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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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35화
235화
“힘을 내자! 이제 조금만 가면 산을 벗어날 거다!”
선두의 마차 바로 옆에서 걷던 중년인이 소리쳤다.
선두가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그렇게 마차 다섯 대가 갈림길을 돌아갔을 때였다.
갈림길을 코앞에 둔 곳. 호법들과 함께 걷던 율이명이 송림 저 너무를 향해 시선을 들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날파리들이 끼어든 것 같군.”
옆에서 걷던 검마보의 장로와 호법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호단이 선두에 합류해라.”
율이명이 옆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사십 대 중년 무사가 포권으로 예를 취하고는 앞으로 튀어나갔다.
“검호단은 나를 따라와라!”
검마보 일백여 무사 중 사십여 명이 중년인을 따라 앞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갈림길에서 꺾어져 오른쪽으로 사라지고 다섯을 셀 때쯤.
“적이다! 흔들리지 말고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라!”
송림 속에서 쏟아져 나온 자들은 곧장 표행을 공격했다.
비룡장 무사들은 마차를 에워싼 채 철저히 방어진을 형성하고 적의 공격에 맞섰다.
나타난 자들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살수를 펼쳤다.
몇 달 동안 수련에 열중한 비룡장 무사들은 이를 악물고 방어에 치중했다.
“놈들을 막아!
“조금만 버텨라! 지원대가 달려오고 있다!”
평범한 도적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들고 있는 무기에서 검기 도기가 느껴지는 고수도 있었다.
아마 이전의 비룡장 무사들 수준이었다면 잠깐 사이 수십 명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두세 명이 합공을 취하면서 적절하게 적의 공격을 막아섰다.
그럼에도 적이 워낙 강하다 보니 사방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무사들이 늘어났다.
그때 검마보 검호단원들이 몸을 날리며 암습자들을 공격했다.
암습자들과 검마보 최고의 정예 무력단인 검호단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싸움이 더욱 격렬해지면서 살기가 충천했다.
“흥! 제법이군!”
냉랭한 코웃음 소리가 송림 쪽에서 터져 나왔다.
곧 십여 명이 송림 속에서 나오더니 격전 지역으로 몸을 날렸다.
한편, 율이명은 중간 지역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은 선두 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좌우에서 싸늘한 살기가 밀려들고 있었다.
율이명은 오른쪽을 쳐다보며 검을 움켜쥐었다. 자신도 모르게 솜털이 곤두섰다.
‘뭐야, 이거?’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이미 앞선 표행에서도 수상한 무리의 공격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지 않은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을 긴장시키는 고수가 있다니.
“나와라, 이놈들! 어디서 감히 도적질이냐!”
장로들 중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검마보의 장로와 호법들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적의 공격을 기다렸다.
“조심하시오. 보통 놈들이 아니외다. 싸울 때 전력을 다하시오!”
율이명이 경고를 보냈다.
검마보의 장로와 호법들은 흠칫했다.
보주가 가끔 엉뚱한 짓을 하긴 해도 헛소리는 하지 않았다. 특히나 남의 강함을 추켜세우는 말을 한 적은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적었다.
그들은 눈을 치켜뜨고 송림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송림 속에서 수십 명이 솟구쳐서 날아들었다.
율이명은 그 중에서 한 사람만 노려보았다.
나이가 사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꼿꼿이 서서 날아들고 있었다.
자신의 솜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던 그 기운의 주인이 분명하다.
“누구신가?”
율이명이 중년인을 보며 물었다.
중년인은 율이명의 삼 장 앞에 내려섰다.
“그게 뭐 중요할까? 어차피 서로의 목적을 위해서 검을 마주 댈 사이일 뿐인데.”
“하긴 그 말도 맞군.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저승 명부에 이름을 적어야 할 텐데. 이름도 밝히지 못할 졸장부라면 말 안 해도 상관없고.”
율이명의 도발에 중년인은 입술 끝을 살짝 비틀었다.
“상, 그렇게만 알아라.”
그러고는 검을 천천히 빼들었다.
그의 검이 모습을 드러내는 만큼 율이명의 표정도 굳어졌다.
‘어디서 이런 자가…….’
발검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섰다.
천하에 이런 고수가 몇이나 될까.
그때 문득 무천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천화상단의 고수?’
천화상단에는 절대 경지에 오른 고수가 몇 명이나 있다고 했다.
무천의 말이 거짓말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설마?’ 했었다.
그런데…….
‘젠장, 사실이었어.’
바람이 시원해서 오늘 운세가 괜찮을 줄 알았거늘, 아무래도 똥 밟은 운세 같다.
율이명은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리고 검을 뽑았다.
어쨌든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한다.
상대가 절대 경지에 올랐다 해서 자신보다 강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생사투는 개싸움. 경지만으로는 승패를 논할 수 없는 법이다.
상대의 목줄을 먼저 자르는 놈이 승자다.
타앗!
바닥을 차고 몸을 날린 율이명은 이런저런 간보기를 모두 생략하고 처음부터 자신의 성명절기를 펼쳤다.
단천팔검.
달리 벽력단천검이라고도 부르는 율이명의 검법에는 말 그대로 하늘을 가를 것 같은 강맹함이 담겨 있었다.
쩌르릉!
검이 울음을 터트리며 벼락을 토해냈다.
중년인, 부일상은 흠칫하며 다급히 삼검을 쳐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설마 검마보의 보주라는 자가 처음부터 전력으로 검을 펼칠 줄이야!
지금까지 율이명 정도의 고수와 몇 번 비무를 해봤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는 칠성 정도의 공력만 끌어올린 상태.
