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2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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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243화
243화
혁무천의 그 질문에, 은설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쪽으로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분은 신도명산 같은 사람 밑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혁무천은 은설의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와야지. 내가 고개를 조아리더라도.”
마천제가 고개를 조아리는데도 말을 안 들어?
그럼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끌고 올 생각이다.
꼭 자신의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다.
신도명산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 이현이 그와 함께 있으면서 적이 된다면 너무 위험하다.
그런데 은설이 물었다.
“설마 강제로 제압해서 데려올 생각은 아니죠?”
눈치 하나는 정말 빠르다.
물론 혁무천은 자신의 생각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 너는 이 오빠가 그렇게 무식한 사람으로 보이냐?”
은설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오빠가 그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신도명산은 천화상단에서 온 사람들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백경이라 하네. 총단주가 나에게 조카가 되니 말을 놓겠네. 이해하시게나.”
천궁환이 보낸 사람들은 백여 명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숫자만 듣고 짜증이 났다.
자신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겨우 백여 명만 보낸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을 이끌고 온 백경이라는 노인을 보고 짜증이 만 리 밖으로 달아났다.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 그것도 자신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강한 기운을 지닌 노인이었다.
겉모습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데, 천궁환을 조카라고 할 정도면 칠순은 된다는 말.
천화상단에 절대경지의 고수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고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신도명산입니다. 천기회를 맡고 있지요.”
비천의 삼태상 중 지태상인 백경은 신도명산이 순순히 인정하고 나오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총단주가 그러더군. 회주를 도와서 무천이란 아이를 제거해달라고 말일세.”
무천의 이름이 나오자, 신도명산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예, 놈을 반드시 제거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천 형도 그놈을 죽이고 싶어 할 줄은 몰랐군요.”
“그래? 몰랐나 보군. 총단주의 둘째인 주명이가 놈의 손에 죽었네.”
“예?”
“남양에서 사과하기 위해 놈을 찾아갔다가 놈의 손에 중상을 입고 돌아왔다고 하더군. 그리고 결국 그날 밤에 죽었다고 하네.”
신도명산의 표정이 이지러졌다.
아들의 죽음을 내세워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천주명이 무천이란 놈에게 죽었다면 그럴 수도 없었다.
‘젠장!’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안 됐군요. 저만 아들을 잃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천 형은 아들이 많으니 다행입니다.”
신도명산이 은근슬쩍 차별화 하려고 했지만, 백경은 신경을 쓰지 않고 말을 돌렸다.
“그놈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남양에 있나?”
“예, 노야.”
“어떻게 할 건가? 복우산의 상황도 심상치 않으니 빨리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네만.”
“노야께서 나서주신다면 저희 역시 최대한 돕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그럼 나야 편하지. 준비를 마치면 내일 출발할 거네. 괜찮겠나?”
“알겠습니다. 내일 미시 전까지 준비해 놓겠습니다.”
이현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신도명산을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디찬 목소리의 명령이 전부였다.
“내일 천화상단에서 온 사람들이 무천을 제거하러 갈 거다. 그들만 믿고 맡겨둘 수 없으니 우리 쪽에서도 정예를 보낼 생각이다. 천웅대 이백을 준비해 놓아라.”
“회주, 그들은 복우산에 보내기로…….”
“네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나도 안다. 하지만 평아의 복수가 우선이다. 그리고 솔직히 정은맹이 너무 컸어. 이번 기회에 조금 힘이 약화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현은 그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도 천기회가 정은맹에 밀리는 게 싫은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의와 협의를 위해 일어선 천기회 회주가 동료나 다름없는 정은맹의 힘이 약화되길 바라다니.
그 말인 즉,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동료가 죽어가도 괜찮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심한 회의감에 가슴에서 통증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도명산이 냉랭하게 말했다.
“네가 요즘 나태해졌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평아가 죽으니 네가 당장 후계자가 될 거라 생각하나 본데, 나는 능력 없는 사람에게 회를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령주 자리도 박탈할 것이니 조신하게 행동하도록 해라.”
“…….”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혹시 그가……?’
누가 그런 말을 회주에게 전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해봐야 자신의 입만 더러워질 뿐이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아, 알겠습니다, 회주.”
“나가봐라. 내일 준비 잊지 말고.”
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는데 허탈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십여 년 동안 무엇을 위해 이리도 노력해왔던가.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젠 어쩔 수 없나?’
***
대규모 운송 행렬이 금룡장을 나섰다.
쌍두마차가 끄는 마차만 오십여 대. 말을 타고 이동하는 호위무사가 오십여 명. 그 외 도보로 따르는 무사가 삼백 명이나 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표행이었다.
십 년 내 남양 일대에서 있었던 표행 중 가장 규모가 큰 표행이라는 말조차 나왔다.
더구나 호위를 하는 보표를 검마보주인 단천검마 율이명과 사도맹의 사공진이 이끌고 있었다.
혁무천은 운송 행렬의 끝자락이 눈에서 사라진 후에야 몸을 돌렸다.
