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04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04화
204화
“그는 반드시 올 겁니다. 그럴 배짱도 없는 자라면 기 대주가 당했을 리도 없지요.”
“나 역시 그가 올 거라 생각하네.”
천궁환이 천신명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천신명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가 무슨 이유로 오려는지, 그 목적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가 설마 차나 마시며 담소를 나누려고 오겠습니까?”
그때 천주명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수화와 소명이 전에 그를 만났다 합니다. 그때 그가 이곳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합니다. 수화가 술 한잔 산다고 했다는데, 지금은 그것 때문에 오는 건 아닐 겁니다만…….”
사람들이 핀잔을 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천이란 자로 인해 천화상단의 자존심이 뭉개진 상황이다.
지금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때인가?
그런데……
“푸하하하하!”
갑자기 천궁환이 대소를 터트렸다.
사람들이 시선이 이번에는 천궁환에게로 향했다.
“총단주, 왜 그러시오?”
황승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천궁환이 말했다.
“바보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소만, 정말로 그 약속 때문에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예?”
“물론 우리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겠지요. 어쩌면 생각도 못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소. 생각할수록 젊은 친구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허…….”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황승을 비롯해서, 이곳의 누구도 천궁환이 사람에 대해 평하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천신명 역시 처음 들어본 부친의 말투에 입을 꾹 다물었다.
가슴에서 묘한 감정이 불길처럼 피어났다.
그것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질시의 감정이었다.
“신명아, 그가 이곳에 올 때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해라.”
“예.”
“그리고 삼태상과 사대천화에게도 대기하라 전하라.”
“……?”
천신명은 고개를 들어서 부친을 바라보았다. 부친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적이라는 결정이 나면, 반드시 제거해야만 할 것이다. 모든 힘을 쏟아서라도. 한 산에 호랑이는 한 마리만 있으면 돼.”
그제야 부친의 말뜻을 깨달은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
싸움이 벌어진 지 사흘이 지났다.
부상자들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내상도 많이 나아졌다. 철상과 강탁을 제외하면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을 듯했다.
“정말 천화상단에 갈 생각인가?”
송비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혁무천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가겠다고 했으니 가야지요.”
“너무 위험하네. 저들이 가만있겠나?”
“나 역시 송 국주님과 같은 생각이네. 기름동이를 안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거나 같아.”
사공곽이 침중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은설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맞아요, 오빠. 여기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순순히 받아주겠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혁무천도 은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싸움이 벌어지고 사흘이 지났다. 그런데 제녕에 천화상단 사람들이 대규모로 들어왔다는 말 들어봤어?”
“어?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왜 그놈들이 안 달려오지?”
소소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많은 피해를 입었으니 당장 혁무천 일행을 잡기 위해 대규모 척살대가 파견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자칫하면 귀천교를 건드릴까 봐 대규모 척살대를 파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네.”
사공곽이 이마를 찌푸리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혁무천은 고개를 저었다.
“귀천교를 무서워한다면 그러겠지. 하지만 저들은 귀천교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럼 왜 저들이 척살대를 보내지 않았다고 보는가?”
사공곽이 그렇게 묻자, 모두가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혁무천이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내가 오길 기다리겠다는 거지.”
“뭐?”
“아마 내가 어떤 놈인지 궁금한 모양이야.”
“…….”
“그러고 보면 천화상단의 총단주란 사람도 참 대단해. 그 많은 피해를 보고도 참다니. 어쩌면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할지도 모르겠어.”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혁무천이 더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을 낼 수 있을까?
안색도 변하지 않고 자신을 천화상단 총단주와 동급에 올려놓는 걸 보면 낯가죽도 제법 두꺼운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그가 걱정되었다.
‘저러다 언젠가는 된통 뒤통수 맞지.’
그들은 생각도 못했다.
이미 혁무천이 제대로 된 뒤통수를 맞아봤다는 걸. 그것도 백여 년 전에.
그날 밤, 간단한 회의를 했다.
자리에는 혁무천과 동대안, 송비, 목량, 소소월만 함께 했다. 소궁단이 비집고 끼려 했지만, 혁무천이 허락하지 않았다.
소소월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회의였다.
아직은 천화상단의 내부적인 비밀을 외부 사람에게 알릴 때가 아니었다.
공짜로 최고급 비밀을 개방에 제공하는 것은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정보와 정보를 맞교환한다면 또 몰라도.
“천화상단을 상대할 때 주의해야 할 사람들이 있네.”
주로 소소월이 말했다.
“사대천화나 천화오대 대주들도 조심해야 하지만, 그들보다 더 무서운 자들이 있네.”
위진광이나 기원숭보다 무서운 인물이라니!
혁무천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서부터 기가 질렸다.
“특히 삼태상과 황승이라는 노물은 천화상단 총단주인 천궁환도 함부로 못하는 자들이네.”
소소월은 그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황승은 한 나라의 태공과 같은 자네. 그리고 삼태상은 천화상단 무력의 최정점에 선 자들이지.”
혁무천조차 그의 말을 끊지 않고 듣기만 했다.
천화상단에 대해서는 들을수록 놀랍기만 했다. 도대체 어디가 그 힘의 끝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천화상단의 무력단체인 비천(秘天)을 이끌고 있네.”
