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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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38화
238화
천주명은 그자가 소리친 목적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소. 가서 비룡단주께 말씀드려주시오.”
“비룡단주님은 왜 찾으시는 거요?”
“본 상단의 무사들이 엉뚱한 욕심을 부려서 비룡장의 표행이 피해를 입었다 들었소. 해서 사과를 하고, 죽거나 다친 분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소.”
잠깐 말을 하는 사이 이십여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 대여섯 명은 검마보의 무사였다. 그들은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는 눈으로 천주명을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보주의 명령이고 뭐고 당장 칼을 빼들고 싶었다.
하지만 보주의 명령 때문에 달려들지는 않았다.
-천화상단에서 사람이 오거든 절대 건드리지 마라.
검마보의 무사들에게 보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따라오쇼.”
삼십 대 무사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검마보 벽마검대 부대주 연후라는 자였다. 그 역시 수하를 다섯이나 잃은 터라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분노를 꾹 참고 천주명 일행을 혁무천이 있는 전각으로 데려갔다.
혁무천은 전각 안에 앉아서 천주명이 호위무사들을 대동하고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천신명의 반쪽도 안 되는 자군.’
그가 천주명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동안, 천주명이 그의 앞 이 장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호위무사들은 그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뒤에 섰고.
“천주명이라 하오.”
“천화상단 사람이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인사도 없이 냉랭한 혁무천의 말에 천주명은 기분이 상했지만 표를 내지는 않았다.
무천으로 인해 두어 번 실패를 맞본 그였다.
도대체 어떤 놈인지 궁금했는데, 아주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천이 위험인물이라는 것만 알 뿐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본 상단의 무사들이 천기회 무사들과 함께 비룡장의 표행을 공격했다고 들었소. 솔직히 그들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소만, 어쨌든 본 상단의 무사들이 관여된 일이니 사망자와 부상자들에게 위로금이라도 전하려 하오.”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천화상단은 모르는 일이다, 그 말이군.”
“그렇소.”
“좋아, 그건 조금 이따 따지기로 하고, 사망자와 부상자에게 위로금을 주겠단 말이지?”
“그렇소. 사망자에게는 각기 은자 백 냥을 주고, 부상자는 상태를 잘 모르니 일단 모두 합해서 은자 만오천 냥을 드리도록 하겠소. 알아서 나누어주었으면 하오.”
“성의를 보이겠다는 건데, 마다하면 속 좁은 놈만 되겠지. 가져왔으면 내놔 봐.”
천주명은 속을 긁은 무천의 말투에 가슴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품속에서 전표를 꺼냈다.
전표는 은자 천 냥짜리 열다섯 장이었다.
“목량, 받아라.”
한쪽에 서 있던 목량이 앞으로 나와서 천주명에게 전표를 받았다.
그러고는 전표를 확인한 후 혁무천에게 말했다.
“은자 만오천 냥. 맞습니다.”
“그래? 그럼 적절하게 나눠줘.”
“예, 대형.”
목량에게 지시를 내린 혁무천의 시선이 천주명에게로 향했다.
“그대들이 사망자와 부상자들에게 준다는 위로금은 받았고…….”
혁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주명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는 산 사람들의 빚을 받을 차례군.”
천주명이 흠칫하며 경계했다.
“무슨…… 말이오?”
“산 사람들도 형제와 친구, 동료의 죽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화산 같은 분노를 느끼고 있지.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잠재우려면 그에 대한 대가도 내놓아야 하지 않겠나?”
“그 일은 우리가 시킨 것이 아니라…….”
“천기회가 천화상단 무사들을 꾀었다고 했던가?”
“그렇소.”
“아니지, 그게 아니라 천화상단이 천기회를 꾀었겠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직 모르고 있나 보군.”
천주명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싸늘한 한기가 흘렀다.
“무슨……?”
“천기회주의 아들 신도평을 모른다고는 않겠지?”
“나는 그를 모르오.”
“모른다? 내가 알기로는, 천기회주 신도명산이 신도평과 함께 천화상단에 갔을 때, 그대도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아니오, 그날 함께 있었던 사람은 형님…….”
무심코 변명하던 천주명이 말꼬리를 흐렸다.
신도명산과 신도평이 천화상단을 방문한 것은 비밀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 자신의 입으로 말해버린 셈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를 잘 모르오. 그를 찾고 싶으면 천기회에 가보시오.”
“가보면 뭐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인데.”
왠지 말뜻이 이상하다.
천주명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만날 수 없다니…….”
“어제 내 손에 죽었다. 물론 표행 공격에 나선 천기회 놈들도 대부분 죽었지.”
천주명이 눈을 부릅떴다.
‘이런… 빌어먹을! 언제 그런 일이……!’
만일 도주한 신도평 일행이 무천의 손에 죽은 걸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놈이 죽기 전에 그러더군. 천화상단의 천주명이 도움을 요청했다고.”
“아, 아니오! 거짓말이오! 내가 뭐가 아쉬워서…….”
“아쉬울 거야 많지. 너는 몰라도 천신명은 많이 아쉬웠을 거야. 천하제일상가라는 천화상단이 진짜 큰 거래처를 우리에게 빼앗겼으니까.”
“이, 이곳의 거래물량은 우리 천화상단의 전체 물량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오.”
