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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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13화
213화
백운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희 쪽을 조급하게 만들려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태산에 간 것 같습니다.”
“끄응, 내가 황궁에 가는 날짜를 알고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이야.”
“사람을 보내고, 태안에도 연락해서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 충돌은 피하라 하고.”
“예, 총단주.”
천궁환은 백운이 나가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총단주를 맡은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지금처럼 찝찝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럴 때 태을선사라도 오시면 좋을 텐데…….’
태을선사는 이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조부와 친구지간이었다.
천기를 볼 줄 아는, 천하에 몇 안 되는 기인 중 한 사람.
천궁환은 그를 세 번 만나보았다.
그는 조부가 돌아가신 이후 딱 한 번 천화상단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본 게 십이 년 전이니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삼 년 전에 태산의 암자에서 그를 봤다는 사람이 있으니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자신이 직접 찾아가봐야 할 듯했다.
‘태을선사라면 뭔가 답이 있을지도…….’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사옵니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청년이 들어왔다. 천궁환의 셋째 아들인 천구명이었다.
천구명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체구가 작았다. 하지만 학문이 뛰어나고, 특히 정보관리 부문에서는 굉장한 재능이 있었다.
때문에 천궁환의 신임을 받아서 젊은 나이에도 천안당의 부당주 직을 맡고 있었다.
천궁환은 평소 낙천적이던 천구명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조금 전 남양에서 급전이 날아왔습니다.”
“남양? 복우산의 싸움 때문이냐?”
남양과 복우산 일대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대해서는 천궁환도 수시로 보고받고 있었다.
대규모 싸움은 상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호재였으니까.
하지만 결과가 뻔한 싸움이라 주시하는 정도로만 그치고 있었다.
“무슨 특별한 변화라도 있느냐?”
그래서 시큰둥하게 물었는데 천구명이 말했다.
“예, 마도의 삼파연합이 패퇴했다고 합니다.”
천궁환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뭐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어서 지금 하남 서부 무림은 초긴장 상태라고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기이할 정도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팔대마세 중 한 곳도 아니고, 만마성과 마천문, 혈왕동이 연합해서 공격했다.
그가 아는 정은맹의 힘으로는 절대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그게…….”
천구명은 전서를 통해 전해진 내용을 토씨 하나까지 모두 보고했다.
천궁환은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천구명의 보고를 다 들은 그는 잠시 허공을 보며 생각하더니,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즉시 대회의를 소집해라. 그리고 팔대마세와 정은맹의 움직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천구명을 내보낸 천궁환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정은맹의 비정상적인 강함에 대한 의문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겼다는 것이다.
‘팔대마세는 물론 마도십문을 비롯한 전 마도가 움직일 거다. 물론 숨죽이고 있던 정파도 움직이겠지.’
사람이 움직이면 물자가 따라간다.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면 많은 것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전쟁이 일 년 이상 지속된다면, 아마 수천만 냥에 이르는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현 상황을 잘 이용만 하면 우리 천화상단이 황궁의 틀을 벗어나 천하에 우뚝 설 수 있을 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주도권을 잡아야 해! 반드시!’
***
태산으로 향하던 혁무천 일행은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자 방덕진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태산 구경에 나선 터라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다.
무뚝뚝하던 사공곽도 이제는 혁무천 일행의 분위기에 녹아들어서 간혹 웃음을 짓기도 했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몇 가지 요리를 시키고 술도 두어 병 시켰다.
그렇게 요리가 나와서 막 식사를 하려고 할 때 한 사람이 객잔으로 들어왔다.
평범한 복장을 입은 장한이었는데, 혁무천 일행을 보더니 곧바로 다가왔다.
혁무천은 그가 풍마문 사람이라는 걸 알고 미간을 좁혔다.
풍마문 사람이 우연히 이 객잔에 들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제남에서 여기까지 자신들을 찾아왔다는 말.
더구나 그는 반가움과는 거리가 먼 표정이었다.
“무 공자를 뵙습니다.”
“무슨 일인가?”
“마도 삼파가 연합하여 정은맹을 공격했다 합니다.”
그 일은 무천도 알고 있었다.
무천뿐만 아니라 귀 닫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이 아는 이야기였다.
풍마문에 돌아가는 강호 상황을 주시해달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마도 연합이 패했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경악해서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은맹이 이겼다고?”
“맙소사! 이거 일이 커지겠는데?”
특히 사공곽은 충격이 큰 듯했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공자.”
혁무천이 손을 들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끊고 풍마문의 정보원에게 말했다.
“자세히 말해보게.”
“만마성을 비롯한 삼파 연합이 정은맹을 공격했는데…….”
풍마문의 정보원은 더하지도, 덜지도 않고 전달된 소식을 사실대로 말했다.
혁무천은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정체불명의 복면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슬쩍 치켜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풍마문의 정보원이 몇 마디 보탰다.
“저희는 그들이 섬서에서 혈겁을 일으킨 자들일 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좀 더 확실하게 알아보라 하게. 기왕지사 증거까지 있으면 더 좋고.”
