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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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57화
257화
동대안은 사흘 후 석양 무렵쯤 돌아왔다.
그가 전한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나중에 보자고 하더군. 그래서 나중에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더니 한참 쳐다보던데?”
혁무천도 동대안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 말을 왜 해?
하여간 가끔 엉뚱한 면이 있는 동대안이다.
그런데 작은 눈을 빤히 뜨고 멀뚱멀뚱 서 있는 걸 보니 자신이 뭘 잘못 말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후우, 좌우간 수고했소. 내일 출발할 거니 가서 쉬시오.”
다음 날, 혁무천 일행은 무원장으로 가기 위해 금룡장을 나섰다.
무원장까지 가는 길은 너무 평탄해서 가을 여행을 나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세상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했다.
하지만 강호무림에 몸을 담은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마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피의 폭풍이 천하를 휩쓸면 한발 빨리 움직이는 사람이 살아남기 마련이었다.
첫 번째 바람이 불어온 것은 시월 초였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구름을 몰고 오던 날 오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무당산에 일단의 무리가 진입했다.
향화를 위해 무당산을 오르던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무사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처음에는 이백여 명이었지만 일각도 되지 않아 오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곧 일천 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무당산을 올랐다.
선두에 선 자들이 무당산의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얼마나 지났을까, 비명과 악다구니가 메아리치며 온 산을 뒤흔들었다.
무당파 제자들은 그간 갈고 닦은 무공으로 검진을 펼치며 대항했다.
수십 년 간 힘을 비축한 무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작정하고 공격한 만마성과 마도의 무사들을 온전히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무당파 장문인 청연도장이 참담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무당제자들은 산속으로 대피하라!”
두 번째 바람은 융중산 자락을 덮쳤다.
만마성조차 그 존재를 인정하고 조건부 공존을 허락했던 제갈세가에 피의 폭풍이 몰아친 것이다.
광폭한 피의 폭풍은 지금까지 제갈세가가 당했던 그 어떤 침탈보다도 더 참혹한 광경을 남기며 진행되었다.
대화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만마성 일천 무사는 오직 도검으로만 자신들의 뜻을 알렸다.
그날 제갈세가에 있던 팔백여 명 중 칠백여 명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은 자는 사력을 다해 도망친 자들 중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혈겁은 시작일 뿐이었다.
중원 곳곳에서 정파로 알려진 문파가 멸문 당하고 무사들이 죽어갔다.
***
혁무천 일행이 무원장에 도착했을 때는 지독한 피바람이 이미 무당산과 제갈세가를 무자비하게 휩쓸고 간 후였다.
폭풍의 기운을 감지하고 이동속도를 빨리한 터라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백리양과 간부들이 나와 맞이했다.
백리양은 처음 보는 사람들 중에 이현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리양입니다. 와호산장과 이 형에 대한 고명은 예전부터 들었습니다.”
“이현입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모자란 면이 많습니다.”
“무슨 말씀을. 융중산에 와룡이 있다면 동백산에 와호가 있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지요.”
“선친께서는 나름 강호의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긴 했습니다만,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대형께서는 이 형이 대단한 분이라고…….”
“그쯤 하고 들어가자.”
혁무천이 한마디 던지자, 백리양과 이현이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무원각으로 들어가자마자 백리양이 제일 먼저 혈풍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만마성과 마천문이 주력으로 나선 마도의 공격을 받아서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합니다.”
회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혁무천 역시 예상하고 있던 일이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없지는 않았다.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저력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때문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만마성주 천양묵과 마천문주 공손락도 무당과 제갈세가의 숨겨진 힘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치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고 공격했다는 건…….
“끝장을 내겠다는 거군.”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밀리면 마도천하가 무너진다는 걸 그들이 왜 모르겠는가.
다만 걱정스러운 건, 안 그래도 혼돈으로 치달리는 천하가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두려울 건 없었다.
다만, 가까운 사람들이 휘말려들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
“양, 더 많은 일이 벌어질 거다. 풍마문과 협력해서 최대한 정보를 모아라. 결국은 정보에서 승패가 갈릴 테니까.”
“예, 대형.”
“아, 들어오면서 보니까, 인원이 많이 늘어난 것 같던데.”
“무사들이 소문을 듣고 하루에도 십여 명씩 찾아옵니다. 개중 괜찮은 자들을 골라서 장의 보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많아진 게 아니었다.
찾아온 무사들 중에는 능히 일류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도 있었다.
또한 일전에 목량을 시켜서 활동하지 않는 고수들을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넌지시 흘린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절정고수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 충원된 무사만 이백 명이 넘었습니다.”
“흐음, 생각보다 많은데?”
“일단 일류 이상의 고수들은 빈객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진심으로 무원장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서약을 받고 정식으로 무원장의 식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현이 말했다.
“인원이 많아지면 관리가 중요합니다. 조직을 새로 정비해야 할 것 같군요.”
“옳은 말이다. 양, 그들에 대한 신상명세를 정리해 놓아라.”
