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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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22화
222화
두 달이면 충분히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정은맹과 정파가 아무리 힘을 키웠다 해도 아직은 팔대마세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물며 지금은 팔대마세가 연합한 상황 아닌가.
아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무천은 두 달 안에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고 했다.
왜?
그가 본 무천은 보통 놈이 아니었다. 배짱은 배짱대로, 무공은 무공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솔직히 아들인 천화광도 천재라 하기에 부족한 자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본 무천은 아들보다도 한 수 위였다.
그런 놈이 거침없이 전쟁이 두 달 이상 갈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득 마음에 걸린 일이 떠올랐다.
현 상황은 분명히 마도연합이 정은맹과 정파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조금 전 연락 온 바에 의하면, 서협 일대도 장악했다고 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승리는 아니었다.
뭔가 늘어지는 느낌. 왠지 놈들에게 말려드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놈은 아직 그 소식을 듣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여전히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좋은 품질의 물건을 일 할 오 푼을 싸게 해주겠다면 우리야 좋지. 안 그래도 최근 들어서 온갖 물자의 가격이 급격히 올라 구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저도 들었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더 지날수록 시세는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시세로 계약을 해놓는다면 나중에도 가격을 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 두 달 간은 그러겠지.”
“그 안에 끝나면 일 할을 더 반환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이익인 거래였다.
설령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겨서 전쟁이 두 달 이상 이어진다 해도, 추가로 반환 받을 금액만 못 받을 뿐이다.
“흠, 거래금액이 백만 냥이라고 했지?”
“예, 아버님.”
“알았다. 물건만 확실하다면 마다할 것도 없지.”
천양묵의 허락이 떨어지자, 천화광은 안도했다.
무천에게 뭔가를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그때 문득 천화상단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님, 혹시 천화상단에 대해서 잘 아시는지요?”
“천화상단?”
되묻듯이 입을 연 천양묵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 모습을 본 천화광은 무천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천이 그러더군요.”
그는 무천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기다시피 말했다.
“……솔직히 소자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천양묵은 마시다 만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그들이 강호의 상계에 뛰어들려고 한단 말이지?”
“그렇게 들었습니다.”
“흐음, 이제는 자신이 있다는 건가?”
“예?”
“무천 말대로 그들의 무력은 우리 만마성에 뒤지지 않는다.”
천화광이 눈을 부릅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우리도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협이 되기 전에 제거하자는 말도 나왔지. 하지만 그들이 황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손을 쓸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우리라 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도 부친이 ‘우리’라는 말을 썼을 때는, 그 대상이 팔대마세의 주인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합의를 봤지. 강호에는 발을 딛지 않기로. 그런데… 강호의 상계에 진출하겠다고?”
아무리 무림과 상계가 다른 세상이라 하나,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 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구나. 그만 가서 쉬어라.”
“예,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천양묵은 천화광이 나가자 차갑게 굳은 얼굴로 옆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사야가 목상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무천이 그 말을 왜 했을 거라 보느냐?”
“아마 화광을 통해서 알리고 싶었을 겁니다. 천화상단이 강호로 나온다는 걸 말이지요.”
“우리가 그들을 견제해주길 바라는 걸까?”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든 그들의 마음을 미리 알았으니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군.”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남에게 이익이 되게 하고 자신도 이익을 취한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지요. 그것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익이라면, 상대는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천양묵은 사야의 말이 이어질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사야의 말이 끝난 뒤로도 한참 생각에 잠겼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놈에 대해서는 전과 같은 생각이냐?”
전에 사야가 그랬다.
적으로 삼을 생각이면 만마성의 모든 걸 걸고 죽이라고. 그러지 못하면 거꾸로 당할 거라고.
사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예, 주군.”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의외로 천양묵은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입술을 비틀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오늘 밤 나에게 데려와라. 아무래도 그놈과 이야기를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구나.”
***
옥가장의 객당은 건물 외에도 천막이 몇 채 더 지어져 있었다.
낭인들이나 하류무사들은 아예 밖에 천막을 이용하게 했지만, 그래도 일류 이상의 고수들은 내부에 수용했다.
그런데 건물만으로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혁무천 일행도 그러한 천막 중 하나를 배정받았다.
옥가장 밖의 천막과 다른 점이라면, 내부의 천막에는 나무 침상과 탁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혁무천은 일행과 합류한 상태로 연락을 기다렸다.
천화광과 공손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해서 거래가 성사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일 뿐.
혁무천이 일행들과 합류한 지 반 시진쯤 지났을 때 풍마문의 정보원이 용케 찾아왔다.
삼십 대 중반 정도의 나이였는데, 평범한 무사나 다름없는 차림새였다.
“수고가 많소. 내가 무천이오.”
“풍마문 중서분소 십칠조장입니다. 조금 전에 천화상단 사람들이 남양에 들어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왔다.
강호 상계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뜻을 대놓고 밝힌 셈.
앞으로 강호 상계에 폭풍이 불게 될 것이다.
“그들이 누구와 만나는지 철저히 감시하시오. 절대 건드리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풍마문 조장이 떠난 후 혁무천은 천막 안에서만 지냈다.
혈겁이 혈천여록의 미완성 무공에 의한 것이라면 생각할 것이 많았다.
그렇게 신시쯤 되었을 때였다.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은설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밖으로 나갔다.
