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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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07화
207화
장한의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동대안은 개의치 않고 할 말만 했다.
“우리가 어제 성문을 통과했을 때 노려보고 있던 놈, 맞지?”
“…….”
“맞으면 눈이라도 깜박해. 안 그러면 코 높이가 조금씩 낮아질 거야.”
장한은 바로 눈을 깜박였다.
색다른 고문이었다.
코가 없어진 채로 사느니 죽는 게 나았다.
“좋아, 그럼 두 번째. 누가 보냈지? 총단주가 보냈을 리는 없고, 첫째 공자? 아니면 둘째 공자? 아니면…….”
동대안은 첫째부터 다섯째 공자까지 말하며 장한의 눈을 쳐다보았다.
장한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코가 낮아지더라도.
“입이 제법 무겁군. 뭐 여긴 우리 앞마당이 아니니까, 보내주지. 하지만 이번뿐이야. 다음부터는 목에 구멍 날 각오를 하고 와야 할 거다.”
동대안이 나름대로 차갑게 씩 웃고는 섬혼을 거두었다.
“꺼져.”
장한은 이를 갈고는 뒤로 물러서서 땅을 박차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다음에는 네놈의 쥐똥 같은 눈을 캐내주마!”
“저 자식이 진짜……!”
혁무천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눈알을 캐내버리는 건데.
그래도 어쨌든 놈을 압박한 목적은 달성했다. 누가 보냈는지는 알아낸 것이다.
놈은 자신이 실수한 것도 모르겠지만.
‘흠, 형제의 행동을 감시한다? 그거 참 개판인 집안이군.’
***
“천기회?”
“예, 아가씨. 그곳의 자식과 아가씨를 맺어주려나 봅니다.”
여인은 아름다운 봉목을 가늘게 좁히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
이름 그대로 천상의 꽃과 같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의 부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온갖 상념이 다 떠올랐다.
그녀는 천화상단에서 무수한 청년기재들을 봐왔다.
개중에는 제남 제일의 미남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준수한 청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청년도 그녀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연을 맺어야만 하다니.
“유모,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혼인을 해야만 할까?”
천상의 꽃, 천상화가 한숨을 쉬듯 말하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인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답했다.
“만약 그가 아가씨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라면, 제가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천상화의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삼십 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는 쉰다섯이나 되었다.
그녀 역시 젊었을 때 미모를 자랑했을 거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풋풋함 대신 농염함이 돋보이는 여인.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대하면 아름다움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혈월선자 산혜.
중원에서 가장 강한 여인 중 한 사람.
그녀는 독한 손속으로 유명해서, 그녀의 미모를 보고 수작을 걸었던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유모, 어쩌면 나는 유모 때문에 시집도 못 가보고 늙을지 모르겠어.”
천상화의 농담에 혈월선자는 미소를 지었다.
“못난 남자와 사느니 혼자 사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후회를 해도 혼인을 해본 다음에 후회하라고 하던데.”
“다 헛소리예요.”
“유모도 안 해봐서 모르는 거 아냐?”
“때로는 안 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어요.”
“하아아아. 차라리 내가 천화상단주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런 말씀 마세요. 하늘 아래 아가씨만큼 누리고 살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되겠어요?”
“많은 것을 가졌다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아요.”
천상화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다시 가늘게 좁혔다.
“수화가 무천이란 남자 때문에 들떠서 다닌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수화 아가씨야 워낙 털털하잖아요. 아가씨처럼 먹는 것도 이것저것 안 따지고요.”
“입맛에 안 맞는 걸 어떻게 먹어?”
“그래도 편식을 하지 않아야 건강한 법이에요.”
“먹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 무천이란 남자, 굉장한 미남이라고 하던데.”
“생기기만 잘생기면 뭐해요?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인데.”
“여동생을 찾기 위해서 마룡선발대회도 나갔다며?”
“알고 보니 진짜 여동생이 아니라, 그렇고 그런 사이래요.”
“어쨌든, 여자를 찾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있겠어?”
“관심 끄세요. 그놈은 곧 죽을 테니까요.”
“왜? 아버지가 죽이기로 했대?”
“감히 천화상단을 상대로 싸움을 건 놈인데, 무사하겠어요?”
“난 그래서 더 궁금해. 하늘 아래에서 천화상단을 상대로 싸움을 걸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수화가 푹 빠졌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혈월선자는 천상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천상화는 조용조용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들뜬 듯 보였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천수화 때문인가?
사람들은 천상화가 천수화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성격이 선머슴처럼 괄괄하고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천수화는 천상화에게 시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웠다.
아마 열 살 때였을 것이다.
남자처럼 하고 다니던 천수화가 천상화의 분을 바르고, 천상화의 옷을 입고서 꾸민 적이 있었다.
시비들이 그녀를 꼬드겨서 장난처럼 했을 뿐인데, 모두들 그녀를 보고 말을 잊었다.
약간 큰 천상화의 옷을 입었음에도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듯했다.
그때 천상화도 꾸민 천수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천상화는 천수화에게 자신의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천수화도 두 번 다시 분을 바르거나 꾸미지 않았다.
“유모.”
“예, 아가씨.”