“예, 대형.”
“구주의 상황은 어떠냐?”
구룡상단의 아홉 개 기둥, 구주는 무원장이 필요로 하는 물품의 핵심 조달처다.
그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당장 물품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만, 혈풍이 계속 이어진다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겠지. 구주에 알려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당분간 대규모 운송을 자제하라고 해.”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보고는 한 시진이 다 지나서야 끝이 났다.
워낙 상황이 복잡하다 보니 보고할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보고가 끝나자 혁무천이 화제를 돌렸다.
“양,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대형.”
“예가장의 소저와는 잘 되고 있나?”
백리양이 예가장의 예경설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한 말이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백리양이 뒷머리를 긁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예…… 뭐… 보지는 못하지만…… 서신은 두어 번…….”
그 서신에 얼마나 낯 뜨거운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대형이라도.
물론 혁무천도 서신의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언제 예 장주를 한번 만나봐야겠다.”
“곡물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니다. 여기 이현이 그러더군. 예 장주의 학식과 병법의 조예가 천하에서 짝을 찾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고 말이야.”
“아, 저도 가끔 감탄하곤 합니다.”
“응? 만나보지 못했다면서?”
“서신에…… 예 소저가 가끔 아버님의 말씀을 담아서 보낸 터라…….”
동대안이 그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흠, 예 장주님과 아버님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워졌다니, 축하하네. 그래, 날은 언제쯤으로 잡을 건가?”
“…….”
백리양이 무안해서 말을 못하는데, 영추문이 한마디 말로 그를 도와주었다.
“자기 일이나 신경 쓰지. 남들은 다 잘 하는데, 오라버니는 아직도 혼자잖아?”
“그런 너는?”
“걱정 마. 나는 있으니까.”
“뭐?”
동대안의 시선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장평에게로 향했다.
“잘 생각해. 저렇게 선머슴 같은 추문에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려.”
영추문이 코웃음 쳤다.
“흥! 뼈를 추릴지 못 추릴지는 밤에 또 붙어봐야 알지.”
“……?”
“……!”
과감한(?) 영추문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영추문은 그저 밤에 장평과 대련하는 걸 말했을 뿐인데…….
***
혁무천의 우려는 다음 날 현실이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몇 사람이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백리양이 달려왔다.
“대형, 철룡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혁무천은 백리양이 내미는 전서를 받아서 읽어보았다.
[귀천교에서 무기의 반출을 금지시켰음.
차후 귀천교의 허락 없이는 검 한 자루도 판매할 수 없다는 교주의 명령서가 왔음.
이에 반발하였다가 십여 명이 부상을 입고, 다섯 명이 죽었음.
현 상황에서는 계약된 물량을 맞출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됨.
답변 바람.]
말이 답변요청서지, 실제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귀천교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백리양도 그 점을 알기에 굳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혁무천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긴? 귀천교에 가서 따져야지.”
“괜찮겠습니까?”
혁무천의 말인 즉, 팔대마세의 하나인 귀천교와 한판 붙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백리양으로선 걱정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무천은 오히려 코웃음 쳤지만.
“흥! 괜찮지 않으면? 귀천교도 복우산의 일로 정신이 없을 거다. 적을 만들어서 좋을 것 없다는 걸 모르진 않을 거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지금처럼 혼란스러울 때 왜 갑자기 안하던 짓까지 하면서 상계를 건드리는지…….”
백리양의 말에 혁무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그는 먼저 이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안하던 짓을 할 때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예를 들어서 원하는 게 있다든가, 아니면 누군가를 노린다든가…….”
“누구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은?”
“그럴 만한 자들이 있다면 더 확실합니다.”
“물론 있지.”
백리양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천화상단 말입니까?”
“귀천교의 영역이라면 내가 힘을 쓰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거다. 겸사겸사 꿩 먹고 알 먹고 하겠다는 생각이겠지.”
“그럼 일단 관망하는 게 좋겠군요.”
“아니, 간다. 내가 직접.”
“너무 위험합니다, 단주. 저들도 단단히 준비하고 기다릴 겁니다.”
백리양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상대는 귀천교다. 그것도 총단에서 움직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혁무천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위험은 어디에든 있어. 헤쳐 나가지 못하면 더 큰 것을 이룰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위험을 자처할 필요는 없잖아요.”
은설도 걱정되는지 한마디 했다.
혁무천은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내가 안 가면 더 강하게 치고 들어올 것이 뻔해. 그럼 더 많은 사람이 위험해질 거다.”
“그건 그런데…….”
“가서 알려줄 거다. 그들이 뭘 잘못 생각했는지.”
결국 철룡가를 지원하기로 했다.
인원은 비룡단만 가기로 결정되었다.
이현과 검마보는 무원장에 남아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로 했다. 탕초양 일행도 남겨두었다.
천하를 휘감은 피의 소용돌이가 점점 더 속도를 올리던 시기.
혁무천은 비룡단을 대동하고 무원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