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17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17화
217화
사공진은 손을 들어서 그의 말을 막았다.
“시끄럽다! 나도 저놈에게 그 이상은 요구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걱정 말고 조용히 있어!”
그는 사공곽이 무천이란 놈을 걱정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사공곽은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지만, 입만 두어 번 달싹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무 형도 지나친 요구는 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숙부도 세상이 넓다는 걸 한번쯤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
비무는 후원의 연무장에서 이루어졌다.
구경꾼은 최소한으로 정해졌다.
사도맹의 고수들, 비룡단원, 그리고 마룡성 성주 홍택과 십여 명의 간부들.
사도맹 간부들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사공진의 강함을 잘 아는 그들은 그가 질 거라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특히 규화동은 곧 무천이 바닥을 길 거라 생각하고 쾌재를 불렀다.
‘어디 한번 혼나봐라, 건방진 자식!’
홍택을 비롯한 마룡성 간부들은 초조한 마음이었다.
무천이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사도맹의 이인자인 광마룡 사공진이었다.
무천이 광마룡을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반면 비룡단 사람들은 혁무천에 대한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걱정은커녕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생긴 것을 즐거워했다.
심지어 그들 중 두어 명은 내기를 했다.
“은자 다섯 냥. 어때?”
“좋습니다. 하죠 뭐.”
“난 팔 초.”
“전 오 초식으로 하죠.”
송비와 동대안이 내기를 하자, 철상과 영추문이 끼어들었다.
“난 송 형 편에 서지.”
“전 동 오라버니 편들래요.”
그 사이, 연무장의 중앙에 선 두 사람이 비무를 시작했다.
사공진은 딱 이 초식 만에 온몸의 근육이 긴장감으로 바짝 당겨졌다.
보통 놈이 아니었다. 공력도 밀리지 않고, 초식의 변화도 자신에게 뒤지지 않았다.
치열한 공방의 와중에도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두 눈은 섬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제길. 느낌이 안 좋아.’
삼 초식을 교환했을 때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조카 말대로 이기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아니 아차 실수만 해도 끝장날 수 있었다.
‘이러다 창피당하는 거 아냐?’
오 초식이 되었을 때는 사공곽이 원망스러웠다.
무천이 이런 괴물 같은 놈인 줄 알고 있었으면 자신에게 두들겨 맞는 한이 있어도 말렸어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한번 엿 먹어보라, 이건가? 나쁜 놈!’
그리고 칠 초식째.
쾅!
연무장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이 장 정도 튕겨나간 후 주르륵 세 걸음을 더 물러선 사공진은 다급히 중심을 잡고 검을 가슴 앞에 세웠다.
진기가 뒤흔들려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쳤기에 망정이지, 놈이 조금만 더 강하게 공격했다면 심각한 내상을 입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혁무천을 바라본 그의 표정이 눈가에서부터 일그러졌다.
‘뭐 저런 놈이……!’
혁무천이 물러선 거리는 자신과 비슷했다.
그런데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천천히 검을 뻗는데, 떨어진 거리가 육칠 장이나 되는데도 마치 검첨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르륵.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쯤에서 끝내지요.”
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는 검을 내렸다.
“어차피 승부를 내려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비긴 것으로 합시다.”
“…….”
사공진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패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진실이다.
그런데도 인정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조금만 더 싸우면 이길 것 같아서?
아니다, 그게 아니다.
창피를 당할까 봐 그런 것뿐이다.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비겁한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사공진, 네가 이거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 그러면서도 남들을 비웃고 다녔더냐?’
그럴 순 없었다. 사악한 놈이 되는 한이 있어도, 비겁한 놈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숨을 깊이 들이쉰 그가 말했다.
“내가…….”
그때 전음이 고막을 울렸다.
<그냥 그렇게 합시다. 조카 체면도 살려줘야 할 거 아뇨?>
“…….”
사공진은 입을 꾹 다문 채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하지만 곧 안정을 되찾은 그가 말했다.
“네 말을 받아들이마. 그래도 내가 이기지 못했으니, 너의 부탁 세 가지를 들어주겠다.”
그 정도가 사공진이 최대한 할 수 있는 자기 자신과의 타협이었다.
혁무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신다니 고맙군요.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 대신 약속한 대로, 하실 수 있는 것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혁무천과 사공진의 뜻하지 않았던 비무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말다툼이 이어졌다.
“칠 초식이니까, 제가 이긴 거죠.”
“무슨 소리? 동가, 너는 팔 초식이라고 했잖아. 그러니 비긴 거지.”
“송 아저씨, 오 초식보다는 팔 초식이 칠 초식에 더 가깝잖아요?”
“글쎄? 내가 봐도 송 형의 말이 맞는 거 같은데? 가깝긴 해도 팔 초식이 칠 초식은 아니잖아.”
네 사람이 수군거리며 그렇게 다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혁무천이 내민 첫 번째 부탁은 단순했다.
“일 년만 저를 도와주시지요.”
그럼에도 사공진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부탁이었다.
그 일 년 동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사공진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좋아. 일 년 동안 도와주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고, 아직은 특별하게 손해 볼 부탁도 아니었다.
패배로 자존심이 처박혔을 것에 비한다면 일 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길지도 않았다.
“단, 그 기간 동안이라 해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면 하지 않을 거다.”
그에 대해서는 혁무천도 인정했다.
“물론입니다. 저도 하기 싫은 일을 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무리한 부탁도 하지 않을 겁니다.”
