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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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08화
208화
“황하상선이 수룡방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은자 십만 냥을 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상선이 전보다 더 많이 움직이는 바람에 수룡방도 인원 투입이 많아진 만큼 보호비를 이십만 냥으로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허어, 그건 너무 많군. 내 아래에 일러서 이만 냥을 더 주라 하겠네.”
“이만 냥으로 될 일이었다면 말씀도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과한 욕심을 부리는 건 좋지 않네.”
“욕심이 아닙니다. 사실 전부터 올려야 했는데, 같은 구룡상단에 속해 있다 보니 올리지 않았던 것뿐이지요.”
“이십만 냥을 줄 거면 차라리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게 나을 거네.”
“수백 명의 인원과 수십 척의 배를 관리하려면 쉽지도 않을 뿐더러, 수시로 싸움이 벌어질 걸 생각하면 이십만 냥을 주는 것이 더 이익일 겁니다.”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옳고 그른 걸 떠나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렇다고 자네 말대로 이십만 냥을 모두 줄 수는 없네. 일단 십오만 냥으로 하지. 그리고 추가 비용은 일이 더 많아지면 그때 논의하세.”
혁무천도 그쯤에서 물러섰다.
말 몇 마디로 예정에 없던 은자 오만 냥을 벌어줬으니 수룡방으로선 횡재한 셈이었다.
그 중 절반은 자신 몫이 될 테니 자신 역시 주머니가 두둑해질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황하상선을 언급한 이유가 꼭 보호비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리 전하지요.”
천궁환도 추가금을 절반으로 줄였으니 나쁘지 않은 협상이었다.
“젊은 친구가 제법 협상을 할 줄 아는군. 어떤가? 우리 천화상단에 들어올 마음은 없나? 들어온다면 최고의 대우를 해주지.”
“제가 총단주 곁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천궁환은 그 말을 듣고 잠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혁무천이 말한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뜻하는 것인지 눈치 챈 것이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천화상단의 주인은, 이 천궁환이네.”
“때로는 잘 먹여서 키운 개가 뼈다귀 때문에 주인을 물 때가 있지요.”
“아무리 그래봐야 개는 개일 뿐이네.”
“물려봐야 아픈 걸 아는 법이지요.”
“꼭 기르던 개에게 물려본 사람처럼 말하는군.”
“물려봤으니까요.”
“그래?”
“운이 좋아서 저는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있습니다만, 대신 가족 같던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거 안 됐군.”
“총단주께서도 저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셨으면 할 뿐입니다.”
“걱정해줘서 고맙긴 하네만, 우리 천화상단이 몇몇 사람에 의해 좌우될 정도였다면 백 년을 이어오지 못했을 거네.”
천궁환이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입술은 부드럽게 휘어졌지만 눈매는 조금도 웃음기가 없었다.
“자네가 강하다는 건 기 대주를 꺾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네. 거기다 낙양의 일처리를 보면 머리도 뛰어나더군. 하지만 천화상단이 왜 천하제일상가인지는 모르는 것 같아.”
“아무리 튼튼하고 큰 배도 사공이 둘이면 바다를 헤매다 침몰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사공이 셋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궁환은 혁무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자신 앞에서 이리 건방지게 말을 하는 자가 있다니.
그것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욕심이 났다.
자식들 중에 이런 놈만 하나 있으면 마음고생이 덜 할 텐데.
질투심도 고개를 들었다.
자신도 젊을 적에 이놈 정도는 아니었는데.
자존심도 상했다.
새파란 놈이 감히 천화상단의 총단주인 자신을 앞에 놓고 사공 운운하다니!
그런데 이상하게 목소리를 높이려 하면 목구멍이 근질거렸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놈이었다.
“사공이 몇이든 서로 뜻이 맞으면 더 나은 길을 찾을 수도 있지.”
“의외군요. 천하의 상계를 좌지우지 하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이야.”
혁무천이 말하며 미소를 짓고는, 팔짱을 끼고 등을 의자 깊숙이 기댔다.
그 모습을 본 천궁환은 무의식중에 콧등을 씰룩였다.
왠지 서로의 위치가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 밖에서 천신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소자 신명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공간이 진기로 차단된 터라 소리가 작았다. 그래도 초조함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친이 적이나 다름없는 인물과 단 둘이 독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천궁환은 이마를 찌푸렸고, 혁무천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어차피 오늘 결정을 내리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제남에서 하루이틀 더 머물 생각이니까 말입니다.”
“…….”
천궁환은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래, 다른 길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린 그는 최대한 표를 내지 않고 말했다.
“그러게나. 시간 나거든 내 제안도 깊이 생각해보게.”
그러고는 밖을 향해 말했다.
“들어와라.”
이미 혁무천이 차단시켰던 진기를 거둔 후였다.
덜컹.
문이 세차게 열리고, 천신명이 무사 넷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그는 천궁환과 마주앉아 있는 혁무천을 노려보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탁자 옆에 멈춰 선 그가 천궁환을 향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아버님?”
“나야 괜찮다만, 손님이 계신데 왜 이리 법석이냐?”
“비룡장의 무천이란 자가 아버님과 단 둘이 있다 하여 급히 달려왔습니다.”
“인사 나누어라.”
천신명은 고개를 돌려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천신명이라 하네. 기 대주가 그대에게 죽었다는 말을 들었지.”
