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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8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84화

184화

 

 

홍택은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율이명이 무슨 이유로 비룡장을 방문했단 말인가?

그것도 수하 무사를 백 명이나 대동하고!

말단이긴 하나 그 역시 마도십문의 하나인 마룡성의 성주다. 때문에 율이명의 조금은 독특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지 멋대로 구는 놈인데… 겁대가리도 없고…… 설마 비룡장과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검마보와 비룡장이 사이좋게 지낸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비룡장이 검마보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긴장해 있을 때, 잠깐 밖으로 나갔던 백리궁이 들어왔다.

취룡노사가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장주, 어찌된 일이오? 듣자하니 단천검마가 수하들과 함께 왔다고 하던데…….”

백리궁이 포권을 취한 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아마도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온 것 같습니다. 며칠 후에 올 줄 알았는데…… 하, 하, 하.”

멋쩍은 웃음을 짓는 그를 모두가 쳐다보았다.

“협약이라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협력하자는 협약이지요. 앞으로 검마보에서 비룡장에 정예무사 일백을 상주시킬 것입니다.”

“……!”

“……?”

“그리고 협력하는 김에 사업도 일부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백리궁은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었다.

구주의 주인들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능구렁이 같던 백리궁이 이제는 이무기만큼이나 커보였다.

검마보와 손을 잡다니!

그것도 동등한 입장으로!

거기다 사업도 같이 한다고?

이제는 천하의 누구도 비룡장을 얕볼 수 없으리라.

물론… 구룡상단 역시!

“정말…… 그 친구 말대로 될지도 모르겠군.”

취룡노사가 혁무천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홍택과 남교청, 전금환 역시 혁무천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최소한, 힘없는 상인들이 권력과 강호의 칼 아래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지는 않게 될 겁니다.”

“팔대마세라 해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들 겁니다.”

“힘부터 키울 생각이지요. 마도든 정파든, 그 어느 세력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그 일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전율이 일었다.

 

***

 

율이명은 함께 온 장로 둘과 무사들을 객당에서 쉬게 하고 혁무천의 방으로 갔다.

“근데 왜 오늘 오라고 했나?”

혁무천과 마주앉은 율이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이 길일이더군요.”

“호오, 그래?”

혁무천은 율이명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날이 길일이지 뭐.’

사실 어제 오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한 후 오늘로 정했다.

검마보와 비룡장 사이의 일을 알게 되면 천룡방이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아니나 다를까, 천룡방의 모용수가 비룡장을 얕보고 본색을 드러냈다.

천화상단에서 절대 경지에 오른 고수가 올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그 바람에 천룡방을 시원하게 퇴출시키고, 오늘 구주의 주인들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아마 이제는 취룡노사와 몇몇 구주의 주인들도 자신의 말이 그저 희망사항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협약, 장로들이 좋아하더군.”

율이명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다행이군요.”

검마보 장로들이 반긴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동안 율이명은 돈에 대해 너무나 무심했다.

자잘한 장사는 체면이 손상된다며 안했고, 큰 장사는 상대편 사정만 봐주다가 별 이득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검마보라는 이름조차 없었다면 사기를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비룡장과의 협약으로 안정된 수입을 얻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드디어 장강을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만마성과 철혈마련 때문에 장강을 건너가는 걸 자제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장강을 건너면 권역을 침범한다고 여길 테니까.

그런데 비룡장과의 협약으로 건너가는 것이니 명분이 섰다.

그래도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혹시 장로들의 마음도 생각하고 제안한 거 아닌가?”

율이명이 혁무천을 빤히 보며 물었다.

혁무천은 미소를 지었다.

“좋으면 된 것이지요.”

“킁, 역시 그랬군.”

사실 그 부분을 짚은 사람은 목량이었다.

목량은 율이명보다 장로들이 좋아할 제안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율이명이 받아들여도 장로들이 싫어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동 가는 어디 있나?”

“수련 중입니다. 아마 한 시진 정도는 더 있어야 운공을 마칠 겁니다.”

“호오, 열심인데?”

“어제 천룡방에서 데려온 자가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율이명은 ‘그런데?’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다음 말을 듣더니 표정이 급변했다.

“공부가 절대경지에 오른 자더군요.”

안색이 급격히 굳어진 율이명이 혁무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천룡방 따위가 어떻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동 형이 작심하고 수련을 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천화상단을 상대하다 보면 그런 자들을 만날지도 모르니까요.”

“천화상단?”

“예, 알고 보니 그자가 천화상단의 무사라지 뭡니까.”

율이명의 눈이 커졌다.

무림의 고수도 아니고, 상가의 무사가 절대경지의 고수라고?

하지만 놀랄 일은 아직도 한 번 더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고수가 천화상단에 두어 명 더 있을 것 같다는 것이지요.”

“…….”

“그리고 우린 그 천화상단을 상대로 해서 싸워야만 합니다. 아마 우리가 싸우기 싫다고 해도 그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천룡방의 황하상선을 집어삼킨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할 테니까요.”

“제기랄…….”

불쑥 한소리 내뱉던 율이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천화상단이 절대경지의 고수를 보냈는데… 그냥 조용히 갔을 리는 없고… 싸워봤나?”

“내기를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겼나?”

그렇게 묻는 율이명의 목소리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혁무천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담담히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

개소리다.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를 운으로 이겼다고?

율이명이 혁무천을 흘겨보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제대로 한번 붙어보려고 했는데 말아야겠군.”

