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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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47화
247화
두 사람 사이의 허공이 아지랑이라도 피어난 것처럼 이지러졌다.
혁무천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보며 천망검을 들었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천망검의 검신을 타고 쭉 뻗어나가는가 싶더니 뇌전이 번쩍였다.
콰르르릉! 콰광!
혁무천과 백경이 격돌하자, 대로의 땅이 뒤집어지며 먼지구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와중에도 천망검은 백경을 향해 검기를 토해냈다.
펼치고 거둠이 자유로워진 대천룡구검세는 강함만 존재하던 때와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 공력까지 높아진 터라 위력 또한 더욱 강력해졌다. 덕분에 금제가 풀리는 팔성 공력을 넘어서지 않고도 백경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일 수 있었다.
백경은 초식이 거듭될수록 점점 위력이 강해지는 혁무천의 공격에 눈을 부릅떴다.
용틀임을 하며 밀려오는 검은 그 변화를 예측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뇌전과 같은 강력한 힘마저 실려 있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수련해서 완성시킨 태천신장을 펼쳐서 맞섰다.
두 사람 주위로 바위도 으스러뜨릴 가공할 기운이 휘돌았다.
백경은 중리안이 왜 무천에 대한 공격을 포기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참으로 무서운 놈이로다!’
그는 미세하게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태천진기를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그때 적상천이 소리쳤다.
“놈들을 잡아라! 반항하면 팔다리를 잘라버려도 상관없다!”
천기회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룡단 무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쿵!
장대산이 발을 구르며 장봉을 앞으로 내밀었다.
웅웅웅!
장봉 끝이 파르르 떨리며 벌의 날갯짓 같은 소리를 토해냈다.
가히 천장(天將)의 위세!
달려들던 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순간, 여덟 자 길이의 거대한 장봉이 허공을 갈랐다.
후아아앙!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
퍼버벅! 따당!
서너 명이 튕겨져서 날아갔다.
칼을 들어 막은 자도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지막지한 장대산의 힘은 칼마저 부러뜨리고 사람도 날려버렸다.
그러고도 봉은 멈추지 않았다.
장대산이 한손으로 잡고 휘두르는데 마치 가벼운 불꼬챙이를 휘두르는 듯했다.
천기회 무사들은 정면대결을 포기하고 피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그들은 장대산을 우회해서 비룡단원들을 공격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천화상단 무사들도 비룡단의 좌우를 공격했다.
“원진을 유지하고, 방어에 치중하면서 상대하십시오!”
목량이 소리쳤다.
장대산과 철호, 철상이 전면을 맡고, 송비와 추씨 삼형제, 호광이 후위를 맡았다.
자경산 남매와 장평, 영추문, 은설은 좌측으로 공격해오는 자들을 상대하며 버텼다.
그리고 남은 우측은 새로 비룡단원이 된 탕초양과 귀원 일행이 책임졌다.
사공미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해서 방어망 안에 머물렀다.
이십 명 대 이백여 명.
숫자 차이만 열 배였다. 게다가 이백 명은 평범한 일반 무사들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절정급 고수만 해도 열 명이 넘었다.
비룡단원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들을 모두 상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흐르면서 압박감이 점점 더 강해졌다.
방어만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송비와 은설, 호광, 철호는 적의 중간간부로 보이는 자를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았다.
뒤늦게 무공이 꽃을 피운 송비는 적상천을 상대했는데, 진짜 장비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무식하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무공 못지않게 말도 강했다.
“이 개자식! 정파라더니 비겁한 수법만 배웠구나!”
“표행을 털려던 도둑놈 집단이 반성은 안 하고 어디서 검을 들이대!”
“다른 정파 무인들이 그 사실을 알면, 어디 창피해서 얼굴을 들겠느냐!”
천화상단의 무사들은 그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에든 마음 약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 천기회 무사들은 명색이 정의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이었다.
천화상단 무사들과 달리 그들은 송비가 말할 때마다 주춤거리고 공격을 망설였다.
송비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하지만 말로 상대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삼협! 저자의 목을 치십시오!”
적상천이 물러서며 명령을 내렸다.
천기회 무사들 중 사십 대로 보이는 세 사람이 송비를 향해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경산삼협(京山三俠)이라고 불리는 절정고수들이었다.
그들은 합공을 펼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들보다 강하게 보이는 자였다.
천화상단 쪽에서도 옥귀정을 비롯해,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본격적으로 싸움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압박이 강해지자, 비룡단원 중에서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탕초양의 일행 중 한 청년의 팔이 깊게 베어졌다.
탕초양은 그자를 뒤로 물러서게 한 후 다섯이서 적을 막았다.
부상자의 단골손님인 장평 역시 또 피를 보아야만 했다. 이번에도 영추문을 도와주다 등에 칼이 스친 것이다.
“당신이나 신경 쓰라니까!”
영추문도 그 사실을 알기에 짜증내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분노가 아닌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장평은 입을 꾹 닫고 열심히 칼을 휘둘렀다.
영추문의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이 떠오른 걸 본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그렇게 점점 더 수세에 몰릴 때였다.
마을을 가로지른 관도 저 끝자락에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족히 이백여 명은 될 것 같았다.
비룡단원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표정이 밝아졌다.
“와하하하. 이제야 오는군!”
송비가 대소를 터트리며 공력을 십성 끌어올리고 삼협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제는 공력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잠깐 사이 싸움이 벌어지는 곳에서 이십 장 거리까지 다가온 자들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놈들을 쳐라!”
