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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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1화
191화
그는 아직도 우문소소가, 자화미가 은설을 구해주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일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두어 가지 있었다.
하나는, 어떻게 그녀가 은설이 있는 객잔에 있었냐는 것이다.
그것도 암습을 받던 그 시간에.
‘아마 확률로 따지면 너무 미미해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다.’
또 다른 하나는, 은설을 납치하려고 했던 전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마음이 변해서, 암습을 받기 직전의 은설을 구했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는가 말이다.
‘언젠가는 그 속이 드러나겠지.’
자신의 집무실로 간 혁무천은 목량을 불렀다.
우문척과의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은 목량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였다.
하지만 자화미의 이야기를 듣고는 금방 표정이 어두워졌다.
“철혈마련에서 알게 되면 문제가 될 겁니다.”
“나도 알아.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잖아. 자경산에게 철저히 조심하라 했으니 알아서 하겠지.”
혁무천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당장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목량 역시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자화미의 일이 위험한 건 분명하다. 어쩌면 무원장에 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두고 보기로 했다. 자신의 초감각이 불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걸로 봐선 크게 해가 되지는 않을 듯했다.
“어쨌든 우문척이 나서면 천화상단의 감춰진 부분이 상당부분 드러날 거다.”
“우문척이 천화상단을 조사하면, 천화상단에서도 자신들을 조사하는 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겠지.”
“그들의 눈이 우문척에게 쏠렸을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야 합니다.”
“옳은 생각이야.”
혁무천은 목량의 말을 받아들이고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정은맹이 필요한 물건을 어디서 공급받을 거라 보느냐?”
그 말에 목량의 눈이 반짝였다.
정은맹의 무사는 알려진 것만 해도 이삼천 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항상 객잔에서 식사를 해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의복과 무기 등 필요한 물건도 적지 않을 터. 누군가가 그들에게 물건을 공급하고 있지 않겠는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그들에게 물건을 납품할 수 있는 상단이 중원에 많지 않을 거다.”
“맞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마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물건을 납품할 수 있는 자들은 더더욱 적겠지요.”
“아마 백리양이라면 그러한 상단에 대해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함께 의논해보도록 해라.”
“예, 대형.”
혁무천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는 목량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천화광을 끌어들이는 일만 남았군.”
“대형께서 말씀하시면 그는 두 말 않고 나설 겁니다.”
목량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혁무천은 그런 목량을 흘겨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목량은 혁무천이 왜 그렇게 보는지 이유를 알기에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로 천화상단에 가실 겁니까?”
혁무천은 피식, 실소를 짓고 대답했다.
“그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 속에 한번쯤 들어가 보는 게 좋겠지.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
혁무천은 무원장의 안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했다.
외부에 있는 강적을 상대하려면 내실부터 튼튼하게 다져놓아야 했다.
그는 이창과 역성 일대의 상인 중 신망 받는 자들을 정중히 초대했다. 개중에는 거상도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상인들은 무원장의 내심을 알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초대에 응했다.
초대를 받고 모인 상인들은 스물두 명.
혁무천은 한쪽에서 구경만 하고, 백리양이 대신해서 그들을 응대했다.
“비룡장의 백리양이라 합니다. 무원장을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가 예를 갖추어 말하며 포권을 취하자 상인들도 마주 예를 취했다.
“저희가 여러 상인 분들을 모신 것은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리양의 표정이나 말투는 부드러웠다.
그럼에도 상인들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백리양이 그리 말하자 더욱 굳어졌다.
마침내 본론이 나오는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의 말에 따라 이창과 역성의 상계가 뒤흔들릴 터, 억지로 웃고 싶어도 웃음이 지어지지 않았다.
“걱정이 많으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우리 무원장은 소매장사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인 중 작은 체구에 염소수염을 기르고 있는 중노인이 넌지시 물었다.
“공자,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비룡장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나직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때 후덕한 인상의 중년인이 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허면… 도매는 하시겠다는 거구려.”
백리양이 이번에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래 목적은 아닙니다만, 한다 해도 일반적인 도매와는 방식이 다를 겁니다.”
“방식이 다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단 말이오?”
“우리는 우리 물건만 팔지 않고, 거래처의 물건도 그만큼 사들일 겁니다.”
웅성거리던 상인들이 조용해졌다.
“가능하면 많은 물건을 사들일 겁니다. 물론 가격도 적절하게 치러야겠지요. 그리고 파는 물건은 최상급의 품질을 약속할 겁니다.”
백리양이 그쯤에서 잠시 말을 멈추자, 상인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다시 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상인들에게 충분히 이야기 나눌 시간을 준 백리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적은 대규모 단체나 조직에 물건을 납품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만마성이나 철혈마련 같은 강호의 대문파 말이지요.”
상인들 중 서너 명이 불안한 표정을 내비쳤다. 일대에서 거상으로 이름 높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행여나 자신들의 거래처를 빼앗길까봐 걱정인 듯했다.
그런데 백리양이 한마디 덧붙였다.
“다만, 이백 리 안에 있는 곳과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래를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한 곳은 대부분 이곳에 계신 분들께서 거래를 하고 계실 테니까요.”
불안해하던 상인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백리양을 바라보았다.
“만약 부족한 물건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가진 것이 있으면 내드리겠습니다. 물론 적절한 가격을 받겠지만요. 하하하하.”
