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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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82화
182화
마침내 사시가 되자 구룡대총회가 시작되었다.
예전이었다면 전날부터 축제분위기였을 것이다. 곳곳에서 대소가 터지고 화기애애하게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구룡대총회는 웃음소리는커녕 침 삼키는 것조차 조심했다.
회의가 열리는 비룡전의 회의실은 더더욱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구주의 대표들이 자리에 앉자 시비가 차를 가져와 차를 따랐다.
사륵, 사르륵…….
시비들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폭풍에 쓸린 갈대밭의 스산한 소리 같고,
쪼르르르르.
차를 따르는 소리가 폭포수의 굉음처럼 넓은 회의실을 울렸다.
시비들이 차를 따르고 물러나자, 비룡장주 백리궁이 일어났다.
그는 좌정한 구주의 대표들을 둘러본 후 말문을 열었다.
“먼 길을 달려와 구룡대총회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단은 인사말로 시작했다.
하지만 곧 본론으로 들어가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천룡방은 그동안 구룡 구주의 수장이면서 다른 팔주를 휘하 조직처럼 부렸습니다. 그로 인해 구주의 다른 상가가 인적 물적으로 손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또한 구주의 거래에 대해 관여하는 등 수 차례에 걸쳐서 구룡의 율법을 어겼소이다.”
차분하게 말하던 백리궁이 모용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여 우리 비룡장은, 천룡방을 구룡상단의 수장으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천룡방의 구룡상단 단주 지위를 박탈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깊이 가라앉은 듯 느껴지던 분위기가 한 차례 출렁였다.
잠시 죽음과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마룡성주 홍택과 수룡방주 남교청은 침묵이 어색한 듯 찻잔을 잡아가며 슬쩍슬쩍 눈치를 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옅은 미소를 띠고 있던 취룡노사가 오른손을 들었다.
“우리 취룡원은 비룡장주의 제안에 찬성하는 바요.”
전금환이 모용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금룡장도 비룡장과 같은 생각입니다.”
이후 소룡장, 철룡가, 마룡성, 수룡방도 찬성을 표했다.
다만 도룡가 가주 서화종은 마지막까지 찬반을 표하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도기는 절반이 천룡방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그렇다 해서 천룡방을 위해 일하지는 않았지만.
천룡방이 도룡가의 도기를 파는 것은 도기의 품질이 좋기 때문. 도기의 품질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거래가 끊길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쪽이든 다수가 선택한 곳을 수장으로 인정할 거요.”
더 이상 논의 자체가 필요 없었다.
일곱 명 찬성에 한 명 기권, 한 명 반대. 이미 결정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모용수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분노도, 실망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 될 거라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모용 공자가 천룡방의 대표로 왔으니 오늘의 결정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백리궁이 모용수를 보며 말했다.
그제야 모용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 안을 둘러본 그가 구주의 주인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먼저 이런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서 천룡방을 대신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버님께서도 그간의 일에 대해서 굳이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 모든 일이 구룡상단을 위해 한 일이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의외로 천룡방이 순순히 인정하고 나오자 구주의 주인들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 백리궁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구룡상단을 위해 구룡의 형제들을 곤란하게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안 드시는가?”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정말 그런 마음이었거늘. 그리고 만마성의 일은 비룡장의 잘못도 큽니다. 비룡장이 먼저 금룡장의 거래를 빼앗지 않았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미소까지 띤 모용수의 말에 백리궁이 냉소를 지었다.
“우리가 아닌 만마성에서 먼저 거래를 청해온 거네. 그건 구룡의 율법에도 어긋나지 않지.”
“금룡장이 거래하고 있으니,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있었지 않습니까?”
“천룡방에서는 그동안 그리 하셨던가? 우리 비룡방의 거래처가 먼저 거래를 청했다면서 비룡방의 거래처를 뺏어간 것만 해도 최소 세 번은 되는 것으로 아네만.”
그 일로 비룡방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저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럼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저희 천룡방이 뭐 아쉬워서 비룡장의 거래처를 빼앗으려 하겠습니까?”
얄미울 정도로 교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말투였다.
속이 끓을 만한 데도 백리궁은 미소로 대응했다.
“그래, 빼앗으려 하진 않았겠지. 어차피 천룡방은 비룡장 따위야 인상 한번 쓰면 따를 수밖에 없는 수하 정도로 생각했을 테니까.”
은근슬쩍 비꼬는 그의 말에 모용수의 이마가 씰룩였다.
백리궁은 그에게 반발할 틈을 주지 않고 전금환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전 장주, 우리 비룡장 사람들을 공격하라고 한 곳이 천룡방 맞습니까?”
전금환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렇소. 모용 방주가 직접 내린 명령이오.”
“홍 성주, 마룡성에 금룡장을 장악하라고 한 사람이 누구요?”
홍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룡방의 모용 방주요.”
백리궁의 시선이 다시 모용수에게로 향했다.
“이 백리궁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구룡을 위한 일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소. 그러므로…… 천룡방을 구룡에서 정식으로 퇴출시키자는 제안을 하는 바요.”
모용수는 백리궁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나올 줄 생각을 못한 듯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아무리 본 방의 처리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하나 구룡에서 강제로 쫓아낼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사실 본 방과 비룡장 사이의 일이 커진 것도 비룡단주 무천 때문입니다. 본 방에 대한 잘못을 논하려면 그자에 대한 것부터 논해야 할 겁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혁무천이 들어오며 말했다.
