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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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99화
199화
사공곽과 사공미미는 여전히 구경만 했다.
혁무천은 포위한 네 사람을 천천히 둘러본 후 규화동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내가 사도맹을 우습게 보는 것 같소?”
“네놈의 행동을 네놈이 모른단 말이냐?”
“내가 그랬나? 좋소, 그럼 그렇다 치고,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야 잘못한 것에 대해서 죄를 물어야겠지.”
“좌를 묻는다? 당신이? 나에게? 하하하하하!”
혁무천이 고개를 쳐들고 대소를 터트렸다.
규화동의 눈초리가 역팔자로 꺾어져 올라갔다.
“이놈!!!”
웃음을 뚝 멈춘 혁무천의 시선이 사공곽에게로 향했다.
“사공 형도 봤듯이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은 내 잘못이 아니야. 나중에 트집 잡지 말도록.”
사공곽은 왠지 모르게 찜찜했지만, 살짝 이마만 찌푸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혁무천도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규화동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온기 하나 없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아까운 수하들 잃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물리시오.”
“건방진 놈! 꿇려라!”
규화동이 분노의 일갈을 내지름과 동시,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무기를 빼들고 혁무천을 공격했다.
그들은 사도맹에서도 최강의 무력단체인 천귀단원들로 본래 사도맹주 사공헌의 명령만 듣는 자들이었다.
모두 절정경지에 이른 고수들.
그들은 좀처럼 사공헌의 곁을 떠나지 않는데, 이번 일의 중요성 때문에 사공헌이 넷을 딸려 보낸 것이다.
하지만 혁무천을 만난 것이 불운이었다.
혁무천은 극한의 수련을 거친 절정고수들을 어린애 손목 비틀 듯 상대했다.
날아드는 검을 따라 빙글 몸을 돌린 그는 손을 들어서 연속으로 사 장을 떨쳤다.
콰과과광!
가공할 공력을 내포한 장력이 천귀단원들을 휘감았다.
천귀단원들은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장세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혁무천은 주춤거린 자들 사이로 파고들며 쌍장을 떨쳤다. 무진일선공의 웅혼한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휘돌며 상대의 검로를 차단했다.
천귀단원들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혁무천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리고 공간을 파고들자,
우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천귀단원 중 삼십 대 중반의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물러섰다.
검을 든 손의 손목이 부러져서 덜렁거렸다.
뒤이어 빙글 몸을 돌린 혁무천이 일장을 내치자,
쾅!
굉음과 함께, 일 장 떨어진 곳에 있던 천귀단원 하나가 훌훌 날아가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두 사람이 무너진 상황.
다른 둘은 혁무천이 장악한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도검을 휘두르며 물러섰다.
혁무천이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보며 쌍장을 뻗었다.
영롱하면서도 푸른빛을 띤 장력이 벼락처럼 뻗어나가며 두 사람을 삼켰다.
“타아앗!”
규화동이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혁무천의 등을 덮쳤다.
비겁하네 마네 따질 겨를이 없었다.
콰광!
천귀단원 둘을 날려버린 혁무천은 미끄러지듯 옆으로 흐르며 돌아섰다.
어느새 천망검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쉬아아악!
가공할 기운의 여파로 짓눌린 공간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떠덩!
둔중한 울림과 함께 규화동의 몸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안색이 창백해진 그의 눈은 불신의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찌 이런…….’
단 일수 격돌로 내상을 입었다. 아무래도 혈도가 상한 듯했다. 진기의 유동이 원활하지 않았다.
혁무천은 검을 사선으로 내린 채 서서 전각 안을 둘러보았다.
“자비를 베푸는 건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도록.”
나직하면서도 묵직한 목소리가 심혼을 짓눌렀다.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사공곽조차도 이를 악물고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부릅뜬 그의 눈이 미미하게 떨렸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우문척이 호적수라고 할 때만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제깟 놈이 강하면 얼마나 강해서!
전력을 다한다면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강해도 너무 강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데도 면산일마 규화동이 일초에 밀렸다.
