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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231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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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귀환천화 231화

231화

 

 

마황궁 무사들이 불길 속에서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갈 때, 다른 곳에서도 지옥이 펼쳐졌다.

앞뒤가 막힌 협곡에서 절벽이 무너지고, 하늘에서는 바위가 날아들었다.

기문진에 빠진 사람들은 미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해야만 했다.

퇴로마저 차단된 마도연합 무사들은 정은맹이 사방 이십 리에 펼친 천라지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팔열지옥을 기반으로 한 십면매복진은 그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치밀했다.

거기다 복우산의 험악한 산세 중 최적의 지형을 찾아 펼친 터라 위력이 배가되었다.

반나절.

드넓은 복우산이 시뻘겋게 물드는 데 그 시간이면 족했다.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에는 복우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

 

표행이 남양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어둠이 세상을 뒤덮은 후였다.

성문이 닫히기 직전에 겨우 성 안으로 들어선 표행은 금룡장의 창고에 물건을 풀었다.

그동안 혁무천은 금룡장 산하의 금하객잔에서 철혈마련 주요 간부들과 함께 때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우문당의 일로 인해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나마 우문척이 미소를 띠고 있어서 그 이상 신경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수혈이 찍힌 우문당도 객방에 누워서 자고 있었고.

하지만 복우산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우문당의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놈들이 작정하고 복우산에 들어갔군.”

우문척의 눈에서 기이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일렁였다.

“저들 중에 병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자들이 있어.”

“그러겠지. 제갈세가의 제자들만 해도 병법에 뛰어난 놈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마도연합으로서는 제갈세가를 치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두 겹, 세 겹 펼쳐진 기문진으로 둘러싸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근 들어 황군이 눈을 부라린 채 융중산 일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황궁과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제갈세가를 직접 공격할 수는 없었다.

“아마 많은 일이 일어날 거다.”

의외로 우문척은 동요하지 않았다.

동요하기는커녕 목소리가 더욱 뜨거워졌다.

“그것도 나쁘진 않아. 세상이 변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혼돈이 필요한 법이지.”

“흠, 혼돈이라…….”

이제는 익숙해진 말이었다.

혼돈의 힘을 지닌 자들.

언젠가는 그 힘을 지닌 자들이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 중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었다.

“우리 협약을 맺는 건 어때?”

우문척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무슨 협약?”

“우리 승부는 마지막으로 미루자는 거지.”

“마지막이라……. 자신 있나?”

“어차피 거기까지도 못 갈 거라면 욕심을 낼 자격도 없겠지.”

“하긴……. 그런데 어쩌지? 난 무림에 대한 욕심이 없는데.”

“무림이든 상계든,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이상 언젠가는 부딪칠 수밖에 없을 거다.”

혁무천은 우문척의 두 눈을 직시했다.

그의 두 눈 깊은 곳에서 활화산의 용암처럼 뜨거운 열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좋아, 약속하지.”

씩, 웃은 우문척은 자신과 혁무천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술잔을 들더니,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옆에 앉아 있던 이들 중 둘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가 무림 역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복우산이 지옥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태양이 동산 위로 머리를 내밀기 전까지만 해도 옥가장은 고요했다.

그런데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동산 위가 밝아올 때,

“뭐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천둥 같은 고함이 삼층 전각을 뒤흔들었다.

밖을 오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전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씨벌,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은데?”

사람들이 궁금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때, 대전 안에서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서협에서 날아온 소식 때문이었다.

 

-정은맹 공격에 나섰던 삼로의 오천 무사 중 태반이 적의 십면매복진에 갇혀서 죽고, 살아나온 사람은 일천 명도 되지 않음.

-진에 갇혀 죽은 사천여 명 중 이천여 명이 백색복면을 쓴 자들에게 당했음.

백색 복면을 쓴 자들의 숫자는 밝혀진 것만 삼백여 명 정도임. 그들은 피에 미친 살귀처럼 날뛰며 마도의 무사들을 도륙했음.

-중소문파와 낭인들로 이루어진 무사들은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 제대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전멸되다시피 했음.

-지원대가 속히 오지 않으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음. 지원 바람.

 

단 한 장짜리 보고서는 마도연합의 수뇌부에 벼락을 맞은 것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전에 모인 각 세력의 수뇌부는 머리에 만근 철추라도 매달린 것처럼 표정이 무거워보였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삼로를 지휘한 수장들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이오?”

“허어, 그 많은 무사들이 몰려가서 정파의 떨거지들에게 당하다니.”

“여기저기서 몰려온 무사들이 우왕좌왕하다 힘도 못 써보고 당했다던데,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지금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놈들을 쓸어버릴 대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합니다.”

탕탕탕!

커다란 덩치의 공손락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조용히 해보시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입을 닫고 조용해졌다.

그제야 공손락이 천양묵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주, 혹시 생각하신 계획이라도 있소?”

천양묵이 입꼬리를 비틀며 냉랭하게 답했다.

“생각한 계획이 있으면 뭐합니까? 아무리 좋은 계획도 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지요.”

어제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소를 지었다.

