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95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5화
195화
황촛불이 일렁거리는 방 안.
네 사람이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넷 중 가장 젊은 모용수가 무거운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버님, 놈의 위치를 찾았으니 우리의 뜻을 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를 악다물고 있던 모용금적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분명히 놈이 연락을 취할 거다.”
놈들이 기거하고 있는 객잔을 찾아낸 것은 신시 경이었다. 세 시진 전.
놈들 숫자는 모두 열한 명.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았다.
놈들에게 천룡방이 그물을 치고 있다는 걸 넌지시 알리고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놈들은 여유 있게 식사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잡담도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한 시진이 지나도록 연락할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시가 되어서 어느덧 반 시진 넘게 흘렀다.
혹시 연락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왜 관주호에게 그런 말을 전하고, 찾아온다고 했지?
그런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천룡방의 주인인 모용금적이 ‘반드시 찾아올 거다.’라는 믿음을 갖고 눈을 부라린 채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뎅-! 뎅-!
저 멀리서 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더 참을 수 없는지 모용금적이 벌떡 일어났다. 옷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펄럭거렸다.
“내 그놈들을……!”
그때였다.
“방주님, 비룡장의 무천이란 자가 찾아왔습니다.”
모용금적은 몸속에서 저릿한 전율이 쫙 흘렀다.
‘그래, 내가 이겼어!’
그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밖을 향해 말했다.
“비룡장의 무천? 그놈이 무슨 일로 왔다더냐?”
“그게 저…….”
“어허! 내 묻지 않았느냐?”
그 순간,
덜컹!
문이 세차게 열렸다.
“이게 무슨 짓이오!”
밖의 경비무사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무천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목량과 동대안이 따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서 대기했다.
모용금적은 손을 들어서 경비무사들을 제지했다. 잘못하면 협상이고 뭐고 다 깨질 수 있었다.
“놔둬라!”
혁무천 일행을 막으려던 경비무사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들도 전각 안에서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종일 숨 쉬는 것조차 조심했던 터였다.
혁무천은 터벅터벅 걸어서 모용금적 등이 앉아 있는 커다란 탁자 앞에 섰다.
그러고는 모용금적에게 포권을 취했다.
“바룡장의 무천이라 합니다.”
정중하면서도 과하지 않는 정도의 인사였다.
모용금적은 무천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인사를 받았다.
“어서 오게. 자네에 대해서 말은 많이 들었네.”
소문대로 정말 잘생긴 놈이었다.
하지만 그는 혁무천의 얼굴보다 혁무천에게서 흐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세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천화상단의 고수가 패했다고 하더니…….’
그러나 천화상단과 함께 상계를 양분했던 구룡상단의 단주답게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시고 계셨나 보군요.”
“우리야 그렇다 치고, 이 밤중에 어쩐 일인가?”
“관심사가 같을 것 같아서 찾아왔지요. 싫다면 가보겠습니다.”
혁무천이 넌지시 말하며 돌아서려 하자, 모용금적이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얼마를 기다렸는데 간단 말인가.
“허허허,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상계의 많은 이들이 우릴 욕할 거네. 무슨 일인지 들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감사합니다.”
혁무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예를 취하고 모용수와 백주원을 바라보았다.
“마침 모용 형과 백 전주님도 계셨군요. 오랜만입니다.”
모용수와 백주원이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혁무천은 나머지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자는 나이가 쉰 살 정도 될 듯했다. 체구가 작았는데 눈빛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몸에 지닌 기운이 약한 걸 보니 무공을 정식으로 익히지는 않은 듯했다.
모용금적이 그를 소개했다.
“그 사람은 본 방의 행수를 총괄하고 있는 방 행수네.”
“방완이라 하오.”
“무천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아우인 목량이라 합니다.”
“목량입니다.”
목량마저 인사를 건네자, 모용금적이 서둘러서 무천을 자리에 앉혔다.
“자자, 이제 자리에 앉게. 어디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세.”
기다린 시간만 세 시진이 넘었다. 인사나 나누며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무천은 그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탁자가 워낙 커서 사이에 의자 두 개를 비워 놓아도 여유가 충분했다.
목량은 무천의 바로 옆에 앉았다.
“천화상단 때문에 회의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제가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군요.”
혁무천이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모용금적은 멈칫했지만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다.
“소식이 빠르군. 그렇다네. 천화상단도 낙양의 상권이 욕심나는 모양이네.”
“안 그래도 천화상단에 따질 일이 있는데 잘 됐군요.”
“천화상단에 따질 일이 있다고?”
“구룡상단의 형제들 모르게 황하상선을 꿀꺽하지 않았습니까?”
은근히 천룡방까지 싸잡아서 책망하는 말투였다.
모용금적도 모르지 않았지만, 속으로 화를 삭였다.
“그 일은 우리도 속았네. 우린 그들이 상부상조할 거라 생각해서 상선을 넘겼는데, 상부상조는커녕 낙양의 상권까지 욕심을 내는군.”
“이대로 놔두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순 없지. 하지만 천화상단은 우리 천룡방의 힘만으로는 상대하기가 힘드네.”
“역시 그렇군요.”
