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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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80화
180화
만마성에세 나온 마도무사들이 북쪽으로 달려갈 때, 혁무천은 막부산 자락의 검마보를 방문했다.
은설의 속마음을 안 이후여서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이었다.
“하하하, 이게 누군가? 그 유명한 비룡단주 무천 아닌가?”
율이명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혁무천을 맞이했다.
마치 집을 떠난 형제가 십 년 만에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보고 과거의 율항을 떠올렸다.
성격이 비슷해서가 아니었다.
아니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많이 달랐다.
율항은 표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무게감이 있었고, 조금 안 좋게 말하자면 답답했다.
그에 비하면 율이명은 매우 밝은 성격이었다. 웃음도 자주 보였다.
솔직히 평가하면 율항보다 더 정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빚 받으러 온 사람을 이렇게 반길 줄은 몰랐군요.”
“으잉?”
율이명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빚쟁이를 좋아할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었다.
“킁, 그거 꼭 받아야 하나?”
“검마보도 손해는 아닐 겁니다.”
율이명의 눈빛이 반짝였다.
“손해는 아닐 거라고?”
“그렇습니다. 물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고 막부산에서만 지내고 싶다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흠, 일단 들어보고 난 다음에 판단을 내리지. 들어가세.”
혁무천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본론을 꺼냈다.
“지금 강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실 겁니다.”
율이명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시끄럽다고 하더군.”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다. 폭풍전야나 다름없다.
“철혈마련과 사도맹, 귀천교가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는데, 곧 만마성과 마천문, 혈왕동도 움직일 겁니다.”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비룡장을 출발한 이후에 일어난 일이어서 혁무천도 상세한 것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래?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군.”
“정파도 이번에는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버틸 수 있을까?”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라면.”
“흐음, 자네가 그리 판단하다니. 그동안 정파가 힘을 많이 기른 모양이군. 그런데 그 일이 우리 검마보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얻을 것도 많아지는 법이지요.”
“어렵군. 쉽게 말해보게.”
“비룡장에 정예 백 명만 보내주십시오.”
“백 명?”
“만 냥의 빚은 없는 것으로 하고, 비룡장 소유의 무창 상권 중 일부를 넘겨주지요.”
“호오…….”
“아마 일 년에 은자 만 냥은 꾸준히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은자 만 냥.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천 명이 일 년 간 먹고살 수 있는 돈 아닌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긴 한데…….”
“협역을 맺으면 비룡장 소유의 무창 상권을 절반까지 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매년 은자 이만 냥은 챙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협약?”
“비룡장과 상호 협력한다는 협약을 맺자는 것이지요.”
“좋은 말이긴 한데… 뭔지 몰라도 손해 보는 느낌인데?”
“이도저도 싫으면 그냥 돈으로 주면 됩니다.”
“음?”
율이명이 눈을 살짝 치켜떴다.
하지만 혁무천은 눈썹 한 올 흔들리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
율이명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더니, 우뚝 멈추고 답했다.
“까짓 꺼, 협약…… 맺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해보게. 뭘 하려는 거지?”
율이명이 나름 정곡을 찔렀다 생각한 듯 눈에 힘을 주고 물었다.
“단순히 비룡장의 안전을 위해 우리 검마보 무사들을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혁무천은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서 입술을 축였다.
겉으로 드러난 성격과 달리 눈치가 제법 빨랐다.
하지만 궁금한 사람은 율이명이지 자신이 아니었다. 급히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느긋이 차 맛을 음미한 혁무천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볼 생각입니다.”
율이명의 눈이 커졌다.
“설마… 천하의 주인이 되겠다는 건가?”
“귀찮게 뭐 하러 주인을 합니까?”
“음?”
예상치 못한 대답에 율이명이 멈칫했다.
천하의 주인이 되는 게 귀찮은 일이라고?
“보주는 천하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건…….”
가만 생각해 보니 자신도 귀찮은 일은 싫었다. 그리고 천하의 주인이 되면 귀찮은 일이 무척 많을 것 같았다.
“나도 귀찮은 건 싫네. 일만 하다 죽고 싶진 않거든. 아마 내가 일만 하고 있으면 딸이 제일 싫어할 거야.”
조금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어느 정도 그런 대답을 예상했다.
과거 율항도 대마천이 천하마도를 지배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었다.
일거리만 많아진다며.
“돌아가는 판이 마음에 안 들어서 뒤집어보겠다는 겁니다. 세상이 꼭 팔대마세를 중심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무서운 말이었다.
팔대마세를 부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도 실소가 나왔다.
-이 친구가 미쳤나?
율이명은 그렇게 묻고 싶은 걸 겨우 참고 돌려서 물었다.
“그들을 뒤엎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가만 보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무력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흐음, 그건 그렇지. 황제의 권력도 있고, 황금의 힘도 만만치 않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하던 율이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럼 자네가 원하는 것이…….”
이번에는 혁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를 보는 것보다 황금을 움직이는 게 더 재미있더군요.”
율이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이가 없군. 이 율이명을 곤란하게 만든 고수가 장사꾼이 되겠다니.”
단순한 장사꾼이 되려는 게 아니다.
세상을 뒤엎는 장사꾼이 되겠다고 한다.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돈으로…….”
“한다니까!”
***
혁무천이 율이명과 협상을 하고 있던 그날.
낙양의 천룡방 화려한 내실에서도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었다.
“좋네. 그렇게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방주.”
이제 서른이 조금 넘어 보이는 준수한 사내가 미소를 띤 채 포권을 취했다.
모용금적도 마주 포권을 취했다.
“천화상단에서 이리 마음을 써주니 고맙네.”
그는 속이 쓰렸지만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젠장! 황하상선을 어떻게 키웠는데!’