“구룡의 율법 중 이런 것도 있더군.”
모용수는 보자마자 그가 바로 문제의 무천이란 자임을 눈치 챘다.
“일개 단주가 구룡대총회에 얼굴을 들이밀다니, 밖으로 꺼져라!”
“웃기는 자군.”
“뭐야?”
“천룡방의 대표로 왔다 해서 똑똑한 줄 알았더니, 멍청한 동생이나 별 차이가 없군.”
“네놈이 감히……!”
“내가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을 것 같은가? 여기 계신 분들의 허락이 없었다면 아무런 제재도 없이 들어올 수 있겠나?”
“…….”
사실이라면 모용수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혁무천은 조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율법을 보면, ‘구룡에 속한 상가는 동료에게 해로운 거래를 해서는 안 되며, 은자 만 냥 이상의 거래일 경우, 상단과 경쟁을 하는 곳에 이로운 거래를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되어 있더군. 맞나?”
“그래서?”
“조금 괴상한 율법이긴 한데, 어쨌든 율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천룡방은 그 율법을 어겼더군. 반드시 지켜야 할 구룡의 율법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황하상선을 천화상단에 판 일.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그, 그게 무슨……?”
“이백만 냥에 팔았지 않나?”
“…….”
미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구주의 주인들은 눈을 크게 뜨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특히 남교청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황하상선이 천화상단에 넘어갔다면 가장 곤란해지는 곳이 바로 수룡방이었다.
“단주! 그게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저도 엊그제서야 알았지요.”
“모용 공자! 말해보게! 어찌된 일인가?”
당황한 모용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일은 철저한 비밀이다.
부친과 자신, 그리고 천화상단만이 알 뿐.
그런데 천화상단에 황하상선을 넘긴 것뿐만 아니라, 정확한 금액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설마 천화상단에서 발설하지는 않았을 터, 도대체 어디에서 샜단 말인가?
‘빌어먹을!’
“저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무천 단주가 저보다 천룡방의 일을 잘 아나 봅니다.”
모용수는 일단 발뺌부터 하고 봤다.
증인이든 증거든 눈앞에 내놓으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 사이 놈을 처리하면 된다.
“무천, 듣자 하니 무공 실력이 제법이라고 하던데, 우리 쪽 사람을 실력으로 이기면 너를 인정하마. 그리고 본 방의 잘못에 대해서 사과하겠다. 어떠냐?”
혁무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 같군. 어차피 지금 세상은 힘 있는 사람이 옳으니까.”
난데없는 비무가 벌어졌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마룡선발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무천이다. 비룡장이 세를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실력을 궁금해 했다.
혁무천의 상대는 사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나는 위진광이라고 하네.”
의외로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그를 얕보지 않았다. 모용수와 함께 비룡장에 들어올 때부터 주시했던 자였다.
‘천화상단에서 붙여준 고수인가 보군.’
천룡방에는 있을 수 없는 진짜 고수였다.
무려 절대경지에 도달한 고수.
“무천이오.”
위진광이란 자는 조소를 지었다.
혁무천이 아무리 비룡단을 이끌고 유명해졌다 해도 그의 눈에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스르릉.
검을 뽑은 그가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숨이라도 건지려면 전력을 다해야 할 거다.”
혁무천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실력은 괜찮은 거 같은데, 세상을 알려면 아직 멀었군.”
위진광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에게 세상 운운하다니.
“건방진 놈…….”
“검은 입으로 펼치는 게 아니야.”
혁무천은 여전히 무심하게 말하며 천망검을 엄지로 밀어 올렸다.
툭.
순간, 위진광이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며 검을 뻗었다.
가히 번개가 무색할 정도로 빠른 검격이었다. 그의 검첨에서 영롱한 검기가 회오리처럼 휘돌며 뻗어나갔다.
혁무천은 그 자리에 서서 위진광의 검격에 대응했다.
위진광의 검은 빨랐다. 하지만 동대안의 멸혼검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검에 실린 강맹함도 자신이 익힌 대천룡구검세보다 약했다.
떠더더더덩!
두 사람의 검세가 뒤엉키고 충돌하며 검기의 파편이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쩌저적! 콰르릉!
마치 검기의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직경 삼 장 안이 온통 두 사람의 검기로 뒤덮였다.
혁무천은 팔성의 공력으로 대천룡구검세를 펼쳤다. 다른 검법으로는 위진광의 검세를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는 또 다른 검법이 있긴 했다. 대천룡구검세보다도 더 강한 검이.
하지만 그 검은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면 드러내선 안 되었다.
‘이, 이런……!’
위진광은 자신의 검세가 너무나도 쉽게 막히자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처음에만 해도 오만함과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초수를 더해가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공력은 물론, 초식의 정묘함과 위력까지 어느 것 하나 앞서는 게 없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상대가 그 와중에도 전력을 다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혁무천이 한 발 더 다가가며 천망검을 흔들었다.
검첨에서 청룡 두 마리가 솟구쳤다.
대천룡구검세 중 여섯 번째 초식인 쌍룡분천세(雙龍分天勢).
쌍룡은 곧장 허공을 둘로 가르며 위진광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아!
시퍼런 검기로 이루어진 쌍룡이 동시에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걸 본 위진광은 이를 악물고 전 공력을 쏟아냈다.
콰르르르릉!
대지와 하늘이 동시에 뇌음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