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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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26화
226화
혁무천은 약속이 틀어졌음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자책할 것 없다. 조금은 예상했던 일이니까.”
그 말에 사공진이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예상을 한 건가?”
“천화상단이 그냥 왔을 리가 없지요. 뭔지는 몰라도, 맹주께서 거절할 수 없는 뭔가를 내밀었을 겁니다.”
사공진이 불쾌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맹주께서 선물 따위 때문에 신뢰를 저버렸다는 게냐?”
“그 선물이 뭐냐가 문제지요. 만약 사도맹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라면 맹주의 입장에서는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사공진은 이마를 찌푸렸다.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현 상황을 생각하면 반론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그때, 목량과 송비, 동대안이 안으로 들어왔다.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대형.”
세 사람은 귀천교 쪽 사람을 만나러 갔었다.
사실 귀천교는 천화상단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거래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목량이 말했다.
“악사광 공자와 악중화 부교주를 만나고 왔습니다. 일단 포목과 무기는 저희와 거래하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면 절반은 가져온 셈이다. 한 품목만 성사되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수고했다.”
“악사광 공자께서 언제 한번 대형을 뵙자고 하십니다.”
“흠, 그래?”
그가 왜 자신을 만나자고 한 걸까?
어쨌든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
“빌어먹을!”
천신명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혈왕동과 마황궁은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내심 자신했던 사도맹과 귀천교의 물량을 모두 가져오지 못했다.
계약은 체결했는데 무기와 포목을 비룡장에 빼앗긴 것이다.
무기야 철룡가가 포함되어 있는 구룡상단에 밀렸다지만, 포목까지 빼앗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전체 물량의 삼 할 정도? 아니 이 할 오 푼 정도?
내심 사 할까지 노렸던 그로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이 천신명이 장사의 ‘장’자도 모르는 놈에게 밀리다니.”
천신명은 이를 악다물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때 천주명이 넌지시 말했다.
“형님, 거래라는 것은 물건이 온전하게 전달되었을 때 완료되는 법입니다.
미간을 좁힌 천신명은 천주명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비틀었다.
천주명의 말뜻을 눈치 챈 것이다.
천화상단의 운송 능력은 천하제일이다.
반면 비룡장은?
더구나 세상에는 산적들이 득시글거린다.
그러니 비룡장의 표행이 강탈당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훗, 네 말이 맞다. 그래,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 계약이란 것은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법이니까.”
***
천신명과 천주명이 눈빛을 차갑게 번뜩이고 있을 때 혁무천은 악사광과 마주 앉았다. 그의 옆자리에는 목량과 사공곽이 앉았다.
악사광은 서른세 살로 단순한 후계자가 아니라, 이미 차대 귀천교주로 내정이 된 상태였다.
때문에 그에 대한 대우도 팔대마세의 주인에 준했다.
“우문척이 그랬다더군. 천하에 호적수로 삼을 만한 자가 몇 있는데 자네가 그 중 하나라고.”
“그 친구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소.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담담한 혁무천의 말에 사공곽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악사광의 성격은 종잡기 힘든 면이 있었다. 사공곽도 두어 번 만났었는데, 대하기가 쉽지 않은 자였다.
그가 만약 무천의 말을 건방지다 생각한다면 그나마 얻은 물량마저 천화상단에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악사광은 입술 끝을 비틀며 미소를 지었다.
눈초리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 그가 미소를 짓자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사공곽과 달리 혁무천은 악사광이 진정으로 즐거워서 웃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군.’
아마 그의 생각을 사공곽이 알았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악사광이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생각해보시오. 나는 그를 호적수로 생각지 않는데, 그 혼자 나를 호적수로 생각하는 거 아니오? 결국 자신을 과대평가한 거지요.”
“하하하하. 그런가?”
악사광이 호탕하게 웃자, 사공곽은 물론, 악사광의 호위무사들도 눈이 커졌다.
그가 그렇게 웃는 것을 처음 보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비룡장에 품목을 배정해 준 것은 고맙소.”
“사실 다른 품목도 자네와 거래했으면 싶은데, 사정이 있어서 그러지 못하니 이해하게.”
“어차피 다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소.”
“가장 큰 만마성의 물량은 다 먹었다고 하던데?”
“그거야 내가 먹은 게 아니라, 성주가 억지로 먹인 거지요.”
“흠, 그래? 그분이 이유도 없이 무작정 먹이려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
“성주와 싸워서 이길 자신 있소?”
뜬금없는 말에 악사광이 흠칫했다.
“응?”
“이유를 알려주면 그분과 소교주가 싸울지 모르기 때문에 묻는 거요.”
참으로 묘한 말이었다.
알려줄 수는 있다. 그런데 알려주면 만마성주와 싸워야 한다.
그 말이다.
악사광의 배포가 크긴 하지만 만마성주와의 싸움을 흔쾌히 여길 정도는 아니었다.
“아쉽지만, 나는 그분과 싸우고 싶지 않네.”
“저야말로 아쉽군요. 구경 중에 제일은 싸움구경이라고 했는데.”
혁무천의 농담에도 악사광이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혁무천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조금은 차가워진 어조로 말했다.
“하나 묻지. 천화상단과 싸워 이길 자신은 있나?”
“현재의 결과 정도면 일단 우리가 기선은 제압한 것 같소만.”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 지금은 그저 거래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을 뿐, 물건을 운송하고 대금을 받은 것도 아니지 않는가?”
