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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255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9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255화

255화

 

 

이틀 전, 정주에 잠깐 나갔을 때 개방 제자 하나를 스치듯 지나가며 만났다. 거지 치고는 눈빛이 상당히 맑은 자였다.

그가 지나가며 말했다.

 

“혹시 무천이란 사람 아쇼? 그 사람하고 술 한 잔 하고 싶으면 이틀 후에 정주로 오쇼.”

 

그는 그 말만 남기고 히죽 웃으며 사라졌었다.

그 후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무천을 만나야 하나?

그런데 오늘, 그와 술이라도 한잔 마시면 속이 좀 풀릴 듯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으니 하루쯤 외출을 한다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니, 문제가 있으면 또 어떠랴.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

 

***

 

청죽장에서 정주까지는 백리가 조금 넘었다.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한 시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현은 말을 타고 두 시진에 걸쳐서 정주까지 갔다. 가끔은 말을 멈춰 세우고 경치 구경도 했다.

그가 정주성에 들어섰을 때는 해가 서산으로 절반쯤 떨어진 신시 무렵이었다.

그는 정주성 대로를 따라 천천히 말을 몰았다. 굳이 술을 마셔주겠다는 개방 제자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느릿느릿 말을 몬 그는 대로의 끝자락에 있는 주루로 들어갔다.

이층으로 올라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점소이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간단하게 주문을 마친 그는 말끝에 몇 마디 덧붙였다.

“혹시 거지가 들어오더라도 내쫓지 말게.”

그러고는 동전 몇 푼을 건네주었다.

“알겠습니다요, 나리.”

점소이는 헤벌쭉 웃고는 돌아섰다.

 

일각쯤 지나 요리가 나왔을 때 개방 거지 하나가 주루로 들어왔다.

거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현의 자리로 다가갔다. 점소이는 인상을 찡그렸을 뿐 제지하지 않았다.

이현은 자신의 앞자리에 털썩 앉는 거지를 쳐다보았다.

전에 봤던 그자였다.

앞에 있는 요리를 더러운 손가락으로 덥석 집어 먹은 소궁단이 말했다.

“동문으로 나가면 상사루라는 곳이 있수. 그곳 이층으로 가서 무 공자를 찾으슈.”

이현은 말없이 일어나서 객잔을 나왔다.

 

***

 

상사루는 동문에서 오십여 장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정원이 잘 가꾸어져서 마당을 걷는 맛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이현이 무 공자를 찾자 점소이가 이층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무천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군.”

이현은 쓴웃음이 나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분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소.”

“나는 세상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데. 세상이 가만두지 않는군.”

“정말 술이나 마시려고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닐 거고, 나 같은 한량을 무슨 일로 찾으신 거요?”

“일단 앉지.”

마침 점소이가 요리와 술을 가져왔다.

혁무천은 의자에 앉아 술병을 잡았다.

이현이 맞은편에 앉더니 술잔을 들었다. 어차피 술을 마시고 싶어서 나오지 않았던가.

쪼르르륵.

혁무천은 이현의 술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술잔을 들어서 목구멍에 털어 넣은 혁무천이 이마를 찌푸렸다.

“크으으.”

입술을 소매로 닦아낸 혁무천이 젓가락으로 요리를 집으며 말했다.

“필요해서.”

술잔을 비운 이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내가 천기회의 사람이라는 걸 모르시진 않을 텐데?”

“알아.”

“그런데 왜……?”

“하나 묻지. 천기회에 왜 몸담았지?”

“그건…….”

대답하려던 이현은 가슴이 먹먹해져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청춘을 바쳤다.

그런데 그 꿈이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거기다 혁무천의 말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찔렀다.

“신도명산이 정파를 되살리고, 정의와 협의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질 거라 생각했나?”

“…….”

“신도평을 보면 그럴 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던데.”

이현은 술병을 잡아서 자신의 잔을 채우고는 단숨에 비웠다.

싸한 통증 같은 느낌이 목구멍에서 가슴까지 치달렸다. 먹먹함이 조금은 씻겨 내려간 듯했다.

“전에는 그래도 가슴이 뜨거운 분이었소. 그리고 약간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도의 힘이 약화되고 정파가 되살아난 것은 분명하잖소?”

“뭐, 어쨌든 상관없어. 어차피 그의 인간성을 따지기 위해서 그대를 만난 건 아니니까.”

혁무천은 툭 던지듯 말하고는, 이현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러고는 술병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말했다.

“나와 함께 만인의 죽음을 막아볼 생각 없나?”

이현은 말없이 혁무천의 눈만 바라보았다.

만인의 죽음.

마도연합과 정은맹의 싸움 때문에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자신이 본 무천은 그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과 연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혀 다른 일일 수도 있다. 나로선 그 일이 벌어지지 않길 원하는데, 세상일이 어디 내 맘대로 흘러가야 말이지.”

“자세한 이야기를 먼저 들을 수 있겠소?”

“못할 것도 없지.”

혁무천은 먼저 술잔을 비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를.

혼돈의 기운에 대한 것도.

혈천여록에 대한 것도.

 

“……그래서 그댈 찾아온 거야. 그대의 재주를 좀 빌리려고.”

혁무천이 이야기를 끝맺자, 이현의 부릅뜬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가슴의 통증은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사라졌다.

통증 대신 거센 심장박동이 가슴을 울렸다.

굳이 그 말이 사실이냐고 되묻지 않았다.

되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상대의 눈이 사실임을 말하고 있었다.

“당장 답을 달라는 건 아니야. 가서 잘 생각해 봐. 하지만 너무 오래 생각하진 마.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시간여유가 있을 것 같소?”

“열흘? 보름?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안에는 시작될 거다.”

