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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252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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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귀환천화 252화

252화

 

 

천양묵도 사야의 말뜻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교활한 놈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아버님.”

천화광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무슨 말인가, 소성주? 당장 놈들을 추격해서 뿌리를 뽑아야 하네!”

“맞소이다. 기회가 왔을 때 뿌리를 뽑지 못하면 잡초처럼 끈질기게 달려들 거요.”

혈마전주 덕원과 부전주 풍두경이 연이어서 주장을 펼쳤다.

그들은 본래 천화광이 후계자가 되는 걸 못마땅해 하는 쪽 사람들이었다.

남색을 좋아한다고 소문난 그가 성주가 된다면 무슨 창피란 말인가.

그런데 이번 싸움에서 천화광이 본 실력을 드러내면서 두각을 나타내자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적이 파놓은 함정 속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지금까지 놈들의 계략에 빠져서 고생한 걸 잊으셨습니까?”

천화광이 그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전의 가볍게 보이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강한 기세가 두 사람을 압박했다.

혈마전주가 말할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다 장로 역구상도 한팔 거들었다.

“소성주님의 말씀이 맞소이다. 적의 함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뛰어드는 건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외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양묵이 명령을 내렸다.

“화광, 팔로의 수뇌부를 소집해라. 어차피 우리 만마성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도 아니니라.”

“예, 아버님.”

 

잠시 후, 팔로를 이끄는 수뇌부가 장원 중앙의 전각 안에 모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 중 다수가 보이지 않았다.

“동주께선 어떠시냐?”

천양묵이 능화에게 물었다.

능화도 내상을 입은 듯 몸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에 나온 것은, 앞으로 혈왕동을 그가 이끌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제가 아버님을 대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천양묵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능화의 대답만으로도 혈왕동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전각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놈들이 또 다른 계략을 꾸미려고 장원을 비운 것 같소. 하여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있소.”

“말씀해 보시오, 성주.”

공손락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천문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터였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기 상황에서 공손두가 두각을 나타내며 후계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놈들을 계속 쫓을 것인지, 아니면 일단 복우산을 나가서 전열을 정비할 것인지, 의견을 말씀해 주시오.”

“으음…….”

공손락이 침음을 흘렸다.

마음이야 당장 적을 추격해서 멸살시키길 원했다.

하지만 불같은 성정을 인내로 억눌렀다.

인정하기 싫지만 적은 강했다. 단기간에 입은 피해가 너무 컸다.

복우산에서 죽어간 마도 무사만 해도 일만.

각 세력들은 이제 자파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성주님께 죄송합니다만, 저희 혈왕동은 피해가 너무 커서 추격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능화가 먼저 혈왕동의 입장을 밝히며 자존심을 꺾었다.

동주인 능전평의 중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산에서 일천에 이르는 무사들이 왔다. 그런데 두 차례에 걸쳐서 칠백이 죽었다.

이제는 촉산에 있는 본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같은 지역에 있는 마천문이 혈왕동을 강제로 병합하겠다면서 검을 들이댈 수도 있는 것이다.

“저희 마황궁도 전열을 가다듬는 쪽에 찬성입니다. 적의 숫자만 해도 우리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도주를 생각했다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마황궁의 야율인도 후자를 택했다.

“허어,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마음이 약하군. 지리멸렬해서 도망친 정파의 쓰레기들을 두려워하다니.”

마도의 원로고수 쪽에서 핀잔의 소리가 나왔다. 중원팔마 중 한 사람인 유혼마 맹등평이었다.

그러자 야율인의 우측에 앉아 있던 오십 대 중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말 삼가 하시오, 맹 선배! 두려워하다니! 소궁주께서 누굴 두려워한단 말이오!”

하지만 핀잔을 주었던 맹등평도 물러서지 않았다.

“흥! 두렵지 않다면 왜 놈들을 쫓지 않겠다는 건가?”

“소궁주께선 누구처럼 함정 속으로 달려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말씀하신 것이외다.”

“뭬야? 어리석어?”

“그럼,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달려드는 게 어리석은 짓 아니면 뭐란 말이오?”

“네가 어디서……!”

언쟁이 점점 격화되자, 천양묵이 탁자를 탕탕, 내리쳤다.

“조용히 하시오!”

맹등평이 중원팔마 중 하나라 해도 감히 천양묵의 말에 토를 달지는 못했다. 씩씩거리며 중노인을 노려보기만 할 뿐.

좌중을 둘러본 천양묵의 시선이 우문척에게서 멈췄다.

“철혈마련에선 어떻게 할 생각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우문척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적은 아직도 수천 명이나 건재하고, 계획적으로 후퇴했습니다. 지금 당장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드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느 분 말처럼 지리멸렬해서 도망친 자들이라면 추적도 별 의미가 없겠지요. 해서 저는 일단 련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돌아간다고?”

“부상을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새롭게 전열을 정비한 후 다시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귀천교의 악사광이 뒤이어 말했다.

“저희 귀천교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알겠네. 그럼 내 생각을 말하지.”

천양묵이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좌중을 향해 말했다.

“보아하니 추적은 어려울 것 같소이다. 일단 복우산에서 나간 다음, 놈들의 새로운 거점을 찾고 속셈을 파악할 동안 전열을 정비하도록 하지요.”

