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89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89화
189화
일각쯤 지났을 때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비무사들이 뭔가 이상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그러더니 곧 두어 명이 한쪽 건물로 다가갔다.
다른 경비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창문 틈으로 밖을 살피던 우문소소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몸을 날려서 사 장밖에 있는 담장을 넘어갔다. 그때까지도 경비무사들은 구석의 건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
탁자 위에는 빈 술병 두 개, 고기를 야채와 함께 볶은 요리가 놓여 있었다.
주인만 한쪽 주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 한참이 지나도록 들락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술잔을 들고 찰랑거리는 술을 바라보던 우문척이 천천히 눈을 들었다.
“이 세상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기이한 힘이 있다네.”
담담히 입을 연 그가 술잔을 비우고는 혁무천의 두 눈을 직시했다.
“어쩌면… 자네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혁무천은 느릿하게 잔을 들어서 목구멍 안에 털어 넣었다.
우문척이 말한 ‘기이한 힘’이 뭘 말하는지 짐작되었다. 왜 갑자기 그 말을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로 아는 것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잔을 내려놓은 그가 말했다.
“누가 그러더군, 혼돈의 기운을 얻은 사람들이 있다고.”
우문척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처음에만 해도 천하에 자신 혼자만 그 기운을 얻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무천을 만난 후, 어쩌면 자신 혼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무천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과 무천 외에도 그 기운을 얻은 자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혼돈의 기운이라……. 마음에 안 드는 말이군. 나는 그걸 ‘천왕(天王)의 기(氣)’라고 부르는데. 그게 더 어울리는 말 아닌가?”
“이름은 중요하지 않아.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지.”
“어쨌든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 외에 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군.”
“나는 지금까지 세 사람을 봤지. 그런데 아마 더 있을 거야. 아홉 줄기의 기운이 대지에 떨어졌다고 했으니까.”
“으으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숫자에 우문척이 침음을 흘렸다.
그만큼 천하를 놓고 다툴 경쟁자가 많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물론 그 때문에 의기소침해질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무저의 밑바닥에서 소용돌이치던 투지가 부글부글 끓으며 용솟음쳤다.
“자네도 그 중 하나겠지.”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그러더군. 내가 그 기운의 주인 중 한 사람이라고.”
“자네까지 넷? 그럼 다섯이 더 있다는 건가?”
“맞아. 그 혼돈의 기운이라는 것이 모두 주인을 찾았다면.”
술잔을 들어서 단숨에 비운 우문척이 느닷없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크크크크, 그것도 모르고 나는 지금까지 나 혼자 천하를 속이고 있다며 좋아했군. 바보 같이.”
“자책할 것 없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런가? 푸하하하하. 재미있군, 재미있어.”
우문척은 고개를 쳐들고 대소를 터트렸다.
혁무천은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무언가를 느끼고 쓴웃음을 지었다.
일반 사람들은 기연을 다른 사람들이 나누어서 얻었다고 하면 실망하는 게 대부분이다.
우문척도 처음에는 그러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표정과 기운이 전보다 더 밝아진 듯 느껴졌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사람처럼.
그 순간,
화르르르르.
무형의 기운이 서기처럼 피어나며 우문척의 몸을 감싸고 휘돌았다.
다름 사람은 몰라도 혁무천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문척이 한 꺼풀 껍질을 벗었다는 걸.
그의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던 오만의 껍질을.
어이없게도, 찰나의 순간에 깨달음을 얻어 자신이 지닌 그 기운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것이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우문척의 몸을 감싸고 휘돌던 무형의 기가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반개했던 눈을 뜬 그가 미소를 지었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군.”
“축하할 일이군.”
“왜 방해하지 않았나?”
“내가 그렇게 속 좁은 놈으로 보였나?”
“후후후, 함께 대화를 했는데, 나 혼자만 이득을 얻는 것도 그렇군. 원하는 것 있으면 말해보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하나 들어주지.”
혁무천은 그 말에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
“아마 그대가 먼저 알게 될 거야.”
우문척은 말없이 혁무천을 바라보고는 일어섰다.
“나 먼저 일어나지. 약속은 지킬 거네. 다음에도 오늘처럼 즐거운 만남이었으면 좋겠군.”
“나 역시 같은 생각이야.”
“돈 많이 벌게. 무림 일은 나에게 맡기고.”
혁무천은 그 말에 미소만 지었다.
-너는 장사나 해라. 무림 일에 끼어들어서 방해하지 말고.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안단 말인가.
우문척은 혁무천을 놔둔 채 객잔을 나섰다.
객잔 밖에는 호위대가 늘어서 있었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지 않은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혈영이 옆으로 다가와 서서 우문척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 오면서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이야기가 좋지 않게 끝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극단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온 것이다.
우문척은 고개를 약간 돌려 객잔을 쳐다보고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놔둬라. 가자.”
혁무천은 객잔을 둘러싸고 있던 자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냉소를 지었다.
‘일단 천화상단과 싸워볼 틀은 갖추었군.’