백리양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마무리했다.
상인들의 표정이 들어올 때와 상반될 정도로 환하게 펴졌다.
백리양의 말대로만 된다면, 아니 그 반만 되어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어느 정도의 경쟁은 항상 있어왔으니까.
상인들 중 육순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일어나더니 양손을 맞잡고 공수의 예를 취했다.
“양천 진가보의 진은상이라 하오. 진정 그리 해주신다면, 우리 상인들도 비룡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이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은상. 그는 진가보의 보주로 이청과 역성 일대 상인들의 지주와 같은 자였다.
그가 백리양의 말을 받아들인 것으로 오늘 상인들을 초대한 목적은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 혁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가지 더 약속드릴 게 있소이다.”
상인들의 시선이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우리와 함께 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우리가 지켜드릴 것이오.”
상인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 중 우락부락한 인상의 중년인 하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그리해주실 수 있소? 상대가 혈마방이나 철검방이라 해도 말이오?”
“물론이오. 팔대마세가 직접 나선다면 몰라도, 그들 정도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소.”
혈마방은 이미 나곡수를 삶아 놨기 때문에 걱정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혁무천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사람이 물었다.
“저기… 보호비는 얼마를 내야 하오?”
혁무천이 그를 보며 되물었다.
“귀하는 가족들을 지켜주면서 돈을 받소?”
“…….”
“우리는 돈을 받기 위해 지켜주려는 게 아니오. 한가족처럼 안정적인 거래를 하기 위해서 지켜주려는 거요.”
우락부락한 인상의 중년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포권을 취했다.
“정말 그리해주신다면, 이 관모는 비룡장과 함께 하겠소이다!”
“나도 함께하겠소!”
“그리만 된다면야 우리야 좋지요!”
얼굴이 상기된 상인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그들에게는 무림방파의 치근덕거림을 참아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돈을 상납하지 않으면 온갖 시비를 걸었다. 게다가 수익을 좀 많이 냈다 싶으면 더 많은 돈을 뜯어갔다.
그런데 공짜로 지켜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가족처럼 여기겠다며.
장담한 것처럼 혈마방이나 철검방의 수작을 막아주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을 핍박하지는 않을 듯 느껴졌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백리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하지요.”
***
상인들을 초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지 닷새가 지났다.
우려의 눈빛으로 무원장을 바라보던 이창과 역성 일대의 상인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당장 저잣거리만 나가봐도 달라진 걸 알 수 있었다.
마주치는 상인들이 무원장 무사들의 복장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거래를 떠나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그런데 무원장에서 상인들을 지켜주겠다고 말한 후 혈마방 무사들의 행패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가끔 나타난 자들도 전과 달리 행패를 자제하는 것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더러워서 참는다는 투로 말하는 자도 있긴 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설마 했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무원장에 호감을 보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더 좋습니다, 대형.”
백리양이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보고했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혁무천과 백리양, 목량, 동대안, 은설이 앉아있었다.
“다행이군.”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혈마방, 어떻게 된 겁니까? 아무리 우리와 협약을 맺었다 해도 은자 천 냥에 이 지역을 포기할 놈들이 아닌데요.”
백리양도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말 그대로 ‘대충’.
혈마방이 은자 천 냥을 받기로 하고 이창과 역성의 상인들에게 보호비 받는 걸 포기했다고 했다.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지만 그렇다 하니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다.
차라리 술꾼이 술을 앞에 두고 돌아섰다는 말을 믿고 말지…….
“큭.”
옆에 있던 목량이 입술을 틀며 웃었다.
동대안이 놀리듯 말했다.
“몰라서 물어? 보기보다 맹하네, 백리양.”
백리양이 그제야 뭔가를 눈치 채고 다시 물었다.
“혹시… 손 좀 보신 겁니까?”
“살짝.”
살짝?
“멱살을 잡고 타일렀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더군.”
백리양은 더 묻지 않았다.
물을 것도 없었다. 아마 오줌을 찔끔 흘릴 정도로 겁을 줬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혁무천이 혈마방의 당주를 겁박하는 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다.
혁무천이 한마디 덧붙였다.
“나곡수도 손해 볼 것이 없으니 받아들인 거지.”
그게 아닐 것이다.
살기 위해서 받아들인 거겠지.
백리양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무원장을 안착시키는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원래 계획했던 육 개월의 기간이 사 개월로 단축될 것 같습니다.”
“잘됐군. 그럼 겨울이 오기 전에 틀을 완전히 구축할 수 있겠어.”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좋아, 그럼 그 일은 네가 맡아서 진행해. 나는 천룡방의 일을 처리하겠다.”
혁무천의 그 말에 방 안의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풍마문이 일을 잘 처리했다면 지금쯤 낙양이 시끄러울 거다.”
“언제 갈 건가?”
동대안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물었다.
보름 동안 처박혀 있다 보니 발바닥이 근질거렸다.
“내일 출발하지요.”
“몇 분이나 가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에는 백리양이 물었다.
“많이 갈 필요는 없다. 비룡단원만 데려갈 생각이야.”
많은 숫자가 가면 천룡방의 경계심만 살 뿐. 자칫하면 싸움이 커지고 피해가 많아질 수 있다.
적을 칠 때는 속전속결이 최고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