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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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28화
228화
철혈마련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을 본 사람처럼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절정고수인 철혈사령대의 조장이 일수에 삼 장이나 날아가다니.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혁무천이 부서진 방문 안을 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우문척이 있었다면, 절대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천화상단이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을 내밀었더라도. 그게 바로 너와 우문척의 차이야.”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방안에서 성큼 튀어나온 우문양이 분노가 실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너 따위가 뭔데 형이 너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 한단 말이냐?”
“알고 싶으면 우문척에게 물어봐!”
혁무천이 걸음을 옮기며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장사꾼이 되려면 속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약속마저 뒤집는 우문양을 보니 왈칵 짜증이 났다.
‘제길, 아직 수양이 부족한 건가?’
제대로 된 장사꾼이 되려면 도를 닦는 사람보다도 수양이 더 깊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멈춰라!”
뒤늦게 철혈사령대 대원 일곱 명이 혁무천을 에워쌌다.
안 그래도 짜증이 치미는 판에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포위하자, 혁무천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비켜!”
“어디서 감히 난동이냐! 우리 철혈마련이 그리도 우습게 보이더냐!”
여호청이 호통을 치며 날아 내렸다.
혁무천의 시선이 그에게로 천천히 돌아갔다.
“약속을 어긴 것으로도 모자라서 다수로 밀어붙이겠다는 건가? 철혈마련은 자존심도 없는가 보군.”
“뭐야? 네놈이 어디서……!”
“그만하십시오, 장로님!”
우문양이 소리쳐서 여호청을 말렸다.
여호청은 이마를 찡그리며 우문양을 돌아다보았다.
“이공자, 이놈을 그냥 보낼 거요?”
“애초부터 그들을 만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 일은 없는 걸로 하지요.”
우문양의 말에 당황한 듯 여호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허! 이공자! 어차피 거래를 할 거면 천하제일의 상단인 천화상단과 하는 게 낫지 않겠소?”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내민 선물이 욕심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철혈마련의 자존심과 맞바꿀 수는 없지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우문양은 혁무천을 바라보며 냉랭히 말했다.
“약속은 지키지. 하지만 다음에도 본 련을 모욕하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마라.”
혁무천은 그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비켜주지.”
포위한 철혈귀령대 무사 일곱 중 그의 앞을 막아선 두 사람이 옆으로 비켜섰다.
그들의 표정은 해쓱하게 질린 채 굳어 있었다.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싸울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혁무천은 그들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다.
***
과거 도관이었을 법한 전각 안에 이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흘렀다.
“맹주, 놈들이 드디어 서현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군사인 이사명의 말에 사마진웅이 물었다.
“놈들을 맞이할 준비는 어떻소?”
“십면매복을 구축해 놓았습니다. 놈들은 절대 복우산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지만, 긴장까지 풀지는 마시오. 적은 팔대마세의 주인들만 해도 넷이 나섰소. 객관적인 전력은 우리가 절대 불리하다는 걸 잊어선 안 되오.”
“어찌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천기회에서 온 자들은?”
“동북방을 맡겼습니다.”
이번 작전이 진행되기 전 신도명산을 만났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자신만이 선인 것처럼 말하던 오만한 어조. 깔보는 눈빛. 정의를 위해 마도와 싸우겠다면서도 넌지시 내밀던 조건.
대화 내내 웃긴 했지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어쨌든 돕겠다고 온 자인데 어쩌겠는가.
자존심을 접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것도 내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씁쓸함을 가슴속에 삭인 사마진웅이 이번에는 좌측에 앉은 황보수에게 물었다.
“기주, 식량과 전쟁 물자에 대한 건 어찌 되었소?”
“두 달 분량은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석 달 분량을 긴급으로 받을 수 있게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식량은 떨어지기 전에 채워둘 것입니다.”
“수고 많았소.”
사마진웅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하자, 거친 수염이 턱을 꽉 채운 중년인이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복우산에는 산짐승이 많으니 정 모자라면 사냥이라도 하지요.”
그는 정은맹 육기주 중 적기주 황수관이었다.
마도의 세상이 싫어서 산에 처박혀 사냥을 하며 살아온 자.
그의 무위는 십 년 전에 이미 절정경지에 이르러서 초절정 경지를 넘보고 있었다.
“산의 지형과 진세를 활용해서 최대한 버텨야 승산이 있소. 모두 그 점 명심하고, 각자의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라겠소.”
“예, 맹주!”
정은맹 고위 간부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일제히 대답했다.
드디어 마도와의 한판 승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해 싸우고, 승패는 하늘이 결정할 것이다.
어느 정도 회의가 마무리 되자, 사마진응이 일어나서 외쳤다.
“정의는 반드시 이길 것이오!”
“협의를 위해 놈들을 물리칩시다!”
창천신룡 남궁무룡이 답하듯 큰소리로 말하자, 간부들이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협의를 위해!”
고위 간부들이 나가자, 회의를 했던 전각 안이 고요해졌다.
사마진웅은 다시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마도연합과 인원수는 비슷했다.
