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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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01화
201화
명승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자신 역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과연 무천이 자신을 위험에서 지켜줄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미 던져진 돌, 이 사람이라면 그들의 단단한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그는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천화상단의 뿌리가 어딘지 아십니까?”
“이전 제국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태상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그건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일 뿐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흠, 그래요?”
“천화상단의 진짜 뿌리는, 전대 제국의 황가입니다.”
“예?”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적이었을 전대 제국의 황가가 어떻게 현 황궁의 물품 거래를 장악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제국이 지닌 힘 중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 사황자가 그 힘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잠적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국이 힘없이 무너졌던 것이지요.”
“그들이 천화상단을 일으켰다?”
“그렇습니다.”
사실이라면 그들이 지닌 가공할 무력 역시 이해가 되었다.
“그만한 힘이 있다면 황궁도 견제를 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황궁의 납품권을 주는 대신 너무 많은 걸 욕심내지 못하게 했지요.”
그랬던 천화상단이 욕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혁무천은 그런 경우가 왜 발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거겠지. 넘쳐흐를 만큼.’
그리고 그렇게 넘쳐흐르다 보면 약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혹시 제남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
명승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가 천화상단 총단에서 일하고 있소이다.”
***
중원 상계에 폭풍이 불어 닥치기 전, 강호에서 먼저 피바람이 불었다.
만마성과 마천문, 혈왕동이 정은맹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화광, 공손두, 능화 등 젊은 소주인들이 이끄는 무사대에 더해서, 노고수들이 포함된 삼파의 무사들이 추가로 정은맹 타도에 뛰어들었다.
하남성 서부의 복우산 일대가 전쟁터가 되다시피 했다.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며 무사들이 죽어갔다.
훗날 복우혈전이라 명명된 싸움이 무더위마저 밀어내며 시작된 것이다.
그 즈음, 혁무천 일행은 제녕에 도착했다.
본래는 북쪽의 수룡방을 들른 다음 제남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정보를 얻기 위해서 개봉에 들렀을 때, 개방으로부터 얻은 한 가지 정보 때문에 제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천화상단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이 제녕에 있네. 아마 그 사람이라면 천화상단에 대해서 잘 알걸?”
인원도 한 사람이 늘었는데, 개방의 후개인 소궁단이 악착같이 따라왔다.
말로는 초행길인 제녕으로 가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은설과 사공미미를 훔쳐보는 걸 보면 꼭 그것만이 목적은 아닌 듯했다.
더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소궁단도 제녕은 초행이었다.
덕분에 길을 빙 돌아서 다섯 시진이나 더 걸어야 했다.
“후우, 저기가 제녕이네.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제대로 찾은 것 같군.”
소궁단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눈치를 봤다.
혁무천은 석양에 의해 황금빛으로 물든 제녕성의 성곽을 바라보았다.
조금 헤매긴 했지만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보료에서 다섯 시진에 대한 대가를 뺄 테니 이해해.”
혁무천이 냉정하게 계산적으로 말했다.
소궁단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통통하게 살찐 토끼가 그의 구미를 당기지만 않았어도 엉뚱한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을 텐데.
“그자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나?”
이제 혁무천은 소궁단이 내놓은 정보도 믿을 수 없었다.
길도 모르는 놈이 어떻게 사람을 안단 말인가.
그래도 소궁단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사부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셨네. 가자고!”
혁무천 일행이 제녕성 성문을 통과할 즈음, 네 사람이 석양을 등지고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겨우 찾았군. 엉뚱한 길로 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주? 성 안에서 처리하실 겁니까?”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어. 총단주께서 황궁으로 가시기 전에 놈의 제거 소식을 전해야 한다. 애들은 다 도착했나?”
“곧 도착할 겁니다.”
“좋아, 애들이 도착하면 놈들을 친다. 그 전까지 놈들의 흔적을 놓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
***
혁무천은 성문을 통과하며 조소를 지었다.
성문을 지키는 위사들과 소궁단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은자 한 냥으로 별 소란 없이 해결되었다.
믈론 그 한 냥도 정보료에서 뺄 생각이다.
‘꼬리가 붙었군.’
그가 조소를 지은 것은 저 멀리서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꼬리가 붙은 것은 이십 리쯤 떨어진 곳에서였다. 그들은 백여 장의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몇 사람 되지는 않았지만 강호에서도 보기 드문 고수들이었다.
제남에 영향을 미치는 강호 세력은 많지만 그 정도 고수를 거느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가장 의심이 드는 곳은 귀천교.
하지만 그들이라면 굳이 시간을 들여서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곧장 앞을 막고 칼부터 뽑았겠지.
또 한 곳 가능성이 있는 곳은 마도십문 중 하나인 해천방인데, 그들은 자신들과 얽힌 게 없다.
꼭 얽힌 것이 있어야만 칼을 들이대는 세상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곳은 하나. 천화상단 뿐이다.
그들이라면 이유가 차고 넘쳤다. 더구나 이번 낙양 건까지 알았다면 이를 갈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이를 갈고 있는 그들의 아가리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고 있는 셈 아닌가.
물론 그에 대해서 걱정했다면 찾아갈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무림만 명분을 중시하는 게 아니다. -단, 마도사파는 조금 다르지만.-
상계 역시 명분을 무척 중시한다. 어쩌면 작금의 강호보다 상계가 더 따질지 모른다.
명분과 신뢰가 없으면 거금이 오갈 수 없으니까.