“다행이군.”
사공진도 무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던 터였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멍석을 깔아주자 주저앉기로 한 것이다.
***
사도맹 사람들은 사공곽과 사공미미를 데려가려고 왔다가 오히려 사공진마저 남겨 놓은 채 떠나갔다.
송비와 철상은 연배 차이가 크지 않은 사공진이 남자 쌍수를 들고 반겼다.
그로부터 사흘 후, 혁무천은 일행과 함께 마룡성을 나서서 무원장으로 돌아갔다.
정파와 마도가 언제 본격적으로 충돌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전에 무원장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혁무천이 돌아오자 무원장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그가 없는 동안 혈마방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곡수도 시시때때로 찾아와서 돈을 뜯어갔다.
힘으로야 밀릴 것이 없었지만,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잔돈푼이라도 쥐어줘야 했다.
그런데 이제 혁무천이 돌아왔으니 나곡수 따위는 걱정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혁무천과 함께 온 사람들 중에는 사도맹의 이인자인 광마룡 사공진과 소맹주 사공곽, 공녀인 사공미미마저 있었다.
혈마방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귀천교도 두렵지 않았다.
혁무천은 밝은 표정으로 자신을 찾아온 백리양에게 지시를 내렸다.
“백리양, 매집한 물품과 계약을 맺은 상황을 철저히 정리해놓아라.”
“예, 대형.”
“바람에서 열기가 식기 시작하면 복우산이 피로 물들 거다.”
혁무천의 말에 백리양의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물량은 물론 호위 계획까지.”
“알겠습니다.”
“백리양.”
“예, 대형.”
“아마 네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때보다도 힘든 일이 닥칠 거다. 수천의 목숨이 칼날 아래 사라지고 강호무림이 피비린내로 뒤덮일 거다. 흔들리지 않고 상인의 마음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굳게 마음먹고 평정심을 유지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백리양은 혁무천이 전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헤어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거늘!
“또 하나, 앞으로 네가 진정으로 상대해야 할 자들은 무림세력이 아니라 천화상단이다.”
천화상단. 그 이름이 나오자 백리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비록 구룡상단의 일원으로 나름 인정을 받고 있지만, 천화상단은 구룡상단과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구룡상단 전체보다도 더 거대했다. 비룡장은 그들에 비하면 호랑이 앞에 강아지일 뿐이었다.
“그들은 억만금의 금력뿐만이 아니라 무력 역시 천하제일이다. 상계에서 그들을 이겨내려면 너 역시 달라져야 한다.”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길을 가르쳐주십시오, 대형.”
백리양이 어찌 천화상단의 거대함을 모를까. 너무나 잘 알기에 언젠가는 이겨보고 싶다는 열망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 그들의 위에 서는 건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꿈을 구석에 처박았다.
그런데 그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나면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너는 상인으로서 타고난 감각이 있다. 그러니 네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려라. 거기다 더해 대세를 보는 눈까지 기르면 중원 상계를 놓고 천화상단과 한판 승부를 겨룰 수 있을 거다.”
“노력하겠습니다.”
“모자라는 것은 내가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
혁무천 일행이 무원장에 도착한 지 열흘이 지났다.
사공진은 별다른 말썽(?) 없이 조용하게 지냈다. 의외였다.
하지만 사공진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는 약하다 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고수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마룡성에 있을 때 심심해서 슬쩍 건드려본 적이 있는데, 하마터면 창피만 당할 뻔했다.
그들 중 두 사람만 합공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었다.
특히 눈이 콩알만 한 놈의 쾌검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괜히 목에 힘을 주고 깔보았다가 당하면 자신만 손해였다.
그렇게 가을의 초입이 다가왔을 때였다.
마침내 검마보주 율이명이 검마보 무사 백여 명을 이끌고 도착했다.
검마보의 무사들은 율이명 외에도 장로급 고수 여섯 명과 검마보 최강의 조직인 검마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철컹, 철컹, 철컹.
백여 명의 무사들이 무원장의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가자 규칙적인 소음이 울렸다.
혁무천은 무원전 앞에서 율이명을 맞이했다.
“조금 늦었네.”
“아닙니다. 제때에 오셨습니다. 날이 더우니 인사는 안으로 들어가서 나누시지요.”
무원전 안에서 검마보의 장로와 고위 간부들이 무원장의 주요 인사들 인사를 나누었다.
얼마 전만 해도 율이명의 결정에 불만이 많았던 장로들도 전과 달리 표정이 밝았다.
장강 이북으로의 진출은 검마보의 숙원과도 같았다. 그런데 무원장과 함께 한다는 명분으로 은근슬쩍 장강 이북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전각 문이 열리고 사공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혁무천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율이명이 사공진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게 누구십니까? 광마룡 사공 형이 여기 계실 줄은 몰랐군요.”
검마보의 간부들이 굳은 표정으로 사공진을 바라보았다.
광마룡 사공진. 사도맹의 이인자가 무원장에 있을 줄이야.
“율 아우가 왔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군.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인가?”
사공진이 이마를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와 율이명이 알고 지낸 지는 십오 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사이가 썩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만날 때마다 싸웠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싫어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무사로서 경쟁하다 보니 검을 맞댄 것뿐.
싸운 것도 적으로서 싸운 것이 아니라 비무를 한 것이었다. 가끔 심하게 비무를 해서 문제였지.
“어쩐 일이기는요? 동생을 만나러 왔지요.”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