객당의 마당에 십여 명이 몰려와 있었다.
처음 보는 복장이었는데 모두 비슷했다.
그들 중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은설을 보며 말했다.
“계집, 나를 따라 마황궁에 가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 하지 않았느냐?”
“싫다니까 왜 졸졸 따라와?”
청년 옆에 서 있던 텁석부리 장한이 눈을 부라렸다.
“셋째 공자께서 말하면 바로 따를 것이지, 말이 많구나!”
“흥! 귀가 막혔나, 정말 못 알아듣네. 당신들 따라갈 일 없으니까 그만 가보시지.”
마음 같아서는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무천을 위해 참았다. 소란이 커져봐야 손해를 보면 봤지, 득 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장한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이 건방진 계집이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냐!”
그때 동대안이 텁석부리 장한에게 다가갔다.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겠는데, 싫다는 사람을 왜 자꾸 데려가겠다는 거야? 여자가 필요하면 남양의 청등가나 가볼 것이지.”
“넌 뭐하는 놈이냐?”
“나? 은설의 큰오빠.”
“생긴 거나 아니나 빌어먹게 생긴 놈이 어디서 나서는 거냐? 비켜라.”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면서 내 동생을 데려가려고 하는데, 내가 왜 비켜? 이 빌어먹는 놈에게 두들겨 맞을 똥개 같은 놈아.”
“뭐라? 이놈이 어디서……!”
텁석부리 장한이 옆구리의 칼을 잡았다.
슈욱!
막 칼을 잡아 빼려던 텁석부리 장한이 소리치다 말고 멈칫했다.
그의 목젖 앞에서 섬혼의 검첨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 뭐라고?”
“이, 이…….”
뒤쪽에 쳐져 있던 마황궁 무사들도 무기를 뽑았다.
그들 중 하나가 노성을 내질렀다.
“우리가 누군지 알고……!”
부우웅!
장대산이 커다란 장봉을 휘둘렀다.
장봉에서 일어난 바람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마황궁 무사들을 덮쳤다.
앞쪽에 서 있던 자들은 그 위세에 기겁해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라, 대산.”
혁무천의 말에 장대산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장봉은 여전히 마황궁 무사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혁무천이 그 앞으로 나섰다.
“보아하니 마황궁 사람들 같은데, 설아가 싫다고 하니 그만 가봐.”
장한 하나가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넌 또 누구냐?”
“나? 설아의 오빠.”
동대안과 비슷한 투의 대답에 장한이 가느다란 눈을 치켜떴다.
“뭐 이런 놈들이…….”
혁무천은 장한을 놔두고, 그들의 뒤쪽에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남들은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마황궁의 셋째 공자는 더럽게 할 일이 없나 보군. 여자나 신경 쓰다니 말이야.”
청년이 이마를 찌푸리며 거만하게 말했다.
“나는 야율호라 한다. 여자를 넘기면 은자 천 냥을 주마.”
“천 냥이라……. 마황궁은 자신의 가족을 돈으로 사고 파나?”
“말귀가 통할 놈인 줄 알았는데……. 좋아, 그럼 오백 냥을 더 주마.”
혁무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안 그래도 착잡하던 터에 막무가내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놈을 보니 발끈 화가 났다.
“어지간하면 참고 곱게 돌려보내려 했더니, 기본이 안 된 놈이군.”
“뭐야?”
“마황궁에는 사람이 그렇게 없나? 전쟁이 벌어진 곳에 너 같은 애송이를 보내다니.”
“이 죽일 놈이!”
야율호가 땅을 박차고 혁무천을 향해 날아가며 손을 뻗었다.
혁무천은 날아드는 야율호를 보며 냉랭히 말했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 후회하지 마라.”
그러고는 좌수를 뻗어서 일장을 내쳤다.
달려들던 야율호는 숨이 턱 막히자 눈을 부릅떴다.
그 직후 쾅! 소리와 함께 뒤로 튕겨져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서너 바퀴 굴러간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칼을 빼들었다.
“이 개자식이…….”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는군. 어디 한군데 부러져야 정신을 차리겠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
혁무천은 차가운 눈으로 야율호를 보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가공할 기세가 야율호에게 밀려갔다.
칼을 빼든 야율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뭐 이런 놈이……!’
그때 객당 입구 쪽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하게, 무 형. 호 아우도 그 정도면 알아들었을 거네.”
사공곽이었다.
걸음을 멈춘 혁무천은 여전히 야율호를 보며 물었다.
“잘 아는 잔가?”
“호 아우의 형이 내 오랜 친구네.”
야율호는 사공곽을 알아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과, 곽 형님.”
사도맹의 소맹주를 친구 대하듯 하는 무천.
무천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는 사공곽.
그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자가 누군데…….
그런데 사공곽이 그를 보며 냉랭히 말했다.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으면 가보게.”
“사공 형?”
“자네 체면을 생각해서 형에게는 말하지 않겠네.”
야율호는 입술을 씹더니 포권을 취하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 와중에도 눈빛은 독하게 번뜩였다.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대안이 코를 씰룩이며 한마디 보탰다.
“능화처럼 코뼈가 부러져봐야 정신을 차릴 놈 같은데…….”
능화?
혈왕동의 대공자 능화?
그제야 야율호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눈이 커졌다.
혈왕동 대공자 능화의 코뼈가 부러진 사건은 팔대마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저놈이…… 무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