황하상선을 천화상단에 넘겼다.
은자 이백만 냥.
가격 자체만 따지면 큰 손해가 아니었다.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기로 했으니 이익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천룡방의 주력이 천화상단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아버님께서도 천룡방과 형제가 된 것을 만족해하실 겁니다.”
“그리 생각해주신다면야 고맙지.”
“여름이 지나면 황궁에 납품이 시작될 겁니다. 올해 납품은 작년보다 더 많을 거라 예상되기 때문에 천룡방에도 상당한 양이 배정될 겁니다. 준비를 미리 해놓으십시오.”
“허허허, 걱정 말게. 최상의 물건을 준비해놓겠네.”
“그건 그렇고…….”
천화상단주 천궁환의 둘째 아들인 천주명은 은근한 어조로 말끝을 끌었다.
그러고는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구룡대총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갑작스런 그의 말에 모용금적은 이마를 찌푸렸다.
“굳이 갈 필요가 있겠나?”
“구주의 상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으으음.”
“구룡상단의 수장 자리를 순순히 넘겨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누군 순순히 넘겨주고 싶을까?
모용금적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자, 천주명이 말했다.
“구룡대총회에서 혼란한 상황이 벌어지면 구룡상단의 화합도 흔들리겠지요. 성과가 있으면 저희도 그에 대한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흐음…….”
모용금적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눈빛도 달라졌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참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큰 애를 보내겠네.”
천주명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도 부탁 하나 하지.”
“말씀하시지요.”
“비룡장의 무천이란 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아들의 몸에 손을 댄 그놈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네. 사람을 좀 빌려줬으면 좋겠어.”
천주명의 미소가 짙어졌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미소였다.
“안 그래도 그자에 대해서 저희가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그자에 대한 처리는 저희가 맡지요.”
***
구룡대총회 칠 일 전.
율이명과 원만한 협상을 마치고 비룡장으로 돌아온 혁무천은 은설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무공의 경지를 더 올려야 했다.
은설도 자신이 강해야 혁무천이 편해진다는 걸 알기에 군소리 없이 수련에 열중했다.
그날 오후, 혁무천은 수련을 마친 그녀를 방으로 부른 다음, 신도영으로부터 얻은 태금신단을 차와 함께 건넸다.
“이거, 지금 복용해라.”
“이게 뭐예요?”
“좋은 약.”
“좋은 약이면 오빠가 드셔야죠. 요즘 힘드시잖아요.”
“난 안 먹어도 돼. 먹어봐야 별 효과도 없을 거고. 잔말 말고 어서 먹어.”
은설은 손에 쥐어진 태금신단을 내려다보았다.
향만 맡아도 속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무엇인지 몰라도 무척 귀한 약 같았다.
“뭐해? 약효 달아나기 전에 먹으라니까.”
혁무천이 짐짓 채근하듯이 강요하자, 은설도 할 수 없이 차와 함께 태금신단을 복용했다.
혁무천은 태금신단이 완전히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가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속에서 열기가 일기 시작하면 무진일선공으로 대주천을 행해라. 신단의 기운이 진기로 화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들었다. 내가 기운의 인도를 도와주마.”
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단이라고 했다. 일반 단약에 그런 거창한 이름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혁무천이 무척 귀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런 약을 길거리에서 산 과자처럼 건네주다니.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을 열면 눈물부터 나올 것 같았다.
“또 울려고?”
“안 울어요. 내가 뭐 울보인 줄 알아요?”
은설이 살며시 눈을 흘겼다. 그런데 흘긴 눈의 기다란 눈썹에 이슬이 잘게 맺혀 있었다.
일각 후.
은설이 운공을 시작했다.
무진일선공은 혁무천이 무명도의 동굴벽에서 발견한 후 은설에게도 가르쳐주었다.
그녀의 현 수준은 칠성 정도. 이제 막 팔성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혁무천은 그녀의 뒤에 앉아서 그녀의 명문혈에 우수를 얹었다.
곧 부드러운 기운이 그녀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혁무천의 진기는 은설의 진기를 부드럽게 감싼 후 기경팔맥 중 임맥(任脈)을 따라 이동했다. 그 와중에 몸 전체로 퍼져 가는 약효를 끌어 모아서 진기에 녹였다.
그런 연후에는 독맥을 통해서 진기를 이동시켰다.
은설의 임독 양맥은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하게 뚫려 있었다. 게다가 태금신단의 약효도 짐작하고 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이 정도 강함이라면…….’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 혁무천은 우수에 공력을 조금 더 주입시켰다.
독맥을 따라 흐르는 진기도 좀 더 강해졌다.
인도하는 길을 따라 위로 솟구친 진기는 수족삼양경이 만나는 대추혈을 지나서, 뇌로 들어가기 직전의 풍부혈에 도달했다.
대추혈에서 수족삼양경에 흩어진 기운이 합쳐진 진기는 힘을 조금도 잃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진 상태로 목 뒤쪽 풍부혈을 통과했다.
그 후 뇌를 통해서 곧장 머리 꼭대기 백회혈까지 치고 올라가는가 싶더니, 위경과 방광경이 만나는 이마의 신정혈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렇게 대장경과 위경이 만나는 수구혈까지 진기가 내려가자 남은 것은 태단혈과 윗잇몸 안쪽의 은교혈만이 남았다.
진기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약해지기는커녕 처음보다 배는 더 강했다.
대주천을 하는 중이니 은설도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있을 터.
혁무천은 내친 김에 은교혈까지 그대로 진기를 인도한 후, 임맥의 최상단인 승장혈로 인도했다.
진기가 용틀임을 하듯이 꿈틀거리며 치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