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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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50화
250화
콰르르릉!
약간 뒤로 처져 있던 혁무천도 쌍장을 떨쳤다.
뇌음이 울리더니 세 사람이 훌훌 날아가서 소나무의 허리를 부러뜨리며 쓰러졌다.
은설은 나비가 나풀거리듯 허공을 밟으며 검무를 추었다. 그녀의 검이 스쳐간 곳에서 피가 튀었다.
그녀는 습격자가 정파 무사라는 걸 알기에 살수를 쓰진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상대했다.
상대는 지금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적일 뿐.
그렇게 열을 셀 시간쯤 지났을 때,
삐이이이.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리고, 적은 갑작스런 출현만큼이나 빠르게 몸을 날려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다.
마치 한순간 환상에 빠진 것 같은 상황.
하지만 귀에 들리는 신음과 사방에 흩뿌려진 피, 널브러져 있는 시신은 자신들이 결코 환상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쓰러진 사람은 이십여 명.
대부분 적의 시신이었지만, 검마보의 무사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그나마 혁무천의 경고를 듣고 대비를 했기에 그 정도였다. 혁무천의 경고가 없었다면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지도 몰랐다.
“개자식들…….”
“젠장.”
“으음……”
율이명과 검마보의 간부들, 사공진은 침음을 흘렸다.
그들은 이제야 팔문금쇄진 안에 들어온 마도연합 무사들의 상황이 어떤지 좀 더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혁무천이 어느 한 곳을 보더니 눈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상황이 바뀌고 있군요.”
율이명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말인가?”
“습격자들이 피리소리를 듣고 물러났지 않습니까?”
“맞아. 그랬지.”
“이곳에 들어와서 처음 들은 소리입니다. 즉, 내부에서 뭔가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거지요.”
“흠, 마도연합이 팔문금쇄진을 뚫었나 보군.”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피해를 봤겠지만.”
“피해를 보더라도 일단 진세를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겠지.”
“맞습니다. 부상자들부터 손보십시오. 대충 손 본 후 출발하겠습니다.”
“알겠네.”
멀리서 혁무천 일행을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하얀 복면을 쓴 자.
높은 나무의 가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의 눈가에 주름이 졌다.
‘뭐하는 자들인지 몰라도 제법이군.’
정은맹의 습격을 가볍게 물리친다는 건 팔대마세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어렵지 않게 암습을 막아냈다.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는 물론이고 초절정경지의 고수도 있었다.
특히 그들 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는 가볍게 장력을 펼쳐서 절정경지의 고수 둘을 어렵지 않게 쳐냈다.
이제 이십 대의 나이. 멀리서 보는 데도 감탄이 나올 만큼 잘 생긴 얼굴.
냉정한 판단과 단호한 손속은 덤이었다.
절로 호기심이 생기게끔 만드는 자였다.
어떤 놈인지 알아볼까?
그때 피리소리가 들렸다.
아쉽지만 놈을 상대하는 건 다음으로 미루어야만 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강호에 나가면 만날 수 있겠지.’
바로 그때, 그가 고개를 자신 쪽으로 돌리는 게 보였다.
그냥 고개만 돌린 것이 아니었다.
시선도 자신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를 봤나?’
그 또한 놀랄 일이었지만 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보자, 친구.’
그는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제 피를 봐야 할 시간이었다.
***
콰르르릉! 와지직!
공력이 강한 만마성 고수 수십 명이 한꺼번에 공력을 쏟아내면서 바위가 부서지고 거목이 쓰러졌다.
그때부터 계곡 안의 대기가 뒤틀리며 주위 경관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됐어!
“진세가 무너졌다!”
“조금만 더 가면 계곡을 벗어날 수 있다! 가자!”
와아아아!
지켜보던 자들이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 와중에도 천양묵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소리쳤다.
“놈들의 공격을 조심해라! 방심하지 마!”
그 순간, 뒤틀리는 허공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 자들이 도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막대한 공력을 소모한 무사들은 그들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대신 뒤쪽에 있던 무사들이 앞으로 나서며 공격을 막아냈다.
같은 상황을 접한 것도 이번이 세 번째. 공수 전환이 전광석화 같았다.
정은맹 무사들은 몸을 던져가며 만마성 무사들이 계곡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막았다.
“마도 놈들을 안으로 들이지 마라!”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그들은 앞서 달려들던 동료가 죽으면 동료의 시신을 타넘으며 적을 공격했다.
하지만 진세를 무너뜨리면서 사기가 충천한 만마성 무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만마성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팔문금쇄진의 한 축을 무너뜨리자, 전체의 진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반각이 지나기도 전, 다른 곳에서도 팔로의 마도연합 무사들과 정은맹 무사들 사이에 전격적인 혈전이 벌어졌다.
“쳐라!”
“놈들을 갈가리 찢어 죽여라!”
“다 죽여버려!”
혈왕동 무사들이 주축을 이룬 일로의 무사들은 악을 쓰며 정파 무사들을 공격했다.
복우산에 일천여 명이 들어왔다. 정은맹의 간헐적인 공격에서 백여 명을 잃고, 팔문금쇄진에서 삼백여 명이 죽어갔다.
그 후 전력을 쏟아서 진세를 빠져나오며 또 이백여 명이 죽었다.
일천여 명 중 남은 자는 사백 명도 채 안 되는 상황.
혈왕 능전평은 물론 모두가 악이 받칠 대로 받친 상태였다.