이제 금룡장에 있는 물량은 거의 다 소모되었다.
이후 다시 들어오긴 하겠지만 이전처럼 많은 물량이 한꺼번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 복우산에 가봐야겠군.’
아마 그 날이 사나흘 후면 오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목량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찾아와서 말했다.
“대형, 개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천화상단에서 상당한 실력의 고수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인원은 백 명 정도로, 천기회가 있는 청죽장으로 들어갔다 합니다.”
혁무천의 눈이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워졌다.
“그들이 왜 그곳에 갔을 거라 생각하느냐?”
“천기회주 신도명산이 요청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천궁환이 천주명의 복수를 하기 위해 보냈겠군.”
“현재로썬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는 비천의 인물들 위주로 보냈을 거다. 그럼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아들의 복수도 하고, 비천의 힘도 약화시키고.”
“아…….”
“나름대로 머리를 잘 굴렸어. 그런데 그게 자충수가 될 거라는 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
무심한 어조로 말을 내뱉은 혁무천이 걸음을 옮겼다.
“복우산으로 간다.”
“예?”
“개방제자들이 천기회에 들어가는 그들을 본 게 이틀 전, 그렇다면 지금쯤 나를 잡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중이겠지.”
“으음, 그럴 겁니다. 빠르면 내일쯤 도착하겠군요.”
“그들을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다. 어차피 가봐야 할 곳이니 조금 일찍 가는 셈 치면 돼.”
목량은 혁무천의 말뜻을 이해하고 눈이 커졌다.
복우산에서는 마도연합과 정파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천기회 무사들도 상당수 참여해서 정은맹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천기회와 천화상단 고수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알려진다면 천화상단은 마도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대형은 그들을 상대하는 데 마도의 힘을 이용할 생각이시군.’
설령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곳에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정한 계책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계책을 말 몇 마디 하는 사이에 생각해냈다는 것이다.
“언제 가실 겁니까?”
“내일 오전에 출발하면 오후 늦게 쯤 오늘 출발한 사람들을 내향에서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들이 금룡장을 가만 놔둘지 모르겠군요.”
“정파와 천화상단이라는 체면 때문에라도 대놓고 힘으로만 밀어붙이지는 못할 거다. 게다가 금룡장과 싸우느라 힘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을 거고.”
금룡장이 비록 혁무천에게 눌려 찍소리 못하고 따랐지만, 구룡상단의 하나로써 만만치 않은 무력을 지닌 곳이었다.
천기회와 천화상단이 전면적인 공격을 한다면 그들 역시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은설은 혁무천이 서협으로 간다고 하자 시무룩해졌다. 그의 말이 전쟁에서 마도와 함께 한다는 뜻처럼 들린 것이다.
하지만 반대할 수도 없었다.
천화상단이 천기회와 손을 잡고 혁무천을 죽이기 위해 고수들을 파견했다지 않는가 말이다.
혁무천도 은설의 걱정을 모르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마도와 함께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정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정파를 도와 싸우지도 않을 거다.”
은설도 그 일은 강요할 마음이 없었다.
천기회가 신도평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혁무천을 죽이려 하지 않는가. 정은맹도 좋은 관계는 아니고.
그것만 생각하면 절대 정파를 생각해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복면인들은 강호에 혈풍을 몰고 올지 모르는 위험한 자들이다.
“저도 오빠 마음 이해해요. 믿고 따를게요.”
혁무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렸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고민이 은설의 그 말 한마디에 모두 날아가고 마음이 편해졌다.
“고맙다. 위험한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마라. 내 옆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고.”
“피이, 제가 뭐 옛날의 설아인 줄 아세요?”
“인마, 네가 아무리 커도 내겐 그냥 설아야.”
“알았어요, 오빠.”
은설이 대답하고는 배시시 웃었다.
그럴 때는 영락없이 일 년 전의 발랄하던 은설이었다.
***
다음 날 오전 사시(巳時오전9시~11시) 초.
아침식사를 마친 혁무천은 비룡단과 함께 금룡장을 나섰다. 사공미미까지 모두 열다섯 명이나 되었다.
전금환에게는 혹시라도 천화상단이 찾아오면 그들에게 자신의 행적을 말해주라고 했다.
전금환으로선 그들이 떠나주는 게 고맙기만 했다.
천화상단과 천기회에게 시달릴 생각만 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게다가 하나 있는 아들은 혁무천의 그림자만 저만치 보여도 경기 들린 것처럼 벌벌 떨며 숨었다. 애지중지하는 자식이 그러니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런데 먼저 떠나주겠다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언제든 찾아오시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환영하겠네. 허허허.”
혁무천도 미소로 답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마 다음 달쯤이면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뵙죠.”
“그, 그런가? 허허허.”
혁무천은 가늘게 떨리는 전금환의 표정을 못 본 척하고 몸을 돌렸다.
입꼬리가 살짝 틀어졌다.
‘시원한 냉수를 마시다 체한 기분이겠군. 능구렁이 같은 영감.’