무천이 살심을 드러내고 손을 쓴다면 이 안에서 몇 사람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까?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 역시 무 공자야. 너무 멋져.”
사공미미의 어이없는 감탄이 사람들의 정신을 깨웠다.
혁무천은 사공미미가 또 다른 헛소리를 하기 전에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차갑게 인사말을 건넨 그는 전각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주겠네! 오십만 냥을 주지!”
모용금적이 황급히 소리쳤다.
무천이 이대로 떠난다면 천화상단이 행한 일에 대해 알아낼 수가 없다.
아마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넘어간 후일 것이다.
어떻게든 알아내야 한다. 무천의 말대로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하지만 혁무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남은 이야기는 객잔에서 하지요. 혹시라도 객잔에 사람을 보냈다면 아무 일도 없기만 바라야 할 거요.”
덜컹.
전각 문이 활짝 열리자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룡방 무사 수백 명이 천룡전 앞마당에 집결해 있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무기를 빼들고 달려들겠다는 듯 한손을 무기에 대고 있는 자가 많았다.
비룡단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 고개를 돌렸다.
“단주, 아무래도 끝장을 볼 생각인 모양이네.”
동대안이 눈에서 살기를 번들거리며 말했다.
긴장은 했어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은설마저도 투지를 불사르며 언제든 공격에 나설 자세였다.
“오빠, 어떻게 할 거예요? 쓸어버려요?”
참 많이 컸다.
혁무천은 문득 그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꾹 참고 보다 더 차갑게 말했다.
“누구든, 검을 들이대는 자는 죽여도 좋아.”
동대안이 먼저 그 말을 반겼다.
안 그래도 짜증이 잔뜩 난 그였다. 불러 놓고 술은 주지 못할망정 칼을 들이대려고 하다니.
천룡방 무사들을 쓱 둘러본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거 반가운 말이군. 일인당 삼십 명씩만 죽여도 다 쓸어버릴 수 있겠는데?”
너무도 태연한 그의 말에 오히려 천룡방 무사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모두 물러가라!”
모용금적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미 무천의 강함을 보지 않았는가. 무사 삼백은 저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혁무천은 물러서는 자들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천룡방 무사들이 양쪽으로 쫙 갈라졌다.
그때 전각 안쪽에서 사공곽이 사공미미와 나왔다.
“함께 가세. 할 말이 있네.”
모용금적과 규화동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혁무천은 사공미미가 귀찮아서 거부하려다가 참았다.
사공곽은 우문척과 함께 움직인 사람이다. ‘할 말’이라는 게 우문척에 대한 것이라면 나중을 위해서라도 들어두는 게 나았다.
“좋을 대로 해. 단, 여동생의 입은 그대가 책임져야 할 거다.”
사공미미는 그 말에 쀼루퉁한 표정으로 은설 쪽을 힐끔거렸다.
무천이 마룡선발대회에 출전한 이유를 잘 아는 그녀로선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 그럼 무 공자가 찾으려 했다는 동생이…….’
사공곽은 그런 사공미미를 슬쩍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지. 너무 걱정 말게. 미미도 알고 보면 조신한 여자라네.”
혁무천은 그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열 가지도 넘었다. 하지만 반박한다 해서 이익 될 것 또한 아무 것도 없었다.
“조신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입만 막아.”
사공미미가 그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
송비는 혁무천 일행이 돌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군.”
혁무천은 객잔의 분위기만 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저들이 과욕을 부리지는 않았군요.”
“공격하면 다 죽이고 튈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그냥 갔네.”
송비가 자신 있게 말하고는 사공곽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친구는 누군가? 몸이 좋은데?”
“사도맹의 사공곽이오.”
“사공곽? 혹시… 사도맹주의 아들?”
송비의 눈이 커지자, 사공곽이 포권을 취했다.
“사공곽이라 하오.”
“어? 어, 난 송비네.”
혁무천은 포로들을 장대산과 철호에게 맡겨 놓고 객잔으로 갔다.