순간적으로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쩌저저저정!
귀청을 울리는 충돌음.
파도처럼 밀려드는 벼락 같은 검세.
“어림없다!”
부일상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호통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율이명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공력마저 더 끌어올렸다.
일수 격돌로 상대의 실력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상대는 자신보다 고수다. 단,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다.
그렇다면 반격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찰나의 순간만 여유가 생겨도 승패가 뒤집힐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부일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율이명이 자신만 못한 실력이라 하나 그 차이는 미미했다. 한번 밀리니 수세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검마보의 주인이라는 작자가 이런 잔머리를 굴리다니.
그는 겨우 팔성까지 공력을 올려서 율이명의 공세를 막아낸 후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고는 반격의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율이명도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끈질기게 쫓아가며 검강이 서린 공격으로 부일상을 압박했다.
두 사람의 검세가 뒤엉키고,
쩌정! 쾅!
굉음과 함께 뒤로 튕겨진 두 사람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돈 후 땅에 내려섰다.
율이명은 별 변화가 없는 반면, 부일상의 얼굴은 창백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잔수에 당하다니!
하지만 고민할 틈도 없었다.
율이명이 다시 검을 앞세우고 쇄도했다.
‘이제 해볼 만하겠군!’
표행을 공격한 자들은 이백삼십여 명이나 되었다.
선두에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공격은 후미까지 이어졌다.
검마보의 장로와 호법들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상대를 경시하지 않았다.
오만함도 구만리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살기 위해서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쓰러지는 쪽은 표행을 호위하는 비룡장과 검마보의 무사들이 많았다.
관도가 시뻘건 피로 물들고, 시신으로 뒤덮여 갔다.
콰과광!
귀청을 찢는 굉음이 울리고, 율이명과 부일상이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에서는 투지와 분노의 불길이 일렁거렸다.
칠십여 초식을 겨루었다.
막상막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율이명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공을 해서 겨우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 효력도 약발이 떨어진 것이다.
확실히 경지가 높은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제법이다만, 그 정도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율이명.”
자신감을 회복한 부일상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율이명도 말로는 지지 않았다.
“뭘 모르는군. 싸움이란 건 말이야, 결국 뒈진 놈이 지는 거지. 너처럼 칼을 멋으로 익힌 놈은 모르겠지만.”
부일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결국 죽는 놈은 네가 될 것이다!”
냉랭히 소리친 그가 몸을 날리며 검을 뻗었다.
“아마 나보다 네가 먼저 죽을걸?”
율이명도 마주 검을 뻗으며 부딪쳐갔다.
표행을 호위한 무사 이백여 명 중 절반 가까운 인원이 줄어들었다.
천화상단과 천기회 무사들의 숫자도 칠팔십 명은 줄어든 상태였다. 대부분 천기회 무사들이었다.
신도평은 예상치 못한 피해에 분노가 솟구쳤다.
표행을 호위하는 자들은 단순한 보표들이 아니었다.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들만 해도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더구나 중간 쪽에서 벌어지는 가공할 격전은 보표 중에 절정급 이상의 고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개자식! 우리를 속였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습니다! 더 강하게 공격하십시오!”
악을 쓰듯 외친 그도 격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신도평의 말대로 전황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비룡장과 검마보의 무사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율이명도 그 사실을 알기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어이가 없었다.
강호에 나와 첫 번째 싸움에서 끝장 나버릴 판이었다.
그렇다 해서 도주한다는 건 더 마음에 안 들었다.
단천검마 율이명이 도주라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목이 잘리는 게 나았다.
아들이 알면 슬퍼하겠지만, 사정을 알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 것이다.
쾅!
정면으로 부일상의 검을 쳐낸 그는 뒤로 주르륵, 이 장이나 미끄러졌다.
그러고는 남은 공력을 모조리 검을 쥔 오른손에 집중시켰다.
그는 벽력단천검의 팔 초식 중 후 이 초식을 아직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상’이라는 놈을 이기려면 그 두 초식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단, 단천망과 단천멸이라는 두 초식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자신 역시 기맥이 뒤틀릴 각오를 해야 한다.
문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고오오오오.
그의 검에서 피어난 시퍼런 강기가 검신을 따라 휘돌았다.
부일상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발악이 아니라…… 네놈의 목을 치겠다는 것이다!”
퉁!
율이명의 몸이 튕기듯이 날아갔다.
검신에서 휘돌던 강기가 앞으로 쭉 뻗어나가며 부일상을 덮쳤다.
부일상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망설이지 않고 마주쳐갔다.
타아앗!
콰과과광!
굉음이 터져 나오고, 두 사람이 충돌한 지역의 땅거죽이 허공으로 튀었다.
“크읍!”
“으으음.”
다시 뒤로 튕겨져서 오 정 거리를 두고 마주 선 두 사람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율이명의 입에서는 핏기마저 보였다.
‘제기랄, 역시 불완전한 단천망으로는 어려운가?’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일초만 남았다.
그 일초를 펼치고 나면 자신의 삶도 끝날지 모른다.
너무 일찍 끝나는 게 아쉽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율이명은 검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었다.
부일상도 마지막 대결이라는 걸 직감하고 공력을 검에 쏟아부었다.
순간, 율이명이 바닥을 차고 몸을 날리려는데… 숨이 턱 막혔다.
그 바람에 마지막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비틀거렸다.
‘뭐, 뭐야?’
항거할 수조차 없는 가공할 기운이 머리 위에서 밀려왔다.
“좀 쉬시지요!”
그리고 허공에서 들리는 말.
‘상’이라는 자의 시선도 자신의 머리 위로 향한다.
율이명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