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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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18화
218화
“아! 무천 말입니다.”
혁무천은 뜬금없이 율이명의 동생이 되었지만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율이명과 의형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최고의 정예무사를 백 명이나 대동하고 왔다던데, 정말 단순히 무 단주를 만나기 위해서 온 건가?”
“아아, 물론 그건 이유 중 하나지요.”
“그럼……?”
“아우가 도와달라고 해서 왔습니다. 아우가 도와달라고 하는데, 형이 된 제가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가볍게 웃음으로 답변을 마무리한 율이명이 공격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사공 형이야말로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 그게…….”
“사도맹도 대규모 무사들이 내려왔다 들었습니다만, 사공 형이 이곳에 있는 걸 보니 중요한 일 때문에 오신 것 같습니다만.”
사공진은 괜히 건드렸다며 후회했다.
자칫하면 자신이 비무에서 밀렸다는 것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침 핑계를 댈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것이었다.
“곽아와 미미 때문에 왔지. 이 녀석들이 경험을 쌓겠다며 무천과 당분간 함께 있다고 하지 뭔가. 그런데 사도맹의 후계자를 혼자 놔둘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율이명은 사도맹의 소맹주인 사공곽이 무천과 함께 있다는 말에 흠칫했다.
그 바람에 사공진의 말에 빈틈이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하하하, 그랬군요. 어쨌든 당분간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잘 지내봅시다.”
“그러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노려보았다.
제 버릇 누굴 주겠는가.
두 사람은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렸다.
혁무천은 두 사람 사이의 일이 대충 마무리되자 입을 열었다.
“오늘 오전에 남양과 복우산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율이명과 사공진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혁무천에게로 향했다.
혁무천이 말했다.
“무사들이 일제히 복우산 쪽으로 이동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합니다.”
***
검마보 무사들이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복우산 남단에서 정은맹과 마도 세력 간에 충돌이 발생했다.
마도연합의 선발대가 복우산 초입인 서협으로 전진하다가 정파무사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은 최고조에 도달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혁무천은 즉시 백리양과 목량을 불러들였다.
복우산 남단에 모여든 양측의 무사 숫자가 이만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예상대로 전쟁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모든 물건들이 배 이상 필요하게 된다. 무기는 수시로 부러지거나 파손되고, 옷도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찢겨지고 피에 젖는다.
싸움을 하다 보면 먹는 양도 배 이상 먹게 되고, 사기 진작을 위해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술도 필요하다.
그런데 식량은 물론이고, 포목과 무기는 필요에 따라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느냐에 따라 가격의 등락이 결정될 것이다.
“현재 확보한 물건의 평균 가격은 어느 정도 선이냐?”
혁무천이 묻자, 목량이 대답했다.
“본래 가격과 비교할 때 전체적으로 삼 할 정도 비싼 편입니다.”
“우리가 확보한 물량을 모두 소모할 수 있는 기간은?”
그에 대해서는 백리양이 말했다.
“정상적으로 소비할 경우 석 달에서 넉 달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일단 주요물품 두 달 분량을 비밀리에 금룡장으로 미리 옮기도록 해라.”
금룡장은 남양에 있다. 그곳에 물품을 이동시켜 놓으면 필요할 때 언제든 공급할 수 있으니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갈 수 있다.
문제는 금룡장이었다.
“그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백리양이 우려의 표정으로 말했다. 금룡장주 전금환의 욕심을 잘 아는 그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하마. 아마 그는 절대 허튼 생각을 할 수 없을 거다.”
혁무천이 그리 말한 이상 그리 될 것이다. 백리양도 걱정을 털어냈다.
“알겠습니다.”
“천화상단이 우리의 거래를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거다. 전쟁은 무사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전쟁 중이라는 점 명심하고, 호위와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천화상단은 그동안 황궁 외에는 강호 세력과 거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이번과 같은 대규모 거래는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전쟁과 관련된 물자를 매집했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확고한 의지를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무원장과 마룡성의 물건은 마도 쪽과 거래해라. 정주의 삼원상단에 있는 물량은 정은맹 쪽에 넘길 거니까.”
마룡성은 마도십문 중 하나다. 반면 삼원상단은 황보세가와 막역한 사이다.
명분을 따져 봐도 거래를 못할 것이 없다.
“예, 알겠습니다.”
“마도 쪽 거래는 내가 직접 가서 상대할 거다.”
백리양과 목량이 멈칫 눈을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어. 돌아가는 상황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을 뿐이야. 금룡장도 확실하게 단속해야 하고.”
혁무천답지 않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전쟁터에 가려는 이유를 솔직히 말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목량은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의 초감각이 느끼는 바대로라면, 뭔지 몰라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
“언제 가실 겁니까?”
“닷새 후.”
***
복우산의 소식은 천화상단에도 전해졌다.
천궁환은 회의를 소집했다.
“신명, 네가 부일상과 이대를 이끌고 가라. 무림의 싸움에는 최대한 관여하지 말고, 거래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부일상은 사대천화 중 삼천화다. 사대천화를 보낸다는 건 그만큼 이번 일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 아버님.”