“자네도 알지 모르겠네만, 천화상단은 황금뿐만 아니라 무력도 강호의 대문파 못지않다네.”
“구룡대총회 때 온 자를 보니 그런 것 같더군요.”
그 말에는 다른 뜻도 숨어 있었다. 그런데 영악한 모용금적조차 그 속에 숨겨진 뜻을 간파하지 못하고 실수를 했다.
“그래, 그때 비무를 해봤다고…….”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모용금적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험, 그자가 천화상단의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네. 어쨌든…….”
모용금적이 그 말을 함으로써, 천룡방이 구룡대총회 때 내세운 자가 천화상단의 고수라는 게 공식적으로 밝혀진 셈이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그 일을 추궁하지 않고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아니었다.
“듣자하니 천룡방의 주요 상권에 천화상단이 손을 뻗은 것 같습니다만.”
“으으음, 나 역시 그렇게 보고 받았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힘만으로는 천화상단을 상대하기 힘드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도와주었으면 하네.”
참으로 대단한 자였다.
모욕감과 분노가 가슴 속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텐데도 손을 내밀지 않는가 말이다.
과연 구룡상단의 단주를 지낸 사람다웠다.
그러나 혁무천도 만만치 않았다.
“저희가 도와드려서 천화상단을 쫓아낸다면 어떤 대가를 주실 수 있습니까?”
“바라는 걸 말해보게.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겠네.”
크게 인심 쓰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공허한 약속에 불과했다.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결국 자신들 맘대로 결정하겠다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혁무천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흠, 그리 해주시겠다면 도와드려야지요.”
그 어떤 제안이든 들어줄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허허허허, 시원시원한 젊은이군.”
“대신 그에 대한 내용을 문서로 써주셨으면 합니다.”
문서?
모용수가 모용금적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백주원은 이마를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아는 무천은 가볍게 속여 넘길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방완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무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모용금적이 말했다.
“내가 조금 전에 한 말만 적어주면 되겠나?”
“그 정도면 됩니다만, 그래도 뭔가 하나쯤은 확실하게 적어 놓았으면 합니다.”
“어떤 걸 말인가?”
“낙양에 지부 하나 만드는 걸 허락해주시지요. 그리고 천룡방에서 저희 지부의 온전한 활동을 보장해주셨으면 합니다.”
지부 하나 만드는 게 뭐 어려울까.
그럼에도 모용금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부가 들어서면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비룡장의 지부 하나쯤이야!
모용금적으로선 당장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낙양의 상권을 삼키려는 천화상단의 흉계만 막을 수 있다면 지부 하나가 대수일까.
더구나 자신이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비룡장의 지부를 낙양에서 쫓아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 생각한 모용금적은 흔쾌히 허락했다.
“좋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천화상단 무리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논의해보지요.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천화상단 무리가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은데…….”
회의는 자정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갈 무렵,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놈들! 어? 네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왔단 말이냐! 모두 저놈들을 잡아라!”
혁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전각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
모용완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꼬인 걸 보니 술을 마신 듯했는데, 아마도 비룡단원들을 보고 전에 쌓인 분노를 터트린 듯했다.
“방주님의 손님으로 온 사람 일행입니다, 공자.”
경비무사가 그를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손님은 무슨! 저놈들은 비룡장 놈들이다. 아마도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모양인데,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어서 저놈들을 잡으라니까!”
“공자…….”
잠깐 사이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도 모용완의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 이 계집은 뭐 이리 예뻐? 음하하하! 계집, 넌 나와 함께 가자!”
“가긴 어딜 가?”
퍽!
“억! 이 건방진 계집이 어디서……! 악!”
“완아! 멈춰라!”
모용수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며 밖으로 뛰어갔다.
모용금적은 눈을 치켜뜬 채 화를 삼켰다.
‘저 멍청한 놈이! 잠이나 잘 것이지, 어디서 술을 퍼마시고 와서……!’
모용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이미 십여 명이 나뒹군 상태였다.
모두 천룡방의 무사들이었다.
개중에는 모용완도 있었는데,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그의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역시 목소리에서 드러났듯 술을 잔뜩 마신 듯했다.
“이노오옴!”
모용금적이 노성을 내질렀다.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든 모용완이 전각 안을 향해 말했다.
“아버님! 이놈들은 비룡장의…….”
“완아야!”
모용수가 소리쳐서 그의 입을 막았다.
“형님……?”
“조금 전에, 이분들은 손님으로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막 대꾸하려던 모용완이 방 안의 혁무천을 발견하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 저놈이……!”
혁무천은 냉소를 지으며 모용완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걸 보니 더 맞아야겠군.>
전음이 모용완의 고막을 흔들었다.
“너 이 개새……!”
모용완이 발끈해서 욕을 퍼부으려 하자, 모용금적이 재차 소리쳤다.
“수아는 완아를 방으로 데려가라!”
자칫하면 무천을 이용하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모용수도 그걸 알기에 모용완의 아혈과 마혈을 찍은 다음 어깨에 메고 그곳을 떠났다.
혁무천은 다시 문이 닫히자 시선을 모용금적에게 돌렸다.
“이야기도 대충 마무리 된 것 같으니 문서를 써주시지요.”
“끄응, 알았네.”
모용금적도 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