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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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87화
187화
“소자가 비룡장을 너무 가볍게 봤습니다, 아버님.”
천주명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실패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룡방의 황하상선을 취했다는 것이었다.
천화상단의 주인인 천궁환도 그 점은 높이 샀다.
하지만 한구에서의 실패는 그 공과를 모두 날려버릴 정도였다.
“그 일을 주도한 자가 위진광을 이긴 무천이라 했느냐?”
“예, 아버님.”
“나이가 아직 서른이 안 되었다고?”
“마룡선발대회에서 그렇게 알려졌습니다.”
“흐음, 재미있는 놈이 나왔구나.”
천궁환의 그 말에, 탁자 주위의 네 사람 시선이 모두 상석으로 향했다.
“그래봐야 칼 들고 설치는 무부일 뿐이외다, 단주.”
천주명 건너편에 앉아 있던 칠순의 노인이 별 걱정 다한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천궁환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황 장로, 무부에게 구룡상단을 좌지우지할 능력이 있으니 더 신경 쓰이는 것이라오.”
“그 말씀도 일리가 있소만… 그가 상계를 알면 얼마나 알겠소이까?”
천화상단의 팔장로 중 수좌인 황승이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때 천주명 옆에 앉아 있던 삼십 대 중반의 장한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짧은 시간 안에 구룡상단을 정리한 걸 보면 요주의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자에게서 감시의 눈을 늦춰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가 바로 천주명의 형이며, 천화상단의 후계자인 천신명이었다.
“네 말이 맞다. 그런 고수가 왜 비룡장에 들어갔는지도 의문이다. 신명이는 천안당에 명을 내려서 그자에 대해 상세히 조사하라고 해라.”
“예, 아버님.”
“가시가 있으면 쳐내야 다치지 않는 법이니라.”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천궁환이 천주명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주명이 너는 무리를 해서라도 천룡방을 최대한 빨리 정리해라.”
천주명은 이번 실패에 대해서 자신이 용서 받았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천궁환의 시선이 이번에는 황승의 옆에 앉아 있는 자에게로 향했다.
그자는 사십 대 후반쯤의 나이였는데, 다른 사람과 달리 복장이 무복이었다.
“기 대주, 다음 달에 황궁에 들어갈 것이다. 그 전에 가시를 쳐내도록 해라.”
중년무사가 공수의 예를 취했다.
“그리하겠습니다, 단주.”
***
탕!
“이런! 제기랄!!!”
능화가 탁자를 내려치며 분노를 터트렸다.
천화광은 씩씩거리는 능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두 번째 공격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특히 공격의 선두에 섰던 혈왕동은 정은맹들의 강력한 저항에 이백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만마성과 마천문에 비해 두 배나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마도무사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정은맹의 무사들은 힘없이 도망만 다니던 정파의 무사들과 달랐다.
그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고, 끈질겼다.
투기가 마도무사들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았다.
어쩌면 철혈마련과 사도맹, 귀천교가 소림사와 황보세가, 화산파를 성공적으로 공격해서 얕보았던 마음도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보다는 정파 무사들의 무공과 정신이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천 형, 공손 형! 고수들을 더 충원해서 단숨에 쓸어버립시다!”
능화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공손두가 그 말에 찻잔에서 입을 뗐다.
마천문 역시 백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혈왕동보다는 나았지만 적은 인원은 아니었다.
그가 천화광의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듣고만 있던 천화광이 시선을 들었다.
“놈들은 과거의 힘없는 정파 무사들이 아니오. 작년에 얻은 정파의 비전을 익힌 자들이 많소. 문제는 그 비전 무공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하다는 거요.”
“그러니 인원을 충원해서 당장 쓸어버리자는 것 아니오?”
능화가 버럭 소리쳤다.
천화광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능 형이 공격을 서두른다면 우리 만마성은 빠질 거요. 보나마나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허어, 천 형!”
“두 번이나 싸워보고도 모르겠소? 계획을 철저히 짜서 공격해도 쉽지 않은 상대요. 분노만 앞세워서 이길 수 있는 자들이 아니란 말이오.”
능화는 자신을 얕보는 듯한 천화광의 말에 울컥했다. 하지만 천화광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속으로 이만 갈 뿐.
하지만 곧 뭔가를 떠올린 그가 비웃듯이 말했다.
“듣자하니 무천이란 놈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하던데, 혹시 그놈 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것 아니오?”
천화광이 차가운 시선으로 능화를 바라보았다.
“무 형과 나 사이의 일은 능 형이 상관할 일이 아니오.”
“아, 뭐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니오. 그저 그놈의 뭐가 그리 잘나서 천 형이 좋아하는지 몰라 한 말일 뿐.”
능화가 은근슬쩍 무천을 물고 늘어지자, 그토록 냉정하던 천화광도 발끈해서 속에만 담고 있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능 형도 알잖소? 싸워봤을 테니까. 아니, 능 형의 머리는 모를지 몰라도 그 코는 알겠지.”
천화광의 말에 능화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금 나를 모욕하겠다는 거요?”
“내가 언제 능 형을 모욕했단 말이오? 오히려 모욕을 한 건 내가 아니라 능 형 같소만.”
천화광이 다시 받아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식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때 공손두가 턱, 하니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무천 그 친구, 잘난 자는 잘난 자지. 이 공손두가 강호에서 인정하는 자 중 하나니까.”
공손두까지 그리 말하자, 능화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흥! 그딴 놈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저 곰새끼까지 감싸는 거야?’