선두에서 달려오던 율이명이 소리쳤다.
“미미야!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원진 중앙에서 바짝 굳어 있는 사공미미를 보고 놀란 사공진이 고함을 쳤다.
곧 검마보와 비룡장 무사들이 혈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황한 천기회와 천화상단 무사들은 우왕좌왕하며 물러섰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다섯 걸음을 물러선 혁무천이 백경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천화상단의 운도 다한 것 같군요.”
백경은 굳은 표정으로 혁무천을 노려보았다. 흰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당장 심장을 터트려서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게도 자신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아니, 싸움이 더 길어진다면 자신 역시 중리안 꼴을 당할지도 몰랐다.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냐?”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오.”
“너 같은 놈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칭찬으로 알겠소.”
혁무천은 조소를 지은 채 말하며, 흔들린 진기를 가라앉혔다.
자신이 조금 이득을 보긴 했다. 하지만 승패를 논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전에 싸워봤던 인태상이란 자보다 반 수 정도 고수? 그게 혁무천이 내린 백경에 대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는 백경이 펼친 무공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었다.
“조금 전의 장법, 태천장 같던데… 태천문의 제자요?”
백경의 두 눈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떠졌다.
갑작스런 충격에 하마터면 진기가 꼬일 뻔했다.
“네가 어떻게… 태천장을 아느냐?”
“전에 들은 적이 있어서 넘겨짚어 본 거요.”
들은 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백 년이 더 넘은 이야기지만, 광천곡을 나온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태천문의 문주와 대결을 벌였었다.
당시 자신이 이겼다고는 하나, 태천문주는 그가 싸워본 사람들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강한 고수였다.
‘넘겨짚어 봤다고?’
백경은 혁무천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태천문은 제자를 세 명 이상 두지 않았다. 강호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백여 년 전 이후 강호 활동을 하지 않아서 이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이십 대로 보이는 놈이 어떻게 태천장을 알아본단 말인가.
하지만 의문을 풀 시간이 없었다.
갑자기 등장한 적의 지원무사들로 인해 천기회와 천화상단 무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비룡단원들이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날뛰면서 쓰러지는 천화상단 무사들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놈! 오늘은 이만 가마. 다음에 내가 찾아가겠다. 그때는 확실한 답을 해야 할 거다.>
백경은 빠르게 전음을 쏟아내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귀정! 후퇴해라!”
옥귀정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후퇴하라!”
천화상단 무사들은 물론이고, 천기회 무사들마저 썰물 빠지듯 물러섰다.
이미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 부상자도 많았다.
송비와 죽기살기로 싸웠던 적상천도 피로 물든 어깨를 움켜쥐고 몸을 날렸다.
혁무천은 백경을 붙잡지 않았다.
금제를 해제시키지 않고는 붙잡을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백경을 잡기 위해서 수명을 단축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오빠, 괜찮아요?”
은설이 그에게 다가왔다.
“으으음.”
혁무천은 신음을 가늘게 흘리며 가슴을 쥐어짰다. 미간이 일그러졌다.
“오빠!”
은설은 화들짝 놀라서 혁무천을 안듯이 붙잡았다.
“괜찮아. 큰 부상은 아니야.”
혁무천은 은설을 안심시켰다. 진기가 흔들린 정도는 부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은설에게 안겨 있으니 포근했다.
‘그냥 장난 한번 해봤는데…… 가끔 해볼까?’
그때 송비가 물었다.
“단주, 내상을 입었나?”
“아니 뭐, 내상이라고 할 것까지는…….”
당장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을 하기가 어정쩡했다. 설아의 품에서 벗어나기도 싫었고.
그런데 송비가 말했다.
“대산아! 네가 단주를 안아라.”
“어.”
혁무천은 슬그머니 은설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럴 필요 없다, 대산. 나 혼자서도 걸을 수 있으니까.”
송비가 조금은 얄미웠다.
‘하여간 눈치도 없다니까. 저러니 혼인도 못하고 살지.’
본인은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혁무천이 볼 때는 ‘못한 것’이 분명했다.
시신이 널브러져 있던 객잔 앞 관도가 빠르게 정리되었다.
천기회와 천화상단 무사 중 죽은 자만 백 명이 넘었다.
그들의 시신을 한쪽에 모아 놓았다.
검마보와 비룡장 쪽도 사상자가 이십여 명이나 나서 열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율이명이 혁무천을 보며 말했다.
“막 출발하려는데 마황궁에서 전령이 왔지 뭔가.”
율이명은 오불광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확, 때려죽일 수도 없고…….”
지체된 시간이라고 해봐야 반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급박할 때 반각은 반년보다 더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 때문에 몇 명이 부상을 입었지 않은가 말이다.
“어쨌든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제때 잘 오셨습니다.”
혁무천은 오히려 조금 늦은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좀 더 일찍 왔다면 그만큼 편하게 이겼을 것이다. 대신 저들의 피해도 지금보다 더 적었을 것이고, 백경과의 대결도 더 일찍 끝나서 아쉬움이 남았을지 몰랐다.
또한 백경과의 마지막 대화도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다시 찾아오겠단 말이지?’
그 말을 할 때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듯했다.
‘어쨌든 잘 됐군. 나도 그냥 보낸 것이 서운했는데.’
혁무천이 가볍게 대답하고 뜻 모를 미소를 짓자, 율이명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런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향으로 가면 복우산으로 가라고 할지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