자신은 아직 절대경지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혁무천이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를 이겼다지 않는가.

붙어봐야 깨질 것이 분명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만수무강에 도움이 된다.

게다가 동대안이 그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수련을 하고 있는 거라면, 상대가 그만큼 강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때, 혁무천이 넌지시 말했다.

“막부산으로 바로 돌아가실 것이 아니라면… 며칠이라도 함께 수련을 하며 무공을 논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무공을 논해보자고?”

“혹시 압니까? 잘하면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율이명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화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고수에게 벽을 하나 넘어선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운이 좋으면 한순간에 넘어설 수도 있지만, 때로는 평생을 가도 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벽을 넘어선다면 초절정경지에서 절대경지에 올라설 수 있으리라.

가능할까?

어쨌든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뭐, 며칠 쉬어갈 생각이긴 한데… 쉬는 김에 수련이라도 해볼까?”

혁무천은 은근슬쩍 자신의 말을 받아들인 율이명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미끼를 물고 낚시 바늘에 걸려서 버둥거리는 커다란 잉어를 보는 기분이었다.

 

***

 

구룡대총회는 천룡방을 대신해서 풍혼문을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풍혼문주 소청문과는 이야기가 된 터라 나머지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이틀에 걸친 구룡대총회가 끝나자, 구주의 주인들은 사흘째 날 아침식사를 마친 후 비룡장을 떠났다.

율이명은 며칠 더 머무르며 혁무천과 동대안, 송비, 철상 등과 무공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가끔은 비무도 하면서.

검마보 장로 둘이 ‘체신 머리 없이 무슨 짓이냐?’고 면박을 줬지만 그래도 율이명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닷새가 지나자, 검마보의 장로들도 은근슬쩍 비무에 끼어들었다.

그들도 천생 무인이었다.

상승의 절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흥이 일지 않으면 어찌 무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이봐, 송비라고 했나? 자네 나하고 한판 하세.”

진설검 유동학은 송비를 택했고,

“어이, 땅딸막한 친구. 내가 한 수 가르쳐주지.”

초혼도 이곽호는 철상을 택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두 장로는 목에 힘을 주고 다니지 않았다.

송비와 철상을 상대해서 삼십 초식도 넘기지 못하고 패한 것이다.

겉으로는 승패가 결론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절정고수인 그들이 어찌 모를까. 상대가 손에 사정을 두었다는 걸.

 

그렇게 팔 일째 되던 날이었다.

목량이 율이명과 함께 있는 혁무천을 찾아왔다.

왠지 목량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본 혁무천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만마성과 마천문, 혈왕동의 무사 천여 명이 북상해서 정은맹과 한판 붙었다고 합니다.”

“그래?”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정확한 시기를 몰랐던 것일 뿐.

반면 율이명은 처음 듣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말인가?”

“예, 보주.”

“으으음, 중원이 한바탕 시끄러워지겠군.”

혁무천은 율이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굳이 많은 말을 할 필요 없었다. 이미 율이명의 두 눈에서 불씨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곧 가슴까지 불길이 번질 터…….

‘말 안 해도 알아서 뛰어다니시겠군.’

혁무천은 편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량, 장주님을 만나야겠다. 가자.”

“예, 대형.”

 

***

 

등주 북부에서 벌어진 정은맹과 마도세력과의 싸움은 서로 간에 큰 피해를 입고서 물러섰다.

마도의 정파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이미 소림과 황보세가, 화산파가 공격을 받으면서 예상되었던 터였다.

거기다 만마성이 주축이 된 마도무사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혈풍이 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은맹의 강력한 대응은 의외였다.

게다가 비등하게 나온 결과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이었다.

그 일은 정파 세력에 희망을, 마도 세력에게는 분노와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특히 이번 싸움으로 인해서 정파의 청년고수 네 사람의 이름이 창천으로 떠올랐다.

창천신검 남궁무룡의 아들, 남궁욱.

벽력신도 팽조환의 손자, 팽담.

화산파의 명진.

오십 년 전에 몰락한 것으로 알려진 위지세가의 위지대현.

정파 원로들의 도움을 받아서 일 년 만에 정파의 비전무공을 칠성 이상 익힌 그들은 정은맹의 장로들에게 뒤지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그들 외에도 여섯 명의 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니, 정파의 사람들은 그들을 사룡육호라 부르며 환호했다.

그런데 그 일이 강호에 워낙 큰 충격을 준 탓인지 섬서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혈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칠 일 사이, 정체불명의 적에게 섬서의 마도 문파 세 곳이 피로 물들었거늘.

죽은 사람들의 숫자만 칠백여 명.

혈겁이 일어난 곳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했다.

 

***

 

천하무림에 거대한 피의 회오리가 돌기 시작할 무렵, 혁무천은 비룡단을 이끌고 비룡장을 나섰다.

인원은 서른두 명. 이번에는 송비와 철상도 동행했다. 한유림과 구원, 그리고 자경산도 있었는데, 은설은 남장을 한 채 혁무천 바로 옆에서 걸었다.

나머지 스무 명은 비룡장에서 추린 무사들로 모두 일류고수 수준에 이른 자들이었다.

혁무천이 비룡단을 이끌고 나선 것은 이창의 역성에 지부를 설립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백리궁의 허락도 떨어졌고, 준비도 해놓은 상태였다.

한구를 벗어난 혁무천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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