“무천이란 남자가 제남의 객잔에 있다고 했지?”
“예. 왜요? 설마……?”
혈월선자의 눈이 커졌다.
“몰래 가서 한번 보는 건 괜찮을 거야.”
“안 됩니다. 만약 총단주께서 아시면…….”
“그러니까 몰래 가보려는 거지. 동생이 좋아한다는데, 도대체 어떤 남자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아가씨…….”
혈월선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자신이 천상화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엉뚱한 일이 생기면 천상화를 보호해야 하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른다.
“그럼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유모가 왜?”
“남자 보는 눈은 경험 많은 제가 더 나을 거예요.”
“남자를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래도 산 세월이 있잖아요.”
그때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났다. 소리는 작았지만 그 중에는 천수화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제가 알아보고 올게요.”
혈월선자는 이때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천상화가 말릴 틈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왔는데, 표정이 묘했다.
천상화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왜 그런 표정이지?”
혈월선자는 천상화의 얼굴을 살피며 사실대로 말했다.
“그가 들어왔다고 해요.”
“그? 누구?”
“무천이란 자 말이에요.”
***
혁무천이 천화상단에 도착하자 천소명이 웃으며 맞이했다.
두 사람은 곧장 천궁환이 기거하는 만화전(萬貨殿)으로 향했다.
옆을 지나가던 사람 몇몇이 천소명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그뿐, 옆에 있는 혁무천에 대해서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있긴 했는데, 정체를 눈치 챘기 때문이 아니었다.
“워, 그 친구, 진짜 잘 생겼는데?”
“우리 소명 공자님도 잘 생긴 거라면 안 빠지는데…….”
특히 여인들은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심지어 은근슬쩍 발길을 돌려서 두 사람을 따라가며 힐끔거리는 여인도 있었다.
하지만 무천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걷기만 했다. 산보라도 나온 듯 발걸음도 가벼웠다.
‘정말 대단하군.’
천화상단은 대지의 넓이만 해도 십만 평이 넘었다. 건물은 몇 채나 되는지 세기도 힘들었다.
수많은 사람과 마차가 물건을 싣고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개중에는 상인뿐만 아니라 무사들도 많았다.
과연 천하제일상가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만화전은 내원의 입구에 있었다.
작은 연못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 어우러져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소명과 혁무천이 다가가자, 만화전 앞에 서 있던 경비무사 셋이 앞을 막아섰다.
천소명이 천궁환의 아들인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만화전은 어느 누구든 천궁환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말씀드려주게. 아버님께서 기다리던 손님을 모시고 왔네.”
천소명의 말에 경비무사 중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그는 문을 연 채 한쪽으로 비켜섰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혁무천은 천소명을 따라서 만화전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컸지만 내부구조는 단조로웠다.
회의를 하는 곳인 듯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랗고 기다란 탁자가 있고, 그 안쪽으로 내실이 있었다.
천소명은 혁무천을 내실로 안내했다.
넓은 내실 안에는 천궁환만 있었다.
“모시고 왔습니다, 아버님.”
천궁환은 탁자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은 채 혁무천이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혁무천은 두 손을 맞잡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예를 취했다.
“무천입니다.”
“어서 오게. 앉지?”
혁무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다가가서 천궁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천소명마저 나가자, 넓은 내실 한 가운데에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두 사람 앞에는 조금 전에 따른 듯 차가 가득 채워진 찻잔이 하얀 김을 피어올리고 있었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여기에는 우리 두 사람뿐이네.”
혁무천도 들어서면서 건물 전체를 살펴본 터였다. 경호무사조차 은신해 있는 자가 없었다.
대담한 건지,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천궁환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것.
혁무천은 일단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직경 일 장 안을 진기로 차단했다.
이제 두 사람이 심하게 말싸움을 해도 차단된 공간 밖에서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소곤거리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마침 천궁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 때문에 독대를 원했는지 말해보게.”
혁무천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거래를 했으면 합니다.”
“거래라……. 허허허, 거래라면 단 둘이 만나지 않아도 될 일 같네만.”
“일반적인 거래라면 그렇겠지요.”
“흐음, 그러니까, 일반적인 거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흔히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하지요. 아마 총단주께서도 총단주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겁니다.”
천궁환은 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찻잔을 들었다.
차를 마시면서도 그의 가라앉은 시선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정말로 천화상단의 내막을 알고서 하는 소릴까? 아니면 그냥 떠보는 것일까?
젊은 놈이 어찌나 눈이 깊은지 속내를 엿볼 수가 없다.
혁무천도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단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가슴 속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먼저 찻잔을 내려놓은 천궁환이 다시 시선을 들고 말했다.
“그런 일이 전혀 없지는 않지. 허나, 자네와 거래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네.”
혁무천도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직은 급하지 않으신가 보군요. 제가 너무 일찍 왔나 봅니다.”
“성질이 급하군.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그렇게 빨리 포기하면 되나?”
“성질이 급하다기보다 시간이 아까운 거지요.”
“나와 마주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손해는 아닐 텐데?”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혁무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 천궁환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달려올 것이다.
“그럼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다른 일을 논하지요.”
“말해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