 간다.”
은설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장한들이 떨어뜨린 보따리를 주웠다.
“내 어깨에 올려.”
장평이 영추문에게 어깨를 내밀며 말했다.
영추문은 장평을 흘겨본 후 걸음을 옮겼다.
“됐어, 괜찮아. 돌아가면 어깨부터 치료해.”
장평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의 어깨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상대의 검이 스치면서 살이 살짝 갈라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영추문의 말에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
혁무천은 생포한 자들을 자신들이 머무는 객잔 뒤의 빈집으로 데려갔다.
그 집은 객잔주인이 소유한 몇 채의 집 중 하나였다.
천화상단 무리를 처리하려고 작정했을 때, 혁무천이 객잔 점소이에게 물어봤다.
이 근처에 조용한 곳 없냐고.
점소이는 객잔 바로 뒤에 있는 빈집을 추천해주었다.
하룻밤에 은자 한 냥이면 통째로 빌릴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청소가 안 되어 있어서 조금 지저분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집주인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그 집주인이 무척 짜서 한 푼도 깎아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청운은 그 집을 사흘간 빌리기로 했다.
이제 사흘간은 자신의 집이나 마찬가지인 셈. 혁무천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혁무천 일행보다 한발 앞서 목량과 동대안 등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 역시 임무를 완수한 듯 네 사람을 생포해왔다.
그런데 철상의 부상이 제법 심했다. 단단하기가 무쇠 같은 그의 오른쪽 팔뚝이 깊게 갈라져서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그의 옆에는 강탁이 있었는데,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철상이 부상을 당한 것은 위기에 처한 강탁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강탁이 조금만 침착하게 행동했다면,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철상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죽어서 시신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목량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했다.
두 사람이 죽은 것 또한 강탁 때문이었다.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하기 위해 철상이 한 사람을 죽였고, 철상이 거꾸로 위기에 처하자 철호가 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인 강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습니다, 대형.”
혁무천은 그에게 잘못을 묻지 않았다.
강호란 본래 죽음을 친구삼아 지내는 곳이다.
자신을 죽이려 한 자를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포해서 데려왔다면 최상이지만, 죽었다 해서 죄를 물을 이유는 없었다.
“우리 쪽에 죽은 사람만 없으면 됐어.”
담담하게 말한 그는 생포해온 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혈도를 제압당한 상태였다. 개중에는 정말로 정신을 잃은 자도 있었다.
“깨워라.”
철호가 도끼 뒤쪽으로 머리를 툭툭 쳤다.
“어이, 일어나.”
“인마, 그러다 머리 깨져서 진짜 죽겠다.”
동대안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고는, 뾰족한 섬혼 끝으로 포로들을 쿡쿡 찔렀다.
“이봐, 정신 차려.”
“후우우, 동 형님…….”
목량이 한숨을 뱉어내며 동대안을 불렀다. 동대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목량을 바라보았다.
“왜? 따끔따끔하니까 깨어나잖아.”
진짜였다.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자들 중 넷이 이마를 찌푸리며 깨어났다.
“…….”
머리 좋은 목량도 그 모습을 보고는 할 말을 잊었다.
그래도 다행히, 혁무천이 입을 열어서 무안한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일단 깨어난 자들부터 심문하지요.”
“그건 내가 하지.”
송비가 불쑥 나섰다.
목량이 조금 염려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자, 송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냐?”
목량은 솔직하게 말했다.
“사숙, 저 사람들에 대한 심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너, 내가 옛날에 관의 형옥 책임자였다는 거 몰랐냐?”
그러고 보니 언젠가 스승님께 그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관에서 사고치는 바람에 쫓겨났다고 했던가?
그리고 그 ‘사고’가 바로 고문 때문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내가 인마, 한때는 고문전문가였어.”
송비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정신을 차린 천화상단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붙잡을 시기를 놓친 목량은 고개를 흔들며 그냥 놔두었다.
‘설마 한꺼번에 저 사람들을 다 죽이지는 않겠지.’
혁무천도 심문을 송비에게 맡겼다.
“알아볼 것이 많습니다.”
“걱정 말게. 내 손에 걸린 놈 중 입 다물고 살아서 나간 놈 없었으니까.”
씨익, 웃은 송비가 정말 오랜만에 손을 풀었다.
한 시진 후, 동대안이 사력을 다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밀려드는 졸음과 싸우고 있을 때, 송비가 심문을 마쳤다.
심문은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끝이 났다.
하지만 누구도 송비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았다.
고문을 하던 중 한 사람이 죽었다. 오랜만에 하다 보니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효과는 만점이었다.
천화상단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순순히 입을 열었으니까.
심문이 빨리 끝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목량이 천화상단 사람들을 심문하던 중에 나온 이야기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 천화상단은 천룡방을 집어삼킬 생각이군요.”
“끈이 떨어진 자들을 포기할 만큼 마음이 넓은 자들이 아니야.”
“저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낙양의 상권 중 육 할 이상이 곧바로 천화상단에 넘어갈 겁니다.”
“과연 천화상단이야. 낙양 상권을 털도 안 뽑고 단번에 삼키려고 하다니.”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목량의 말에 동대안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삼키는 건가?”
그가 비록 장사는 알지 못하지만, 눈치마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혁무천이 말했다.
“다 먹지는 않을 거요. 과욕을 부리다 배탈 나면 오히려 손해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굳이 다 먹으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심문을 주도했던 송비가 그쯤에서 입을 열었다.
“지금쯤은 천룡방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을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