반면 천화광은 욱했던 감정을 빠르게 식혔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그딴 말에 흥분하다니.
“우리끼리 다투어봐야 정파 놈들만 좋아질 뿐이오.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능화도 천화광과 더 다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곳은 만마성의 권역. 지금이야 동행하는 사이지만, 언제 어느 때 칼을 겨누는 적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도 그 이야기는 그만하겠소.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건지, 천 형이 의견을 말해보시오.”
천화광도 아직은 능화가 필요했다.
“일단 놈들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해야 하오. 정확한 인원, 무공 수준, 가능하면 놈들의 계획까지.”
“하지만 이제 조사해서 언제……?”
“지금 조사 중이오. 아마 삼사일이면 놈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들어올 거요.”
“그래요? 그럼 나흘만 기다리면 되겠군.”
천화광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능화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지금 무덤을 파고 있다는 걸.
‘분노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법이지. 미안하지만 네가 제물이 되어줘야 할 것 같다, 능화.’
마음이야 그래도 겉으로는 담담히 말했다.
“그 시간이면 성에서 출발한 무사들도 도착할 거요. 사람을 보냈으니까.”
“역시 천 형이오. 그 사이 명령을 내려서 미리 준비를 해놓다니.”
능화의 표정이 절반쯤은 풀어졌다.
화가 다 풀어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정파 놈들에 대한 복수가 먼저였다.
공손두도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어서 천화광을 바라보았다.
‘역시 만만치 않군.’
그때 천화광이 말했다.
“다음 공격에서는 마천문이 선두에 서주셨으면 하오, 공손 형.”
공손두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두에 서기도 애매하고, 거부하기도 어정쩡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그가 말했다.
“선두를 맡는 거야 어렵지 않네. 대신 혈갑귀마대를 빌려주게.”
혈갑귀마대는 만마성 최강의 전력 중 하나였다.
특히 그들의 무자비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수는 정파무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총 인원은 이백열두 명. 천화광은 이번 싸움을 위해서 오십 명을 데려왔다.
그리고 두 번에 걸친 싸움을 치렀지만 사상자는 열 명 정도밖에 나지 않은 상태였다.
“좋소, 그렇게 하지요.”
천화광은 공손두의 청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만마성도 후미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일부 전력을 선두에 내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
“후후후후, 만마성이 완전히 체면을 구겼군.”
우문척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정은맹에 대한 공격은 만마성이 주도했다. 마천문과 혈왕동이 함께 하긴 했지만, 곁다리일 뿐이다.
그런데 정은맹 놈들을 멸절시키지는 못할망정 비등한 결과를 내고 후퇴했다지 않는가 말이다.
경쟁관계인 만마성의 체면이 구겨지면 그만큼 철혈마련의 위상은 올라갈 터.
자신이 천화광이나 공손두에 비해서 한발 앞섰다고 할 수 있었다.
“어리석은 놈들. 내가 정은맹을 바로 공격하지 않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야지.”
전에 정은맹과 정면으로 붙어본 그였다.
수십 년 세월 다져온 정은맹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은맹은 본산에 파묻혀서 숨죽이며 지낸 구대문파나 팔대세가와 달랐다.
게다가 그들은 정파의 비전무공을 얻었지 않은가.
자신이 분석해본 정파의 비전무공은 마도의 최상승 무공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반반의 승률.
우문척은 철혈마련과 정은맹이 전력을 쏟아 대결한다 해도 그 이상의 승산은 없다고 봤다.
하물며 최강의 전력 중 일부만 합류한 삼파의 전력으로는 그들을 이긴다 해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좌우간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는군.”
그는 혼돈이 더욱 격화되는 걸 원했다.
한번쯤은 세상이 뒤집어져야만 한다.
뒤집어진 세상을 바로세운다면 사람들도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공.”
막 술잔을 잡아가던 우문척은 이마를 찌푸리며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는 누구도 그의 사색을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
방해하는 자에게는 참혹한 벌을 주었다.
그럼에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말이다.
“무슨 일이냐?”
“대공을 뵙기 위해 온 자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느냐?”
“속하가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만남이 불필요한 자라면 네 눈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니, 눈 한 알을 뽑아버릴 것이니라. 아니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물러가라.”
살벌한 우문척의 말에도 밖에 서 있는 자는 물러가지 않았다.
“무천이란 자입니다.”
“음?”
우문척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무천? 흐음, 무천이란 말이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흔쾌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밖에는 삼십 대 장한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우문척의 직속 호위대 수장인 마혼이었다.
“어디에 있느냐?”
“향산의 창화객잔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만 전했다 합니다.”
“그래? 가자.”
***
향산은 철혈마련 서문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
이백여 호의 작은 마을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많다 보니 객잔이 세 개나 있었다.
그 중 한 곳, 창화객잔에는 단 한 명의 손님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주인은 불만이 없는 표정이었다. 다른 손님을 받지 않는 대가로 은자 다섯 냥을 받은 것이다.
밤이 깊어지는 술시 말쯤 손님이 한 명 더 들어왔다.
오십 대 나이의 주인이 그를 보고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단 하나 있는 손님이 손을 들어서 제지한 것이다.
뒷짐을 지고 객잔으로 들어온 우문척은 곧장 무천 앞으로 걸어갔다.
혁무천의 앞에 마주앉은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즘 이름이 많이 들리더군.”
“내 귀에는 그대 이름이 더 많이 들리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