“…….”
“비천?”
“현 황궁을 존재하게 만든 전대 제국의 숨겨진 힘이 그 뿌리라고 할 수 있지.”
그와 비슷한 말을 명승연도 했었다.
소소월도 알고 있는 걸 보니, 일단 그 부분은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중요한 건, 그들의 힘이 비대해지다 보니 이제는 천화상단을 좌지우지할 정도가 되었다는 거네.”
“그럼 천궁환도 비천 때문에 골치 아플 때가 있겠군요.”
“그럴 거네. 힘이 생기면 자신의 머리 위에 누가 있는 걸 싫어하는 법이지. 그래서 그는 비천 외에 또 다른 힘을 구축했네. 비천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조직을 말이야.”
그 결과물이 사대천화와 천화오대다.
그리고 어쩌면 더 많은 힘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소월은 그쯤에서 침을 삼킨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둘 사이를 잘 이용하면, 천화상단의 힘을 최대한 약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네. 내가 아는 한, 그들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것밖에 없어.”
“소 노사의 말씀, 새겨두지요.”
-조호이산.
산에 숨어 있는 호랑이들을 밖으로 끌어낸다.
-차도살인.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적을 친다. 쉽게 말해서 서로 간에 머리 터지도록 싸우게 만든다.
-각개격파.
힘이 약해지면 나누어 놓고 팬다.
마음에 드는 병법이었다.
***
보고서에서 눈을 뗀 우문척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녕에서 올라온 보고였다.
제녕에는 지부가 없는 대신 정보 수집을 위해 파견된 무사들이 상주해 있었다.
그들이 보낸 보고서에는 제녕에서 벌어진 일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무천이 일행과 함께 제녕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제녕성 안의 한 곳에서 엄청난 싸움이 벌어졌다.
무천 일행을 정체불명의 무사들이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엄청난 기파가 싸움이 일어난 점집을 중심으로 수십 장 밖까지 퍼졌다고 했다.
‘이 정도라면 최소 초절정경지의 고수들이 부딪쳤다는 뜻인데…….’
무천이 그 경지에 올랐다는 건 저번 만났을 때 간파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천화상단?”
무천과 천화상단이 충돌했다면 상황이 얼추 이해가 된다.
“흠, 우리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가?”
우문척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그리고 천화상단이 절대경에 이른 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무천의 말도 사실이라는 뜻이고.”
냉소가 입가로 번졌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곧장 부친을 찾아갔다.
우문강천은 우문척에게 이야기를 듣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도 천화상단이 팔대마세에게 뒤지지 않는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천화상단과의 충돌을 금지한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화상단에 절대경의 고수가 하나도 아니고 둘 이상 존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이 강호로 눈을 돌리면 언제든 강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한번 찔러보고 반응을 볼까 합니다. 장사꾼들은 너무 놔두면 주제를 모르고 오만해지는 법이지요. 겸사겸사 경고도 되지 않겠습니까?”
톡, 톡.
태사의의 손잡이를 손가락을 치던 우문강천이 손짓을 멈췄다.
“하긴 돈만 아는 놈들에게 칼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결정을 내린 듯 우문강천이 차가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철혈귀령 다섯을 내주마. 철혈마령대와 함께 데려가라.”
“감사합니다.”
“정은맹과의 싸움이 전면전으로 흐르고 있다. 일단 둘째를 그 쪽에 투입할 생각이다. 천화상단 일을 처리하고 나면 네가 이끌도록 해라.”
“예, 아버님.”
“소소는 찾았느냐?”
갑작스런 질문에 우문척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아니, 안 찾았다. 지금은 찾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똑똑한 아이니 강호 구경을 다하고 나면 돌아올 겁니다.”
우문강천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우문소소는 그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남들 눈에는 애지중지하는 딸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그런데 막상 사라지자 가슴 한 구석이 빈 듯했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너무 소홀했나?’
그는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으면 사소한 정도 가슴에 흔적을 남긴다는 걸.
***
중원의 동쪽에서 수상한 바람이 불어올 때, 서쪽에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강호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정은맹이 끝장 날 거라 생각했다.
만마성과 마천문, 혈왕동이 손을 잡고 주력고수를 파견한 터였다.
정파의 잔당들이 모인 정은맹의 힘으로는 결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잘해야 보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약간의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은맹이 사라진 정파의 비전무공을 얻었지 않은가.
복우산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서 사력을 다해 싸운다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칠월 어느 날, 상남 인근의 계곡에서 정은맹과 마도 삼파연합의 주력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전황은 예상대로 마도 삼파연합의 우세로 진행되었다.
정은맹의 무력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했지만, 마도의 주력고수들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악착같이 버티던 정은맹은 점점 계곡 안쪽으로 몰렸고, 결국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계곡의 끝은 호리병처럼 생겼는데 퇴로가 없었다.
마도의 고수들은 앙천광소를 터트리며 승리를 자신했다.
이제야말로 정파의 잔당들을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모조리 죽여서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겠노라!
살기가 충천한 그들은 일제히 공격에 나서서 정은맹을 몰아붙였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회의를 입은 백여 명의 복면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