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9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2화
192화
천룡방이 벌여놓은 사업의 주축은 황하상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열두 개에 이르는 대형 기루와 객잔도 소유하고 있고, 소맥과 콩을 거래하는 맥두산포(麥豆産鋪)는 하남성에서 가장 컸다.
그 외에도 낙양전장을 비롯해 십여 곳의 거상과 협약을 맺고 낙양의 물품공급을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일 년에 오고가는 은자만 수백만 냥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낙양에서는 천룡방의 주인이 바로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무력 또한 어지간한 무림의 문파 못지않아서 오죽하면 낙양성주조차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천룡방이 앞으로도 백 년은 더 낙양의 상왕으로 군림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 가지 소문이 돌면서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천룡방이 마룡성을 움직여서 금룡장을 삼키려다가 거꾸로 당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천룡방이 구룡상단의 수장 자리를 내놓은 것은 물론이고, 구룡상단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천룡방의 황하상선이 천화상단에 넘어갔다.
소문이 낙양성 전체에 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느 객잔을 가도 그 이야기를 양념 삼으며 식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루와 기루에서는 단골 안주처럼 씹어댔다.
뒤늦게 천룡방이 그 소문을 차단하려 했을 때는 소문의 불길이 이미 낙양성을 휩쓸고 지나간 뒤였다.
쾅!
내려친 손바닥에 탁자가 부서지며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소문을 냈단 말이냐! 그런 소문이 날 때까지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던 말이냐!”
모용금적은 노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버럭 소리쳤다.
그의 앞에 서 있던 세 사람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나마 모용수만이 침중한 표정으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소문의 확산을 막는 게 우선입니다. 본 방과 거래하던 거상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모용금적이 한마디 내뱉고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소문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상인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신뢰가 흔들린 것이 문제였다. 황하상선을 팔았다는 말에 자금의 유동성이 불안한 것 아니냐는 말마저 나오고 있는 판이었다.
거기다 천룡방은 구룡상단의 구주에서 생산되거나 유통되는 물건을 낙양에 독점으로 공급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 물품들을 공급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최대한 빨리 물품들의 구입선을 바꾸어서 거래처의 실망감을 무마시켜야만 했다.
“외상 대금을 미리 지불해서 자금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물품 공급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말해두어라.”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그리고 소문을 퍼뜨린 놈들을 찾아봐라.”
“예.”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면……?”
“너는 지금 상황이 정상처럼 보이느냐?”
모용금적이 쏘듯이 말하며 모용수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믿어마지 않았던 큰아들이지만, 최근 들어서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으음, 누가 소문을 고의로 퍼뜨렸다고 보시는 거군요.”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소문이 낙양 전체로 퍼졌어. 자연스런 일이라 보기에는 의심 되는 부분이 많아.”
그제야 모용수가 모용금적의 말뜻을 깨닫고 눈빛을 빛냈다.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즉시 조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천룡방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그 시각.
낙양성 남문에서 십 리 떨어진 외고가 마을의 한 객잔 안에서 혁무천 일행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낙양에 온 인원은 모두 열한 명이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혁무천, 목량, 동대안, 영추문, 철상, 철호, 장대산, 그리고 은설까지 모두 여덟 명.
송비가 장평, 강탁을 대동하고 낙양을 돌며 분위기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은설은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고집을 부렸다. 앞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며.
“오빠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 제가 옆에 있어야 해요.”
그런 말을 해서 사람들의 표정을 괴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저 괴물 같은 사람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그렇게 따지고 싶은 표정들이었다.
혁무천도 차라리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마음 편할 거 같아서 결국 승낙했다.
최소한 그녀가 자화미와 자주 만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말이다.
“천룡방이 소문을 막기 위해서 돈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목량의 말에 혁무천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풍마문이 제대로 처리했군.”
“그리고 소문을 퍼뜨린 자를 찾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합니다.”
“풍마문 사람들은 철수했겠지?”
“예. 소문을 퍼뜨리는 일에 나선 사람은 모두 철수시켰고, 그 일과 관련 없는 사람들만 남은 것으로 압니다.”
혁무천이 조소를 지었다.
“천화상단이 군침을 삼키겠군. 안 그래도 언제 삼킬까 기회만 엿보고 있었을 텐데, 맛있게 보이는 요리에 양념이 더해졌으니…….”
어쩌면 이미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하루 열두 시진 천룡방을 주시하고 있었을 테니까.
풍마문에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이미 보고가 올라온 터였다.
“그들이 그 요리가 독과(毒果)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 때쯤이면 뱉어내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목량.”
“예, 대형.”
“어째 갈수록 말솜씨가 더 느는 것 같다.”
“대형만 하겠습니까?”
“…….”
혁무천은 말로 이기는 걸 바로 포기했다. 역시 말로는 아직 목량을 당해내기 힘들었다.
다행히 송비 일행이 돌아와서 무안해하는 걸 들키지 않아도 되었다.
“다녀왔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뭘…….”
그는 털썩 의자에 앉자마자 동대안의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서 목구멍에 털어 넣고 입을 열었다.
“뭔가 몰라도 재미있게 돌아가는 거 같은데?”
송비는 표국을 운영했던 사람. 바닥 돌아가는 판을 파악하는 거라면 누구보다 고수였다.
“천룡방의 위세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천룡방에 대한 상인들의 불만이 많더군. 그동안 독점으로 물건을 유통시켜서 많이도 해 처먹은 거 같네.”