“물론 그렇지요.”
선뜻 대답한 혁무천이 입술 끝에 미소를 매달고 물었다.
“소교주는 저들이 우리를 방해할 거라 생각하시는가 보군요.”
“세상일은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라네. 그리고 천화상단은 남에게 뒤지는 걸 무척 싫어한다네. 때로는 힘을 사용해서라도 승부를 뒤집곤 하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 느껴졌다.
어쩌면 그 말을 해주고 싶어서 자신을 만난 것일지도 몰랐다.
“천화상단이 뒤통수를 때릴지 모른다, 그 말이군요.”
“좋을 대로 생각하게. 나는 그저 정직한 장사꾼이 잘 되기를 바랄 뿐이네.”
귀천교의 소교주가 정직을 논한다는 게 우스웠다.
그래도 어쨌든 그의 말은 놓치고 있던 부분을 깨닫게 해주었다.
“뭐, 생각해줘서 고맙긴 한데, 천화상단과 안 좋은 일이라도 있소?”
악사광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혁무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돈으로 자존심을 능멸하는 자들을 무척 싫어하네. 그래서 물어본 거네. 천화상단을 이길 수 있는지.”
아마도 천화상단이 악사광의 자존심을 단단히 건드린 모양이다.
본인들은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세상에는 황금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지요.”
혁무천은 입가에 차디찬 미소를 매달고 대답했다.
“그들이 만약 우리를 건드린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요.”
악사광과 만나고 나온 혁무천은 걸음을 옮기며 지시를 내렸다.
“목량.”
“예, 대형.”
“풍마문과 개방에 연락해서 천화상단 무력의 움직임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특히, 비룡장 물건의 운송 경로와 관련된 곳에. 그들이 나타나면, 곧바로 지원대가 투입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를 갖추어야 한다.”
“호위대를 더 강화하겠습니다.”
목량이 호위대 강화에 대해 말하자, 문득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호북 쪽 물량은 만마성에 호위를 요청해야겠군. 그리고 무원장 쪽은 철혈마련에 맡기고. 내가 서신을 써줄 테니 우문척에게 전해라. 자기들 쓸 물건 운송하는데 자기들이 지켜야지. 호위 비용을 충분히 준다고 하면 마다하지 않을 거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팔대마세에게 호위를 맡긴다?
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참 대형다운 기발한 생각이다.
***
십리림에 몰려와 있던 마도 무사들이 들썩거렸다.
서협을 마도연합이 장악하면서 마도연합의 주력이 그곳으로 이동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이천이 넘는 팔대마세와 마도십문 무사들이 이동 준비를 했다.
마도의 무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움직임을 주시했다. 주력이 이동한다면 대부분의 무사들이 따라갈 생각이었다.
그들이 십리림으로 몰려든 이유는 단순했다.
마도를 지키겠다는 사명감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이 기회에 이름을 날려보겠다는 것.
이름을 날려서 대문파의 간부로 들어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그 이외의 목적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었다.
혁무천의 천막 안도 긴장이 흘렀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닥치자 신경이 곤두섰다.
목량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소한 칠팔천 명은 갈 것으로 보입니다.”
“서협까지 물자를 운송하려면 호위를 단단히 해야 할 거 같군.”
송비는 표국을 운영한 사람답게 운송에 신경을 썼다. 목량에게 내린 명령을 알고 있기에 만에 하나 일어날 경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서협까지 운송을 하게 되면 정은맹의 공격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비룡단원들이 긴장한 것은 그 점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멀리 있는 천화상단보다 물자 운송에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이봐, 호광.”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던 호광이 고개를 틀었다.
“왜 그러슈?”
“녹림에 친구 많지.”
호광이 어깨에 힘을 줬다.
“내가 이래봬도 녹림삼왕 중 하나인 산왕이오. 당연히 친구야 많죠.”
동대안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래봐야 다 도둑놈들이지 뭐.”
호광이 그를 째려봤다. 하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한 대 패고 싶은데, 아마 때리기 전에 꼬챙이가 먼저 날아들 것이다.
“산적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산적이 된 사람도 많아. 세상이 워낙 지랄 맞거든.”
“아무리 어려워도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잖아.”
“뭐, 그건 그렇지.”
힘이 들어갔던 호광의 어깨가 다시 처졌다.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서 송비를 보며 물었다.
“근데 왜 그걸 묻는 거요?”
“친구들 많으면 잘 됐네. 그 애들 좀 써먹자.”
“산적들을 어디다 써먹어요?”
“우리 쪽 운송을 방해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움직이려면 산길이나 밤길을 주로 택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데 길목 좋은 곳은 산적들이 다 차지하고 있잖아.”
“아하, 그놈들이 있는 곳을 천화상단이 지나가면 정보를 전해 달라?”
“그래. 정보 한 건에 은자 백 냥 준다고 하면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단주?”
송비가 혁무천의 의견을 물었다.
혁무천이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었다. 더구나 정확한 정보에 대해서만 대가를 준다면 은자 백 냥도 아까운 금액이 아니었다.
“좋군요. 가치가 높은 정보를 전해주면 더 줄 거라고 말하시오.”
호광도 거부하지 않았다.
은자 백 냥이면 한 산의 식구 백 명이 한 달 이상 살아갈 수 있는 돈이다.
친구들에게 생색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알았수. 연락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