하지만 고수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산의 지형을 이용하면 승산이 조금이나마 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네 의견대로 서협을 포기하고 복우산으로 들어왔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사마진웅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의 말이 끝나자, 뒤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놈들이 곧 우리를 쫓아 복우산으로 들어올 겁니다. 그놈들에게 지옥을 보여줘야지요. 후후후후.”
사마진웅의 감은 눈이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고집이 세긴 하나 맑고 힘 있는 목소리였거늘, 이제는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의 살기가 흘렀다.
‘이 또한 내가 택한 업보.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
천신명은 눈을 치켜떴다.
“뭐야? 우문양이 우리와의 거래를 거부했다고?”
“예, 형님. 우리가 준 선물도 다시 가져왔습니다.”
“도대체 왜? 놈이 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무공을 포기했단 말이냐?”
“무천이란 놈이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후…….”
천주명의 설명을 들은 천신명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이가 없었다.
다 넘어왔다 생각했다. 그런데 계약서 작성 직전에 뒤집어졌다.
“젠장!”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천주명이 나직이 말하며 천신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천신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 수 없지.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시작하라고 해.”
***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질 때쯤 서협의 마도연합이 복우산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곧 남양에 머물고 있는 마도연합의 수장들에게도 전해졌다.
“오천 무사가 세 갈래로 나누어져서 진입했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쯤 정은맹의 본거지를 향해 전진하고 있을 겁니다.”
“혈선곡에서 놈들과 마주쳤는데, 강하게 몰아붙이자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고 합니다.”
“약호평에서도 정파 놈들 삼백여 명이 암습을 했지만, 피해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마황궁과 귀천교 무사들이 반격을 가해서 정파 놈들 백여 명을 추살했다는 소식입니다.”
속속들이 전해지는 소식은 대부분 승전보였다.
옥가장 대전에서 보고를 들은 마도연합의 수장들은 진행 상황에 만족했다.
“훗! 건방진 놈들. 어디서 감히 기어오르려고 해?”
“하하하, 이거 싸움이 며칠 만에 끝나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뿌리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깝죽거리지 못하지요.”
“맞습니다. 정파 놈들은 인정을 베풀면 지들이 잘난 줄 알지요. 이번 기회에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아야 합니다.”
득의만만한 표정에 호탕한 웃음이 대전 안에 넘쳐흘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마존 천양묵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사람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
마천문주 공손락이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성주,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시오?”
천양묵이 시선을 들고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별 거 아닙니다. 이 싸움이 두 달 이상 장기전이 될 거라는 사람의 말이 문득 떠올라서요.”
“아! 그 무천이란 아이가 말한 것 말씀하시는구려.”
“그렇습니다.”
“흠, 나도 그 이야기는 두아를 통해 들었소. 하하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오. 아직 강호의 경험이 없어서 상황판단을 잘못 한 것 아니겠소?”
“그런 아이였다면 이리 고민하지도 않았겠지요.”
“나도 그 아이가 뛰어나다는 것은 아오. 허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과 강호 전체를 살피는 능력과는 또 다른 문제 아니겠소? 나는 그저 그 아이가 내기로 인해 수십만 냥을 손해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게 궁금하외다. 하하하하.”
공손락은 기분 좋게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싸울 때는 성난 아수라 같지만, 술을 마실 때는 호걸이 따로 없다는 평을 받는 그였다.
게다가 겉으로는 털털한 것 같아도 손익에 대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는 이미 계산이 나왔다는 듯 무천과 걸린 내기에서 이긴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천양묵은 공손락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낙관적이어서 왠지 모르게 께름칙했다.
‘너무 순조롭게 흐르고 있다. 싸움은 이제 시작인데도 모두가 축배를 들 생각만 하고 있어.’
사실 지난 수십 년 간 마도천하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마도가 득세했다. 누구든 정파에게 밀릴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은.
그러니 누가 정파를 두려워하겠는가.
‘그런데도 그놈은 쉽지 않을 거라고 했지. 정말 그 복면인들이 마도 전체를 위협할 정도라는 건가?’
그는 마도의 수장들에게 아직 복면인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천이 말한 복면인의 무서움에 대해.
그 말을 완전히 못 믿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세력의 주인들에게 겁먹었냐는 투의 말을 듣기 싫었다.
한편으로는, 그깟 놈들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랴,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런데 그때, 혈왕 능전평이 기분 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주, 그 무천이란 놈, 너무 감싸주시는 것 아니오?”
그는 아들의 코뼈를 주저앉힌 무천보다, 그 무천을 감싸주는 천양묵에게 더 짜증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무천이란 놈을 찾아가서 코가 아닌 머리 전체를 주저앉히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과 실력 차이가 크지 않은 앙천마도조차 어쩌지 못한 놈 아닌가.
자칫하면 혈왕동의 체면만 구겨질 수 있어서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만마성이 무천과 전격적인 계약을 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내가 왜 그를 감싸준단 말이오?”
천양묵이 태연히 말하자, 능전평이 울컥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아니라면 왜 그놈에게 모든 물자를 맡긴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