 

***

 

이사명은 대나무통에서 귀를 뗀 후 뚜껑을 닫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놈들이 추적을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마진웅은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후우우, 다행이야.”

그들이 있는 곳은 지하 깊숙한 곳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마도연합 고수들의 발밑 말이다.

깊이가 삼 장이나 되는 지하석실의 입구는 장원 구석에 있는 창고였다.

대전각에서는 어느 누구도 지하석실의 유무를 알 수가 없었다.

“일단 허장성세(虛張聲勢)는 성공했군.”

“예, 맹주.”

정은맹에 모여든 정파 무사의 숫자가 일만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은 허수였다.

외부에 그렇게 보이도록 마도연합의 눈을 속인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모여든 자들을 비밀리에 밖으로 내보낸 다음, 다시 들어올 때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도록 했다. 옷도 갈아입고, 들어온 방향도 달리했다.

사천여 명이 그렇게 한 번 이상 왕복했다.

그리고 왕복한 사람들은 자신들 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마도연합 쪽에서 볼 때는 정은맹에 모여든 무사가 일만 명이 넘었지만, 실제로는 오천여 명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도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거기다 천기회가 일천 무사를 보내줘서 힘이 더 실렸다.

“사람들은 만장곡으로 가고 있겠군.”

“예, 맹주. 후퇴한 즉시 기주들이 인도할 것입니다.”

“놈들이 추적을 멈췄으니 앞으로 만장곡은 정파의 기틀을 세우는 곳이 될 거네.”

“머지않아 정파의 무사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다니는 세상이 될 겁니다.”

사마진웅 역시 그러길 바랐다.

“신아는?”

툭 던진 사마진웅의 말에 이사명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만장곡에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 건가?”

사마진웅도 어렴풋이 때가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미 사마신은 자신의 손을 떠난 상태였다.

그나마 팔문금쇄진의 마지막과 정파 무사들이 만장곡으로 갈 동안 지켜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자기는 자기가 할 일을 할 것이니, 숙부는 숙부가 할 일을 하라고 하더군요.”

“미안하네.”

“맹주께서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믿음을 주지 못한 제 잘못이지요.”

“내가 한 부탁, 잊지 말게.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거든, 가능하면 자네 손으로 처리해주게.”

“맹주…….”

“아마 자네라면 가능할 거야.”

이사명은 사마진웅을 빤히 바라보았다.

왠지 묘한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아는 건 하나뿐이네. 천하의 그 어떤 고수도 자네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의 손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이사명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봐야 일초에 불과합니다. 피하면 제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일초를 피할 사람이 현세에는 없다는 거지.”

“너무 과한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가 신아에게 손을 쓸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네.”

그때 대나무통에서 따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사명은 대나무통의 뚜겅을 열고 귀를 기울였다.

곧 그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반짝거렸다.

 

***

 

“우문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천양묵이 사야를 보며 물었다.

전각 안에는 두 사람과 천양묵을 지키는 사대호위밖에 없었다.

“소성주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그도 그 힘을 얻었다고 보느냐?”

“분명합니다, 주군.”

“흐음…… 그럼 벌써 다섯인가?”

천양묵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천하에는 신비의 기운을 얻은 자들이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아들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만마성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정체불명의 기이한 기운이 아들에게서 느껴졌다.

천양묵은 아들을 불러 놓고 추궁했다.

아들이 말했다.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유성이 쏟아진 그날 이후 자신조차 모르는 기운이 몸에 스며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별다른 이상도 없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기운이 증폭되는 효과가 있어서 혼자만의 비밀로 했던 것이다.

그 후 사야 역시 그 기운을 얻었다는 걸 알았다.

공손두, 무천, 그리고 이번에는 우문척까지.

“무천 말대로 이번 정벌은 실패했구나. 너도 그리 생각했더냐?”

사야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쉽진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일이 이렇게 흐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원인이 뭐라 생각하느냐?”

“복면인들. 특히 혈왕을 꺾은 자. 그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으음, 능전평이 그렇게 당할 줄이야…….”

추적을 포기하고 복우산에서 나가려는 것도 실제로는 복면인들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만마성의 앞을 막아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거라 보느냐?”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밖으로 끌어내야만 합니다.”

“밖으로 끌어낸다? 흠, 그래, 그게 좋겠군.”

천양묵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밖을 두들겨 패면 나오겠지.”

 

***

 

혁무천 일행은 내향으로 나온 후 복우산 안쪽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정은맹은 총단을 버리고 도주했다고 했다.

마도연합은 피해가 커서 그들을 쫓지 않고 서협으로 철수했다고 한다.

마도연합 수뇌부는 이후 전열을 정비해서 다시 정은맹을 공격할 생각이라고 했다.

혁무천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정은맹은 도주한 것이 아니었다.

마도연합은 여전히 정은맹을 공격하려고 하겠지만, 단숨에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 역시 내기에서 이겼다 해도 이득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모든 차질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정은맹의 복면인들.

그들은 혁무천이 생각한 것보다 더 강했다.

전체 판도를 바꿀 만큼.

“혼돈천하의 시기가 앞당겨질지도 모르겠군.”

혁무천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찻잔을 들었다.

“막지 못하면 천하가 붉게 물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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