다른 곳은 그나마 조금 낫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삼로의 마황궁, 사로를 맡은 사도맹, 오로를 맡은 마천문, 육로의 귀천교도 절반 가까운 피해를 입고 겨우 팔문금쇄진을 벗어난 것이다.
의외라면 칠로를 맡은 철혈마련 쪽의 피해가 삼 할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문척, 한 개인의 능력 덕분이었다.
우문척은 적의 움직임을 귀신처럼 눈치 챘다. 비록 진세를 깨뜨리지는 못했지만, 적의 암습에 대비할 수 있으니 피해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의 가공할 무공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사실 강호에서 우문척의 무공실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동생인 우문양조차 그의 진실된 실력을 알지 못했다.
사공곽, 악사등과 함께 삼파 연합을 이루어 소림사와 화산파를 쳤을 때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우문척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숨기지 않았다.
손짓 한 번으로 땅을 뒤집고, 일검으로 절벽을 무너뜨렸다.
정파의 내로라하는 절정고수 네 명이 협공하고도 그의 십 초식을 받아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알았다.
우문척이 사대천마에게 뒤지지 않는 절대고수라는 걸.
새로운 절대자의 탄생에 철혈마련 무사들은 환호했고, 함께 있던 마도의 고수들은 경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
“진세가 무너졌습니다.”
이사명의 보고에, 사마진웅이 찻잔을 든 채 멈칫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하루 정도 빨리 무너졌군.”
“마도 놈들 속에 그만큼 뛰어난 자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두 사람은 생각도 못했다.
팔문금쇄진이 예상보다 하루 일찍 무너진 이유가 혁무천이 내갈긴 일장 때문이라는 걸.
“문제는, 그로 인해서 저들의 피해가 예상했던 것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그럼 할 수 없이 다음 단계 계획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겠군.”
“예, 맹주. 아마 한 시진 후면 그들이 이곳 마당까지 들어올 겁니다.”
“신아는?”
“사문(死門)으로 갔습니다.”
사문은 팔문금쇄진의 팔문 중 하나다.
말 그대로 죽음의 문.
사마진웅은 사마신이 그곳으로 간 이유를 짐작하고 표정이 무거워졌다.
“신아에게 다음 계획대로 할 거라고 전하게.”
“……예, 맹주.”
이사명은 멈칫했다가 대답했다.
맹주가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어쩌면 사마신은 더 이상 맹주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사도진웅이 세운 계획에 큰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다.
다만, 새로운 변화가 생길 뿐.
문제는 그 변화의 끝을 자신도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명, 자네가 그 아이를 도와주게. 피의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말이야.”
“맹주…….”
“내가 택한 길이니 두렵지는 않은데, 생각해보니 그 아이가 어릴 때 내가 너무 막다른 길로 몰아넣었던 것 같아. 그러지만 않았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맹주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아니야. 아비 된 사람은 자식이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 정도만 하면 되네. 나머지는 그 아이 몫이지. 그런데 나는 내 욕심만 너무 강요했어.”
이사명은 아무 말도 못했다.
“이제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업보를 나누어 지는 것 정도가 다네. 그러니 자네가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맹주.”
***
정은맹 무사들을 몰아붙이던 혈왕동 무사들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자들을 보며 멈칫했다.
백의를 입고 복면을 쓴 자들.
숫자는 오십 명쯤.
소문으로 들었던 정은맹의 살귀들이 분명했다.
“살귀들이다!”
“놈들을 막아!”
누군가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백의에 복면을 한 자들은 말 한마디 내뱉지 않고 곧장 공격에 나섰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밀려가는 그들의 기세는 마치 해일이 밀려가는 듯했다.
단순히 기세만 강력한 것이 아니었다.
오십여 명 모두가 절정 수준에 올라선 고수들.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백 명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피가 튀고, 비명이 터지고, 사지가 잘려나갔다.
복면인들은 한 번의 공격으로 검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상대가 확실하게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공격했다.
상대의 가슴을 가르고도 비틀거리는 자의 사지를 잘라내고, 쓰러지는 자의 목을 벴다.
그들에게 죽은 자들은 온전한 시신이 없었다.
사지가 잘리고 목이 잘린 참혹한 시신들이 사방에 널렸다.
악에 바친 혈왕동 무사들조차 공포에 질려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오죽하면 정은맹 무사들마저 질린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백의 복면인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잠깐 사이 백여 명이 참혹하게 죽어갔다.
“이놈!”
“장로들은 모두 저놈들을 공격하시오!”
혈왕동의 장로와 간부들이 백의 복면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백의 복면인들은 흔들리지 않고 진형을 유지한 채 혈왕동의 고수들을 상대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 개개인의 무공도 혈왕동 간부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능전평은 눈을 치켜떴다.
이제야 왜 마도연합의 일차 공격 때 그렇게 많은 피해가 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서 저런 놈들이……!”
악랄함을 욕할 수도 없었다. 악랄한 것으로 말하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곳이 혈왕동이니까.
검을 빼든 그가 몸을 날렸다.
“죽일 놈들! 본좌가 친히 목을 쳐주마!”
호법 넷이 함께 날아가며 능전평을 호위했다.
그때였다.
“혈왕 능전평! 그대는 내가 죽여주마!”
산을 무너뜨릴 것 같은 외침과 함께 한 사람이 능전평을 향해 마주 날아갔다.
“오냐, 이놈! 네놈 목부터 쳐주마!”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의 가공할 검세가 정면으로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