혁무천도 풍마문의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저희들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군요.”
“그런데 돌아오던 중 한 상인을 만났는데, 묘한 말을 들었네.”
“묘한 말이라 하면……?”
“누가 거래를 트자고 하는 모양이야. 그것도 상당한 이익을 보장해주면서.”
“그래요?”
“내가 넌지시 거래를 이야기하니 배짱을 튕기더군. 시세보다 일 할을 싸게 주면 생각해보겠다고 말이야.”
동대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룡방과 척을 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힘든 일일 텐데……?”
“당연히 그것도 생각해봤겠지. 그런데 그 상인의 표정을 봐서는 거래처를 바꿀 가능성이 절반은 될 것 같아.”
송비의 말에 목량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새로운 거래자가 천룡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힘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요.”
“맞아. 거래를 제안한 자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책임져줄 수 있다고 본 거 같아.”
송비가 답하고 씩 웃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그런 곳은 지금 한 곳밖에 없거든.”
그러고는 도끼로 내리쳐 쪼개듯 한 자씩 뚝뚝 떨어지게 말했다.
“천, 화, 상, 단.”
혁무천도 미소를 지었다. 마치 강적을 앞에 둔 것처럼 냉기가 풀풀 날리는 미소였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군요.”
송비가 그 이야기를 상인에게 들었다면, 최소한 반나절 전에 그들이 상인을 만났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더 일찍 만난 상인도 있을지 몰랐다.
혁무천이 목량을 보며 말했다.
“너는 풍마문과 함께 천화상단에서 보낸 자들을 추적해라. 나는 낙양전장에 가보겠다.”
“예, 대형.”
천화상단의 꼬리를 잡을 수 있다면 나중에 그들을 상대할 때 유리한 패를 하나 쥐고 있는 것과 같게 된다.
그리고 낙양전장(洛陽錢莊)은, 낙양은 물론 하남성에서 가장 많은 돈을 굴리는 전장이다.
한 달에 굴리는 돈만 은자 수백만 냥.
장안의 장안전장과 북경의 천화전장, 남경의 만금전장, 항주의 복화전장과 더불어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 곳만 제대로 공략해도 천룡방의 자금 흐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을 것이다.
혁무천은 동대안, 장평, 강탁, 영추문을 목량에게 붙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철호, 은설과 함께 낙양전장에 가기로 했다.
장대산과 송비, 철상은 객잔에서 기다리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게 했다.
***
낙양전장은 낙양성 동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누구든, 하남성에서 가장 많은 돈을 굴리고 있는 곳이라 하면 매우 화려하고 웅장할 거라 생각하기 쉬웠다. 그런데 건물만 조금 클 뿐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건물에 창이 거의 없고 칙칙해서 괴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혁무천은 두 사람과 함께 낙양전장의 입구를 통과했다.
입구 쪽에 둘, 안쪽의 구석진 곳에 넷.
오가는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시하던 경비무사 여섯의 시선이 일제히 혁무천 일행에게로 향했다.
혁무천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전장 안을 둘러보았다.
전장 안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이 탁자만 여덟 개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문사 차림을 한 자들이 손님으로 보이는 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가장 안쪽은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었는데, 그 안에는 귀하게 보이는 물건들이 장식장에 가득했다.
일반적으로 전장은 전당포 업무도 함께 했다. 아마도 그 안의 물건은 손님들이 돈을 빌려가며 맡긴 물건인 듯 보였다.
끼이이익.
경첩 끌리는 소리를 내며 철창이 열리고, 안에서 막 나오던 삼십 대의 문사가 혁무천 일행을 보고 다가왔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혁무천이 그를 보며 대답했다.
“장주를 만나러 왔소.”
“장주님을요?”
문사 차림의 남자는 혁무천 일행을 재빨리 둘러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장주님께서는 지금 안 계십니다.”
“안에 계신 걸 알고 왔소만.”
오면서 낙양전장 장주 화문역이 외출에서 돌아왔다는 걸 풍마문의 정보원을 통해 들은 터였다.
그럼에도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저런. 조금 전까지는 계셨지요. 하지만 바로 전에 나가셨습니다. 돈의 융통에 대해 상의하실 일이 있으면 저쪽으로 가서 하시지요.”
남자가 가리키는 사람은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는데,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혁무천이 그자를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백만 냥짜리 거래를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담담한 그의 목소리에 남자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곧 혁무천의 말을 허세라 생각한 듯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백만 냥이라… 굉장하군요. 하긴 저희 낙양전장은 동문 밖의 거지들도 몇 십만 냥씩 들고 오지요.”
그는 혁무천 일행을 거지와 비교해서 조롱했다.
‘미친 놈, 백만 냥이 어디 강아지 이름인 줄 아나?’
아마 혁무천 일행이 무기를 든 무인들만 아니었다면 더 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혁무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상대하려는 사람은 낙양전장의 주인인 화문역이다. 그 밑의 졸개와 말싸움해봐야 득 될 것 없었다.
하지만 은설은 달랐다.
“낙양전장도 오래 못 가겠군요. 눈이 우리 집 앞 개울에서 죽어간 붕어새끼의 썩은 눈깔보다 더 흐릿한 눈을 가진 사람이 손님을 접대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
남자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뭐요? 말 다하셨소, 소저?”
“아직 덜 했어요. 그 썩은 눈깔 때문에 밥줄이 끊어지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참에 그 눈깔을 빼버리는 게 어때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