철혈마련이 몇 번 나서주기만 해도 천화상단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천화상단이 철혈마련을 무시하고 움직인다면 일은 더 쉬워질 것이고.
이래저래 철혈마련은 천화상단에 쥐약처럼 작용할 수밖에 없다.
‘흠, 이제 천화광만 움직이면 되나?’
그때 자경산의 전음이 들렸다.
<소공녀가 무사히 나왔소.>
***
혁무천은 우문소소를 향산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곳에서 만났다.
일반 민가였는데, 은자 한 냥을 주고 잠시 방을 빌린 상태였다.
혁무천이 들어가자 우문소소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경산을 구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혁무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 하나의 고집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라.”
“저도 그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이군. 진심인지는 모르겠다만.”
우문소소가 입술을 가볍게 씹으며 쀼루퉁하게 말했다.
“전 당신에게 거짓말한 적 없어요.”
“그래? 그럼 하나 물을 테니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느냐?”
혁무천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자경산이 멈칫했다.
혁무천도 그의 반응을 모르지 않았다. 아마 그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이끌어내기에는 지금이 적기였다.
“말해 봐요.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 말해줄 게요.”
우문소소가 자신 있게 말했다.
혁무천은 틈을 안 주고 다그치듯 몰아붙였다.
“네 진짜 이름이 뭐냐?”
“우문소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
혁무천이 그녀의 대답을 끊으며 다시 물었다.
“우문소소냐, 아니면 자화미냐?”
“…….”
우문소소가 눈을 크게 뜨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튀어나올 듯이 커진 눈의 눈꺼풀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는 가짜 우문소소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
“널 탓할 생각 없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사실을 알고 싶은 것일 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우문소소가 입술 끝을 비틀어서 웃으며 말했다.
“왜 제가 우문소소가 아닐 거라 생각한 거죠?”
“너는 우문소소가 될 수 없으니까.”
“자신 있게 한 말 치고는 너무 이유가 박하군요.”
“그럼 자화미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봐라. 자경산에게 여동생이 있는 곳을 안다고 했다던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
빠져나갈 구멍이 틀어 막힌 질문이었다.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고, 안다고 할 경우에는 그녀를 찾아가면 거짓과 진실이 밝혀질 테니까.
하지만 우문소소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몰아붙이면 누가 말하고 싶겠어요? 저도 말하고 싶지 않네요.”
혁무천이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너의 귀가 자경산의 귀와 판박이라는 건 알고 있나?”
“그게 뭐 어때서요? 비슷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는 우문강천, 우문척, 우문양. 다 만나봤다. 그들은 귓불이 모두 비슷하지. 너만 전혀 다른 형태일 뿐.”
“그 정도로는 제가 우문소소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 않아요. 더구나 저는 여자잖아요? 여자는 다를 수 있죠.”
교묘하게 비켜나가는 우문소소의 변명에 혁무천은 할 수 없이 내밀한 부분까지 꺼내 몰아붙였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도 엉덩이에 난 흉터의 모양까지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거다.”
우문소소가 멈칫했지만 곧 눈을 흘기며 되물었다.
“제 엉덩이에 흉터가 있단 말인가요?”
“우문소소에게는 없지만, 자화미에게는 반드시 있다.”
“제 엉덩이를 보셨나요?”
단순하게 들리지만, 막상 대답하려면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여인 앞에서 여인의 엉덩이 운운한다는 게 어찌 쉬울까.
자칫하면 치한으로 내몰리기 딱 좋았다.
혁무천은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묻는 우문소소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나는 못 보았지만, 자경산은 자화미가 어렸을 때 보았지.”
그 이야기는 자경산에게 들었다.
자경산은 자화미의 엉덩이에 난 흉터가 왜 생겼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흉터는, 우문소소와 셋이서 놀이를 하다가 넘어졌을 때, 뾰족하게 부러진 대나무에 찔린 상처가 남긴 흔적이었다.
“정말 제 엉덩이에 흉터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흘겨보는 우문소소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분명히 있을 거다.”
혁무천은 우문소소가 자화미라는 걸 확신했다. 우문소소의 표정이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보세요.”
갑자기 우문소소가 묘한 미소를 띤 표정으로 말하더니, 대뜸 자신의 경장 허리띠를 풀었다.
설마 그렇게 나올 줄이야!
혁무천도 자경산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우문소소가 경장 바지의 허리부분을 잡고 내렸다.
“자, 보세요. 흉터가 있는지.”
“소공녀!”
“멈춰!”
자경산과 혁무천이 동시에 외쳤다.
우문소소의 바지가 내려가다 말고 엉덩이에 걸쳐진 채 멈췄다.
“왜요? 봐야 확인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혁무천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났다.
정말 강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힐 마음 또한 없었다.
“물론 확인해야지. 하지만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확인할 방법은 많다. 하다못해 이곳의 여주인에게 확인을 시키면 되니까.”
차가운 표정으로 그리 말한 혁무천이 자경산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서 여주인을 데려와라.”
“아, 알겠소.”
자경산이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뒤돌아섰다.
그때였다.
우문소소가 자경산을 향해 말했다.
“갈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