“뭘 그렇게 생각해요?”
은설이 옆에서 물었다.
혁무천은 조소를 부드러운 미소로 바꾸었다.
“일이 재미있게 흐를 것 같아서.”
은설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깊게 생각마라. 지금은 모르는 게 나아.”
나중 일이야 어떻든 은설은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미리 알아봐야 괜히 흥만 깨질 뿐이다.
그때 마침 소궁단이 말했다.
“연풍루를 돌아서 옆길… 아! 저쪽이네.”
그러고는 주루 옆에 난 골목길을 가리켰다.
일행은 소궁단을 따라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각도 되지 않아서 소궁단을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믿지 않는 게 나았어.”
“제길, 내가 어쩌다 거지를 믿어서…….”
“대형, 다음부터 거지는 끼워주지 맙시다.”
소궁단은 눈알만 사방으로 굴렸다.
골목까지는 잘 찾아서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골목 안에 길이 하나 새로 생겨서 소궁단이 알고 있는 것과 달라진 것이다.
소궁단은 둘 중 하나를 찍었지만… 잘못 찍었는지 반각을 걸어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다.
쩔쩔매는 소궁단이 안 되어 보였는지 은설이 물었다.
“소 공자님.”
부르기는 했는데 어째 어색했다. 그렇다고 ‘소 거지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난생 처음 공자 소리를 들어본 소궁단이 벌게진 얼굴로 대답했다.
“예, 소저.”
“혹시 찾으려는 곳의 특징 같은 거라도 알고 계세요?”
“특징이라면…….”
문득 사부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아! 있습죠. 그자는 점집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궁단에게 집중되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마치 그런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은설은 뭐라고 하기 전에 기억부터 더듬었다.
“아까 보니까 저쪽에 점집을 알리는 깃발이 하나 걸려 있던데.”
일행은 뒤로 돌아서 은설이 깃발을 봤다는 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깃발이 세워진 집의 대문에 붉은색 주사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천하제일(天下第一) 점(占)」
대문에 적힌 글자를 본 혁무천 일행은 못미더워하는 표정으로 소궁단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긴 아니겠지?
남경에서 유명한 점쟁이 구요도 감히 천하제일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거늘.
그런데 소궁단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찾았습니다! 저깁니다!”
사람들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대문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래도 글씨는 제법 잘 쓴 듯했다.
탕탕탕!
소궁단이 빠르게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주인장!”
대답은 한참이 지나서 들렸다.
“뉘쇼?”
“혹시 소소월이라는 분 아니십니까?”
“내가 소가이오만…….”
안에서 들린 대답에 소궁단이 뒤를 바라보며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집 안쪽을 향해 말했다.
“악삼개 어른이 보내서 왔습니다.”
잠시 침묵 후, 한마디 대답이 들려왔다.
“꺼져!!!”
“…….”
소소월에게 악삼개는 징글징글한 웬수였다.
아무리 친구라도 삼 년 동안 빌붙어서 얻어먹고만 산다면 누가 그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더구나 씻지도 않아서 냄새까지 진동을 해 손님마저 쫓아낸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라 웬수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 놈이 보낸 사람들이라면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땡그랑.
문틈으로 던져진 열 냥짜리 은원보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열 냥짜리 은원보를 아낌없이 던지는 자라면 최소한 악삼개보다는 나을 듯했다.
“험, 무슨 일로 온 거요?”
혁무천은 소소월이 뭘 좋아하는지 간파하고 그에 걸맞게 말했다.
“은자 천 냥짜리 부탁을 하려고 왔습니다.”
바로 문이 활짝 열렸다.
“들어오시구랴.”
소소월은 돈에 마음이 움직인 걸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은자 천 냥에 목숨 걸 사람을 꼽으라면, 제녕성만 해도 뒷산의 소나무 솔잎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혁무천은 소소월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덩치도 작은 사람이 성깔은 제법이군.’
소소월(蘇小月)은 그 이름만큼이나 덩치가 작았다. 아마 뒷모습만 봤다면 이제 열두어 살짜리 아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앞모습은… 입이 조금 들어간 염소를 떠올리게 했다.
방이 작아서 안으로는 네 사람만 들어갔다.
혁무천, 송비, 목량, 그리고 은설까지.
나머지는 전청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방으로 들어가자 소소월이 차를 따라주었다. 향기가 제법 괜찮은 차였다.
소소월이 가끔 기분 좋을 때 타먹는 최고급 차.
은자 천 냥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 대접을 해도 되었다.
설령 자신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어서 그냥 보낸다 해도, 이미 열 냥짜리 은원보를 챙겼지 않은가.
“그래, 이 점쟁이에게 어떤 부탁을 하시겠다는 거요?”
혁무천은 차로 입술을 축인 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천화상단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소소월이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거짓말처럼 동작을 멈췄다.
혁무천은 별일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차를 마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변화가 있기를 기다렸다.
한참 만에 소소월이 마저 찻잔을 입술로 가져가서 쉬지 않고 다 마셨다. 차가 식어서 데일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턱.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혁무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미쳤군.”
“무너뜨리는 게 어려우면 통째로 삼키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직 살날이 창창한 것 같은데, 쯔쯔쯔…….”
“일단 점이나 한번 봅시다.”
“왜? 언제 죽을 건지 알고 싶은 거요?”
“그것도 좋지요.”
“그럼 어디 생년월일을 말해보쇼. 그리고 이 통 안에서 막대도 하나 뽑아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