천룡방 무사들이 돌아가자 객잔의 주인과 점소이도 돌아와 있었다.
마침 자리가 텅 비어서 가장 경치 구경하기 좋은 창가 쪽에 앉았다.
혁무천은 맞은편에 사공곽과 사공미미를 앉히고, 자신 옆에는 은설을 앉혔다.
사공미미가 빤히 은설을 보더니 물었다.
“나는 사도맹의 사공미미라고 해. 혹시 무 공자가 찾는다던 여동생?”
“맞아요.”
“호호호, 정말 예쁘네. 과연 무 공자가 모든 걸 걸고 찾을 만해.”
“사공 언니에 비하면 저야 달빛 아래 반딧불이죠.”
“어머, 무슨 소리. 동생은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나 봐.”
“저 정도 여자야 얼마든지 많아요. 여기 저잣거리만 가도 흔하게 보이는데요 뭐.”
“동생 정도 예쁜 여자가 길거리에 널렸으면 세상의 잘난 남자들이 다 낙양으로 몰려들 걸?”
사공미미는 은설을 치켜세워주면서 어영부영 동생으로 만들어버렸다.
혁무천은 그게 싫었다. 그래서 죄 없는 사공곽만 닦달했다.
“할 이야기 없으면 데리고 가.”
사공곽이 사공미미에게 눈을 부라렸다.
사공미미가 언제 떠들었냐는 듯 고개를 돌리고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하게 보이는지 은설이 피식 웃었다.
사공곽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말해 봐.”
“우문 형에 대한 자네 생각을 듣고 싶군.”
혁무천은 조금도 어려울 것 없다는 듯 바로 답했다.
“천하를 노리는 사람 중 하나.”
“…….”
“그리고 내가 인정하는 몇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지.”
사공곽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혁무천을 쳐다보았다.
혁무천의 말 속에는 자신 역시 그와 동급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대단한 자화자찬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게도 그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그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대단하지. 세상에 없는 힘을 얻었거든.”
“세상에 없는 힘?”
“더 알면 골치 아프니까 그렇게만 알아.”
사공곽은 이마를 이지러뜨리고 혁무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불만이 많은 듯했다.
혁무천이 결국 한마디 더했다.
“나도 그 힘의 정체를 정확히는 몰라. 다만 내가 아는 건, 그 힘이 전부 같지는 않다는 거다.”
“힘이 같지 않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군.”
“그래서 골치 아프다고 한 거야.”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사공곽이 흠칫 눈을 치켜떴다.
“그럼 혹시 자네도……?”
“지금 궁금한 사람이 나야, 아니면 우문척이야?”
“지금은 둘 다야.”
왠지 사공곽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진 듯 느껴졌다.
혁무천은 그런 사공곽의 어깨마저 무너뜨렸다.
“그렇다면 이것도 알아 둬. 천화광과 공손두도 그 힘을 얻은 자들이라는 걸.”
기왕이면 많은 자들을 끌어들이는 게 관심을 덜 받는 길이다.
“그리고 그들 외에도 서너 명 더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
혁무천은 물귀신처럼 그들을 물고 늘어졌다.
“제기랄…….”
넓은 어깨가 축 처진 사공곽은 쓴웃음을 지었다.
“실망할 건 없어. 당신도 충분히 강하니까.”
혁무천이 그리 말했지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이봐, 난 말이야, 항상 최고가 되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어.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름 자신 있었지. 내가 내 나이 또래 중 제일은 아닐지 몰라도, 나보다 더 강한 놈은 없을 줄 알았어. 그런데…….”
시선을 내리깔고 말하던 사공곽이 눈을 치켜들며 잇새로 으르렁거렸다.
“강호에 뭐 이리 강한 자들이 빌어먹게 많은 거야?”
“그래서 문제지.”
“뭐?”
“누가 그러더군. 혼돈의 기운이 나타났으니, 혼돈의 세상이 올 거라고.”
“…….”
“뭔가 느낌이 오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