“뭘 잘못 알았군. 거래 물량을 말하는 게 아니야. 천화상단의, 정확히는 천신명의 자존심이 뭉개졌다는 것이 문제지.”
“나, 난 모르는 일…….”
천주명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뒤쪽에 서 있던 호위무사 넷이 튀어나가며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번쩍! 하더니, 네 줄기 기운이 벼락처럼 쏟아지며 무천을 덮쳤다.
혁무천은 스산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우수를 들었다.
“천화상단은…….”
쾅!
호위무사 중 하나가 혁무천의 머리를 칼로 내리치다가 튕겨나갔다.
“이번 일을…….”
퍼벅!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저 허공에 커다란 손 그림자가 둥실 떠있는 것만 보였을 뿐.
“책임져야만…….”
와직!
손 그림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빈틈을 파고든 순간, 일수에 한 명씩 튕겨나가거나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할 거다.”
“크억!”
혁무천의 말이 끝났을 때, 절정고수인 호위무사들이 가슴이 함몰되고, 머리가 괴이하게 뒤틀리고, 목뼈가 부러지며 나뒹굴었다.
천주명은 넋이 반쯤 빠진 채 눈을 홉떴다.
“어떻게…….”
혁무천이 그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화들짝 놀란 천주명은 뒤로 몸을 날려 혁무천의 공세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퍼버버벅!
앞으로 나아가며 뿌려댄 혁무천의 지풍이 천주명의 혈도 네 곳에 틀어박혔다.
그 후 혁무천이 쳐낸 일장에 훌훌 날아간 천주명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두어 바퀴 바닥을 구른 그는 벌떡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앞으로 꼬꾸라졌다.
“끄으으으.”
온몸을 쥐어짜는 고통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혁무천이 덜덜 떠는 그를 보며 냉랭히 말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목숨은 살려주지. 하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일단 목을 잘라서 머리만 천궁환에게 보낼 거다.”
천주명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마천제의 살기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 나는…….”
“선택은 알아서 해.”
“단지… 발걸음만 지체시키려 했을 뿐…이오. 그런데 그들이…… 제멋대로 살수를…….”
혁무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네가 내린 명령이냐, 아니면 천신명이 내린 명령이냐?”
“혀, 형이 하라고…… 그래서 내가 연락한 거…요.”
혁무천은 더듬거리는 그를 향해 우수를 저었다.
천주명의 몸뚱이가 붕 떠서 일 장을 날아간 후 나뒹굴었다.
“약속은 지키마. 목숨을 거두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냉랭히 말한 혁무천이 옆을 향해 말했다.
“목량, 이자들을 천신명에게 보내라.”
“예, 대형.”
목량이 사람을 데려와서 호위무사 넷의 시신과 천주명을 밖으로 옮겼다.
천주명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혼자 걷지도 못하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은 채 식은땀만 흘렸다.
전각 안이 조용해지자, 뒤쪽의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에는 율이명도 있었고, 사공진도 있었다.
혁무천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들으셨습니까?”
율이명이 눈에서 살기를 번뜩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공진은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그들은 전각 뒤쪽의 내실에 있으면서 천주명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들었다.
천화상단이 표행 공격의 주범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문제였다.
“천화상단과 싸울 건가?”
사공진이 물었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먹히느냐, 하는 것만 남았지요.”
“끄응, 이거 아무래도 줄을 잘못 선 것 같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무림세력이 아니면서도 그 어느 무림세력보다 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천화상단이었다.
저 괴물 같은 놈이 그 천화상단을 상대로 어떤 대결을 펼칠지, 전율이 일 정도로 궁금했다.
“미리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천궁환은 대놓고 분노를 드러내지 못할 겁니다. 일이 커지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요.”
“하긴 천화상단과 천기회의 관계가 밝혀지는 것만 해도 부담인데, 둘이서 비룡장의 표행을 털려고 한 일이 사실이라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천화상단에 절대 좋을 리 없지.”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천궁환이 일을 크게 벌이지 못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하지만 굳이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천궁환, 아무래도 당신의 꿈은 거기까지인 것 같군.’
천년을 버틴 구층석탑도 밑돌이 하나 빠지면 무너지는 법이다.
***
천신명은 안색이 회칠을 한 듯 창백한 천주명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만만하게 금룡장에 갔다가 호위무사 넷을 잃고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침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동생이고 뭐고 죽여버리고 싶었다.
“멍청한 놈. 아무리 죽음이 두렵기로서니 그걸 네 입으로 밝히다니.”
“그럼 저더러 죽으란 말입니까?”
“그래, 차라리 죽지 그랬느냐!”
“형님! 크으윽.”
천주명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려다 말고 몸을 웅크렸다.
어디를 어떻게 당했는지 몰라도, 움직일 때마다 바늘로 뼈를 후벼 파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천신명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천주명은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버지가 알면 천주명뿐만 아니라 자신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게 분명했다.
아니, 아버지는 그나마 괜찮다.
문제는 비천의 늙은이들이다. 그 늙은이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천가의 모든 것이 통째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럴 순 없어!’
천신명은 누워서 고통스러워하는 천주명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가 가슴에 손을 얹자 천주명이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를 올려다보았다.
“혀, 형님….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끄으으으.”
천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고통을 겪는 것보다는 편안히 가는 게 낫겠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