“주명, 너는 화물을 최대한 안전하게 운송하는 일에 주력해라.”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
“양명과 신명을, 은명은 주명을 돕도록 하고, 구명은 모든 정보망을 가동해서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도록 해라.”
천궁환은 세 아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황승을 바라보았다.
“황 장로, 이번 일은 비천에서도 도와주셔야겠소.”
황승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큰 거래라 하나, 강호무림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소이다, 총단주.”
“무림이 아닌 상계가 우리의 목표외다. 우리 천화상단의 도약을 위해서 절호의 기회요.”
“천화상단은 황궁과의 거래에만 충실한다는 철칙이 이번 일로 무너지는 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오.”
“황궁과의 거래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아시지 않소?”
“내 어찌 그걸 모르겠소? 허나 우리가 먼저 강호무림의 상계에 뛰어든다면, 구룡상단이 황궁을 노려도 할 말이 없게 될 거요.”
황승이 계속 토를 달자, 천궁환의 목소리도 조금씩 날이 섰다.
“구룡상단이 아무리 욕심내도 황궁과의 거래는 뚫을 수 없을 거요.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시지 않아도 되오.”
“총단주께서 정 그런 마음이시라면 내 삼태상에게 상황을 전달해 놓겠소.”
천궁환은 불길을 삼킨 듯 속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 이상 몰아붙여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고맙소. 그럼 오늘 밤까지 답변을 주시오. 만약 답이 없으면 총단주의 권한으로 비천의 무력을 일부 동원할 거요.”
황승의 이마에 파였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목소리도 조금은 냉랭하게 느껴졌다.
“알았소이다. 밤까지 알려주지요. 노부는 총단주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오.”
천궁환도 그쯤에서 가슴속의 불을 식혔다.
‘내가 그대들의 강호무림에 대한 욕심을 모를 줄 아는가?’
모른 것이 아니라, 모른 척했을 뿐이다.
이번 일을 기회로 삼으려는 것 중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이해해줘서 고맙소.”
***
남양성 안쪽뿐만 아니라 인근 수십 리 일대가 무사들로 득시글거렸다.
하루가 다르게 무사들의 숫자가 늘어나더니, 마도연합 선발대가 정은맹과 충돌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더욱 더 많은 무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사가 늘어나며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팽팽한 긴장감에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옷자락만 스쳐도 눈초리부터 올라갔다.
“꼭 깊은 호수의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분위기군요.”
남양성 외곽, 객잔의 이층에서 창문을 통해 길거리를 내려다보던 목량이 말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혁무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이틀 전, 무원장을 출발한 그들이 남양 외곽에 도착한 지 한 시진이 지났다.
부상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강탁을 제외하고 비룡단 주요 인원이 모두 왔다.
심지어 마도를 싫어하는 은설과 산왕 호광까지.
사공진과 사공곽, 사공미미도 함께 왔는데 그들은 지금 사도맹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을 찾아갔다.
마음이야 혁무천 일행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남양까지 와서 따로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양 일대의 분위기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심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누가 욕 한마디만 해도 한판 붙겠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대안이 머리를 삐죽 내밀고 밖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의 말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길거리 끝에서 욕설과 함께 싸움이 벌어졌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동대안을 바라보았다.
영추문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하여간 오라버니는 정말 입을 조심해야 해.”
“뭘? 내가 욕했나?”
동대안이 툴툴거리자, 송비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참 신기해.”
“송숙은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네가 무슨 말만 하면 일이 터지잖아.”
“제가 언제 또 그랬다고 그러슈?”
그들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세 사람이 객잔 이층으로 올라왔다.
삼십 대 나이, 셋 모두 붉은 적색 무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껑충하니 큰 키에 날카로운 인상까지, 세 사람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은 구석이 많았다.
“적산혈삼도 추씨 형제군.”
송비가 그들을 알아보았다.
추씨 형제는 안강 일대에서 활동하는 자들로 셋이 합공하면 절정고수도 당해낼 수 없다는 일류고수들이었다.
“키 큰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들 없다고 했는데…….”
동대안이 그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때마침 객잔 이층이 조용하던 터였다.
막 이층으로 올라와서 빈자리를 찾기 위해 좌우를 둘러보던 세 사람이 동대안의 말을 들은 듯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씩 웃더니 동대안을 향해 다가왔다.
동대안 앞에 선 그는 먼저 혁무천 일행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송비를 향해 말했다.
“애송이들을 데리고 강호에 나왔으면 몸조심하는 법부터 가르쳐야지 말이야. 그러다 뒈지면 누굴 원망하려고?”
송비는 어이가 없었다.
애송이? 그 애송이 속에 무천도 들어가는 거겠지?
하지만 웃음보다는 짜증이 더 났다.
“동가야, 내가 왜 너 때문에 이런 개소리를 들어야 하냐?”
“제가 뭐 없는 말 했습니까?”
“아무리 사실이 그래도, 대놓고 그런 말하면 어떤 놈이 기분 좋겠냐?”
동대안이 홱 고개를 돌려서 적산삼혈도 중 둘째인 추이를 째려보았다.
“어이, 내가 그런 말 해서 기분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