겉으로는 만마성의 힘에 눌려 말도 못하면서,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경우가 생기지 말란 법은 없다. 지금 약조를 받아놓지 않으면 언제 또 광대 취급을 받을지 몰랐다.

공손락은 천양묵의 말뜻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니 말해보시오.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이 공손락이 가만있지 않을 거요.”

사람들은 겉으로 독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천양묵보다 괄괄한 성격의 공손락을 더 꺼려했다.

젊었을 때 ‘마천문의 미친개’하면 치를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선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는 자가 적지 않았다.

천양묵도 그쯤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문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한 말씀 드리지요.”

대전의 거대한 탁자 양쪽으로 앉아 있던 서른아홉 명의 시선이 천양묵에게로 향했다.

“우린 지금까지 상대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쓸어버릴 수 있는 자들’이라는 전제 하에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그러한 생각부터 버려야 할 거요.”

각 세력의 수뇌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눈치만 봤다.

“적을 과소평가하는 만큼 우리 무사들이 흘리는 피도 많아질 겁니다.”

혈왕 능전평이 이마를 좁히고 입을 열었다.

“그럼 저들을 지켜보기만 하고 공격을 하지 말자는 말씀입니까?”

“누가 공격을 하지 말자고 했습니까? 해야지요. 모조리 잡아서 목을 쳐야지요! 단, 최강의 전력을 동원해서 말입니다.”

능전평이 눈을 크게 뜨고 천양묵을 바라보았다.

“그 말씀은……?”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는 거외다. 이곳에서 보고나 받으며 노닥거릴 게 아니라.”

“노닥거렸다는 것은 좀…….”

“어제 낮까지만 해도, 수하들이 복우산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우린 웃으며 희희낙락했지 않습니까?”

수하들의 연락이 끊겼다는 말을 듣고도 술을 마신 자마저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몇 사람의 입에서는 아직도 술 냄새가 났다.

“험…….”

그 중 한 사람인 능전평이 머쓱해하며 시선을 돌리자, 천양묵이 일어났다.

“이 천양묵 역시 전장에 나설 겁니다. 이곳에 계속 계시고 싶은 분은 계시고, 함께 가실 분은 함께 갑시다.”

만마성주 천양묵이 나선다는데 한가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을 만큼 배짱이 큰 사람은 없었다.

-사천제일마에게 걸리면 자신의 목만 달아나지만, 만마존에게 찍히면 삼족이 멸한다.

그런 소문을 귀 따갑게 들어온 터였다.

공손락이 먼저 나섰다.

“나 역시 성주와 함께 하겠소.”

뒤이어 마도십문 중 하북 남단을 장악하고 있는 구마맹 맹주 적상이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적모도 성주를 따르겠소이다!”

“성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동안 너무 적을 경시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를 이끌어주시오, 성주!”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천양묵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개중에는 철혈마련의 대표로 참석한 우문척도 있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성주님의 뜻에 무조건 따르라 하셨습니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에 다시 열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또 다른 열기였다.

능전평은 천양묵이 상황을 주도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기랄.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천 가의 위상만 올라가는군.’

그 사실이 짜증나지만 지금은 반대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반대하지 않을 거라면 한발 먼저 나가는 게 나았다.

“그럼 우리 혈왕동이 적을 치는데 앞장서겠소.”

 

***

 

“대전에서 벌어진 회의 결과, 각 세력의 수장들 모두 서협으로 갈 거라 합니다.”

목량의 보고를 받은 혁무천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오빠도 가실 거예요?”

한동안 별 말 없이 조용하던 은설이 물었다.

왠지 불안해하는 표정이었다.

혁무천은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한동안 은설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걸 깨달았다.

은설은 마도 쪽에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자신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내색하지 않았을 뿐.

같은 여성인 사공미미 외에는 마도 쪽 사람들과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도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인 듯했다.

그나마 그동안은 싸움이 벌어지는 복우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협으로 가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언제 정파와 부딪칠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 되는 건 혁무천도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가지 않는다. 서협에는 거래를 관리할 사람만 가면 돼.”

“저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무슨 소리야? 너와 관계된 건 더 신경을 써야지. 네가 힘들면 돈이 무슨 소용이야? 백만 냥이든 천만 냥이든 다 필요 없어.”

“오빠…….”

“허튼 생각 말고,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없어요.”

“정말이지?”

“예.”

혁무천은 그제야 목량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우리는 예정대로 금룡장에 머물면서 상황을 주시할 거다.”

목량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형.”

하지만 사실은 두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서협과 남양의 중간 지점인 내향에 거점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혁무천이 은설에게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연기가 완벽해서 눈치 빠른 은설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잘했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거리를 두려 한다면 내향으로 가는 것보다 금룡장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래?>

<은 소저가 아니었다면 중요한 걸 깜박 놓칠 뻔했습니다.>

<중요한 거라니?>

<천화상단이 뒤에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들이 우리 표행을 또 노릴 거라고 보는군.>

<천하제일상단이라는 자부심에 금이 갔는데,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겠습니까?>

<못하지.>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빈틈이 생길 겁니다.>

그 빈틈에 빠르게 대처하려면 내향보다 남양에 있는 것이 나았다.

 

***

 

그날 밤.

천양묵이 사람을 보내 무천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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