“예, 공자.”
“천화상단도 지금쯤은 그 일을 알고 있겠군.”
“그럴 겁니다. 천화상단은 신응을 키워서 정보를 전하기 때문에 정보 전달의 신속성만큼은 천하에서 견줄 곳이 많지 않습니다.”
“우문척은 아직도 제남에 있는가?”
“제가 제남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그곳에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긴 그도 소식을 들었다면 철혈마련으로 돌아가겠지.”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즉시 연락을 넣어서 마도의 움직임을 철저히 주시하라고 하게. 그리고 정은맹과 천기회의 움직임도.”
“알겠습니다, 공자.”
풍마문의 정보원이 돌아가자, 혁무천이 사공곽에게 물었다.
“우린 아침 일찍 출발해서 마룡성으로 갈 건데, 그대도 돌아가야 하지 않나?”
사공곽은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돌아가든 돌아가지 않든 맹에서는 알아서 움직일 거네. 차라리 맹의 무사들이 중원으로 건너오면 그때 만나는 게 나아.”
“좋아, 그럼 자네 일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그때 목량이 말했다.
“대형, 개방을 이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정보라면 그들도 어느 곳보다 뒤지지 않을 겁니다.”
“개방? 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
마침 개방의 후개인 소궁단이 제녕에 있었다.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혁무천 일행은 객잔을 나섰다.
천화상단의 일은 당장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천궁환이 거래를 받아들인다 해도 처리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그들과 거래를 약속하지 않은 게 지금으로선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
혁무천 일행이 제녕을 향해 달려갈 때, 위세가 당당한 십여 명이 천화상단에 들어섰다.
소림에서 나온 신도명산이 신도평과 신도소영을 비롯한 천기회 고수 십여 명을 대동하고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곧장 만화전으로 안내되었다.
천화상단을 들락거리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봤지만, 그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궁환은 만화전 안에서 신도명산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명산 아우. 정말 오랜만이군.”
신도명산도 담담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오. 천 형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벌써 이십 년이 다됐구려.”
“허어, 그렇게나 오래 되었나?”
“우리 애들이 벌써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 않소?”
“하긴…….”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돌아가야 하나 무척 고민했소.”
“복우산 일 때문에 말인가?”
“역시 아시고 계셨구려. 하긴 천화상단의 눈이 천하를 뒤덮고 있는데 어찌 모르겠소.”
“허허허, 낯부끄러워지는 소리 그만하고 앉게나.”
“이거 소제가 갑자기 찾아와서 귀찮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소. 안 그래도 이번 사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을 텐데 말이오.”
천궁환은 신도명산의 말뜻을 짐작하고 빙그레 웃었다.
“천화상단이 그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있지도 못했을 거네.”
“하하하, 과연 천 형의 배포는 천하제일이구려.”
한편, 신도평은 상단이라 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예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궁궐이 따로 없군.’
놀라운 건 규모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조용하게 움직이는 호위무사들을 본 그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개 호위무사가 일류고수 수준으로 느껴졌다. 개중에서도 천궁화의 뒤에 서 있는 자 둘은 일파의 장로급인 절정고수였다.
‘아버님이 왜 천화상단을 높게 치는지 알겠구나.’
반면 신도소영은 수심에 잠긴 표정이었다.
‘오빠가 천화상단의 여식과 혼인을 하면 무 공자와 적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녀도 무천이 비룡장의 비룡단주로 명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구룡상단에 속한 비룡장 사람이라면 천화상단과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나마 남은 한 가닥 희망마저 꺾일지 몰랐다.
아버지가 절대 그와의 관계를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 와중에도 천궁환과 신도명산은 담소를 나누며 가끔씩 웃음도 터트렸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 때 천신명이 들어왔다.
“인사 드려라. 오래 전부터 이 아비와 인연이 있는 분이시니 숙부처럼 모셔라.”
천궁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신명도 신도명산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인사를 건넸다.
“천신명이라 합니다.”
“신도명산이라 하네. 과연 총단주께서 자랑할 만한 인재군.”
“아직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여기 이 아이는 내 아들인 평아고, 저 아이는 딸인 소영이네.”
신도명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도평이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신도평입니다.”
신도소영도 차분하게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신도소영이라 합니다.”
“반갑소. 천신명이오.”
천신명의 나이가 신도평보다 여덟 살 많았다. 그래선지 천신명이 반존대하며 마주 포권을 취하는데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살펴보았다.
‘대단하구나. 상가라 하더니, 이자의 무공은 결코 내 밑이 아니다.’
신도평은 천신명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기운을 느끼고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혁무천을 대해본 천신명은 신도평을 그와 비교해보았다.
‘이자도 제법이지만, 무천에 비할 바는 아니야.’
그러고는 신도소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자에게 미소를 지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더구나 신도소영은 강호의 여인답지 않은 풋풋함이 살아 있어서 신도평보다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때 천궁환이 그에게 물었다.
“상화는 언제 온다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