혁무천은 앉은 채 말을 받았다.
“무천이오. 그걸 따지려고 왔소?”
천신명은 속이 끓었다. 하지만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정당한 대결을 벌였다는데 뭐라 하겠나. 그걸 따질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네.”
“다행이군.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지요. 나는 이만 가봐야겠소.”
혁무천은 할 말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신명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어쨌든 여길 혼자 찾아오다니, 젊은 친구가 대단한 배짱이군.”
“천화상단이 혼자 찾아온 사람을 어떻게 할 정도로 비겁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오.”
천신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정말 그걸 믿고 혼자 온 걸까?
분명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무천이란 자는 천화상단의 행보를 막아선 자 아닌가. 더구나 무공만 강한 새파란 애송이다.
그가 아는 부친은 그런 애송이와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내가 안내하지. 그대가 왔다는 소식에 발끈한 사람들이 많거든.”
“좋으실 대로.”
천신명은 묘한 혁무천의 말투에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천궁환에게 인사를 건넨 혁무천은 천신명의 뒤를 따라갔다.
천신명과 함께 들어온 무사 넷이 혁무천의 뒤에서 함께 걸음을 옮겼다.
천궁환은 미간을 좁힌 채, 방을 나서는 혁무천의 등을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갈등이 일었다.
‘지금이라도 제거해야 하나?’
무언가 자신이 큰 것을 놓친 듯했다.
지금이 아니면 제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혁무천이 나가고 방문이 닫힐 때까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훗,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나보군. 목 치는 거 하나 결정하지 못하다니.’
천신명은 만화전을 나선 이후로도 앞장서서 걸었다.
적일지도 모르는 자에게 자신의 등을 보이고 걷는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혁무천은 그런 천신명을 보고 새삼 천화상단의 무게를 느꼈다.
천신명은 단순히 상술만 익힌 자가 아니었다. 무공 역시 초절정경지에 이른 자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에 올랐으면서도 자신의 진짜 능력을 감추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한참을 따라 걷던 혁무천이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닌 것 같군.”
정원수 사이를 걷다 보니 이삼백 평 정도 되는 공터가 나왔는데, 들어올 때 보지 못한 곳이었다.
한쪽에 무기대가 세워져 있는 걸 보니 호위무사들이 수련을 하는 연무장인 듯했다.
앞장서서 걷던 천신명이 걸음을 늦추더니 돌아섰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왜? 두려운가?”
“두려운 건 아닌데, 걱정돼서 말이오.”
“뭐가 말인가?”
“오늘 이곳에서 피를 보게 되면, 앞으로 천화상단과 머리 터지게 싸우게 될 텐데, 당연히 걱정되지 않겠소?”
“그렇게 걱정 되면 처음부터 건들지 말았어야지.”
“아, 먼저 칼을 겨누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이 없었을 거요. 내 성격이 조금 불 같아서, 누가 칼을 겨누면 참지 못하거든.”
태연하게 받아치는 혁무천의 말에 천신명의 눈초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무리 봐도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뱃속이 간덩이로 꽉 찬 놈이 아니고서야…….
그런데 혁무천이 한술 더 떴다.
“그리고… 나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으면 하오.”
“훗, 걱정 말게. 그대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을 테니까.”
“다행이군.”
잠깐 말을 나누는 사이, 혁무천과 서너 걸음 떨어져서 걷던 네 사람이 이 장 거리를 두고 포위하듯 혁무천의 사방을 점했다.
그중 청의를 입은 삼십 대 장한이 분노를 씹으며 검을 뽑았다.
“흥! 걱정 마라. 네 검에 죽어도 원망하지 않을 거다.”
혁무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청의장한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살의를 띤 눈빛이었다.
한쪽에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던 천신명이 그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 사람은 그대의 손에 죽은 기 대주의 조카네.”
그제야 혁무천은 장한의 분노를 이해했다.
“좋아, 그렇다면 검을 들이댈 만하지.”
담담히 말한 그는 천천히 한 바퀴 돌며 사방을 점한 네 사람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검을 사용하는 자가 둘, 도를 사용하는 자가 둘.
넷 모두 능히 절정 경지를 넘어선 고수들이었다.
‘천화상단에 이런 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군.’
승산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들 정도는 열 명이 공격해도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금제가 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미 기원숭에 의해 오 년 정도의 삶이 줄어든 그였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서 또 줄어들지 모를 상황인 것이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공력만 되살려도 괜찮을 텐데…….’
혁무천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사방진을 이루고 있는 네 사람은 긴장감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그들은 천신명의 호위대인 금령십위 중 넷이었다.
모두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들.
사실 그들 정도의 고수가 자존심을 팽개치고 합공을 한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기원숭을 정면대결로 죽인 자 아닌가.
합공으로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기에 굳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귀에 거슬리는 기음이 흘렀다.
스스스스스.
혁무천과 그를 포위한 네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이 대지를 쓸면서 나는 소리였다.
스르르릉.
혁무천도 검을 빼들었다.
그가 검을 사선으로 내린 순간, 기철위가 먼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검을 뻗었다.
쉬이익!
간발의 차이를 두고 검을 든 사십 대 중년인, 모웅평과 칼을 든 두 사람이 차례차례 공격에 나섰다.
사방진을 이용해서 철저히 시간차를 두고 행해진 합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