“그럼 날 납치하시오.”

“……!”

혁무천은 이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멋진 생각을 할 줄이야!

역시 머리 굴리는 건 자신보다 한 수 위다.

“멋진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될까?”

납치를 멋진 생각이라고 하다니.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이현은 피식, 웃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루 빨리 대응하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아니오?”

“그건 그렇지. 그런데 납치를 하다 보면 조금 험하게 다룰지도 몰라. 이해해. 그래야 의심을 덜 수 있으니까.”

“…….”

 

그날, 이현은 청죽장으로 돌아가던 도중 사람들이 많이 보는 가운데 혈도를 제압당한 후 납치를 당했다.

 

***

 

“뭐야? 이현이 납치를 당해?”

신도명산은 이현의 납치 소식을 듣고 펄쩍 뛰었다.

“그렇다 합니다, 회주.”

적상천은 납치 소식을 전하면서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놈들이냐?”

“아무래도…… 비룡단 놈들 같습니다. 정주에서 돌아오던 이현을 급습해서 납치했다는데, 당시 목격자 말에 의하면 ‘비룡단’이란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놈이 정주에는 왜 갔단 말이냐?”

“정주에 가서 술을 마셨다 합니다. 듣기로는 계집이 있는 기루였다는데…….”

“이런 멍청한 놈!”

“추적대를 보내긴 했습니다만, 구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젠장! 지금이 어느 때인데 계집질이란 말이냐?”

짜증이 난 신도명산은 한소리 내지르고는 명령을 내렸다.

“추적대는 보낼 필요 없다. 자칫하면 독 오른 마도 놈들만 건드릴 수 있다. 돌아오라고 해.”

“예, 회주.”

“비룡장에 항의서한을 보내라. 이현을 강제로 납치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해. 돌려주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협박도 적당히 써넣고.”

“알겠습니다, 회주.”

“그리고 정은맹 쪽에 사람을 보내서 연합 의사를 타진해 봐라.”

신도명산의 그 말에 적상천의 눈빛이 빛났다.

그동안은 단순 협력 관계였다.

그래서 적상천은 아예 연합을 맺자는 의견을 냈다.

욕심이 많은 신도명산은 그 의견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낸 의견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적상천도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마침내 신도명산의 명령이 떨어졌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당장은 어쩔 수 없지. 그들과 손을 잡고 주위를 정리한 다음에 독자적인 길을 가는 수밖에.”

“그들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정은맹을 천기회 아래로 둘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소?”

이현이 불만스런 목소리로 말하며 눈두덩을 문질렀다.

혈도를 제압당하며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눈두덩이 퍼렇게 물들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금룡장에 도착했을 때는 멍이 절정에 달해서 파란 물감을 칠한 듯했다.

하지만 혁무천은 그에 대해서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말했지 않은가? 진짜 납치처럼 보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자네도 찬성했었고.”

찬성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저 대답을 안했을 뿐.

“다 자네를 위한 일이었어. 그리고 솔직히 자네가 말에서 떨어질 줄은 몰랐네.”

말이나 못하면.

이현은 불만이 많았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따진다고 통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도, 혁무천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두 사람이 금룡장에 들어가자, 은설이 제일 반가워했다.

“장주님!”

“하하, 오랜만이오, 은 소저.”

“잘 오셨어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소.”

이현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현을 바라보던 은설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녀가 혁무천을 은근한 어조로 불렀다.

“오빠, 나 좀 봐요.”

“응? 왜?”

“분명히 강제로 모셔오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그래, 그래서 말로 설득했지.”

“그런데 왜 눈이 저렇게 됐어요?”

“아, 그거?”

혁무천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하지만 은설에게는 별 일 아닌 게 아니었다.

혁무천을 빤히 바라본 그녀가 또박또박 말했다.

“아, 그ㆍ거ㆍ요? 설마 이 장주님이 스스로 자신의 눈을 친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진짜 내가 손을 쓴 거 아니야. 말에서 떨어져서 그런 거지.”

그때 이현이 담담히 말했다.

“괜찮소, 은 소저. 무 형이 혈도를 갑자기 제압하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진 것뿐이오.”

그러니까, 결국 원인은 혁무천이다, 그 말이었다.

은설의 눈이 동그래졌다.

“혈도를 갑자기 제압해요?”

“하하, 무 형의 무공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소. 사실 미리 어디를 제압할 거다, 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역시 혁무천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뜻.

은설이 다시 혁무천을 흘겨보았다.

“이래도 아니라고 할 거예요?”

혁무천은 교묘한 언변으로 자신을 구석에 몰아넣는 이현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현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은 채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가슴도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조금 아프긴 한데…….”

“갈비뼈가 부러져요?”

“무 형도 다 나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니 어쩌겠소. 은 소저가 이해하시오.”

“에휴!”

은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이현의 팔을 잡았다.

“들어가요, 장주님. 제가 계란이라도 구해다 드릴게요.”

“고맙소. 역시 은 소저밖에 없군요.”

이현은 여전히 혁무천을 바라보지 않고 은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혁무천은 콧등만 씰룩거렸다.

‘괜히 데려왔나? 엉큼하기가 누구보다 더 한 거 같은데.’

그나마 유부남이어서 은설에게 수작 부릴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게 다행이었다.

뭐, 요즘은 유부남이 더한다는 말도 있지만.

한쪽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목량과 동대안 등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웃는 모습을 보이면 괜한 날벼락이 자신들에게 떨어질지도 몰랐다.

그때 혁무천이 그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목량, 따라와라.”

“예… 대형.”

제 발 저린 목량은 속이 뜨끔해서 혁무천을 따라갔다.

동대안은 그 모습을 보고 슬쩍 빠져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동 형! 어디 가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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